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을 지나며 따뜻한 봄바람을 느낄 즈음 동네산 여기저기서 진달래가 피어난다. 수줍게 분홍꽃잎으로 피어 봄이 왔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린다. 그러면 난 황사가 산성비가 꽃잎에 앉기전 먼저 내 손에 가져야 해서 안절부절하며 그 꽃 소식에 귀 기울인다. 어릴적 자랄땐 황사도 산성비도 없어서 꽃이 피어 있는 봄날 언제든 딸 수 있었는데. 시장에서도 비닐자루 한가득 분홍색 꽃잎을 채워 팔고, 솥뚜껑이나 후라이팬을 걸어 하얀 찹쌀가루와 버무린 커다란 분홍 반죽을 지져서 팔기도 했었는데. 옛날, 옛날사람이 되어 버렸다.
진달래가 필때쯤 나도 때어났나보다. 엄마는 생일상에 케잌과 함께 항상 진달래 전을 부쳐주셨다. 그땐 시장에서 커다란 분홍 비닐 자루를 사 오셨다. 그럼 우린 빙 둘러 앉아 꽃잎 하나하나를 손끝에 얹어 꽃수술을 땄었다. 생일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엄마가 준비해 주신 밥과 미역국 다른 음식들을 배불리 먹은 후 케익보다는 달달한 설탕시럽이 묻은 분홍 진달래 전으로 마무리를 했었다. 먹고 웃고 재잘거리는 우리들은 모두 분홍꽃으로 물들어 있었다. 엄마가 해 주시던 그 맛을 지금은 내가 연례행사처럼 해 먹으며 내 봄날의 추억을 한 장 더 만든다.
진달래 소식을 기웃거리다 내 눈과 귀에 전해지면 얼른 달려가 배낭에 채워온다. 이제부터다. 나무에서 꽃을 딸 땐 손에 잡히는대로 한웅큼씩 따는데 다듬을땐 꽃송이 하나하나 손끝에 올려 꽃수술을 떼어낸다. 투박한 손에 잡히는 얇은 분홍 꽃잎이 잘못되기라도 할까봐 조심 조심 한송이 한송이 꽃수술을 떼어낸다. 사실 찢어져도 어차피 반죽으로 버무릴거라 상관 없는데 말이다. 꽃수술을 다 떼어내면 물에 두세번 헹궈 내고 물기를 뺀다. 물기가 빠진 꽃잎을 털어 미리 준비해 둔 찹쌀가루와 함께 버무린다. 찹쌀가루가 어느 정도 들어 가도 반죽은 분홍꽃잎으로 살랑살랑 살아있는듯 춤을 춘다. 후라이팬 예열을 하고 기름을 두르고 기름향이 꽃반죽향을 헤치지않게 닦아내고 약불로 줄인다. 꽃반죽을 올린다. 기다린다. 올려진 반죽이 볼록볼록 신호를 보낸다. 뒤집는다. 또 기다린다. 분홍전이 부풀어 오른다. 다 익었다. 덜어내 설탕가루를 뿌린 접시에 내려 놓는다. 위쪽도 설탕가루를 뿌려준다. 식힌다. 그릇에 옮겨 담는다. 설탕가루가 없으면 익은 찹쌀반죽들끼리 들러 붙어 엉망이 된다. 잔열에 설탕이 녹아 달콤한 시럽막을 만들어 주어 한장씩 떼어 먹을 수 있게 해준다. 통영의 진달래전은 찹쌀반죽 위에 꽃한장을 올려 부쳐 모양만 흉내낸 화전과는 맛도 모양도 다르다. 찹쌀가루와 찹쌀가루보다 훨씬 많은 진달래 꽃잎을 같이 버무려 반죽을 만든 뒤 부쳐낸다. 부쳐진 진달래전은 곱고 짙은 분홍색이나 보라색을 띤다. 진달래 화전이 아닌 그냥 진달래전이다. 맛도 다르다. 달콤한 설탕 시럽 사이 시큼한 진달래 꽃맛이 전해진다. 또 하나의 통영의 맛이다. 내가 봄마다 지인들과 나누는 봄맛이기도 하다. 시큼한 진달래 꽃맛을 머금고 이 노래와 함께 또 이 봄을 보낸다.
봄날은 간다 작사 손로원 작곡 박시춘 노래 백설희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제비 넘나 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