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5節 人間을 中心한 無形實體世界와 有形實體世界
하나님은 無形實體世界를 創造하시고 그의 實體의 對象으로 有形實體世界를 創造하시었다. 無形이라하는 것은 우리의 五官에 의한 生理的 機能으로는 感覺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靈的 體驗에 의하면 이 無形世界도 有形世界와 꼭같이 感覺할 수 있는 實際的이요 또한 實感的인 實存世界이기 때문에 이 세계를 無形實體世界라고 하는 것이다. 이 世界는 肉身을 벗고 간 靈人들이 生活하는 世界이므로 영靈人世界라고도 한다.
하나님과 인간, 無形實體世界와 有形實體世界의 關係는 마음과 몸의 關係로써 理解될 수 있다. 實體로 되어있는 우리의 몸은 無形으로 存在하는 우리의 마음(좀더 具體的으로 말하면 靈人體)의 實體對象이다. 그러므로 몸으로 나타나는 體型 骨格 態度 容姿 等等은 모두 그 마음의 表示인 것이다.
血液의 型으로서도 그 個性의 大槪를 判斷할 수 있음은 그 血液은 그의 마음을 닮았다는 것을 意味한다. 이런 方向으로 科學이 더 發達된다면 血液만 가지고도 그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며 細胞의 하나도 그 個性에 따라서 特有하다는 것을 立證할 때가 올 것이다.
사람마다 容貌가 다른 것은 마음이 各各 다른 까닭이요, 子女가 父母를 닮는 것은 그 마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人間에 있어서 精神에 異常이 있으면 그는 벌써 人格을 가진 人間으로서는 無爲한 存在이나 肉身에는 아무리 異常이 있더라도 精神만 完全하면 이는 人格을 갖춘 完全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人間에 있어서 몸이 主體가 아니요 마음이 主體요 몸은 그의 實體의 對象이다.
이와같이 몸이 마음을 닮듯이 사람은 하나님을 닮았음으로 몸과 마음이 完全한 授受關係를 맺어야할 것처럼 사람과 하나님은 完全한 授受關係를 맺어야할 것이다. 그러나 墮落으로 인하여 몸과 마음이 갈라졌음으로 하나님과 人間 이 分離된 것이다.
마음이 원하는데로 몸이 행치 못할 때 마음이 서러워하며 행할 때는 기뻐하는 것같이 하나님도 自身이 원하시는대로 人間이 살지 못할 때에는 서러워하시고 뜻대로 살아드릴 때는 기뻐하신다. 救援의 目的은 갈라진 몸과 마음의 授受關係를 復歸함으로써 하나님과 人間과의 授受關係까지 復歸하려는데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하나님과 사람과의 關係는 마음과 몸과의 關係와 같아서 몸과 마음이 一體를 이루어야하는 것같이 하나님과 人間도 一體를 이루어야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人間이 墮落되지 않고 完成되어 하나님과 人間과 一體를 이루었더라면 人間은 하나님이 거하실 수 있는 聖殿이 되어(고전 3/6) 人間도 예수님과 같이 神性을 갖게 되었을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人間은 墮落으로 인하여 무너져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는 집이 되어 神性을 잃어버렸음으로 人間은 잃어버렸던 이 神性을 다시 復歸하려는 것이다.
無形世界와 有形世界도 마음과 몸과 같아서 有形世界는 主體인 無形世界를 닮아서 創造된 實體對象의 世界다. 그러므로 有形世界의 것은 모두 無形世界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니 이것은 無形世界에 없는 것이 有形世界에 나타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마음과 몸이 그러하듯이 有形世界의 모든 事實은 無形世界와 關聯性을 갖고 나타나기 때문에 地上에 얽히어진 모든 것은 반드시 無形世界와 自由로 통할 수 있는 때가 와야만 풀려질 수 있는 것이다.
有形世界는 無形世界나 하나님에 대한 感性을 느끼지 못한다. 萬物의 靈長된 人間도 墮落으로 인하여 無形世界와 하나님의 實存을 認識치 못하도록 되었던 것이어든 하물며 萬物이랴.
그러므로 하나님은 實體世界와 感性을 느낄 수 있는 實體의 人間을 創造하시기 위하여 人間의 肉身을 萬物의 要素인 흙과 물과 空氣로써 創造하시어 같은 要素로 되어 感性을 느낄 수 있는 有形世界를 主管하도록 하셨고 無形世界와 같은 要素로 된 靈人體를 人間에게 賦與하시어서 靈人體로 하여금 그와 感性을 느낄 수 있는 無形世界를 主管하도록 創造하시었다.
