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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복에 담긴 책임과 의무(신명기 3:12~22)
* 본문요약
모세는 먼저 점령한 요단강 동편의 땅을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줍니다.
그러나 아직 정복하지 않은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이들이 선봉에 서야 한다는 조건이 달려 있습니다.
그들은 요단강 서쪽 땅을 얻어 형제들을 안식하게 한 후에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찬 양 : 382장(새 347) 허락하신 새 땅에
375장(새 331) 영광을 받으신 만유의 주재
* 본문해설
1. 요단 동편의 땅의 분배(12~17절)
12) “그때에 우리가 이 땅을 얻으매 아르논 골짜기 곁의 아로엘에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과 그곳에 있는 성읍들을 내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 주었고,
13) 길르앗의 남은 땅과, 옥의 나라였던 아르곱 온 지방인 바산 전 지역은
내가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었노라. (바산을 옛적에는 르바임의 땅이라 부르더니
14) 므낫세 후손 야일이 그술 족속과 마아갓 족속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아르곱 전 지역을 점령하고, 그 땅의 이름을 자기의 이름을 따서 지어서
오늘날까지 그 바산 지역을 ‘하봇야일’이라 이르느니라.)
15) 내가 (므낫세 자손인) 마길에게 길르앗을 주었고
16)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에게는 길르앗에서부터 아르논 골까기까지 주었으되
그 골까기의 계곡 중앙을 경계로 정하였으니
곧 암몬 자손의 경계인 얍복 강까지를 주었으며,
17) 그 서쪽 경계는 아라바와 요단강까지이며, 북쪽 경계는 긴네렛 호수까지이고,
남쪽 경계는 사해까지이며, 동쪽 경계는 비스가 산기슭까지의 요단강 동편 지경이니라
2. 민족 공동체를 위한 책임(18~22절)
18) 그때에 내가 이 땅을 받은 너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너희의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
너희 군인들은 무장하고 너희의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선봉이 되어 요단강을 건너가되
19) 다만 너희에게 가축이 많은 줄 내가 아노니,
너희의 처자와 가축은 내가 너희에게 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
20)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것처럼 너희 형제에게도 편히 쉴 땅을 주시리니
그들도 요단강 저편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얻어
기업을 삼기에 이르거든 너희는 각기 내가 준 기업으로 돌아갈 것이니라’하셨고
21) 그때에 내가 여호수아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두 아모리 왕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네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거니와,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시리니
22)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노라.”
* 묵상 point
1. 하나님은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십니다.
1) 요단강 동편 땅의 분배(12~17절)
요단강 동편 땅의 분배는 가축이 많았던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의 강력한 요구로 이루어졌습니다(민 32:1~14).
모세는 이들의 요구를 가나안 정복 전쟁을 눈앞에 두고
지파 간 결속과 공동체 의식의 약화 행위로 보고 거절했었습니다(민 32:6~15).
그러나 이들이 가나안 정복이 끝나기까지
용감히 싸울 것을 맹세하여 모세가 허락합니다(민 32:16~24).
그래서 이들은 가족들이 안전하게 거할 수 있도록 성을 쌓아 방비를 한 후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정복 전쟁의 선발대로 나섭니다.
2) 요단강 동편 땅을 서둘러 분배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본래 아모리 족속과 바산 왕국의 땅이었던 요단강 동편은
땅이 비옥하여 아주 좋은 목초지를 갖고 있습니다.
팔레스틴 지역이 대체적으로 척박한 땅이 많은 곳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 땅을 요구하는 것은
자칫 지파 간 결속을 무너뜨리고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직 요단강 서편 땅을 하나도 얻지 못한 상황에서
동편 땅을 서둘러 분배하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세 지파의 요구를 거절했었습니다(민수기 32:6~15).
이들이 만일 요단강 동편의 땅이 비옥한 것을 보고 욕심이 나서
자기들만 생각하고 요청한 것이었다면 이들의 행위는 이기적인 행위가 되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깨뜨리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랬다면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서 제외되었을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먼저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공동체 전체입니다.
