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뛰놀던 고향은 산천초목이 철따라 색동옷으로 갈아입는 아름답고 정서 깊은 곳이다. 마을 뒤에는 원당산(元堂山)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마을 앞에는 논과 밭이 작은 평원을 이룬다. 거기서 1Km 남쪽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 3대강의 하나인 금강(錦江)이 유유히 서해로 흘러간다. 봄철이 오면 개나리, 진달래, 복숭아, 살구꽃이 차례대로 피고, 노랑나비, 흰나비, 호랑나비가 춤을 추며 봄의 정취를 더한다.
나는 새들을 좋아한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새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좋았다. 새들은 인간 곁에서 인간들과 더불어 살면서 인간들의 삶에 더욱 흥치를 더한다. 나는 수시로 새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가까이 하며 탐지하는 것을 취미로 삼은 적이 있다.
새들은 사계절과 관련을 맺고 있다. 봄이 오면 강남 갔던 제비가 봄소식을 가지고 날아와서 유난스럽게 지저귄다. 꾀꼬리는 야산에서 금빛 찬란하게 나부끼며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여 봄풍경을 풍요롭게 한다. 여름에는 녹음이 우거진 숲속에 앉아서 구슬프게 우는 비둘기가 있는가 하면 먼 산에서 뻐꾹새 우는 소리는 우리들의 마음을 슬프게 한다.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황금계절이 오면 논두렁 사이에서 뜸북새가 풍요로움을 노래하며 만추를 알리는 것 같다. 들에는 무르익은 벼이삭이 황금물결을 이룬다. 이때쯤이면 남녀노소가 짝을 지어 들새를 쫓는 소리가 요란하다.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바로 나의 고향 가을의 모습이다. 창공에 기러기 떼 줄을 지어 날아오면 곧 뒤따라 북풍설한이 찾아온다. 겨울은 추수동장(秋收冬藏)의 계절이다. 가을에 익은 곡식을 거두어 곳간에 들이면 한 해를 마감하는 마음이 넉넉해진다. 천지가 흰 눈에 덮이면, 동네 아이들은 썰매를 타느라 날이 어두워 오는 것도 모른다. 밤에는 사랑방에 모여 새끼를 꼬고 신을 삼는다. 청년들은 새 그물을 들고 이집 저집 지붕 초매를 흔들어 새를 잡아 새고기 잔치를 벌인다. 낭만과 정이 넘치는 생활이다.
나는 이런 새들을 직접 관찰하고 탐지하여 그것들을 더 가까이 두고 그 생태를 연구하고 싶었다. 그래서 종류대로 새들을 생포하여 집을 만들어 길러 보기도 했다. 제일 먼저 표적을 삼은 것은 물새였다. 물새는 하천에서 송사리를 잡아먹는다. 이 녀석들은 둥지를 만들기 위해 산사태가 생겨 급경사를 이룬 벼랑에다 2주에 걸쳐 굴을 판다. 50-60mm 가량 판 후 그 안을 주걱 같이 둥글게 만들고 고운 흙가루 위에 알을 낳는다. 부화할 때까지 수놈은 먹을 것을 들여오며 밖에서 망을 본다. 이 새의 등은 남색이고 배는 분홍색 털이 나있으며, 유난히 주둥이가 길고 성질이 급하다. 그 외에 명새, 딱따구리, 오색까치새, 물까두리 등 여러 새를 생포하여 길러보았다. 그러다 그들의 세계로 돌려보내곤 했다.
문을 열고 나서면 말 그대로 자연(自然)이다. 어린 시절은 그야말로 자연 속에서 살고 자연의 품 안에서 성장한 행운을 누렸다. 산과 들에는 우리의 간식이 널려 있었다. 논둑에서는 삐비 혹은 삘기(띠의 어린 새순)라고 하는 풀을 뽑아먹고, 땍뿌리라는 잔디뿌리도 캐먹었다. 뽕나무에서 조대를, 산 속에서 산딸기를 따먹었고 칡뿌리도 캐먹었다. 앵두를 따고 살구와 복숭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새꽁가리를 꺾어서 구워먹고, 감자는 삶아 먹었다. 참외와 수박을 서리하다 잡혀서 혼 줄이 나기도 했다.
산과 강은 우리의 놀이터였다. 낮은 산등성이, 묘지 주변, 벌판은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을 우리에게 제공했다. 자치기를 하면서 정확하게 막대로 타격하는 실력을 과시하고, 말타기를 하면서 높이뛰기와 가위바위보의 실력을 뽐냈다. 편을 갈라 전쟁놀이를 하면서, 사나이의 기상을 마음껏 드높였다. 강가에서 물놀이할 때는 아무도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우리는 그렇게 언제나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노는 법을 배우며 고향 하늘 아래에서 꿈을 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