그러므로 創造本然의 人間은 全被造世界의 主管者로서 肉身이 있음으로 有形世界와 授受의 關係를 맺어 그와 和動할 수 있으며 靈人體가 있음으로 無形世界와 授受의 關係를 맺어 그와 和動하여 이 두 世界의 和動의 中心이 되는 同時에 이 두 世界로 하여금 서로 授受의 廻路를 造成케함으로써 一體的 不可分의 關係를 맺게하여 서로 和動케하여 주는 媒介體로서 人間을 創造하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墮落으로 인하여 肉身이 靈人體에 대한 感性을 느낄 수 없는 存在가 되었으므로 肉身과 靈人體는 分離狀態에 머물게되어 被造世界와 和動의 中心으로 서지 못하게 되니 有形世界도 따라서 無形世界와의 授受의 廻路를 造成치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萬物도 歎息하여 이 두 世界의 和動의 中心이 될 수 있는 創造本性을 復歸한 人間들이 나타나기를 苦待하는 理由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롬 8/20~22). 人間은 이와같이 두 世界를 主管할 수 있는 中心體이므로 無形世界에 관한 모든 것은 靈人體를 통하여 肉身에 共鳴되어 이것이 生理的 現象으로 나타나 肉身의 五官으로 感知할 수 있도록 創造된 것이었다. 그런고로 人間은 機能的으로 보아 라디오나 텔레비전과 같아서 無形世界의 모든 사실을 그대로 듣고 보고 알도록 創造된 것이었다.
오늘의 많은 信徒들은 自己가 알지 못하는 他國 方言을 流暢히 하며 自己가 習得치 못한 他國 文字를 쓰며 自己가 알지 못하는 노래를 아름답게 부를 뿐만아니라 靈界에서 주는 歌詞와 歌曲을 發表하며 아름다운 詩를 읊으며 豫言을 하며 예수님과 그를 둘러싼 12弟子는 물론 舊約時代의 靈人들과도 會見하며 靈界의 光景을 보는 等等의 靈的 現象이 일어나는 것은 何等 異常한 것이 아니라 創造原理로 보아 당연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人間과 人間사이에도 서로 情을 통할 수 있도록 創造하셨거든 어찌 自己의 聖殿으로 創造하신 人間과 통할 수 없으며 自己를 創造하신 아버지를 모르고 살도록 人間을 創造하셨을 것인가!
事實 에덴동산의 墮落전의 아담과 해와는 하나님과 서로 一問一答하던 것이었으므로 그가 墮落되지 않고 完成되었더라면 그의 後孫된 오늘의 우리들도 그들과 같이 하나님과 直接 통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墮落으로 인하여 故障난 受信機와 같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信仰生活이라는 것은 故障난 이 受信機를 修繕하는 것과 같음으로 그 修繕의 程度에 따라 無形世界와 통하게 되는 것은 宜當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創造本然의 世界로 復歸되는 時代를 당하여 創造本然의 人間으로 復歸되어 가는 人間들이 나옴에 따라 靈界에 통하는 信徒들이 많아질 것은 이미 聖書가 豫言한 것이니 「 末世에는 내가 내 靈을 많이 부어줄 것이니 너희는 將來일을 말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幻像을 볼 것이요,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행 2/17)고 記錄된 바와 같다.
靈的인 體驗이 없는 사람들은 이것을 輕視하여 鼻笑하지만 이것은 創造의 原理와 하나님의 救援攝理의 目的을 理解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過誤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끝날의 한때를 위하여 役軍으로 왔다 갔던 옛날의 先知들도 하나님과 통하였거든 그들이 닦아놓은 6千年 復歸攝理歷史의 結實로 나타나 다시 오실 주님을 新郞으로 모시어 天國生活로 들어가야할 오늘의 聖徒들이 新郞과 相通하며 그가 계시는 그 世界의 事實을 보고 듣고하는 것은 지당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벌써 이러한 實證的인 體驗을 하고 있는 사람의 數가 놀랄 程度로 많으며 또 나날이 急速度로 增加되고 있는 事實을 어찌 否認하랴 聖書가 이미 先知들을 통한 啓示의 말씀인 것을 認定하는 基督信徒들이 오늘에도 그때와 다름없이 일어나는 이러한 實證的인 靈的 事實을 否認하는 것은 賢明한 行爲라고는 볼 수 없는 것이다.
地上의 모든 人類는 어서 바삐 하나님과 直接 靈通하여 하나님의 한 命令에 의하여 動하고 靜할 수 있는 때가 와야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