가정과 교회와 민족, 더 나아가 이 세상 전체를 생각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독불장군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동기가 순수하다고 할지라도 자기 뜻만 고집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나를 다른 사람과는 다른 자라 생각하고
“나는 저런 사람과 다르다”며 자기 의 속에 홀로 빠져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또 스스로 세상에서 성공한 자라 자부하며,
자기보다 못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아픔이 무엇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관심조차 갖지 않고,
오직 내 문제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자들을 주님은 그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행위로는 거의 완벽할 만큼 율법의 의를 가졌던 바리새인들을
주께서 그토록 미워하셨던 것이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 묵상 :
➀ 선지자와 독불장군의 차이
선지자는 교회나 백성들이나 나라의 통치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 행동을 할 때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라고 외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공동체 전체를 생각하신다고 할지라도,
바벨론에 포로가 되기 전의 이스라엘처럼 공동체 전체가 잘못되었다면
죽은 낙엽처럼 생각 없이 죄의 무리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세상이 바벨론 포로 되기 전의 이스라엘처럼 백성들
모두가 다 죄에 빠졌을 때 고고하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세상을 향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라고 외치는 자들이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는 일에 고집을 부리면서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선지자로 말한다면
이것은 독선과 오만이요, 독불장군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 역시 스스로 선지자로 여겼으나
예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오만과 독선에 가득 찬 무리들이었습니다.
➁ 나는 선지자입니까? 독불장군입니까? 아니면 죽은 낙엽입니까?
나는 선지자인지 독불장군인지,
아니면 생각 없이 죽은 낙엽처럼 세상에 휩쓸려 사는 자인지
바르게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상이 말씀대로 잘 흘러가고 있지 않다면
세상을 거슬러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야 할 것이고,
만일 내가 내 고집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나를 포기하고 주의 말씀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의 영적인 상태와 세상의 영적인 상태를 바르게 알아야 선지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당회나 제직회에서 쓸데없이 사사건건 문제만 일으키는 독불장군이 되지 마십시오.
2. 형제의 곤란함을 이해하는 사람들
1)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에 주어진 전제조건(18~20절)
그러나 이들이 요단강 동편의 땅을 다른 지파보다 먼저 분배받는 데에는
한 가지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 정복하지 않은 요단강 서편 땅인 가나안을 정복할 때
선봉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이 가나안 땅에 무사히 안식하게 될 때
비로소 자기의 기업에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2) 다른 지파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 양보한 이스라엘
아직 요단강 서편의 가나안 땅을 단 한 평도 정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르우벳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요단 동편의 땅을 먼저 분배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아홉 지파 반의 사람들이 그들의 처지를 이해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지파보다 이들에게 가축들이 더 많았으므로,
땅이 비옥하여 목초지도 풍부한 이곳을 그들에게 양보한 것입니다.
또한 요단강 동편의 땅을 먼저 분배받은 두 지파 반도
아직 분배받지 못한 나머지 지파의 상황을 이해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요단강 서쪽 땅을 얻기 위한 전쟁에 선봉에 서기로 약속을 합니다.
이렇게 다른 지파의 상황을 이해하고 서로 양보함으로써
자칫 분열될 수 있는 위기를 이겨냅니다.
● 묵상 :
이처럼 공동체를 위하여 자기의 것을 양보할 줄 아는 자들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자들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직장이나 그 밖에 어떤 공동체이든 간에
그 공동체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것을 양보한 자들을 주님은 크게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믿음 있는 자의 마땅히 해야 할 도리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더 큰 복을 위하여
세상의 것을 양보한 자로 여김 받게 될 것입니다.
특히 교회가 건강한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가 되게 하기 위해
물질을 사용하고 수고의 땀을 흘리는 자들을 주님은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3. 공동체를 위한 헌신의 책임을 가진 사람들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것이냐, 저주의 땅이 될 것이냐
하나님께서는 두 지파 반에게 요단강 서편인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형제들이 안식할 처소를 마련한 후에
자기의 기업의 땅으로 돌아오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들이 사는 땅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은 은혜의 땅이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땅을 먼저 차지한 자로서의 형제들에 대한 책임을 잘 감당하면
그들의 땅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됩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먼저 땅을 차지했으니 그다음은 난 모르겠다”는 식으로
형제의 문제를 외면하면 하나님께서 그 땅을 다시 회수하시든지,
혹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저주의 땅이 되고 말 것입니다.
2) 먼저 땅을 받은 자들이 가진 책임(18~20절)
두 지파 반이 다른 지파에 비하여 땅을 먼저 차지한 것을
오늘날에 비추어 말하면,
다른 사람보다 돈을 더 많이 벌어 땅이나 집을 더 많이 가진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다른 형제들을 위해 요단강 서편인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선봉에 서서 형제들에 대한 책임을 다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가진 자로서의
책임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자기와 자기 가족만 위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하나님께 복을 받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
그것으로 그가 속한 공동체를 도울 책임을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가족들만을 위해 더 낫고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자기와 자기 가족만 누리겠다는
소위 ‘카리스마의 사유화’에 해당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은 복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심판의 중요 원인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복을 주셨는지 묵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복이 당신이 속한 교회를 위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묵상해 보십시오.
* 기도제목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공동체(가정,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2. 주께서 주신 복에 담긴 책임과 의무를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3. 건강하고 신령한 교회로
부흥하고 성장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