# 휴식
창덕궁을 다 돌아본 우리는
빙수집에서 빙수를 두개 주문했습니다.
멜론빙수와 수박빙수를 포장해서
숙소 공용 공간에서 먹었습니다.
다들 지치고 피곤했을터라
조용히 맛있게 시원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빙수를 다 먹고 체크인을 한 후,
방에 들어가서 두시간가량 쉬었습니다.
*
저는 하윤 선빈이와 방을 같이 썼습니다.
하윤이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안돼! 침대는 안돼! 다 씻고 들어가야해!" 하며
절대 침대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하윤이의 포효에 저와 선빈이는 결국 바로 씻었습니다.
개운한 몸으로 침대에서 뒹구는게 얼마나 행복하던지..
저는 곯아떨어졌고
하윤이와 선빈이는 티비를 봤습니다.
*
잠에서 깼더니
선빈이가 라멘 먹방을 보며
"선생님 배고파요..." 했습니다.
그래 창경궁 가기 전에 배를 채우고 가야겠다 - 싶어
우리는 또 집 앞 편의점으로 갔습니다.
각자 5000원 안에서 먹을 걸 고릅니다.
불닭을 사랑하는 규리는 불닭을 고르고
밥이 먹고싶다는 은우는 김치 덮밥을 골랐습니다.
한입씩 서로 나눠먹으며 배를 채우고 다시 창경궁으로 갔습니다.
-
# 창경궁으로
규리가 버스 노선을 확인하고,
창경궁 입구까지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홍화문 너머로 따듯한 저녁 햇살이 내려옵니다.
임진왜란에 불타 없어졌다가 복원된, 굶주리던 백성을 돕는 공간. 홍화문.
아이들이 그 홍화문으로 성큼 들어갔습니다.
*
옥천교를 건너니, 명정전이 나왔습니다.
인정전 만큼이나 참 크고 멋진 명정전을 구경하려 했는데..
"선생님 화장실 가고싶어요."
우리는 일단 창경궁 화장실을 찾아 나섰습니다.
대부분의 화장실이 공사로 폐쇄되었고,
대온실 가는 길에 임시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화장실에 들렀다가,
춘당지와 대온실을 구경하기로 했습니다.
춘당지 가까이 다가가니, 오리들과 큰 붕어가 많았습니다.
한참을 구경하다 연못을 따라 걸었습니다.
그 끝에 다다르니 대온실이 보였습니다.
그동안 기와지붕만 보다가, 서양풍의 대온실을 보니 낯설었습니다.
일본이 서양의 것을 들여오면서 개방해
우리 궁의 위상을 떨어트린 그 장소를 걸으며
아이들은 각자 분개했습니다.
"으아아 일본놈들 나쁜놈"
"으으으"
대온실을 구경하고
다시 춘당지를 지나 나오며
아이들이 춘당지 챌린지를 찍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춘당지 위에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 -
이후 우리는 명정전, 문정전, 함인정, 양화당을 둘러봤습니다.
다들 해설을 들으며 조용히 이동하는데..
우리는 우리끼리 옹기종기 다녔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해설이야
우리는 책을 읽었잖아!"
정말 그랬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지칠대로 지쳐
더 이상 궁을 구경하는 건지
그냥 걷는건지 모르겠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명정전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고
돌아가기로 했는데 -
아이들은 중전마마 놀이를 하며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놀았습니다.
아니 이런 체력이 갑자기 어디서 나온거지? 놀람과 공포였습니다.
어쩌면 아이들의 광기였을지도 모르겠어요..
-
# 서울의 밤
아이들과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가는 길에 사진도 찍었어요.
그동안 아이들은 편의점에서 밥을 먹을 때마다,
각자 몇백원 몇천원씩 아꼈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어서요.
야금야금 모아 10,000원을 사진에 썼습니다.
아이들이 사진관에서 참 신났습니다.
*
숙소와 즉석사진관 사이에 있던 치킨집을 선빈이가 봐두고는,
배달 시키지 말고 그냥 포장해서 먹기로 했습니다.
양념이냐 간장이냐 반반이냐 -
논쟁이 치열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간장치킨이 먹고싶었고
하윤이는 안먹고 싶었는데
하윤이가 "나 지금 너네 설득할 힘도 없다 그냥 너네 먹고 싶은 거 먹어라!" 해서
우린 결국 간장치킨을 먹었습니다.
은우가 콜라도 먹자! 했는데
사장님께서 콜라는 편의점에서 사는 게 더 싸다 하셔서 편의점에 또 들렸습니다.
각자 먹고싶은 음료수를 캔으로 골랐습니다.
아이들은 거기서 발견한 축구카드를 사고 더욱 신이 났습니다.
사진과
치킨과
음료수와
축구카드를 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
방에는 무언가 먹을 공간이 없어서
공용 공간에서 치킨을 먹어야 했습니다.
저녁이라 그 공간에서 조용히 해야 했기에
우리는 거의 속삭이며 치킨을 먹었습니다.
때때로 하윤이가 조금씩 데시벨을 올릴 때마다
너나할 것 없이 쉿... 하며
조용히 치킨을 먹었어요.
-
# 끝날듯 끝나지 않는 밤
치킨을 먹고 각자 씻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모여야 했습니다.
감사장을 쓰고,
롯데월드에서 어떻게 다녀야 할지 의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각자 한분씩 맡아 감사장을 꾸미고
옆으로 넘기며 모두가 감사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그런데 해설해 주신 분께도 쓸까요?"
더운 날씨에도, 아이들을 친절하게 대해주신 해설 선생님이 기억에 남았나 봅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 모든 사람에게 써야해..."
"해설 선생님은 맨날 바껴서 우리가 내일 가도 못만날지도 몰라"
감사장은 못썼어도, 아이들은 분명 그 선생님께 감사했습니다.
*
"자 이제 롯데월드 회의 할까요?"
하윤이가 드릉드릉했습니다.
각자 탈 수 있는 놀이기구의 범위가 다르기에,
어떻게 팀을 나눠 돌아다녀야 할지 정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모든 무서운 놀이기구를 다 타고 싶다는 하윤이와
여유롭게 다니고 싶은 다른 아이들
무서운 놀이기구를 못타는 서로.
한명이 말하면 한명이 손들고 반박하고 손들고 반박하고 손들고 반박하고...
밤이 깊어가는데
이러다가는 잠못자고 몸 상할까봐
오전에 아틀란티스, 후렌치레볼루션 탈 팀과 그렇지 않은 팀으로 나누고 우리는 잠에 들었습니다.
이렇게 길었던 서울에서의 첫날 일정이 끝났습니다.
첫댓글
"나 지금 너네 설득할 힘도 없다 그냥 너네 먹고 싶은 거 먹어라!"
파하하
도서관 한쪽 벽에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공기를 찢을 듯한 더위도
아이들의 설렘과 열정도
선생님들의 땀과 헌신도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밤도
벌써 지난 날
다시는 오지 않을 아련한 추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