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동기 모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썩, 별로 등의 수식어를 붙이려다 그 정도도 붙이기 싫어서 그만 두었다. 성향에는 관계없이 나이로만 형성된 우연한 조합의 사람들, 그리고 많은 시간을 함께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 밖에 없는 불편한 일들에 대한 기억은, 부정적인 기억을 더 선별적으로 오래 남기는 인간의 본성에 따라 더 그런 종류의 모임을 애써 기피하게 된다. 다행스러운 점은 나이를 먹을수록 인간의 기억은 퇴화되어 그저 그랬던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다만, 여러 번의 임용고시 낙방으로 처절했던 청춘의 시절이나, 어느 토요일, 일어나지 않는 식구들에게 투덜대며 아침을 먹다 식도에 생선가시가 콱 박혀 중환자실로 실려갔던 일, 만약에 현대의학으로 제대로 된 처치가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일들도 있다. 혹은 나와 같이 계단을 내려오던 아들이 계단에서 고꾸라져 정강이를 뼈가 보일 정도로 가는 바람에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던 그런 커다란 사건은 중차대한 일이어서 아무리 게으른 뇌라 하더라도 버리기 어려운 기억이긴 하다.
한참이나 서두를 꼬았다. 그래서 동창 모임을 안한다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다. 심지어 그 비공식적 모임의 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런 앞뒤 다른 말을 하다니. 나 역시 끈기가 없는 인물이지만, 조근조근 읽기를 부탁한다.
인사이동에 따라 학교에서는 전입교사와 전출교사들이 겹쳐서 모이게 된다. 2월은 학교 조직의 브레인을 맡은 교사들의 인사이동으로 어수선한 시간이다. 전출입이 결정나고 송별회를 치르고, 신임 발령지에 교사들이 인사를 오고, 모여 새학년을 맞기 위한 여러 절차를 거친다. 공식적으로 모이기 전에 교사들은 희망 학년과 업무를 적어낸다. 그 시간이 어떤 학년을 담임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1년을 아이들과 밀당하며 스트레스 속에서 사느냐, 고분고분한 아이들과 저항감 없이 사느냐가 달린 결정적인 시간이다. 보통 전입 교사들은 본교 교사들이 고르고 난후의 학년을 맡는 것이 관례이다. 전입 교사들보다 더 마지막은 신규 교사이다. 내가 몸담고 있던 학교도 이동의 폭이 제법 있었다.
다른 학년은 무난한 편이나, 6학년이 되는 아이들 중에 몹시 통제가 어려운 학생이 한 명 있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데다 화가 나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아이이다. 교사에게 반말을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 아이들을 3학년 때 담임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맡았을 당시에는 문제의 학생이 전학을 오기 전이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절대 쉽지는 않았다. 남학생이 9명에다가 여학생이 1명, 이 부적절한 성비로 인해 나는 교사로서 살아오면서 당연히 했던 일들을 많이 접어야 했다. 글쓰기나 국어과나 미술과 활동에는 거의 흥미가 없는 아이들이어서 주로 수학, 영어, 체육, 과학과나 보드게임 등 내가 뜻을 둔 활동들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시간이었다.
문제아이의 이름은 진수(가명)였다. 24년도에 6학년이었던 우리반 학생과도 시비가 붙어 싸운 적이 있었는데, 우리반 아이는 180이 넘는데다 씨름을 하는 건장한 체구의 아이였다. 진수는 상대가 씨름선수였던 6학년과 붙어도 지지 않을 아이였다. 무거운 소화기를 들어 던지려고 할 찰나에 5학년 담임이 혼비백산하여 말리는 통에 겨우 막을 수 있었다. 그 아이를 위해 지원을 담당했던 여러 특별프로그램 강사들이 포기한 아이였다. 교실의 안전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아이였다.
24년에 5학년을 맡은 교사는 신규 남자였다. 그야말로 처절한 시간을 보냈다. 집에서도 핸드폰을 시켜주지 않는다고 아이가 엄마를 때리고, 새아빠와 엄마도 아이를 때렸다. 아이의 폭력보다는 부모의 폭력이 더 문제가 되어 아동학대로 신고가 되기도 했다. 화가 난 아이는 교감선생님이 들어오셔서 교무실로 일단 내려가자고 하면 '싫어! 내가 왜?'라고 말했다. 담임은 그나마 진수와는 소통이 잘 되는 편이어서 그 시간을 지나올 수 있었다. 분노로 머리가 닳아오른 아이가 내뱉는 교권침해성 말에 상처받고 안 받고의 문제는 다음이었다. 나는 늘 5 담임을 격려하며 지냈다. 5는 그런 내게 고마워했고, 그런 말들 속에 기대며 살았다고 했다.
그 진수가 6학년이다. 6 담임은 대체 누가 되어야 하는가!
우선 순위를 정하자면, 당연히 맨 마지막에 결정되는 신규교사의 몫이었다. 보통 신규는 여교사일 확률이 더 높았다. 그렇게 될 경우 교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5학년 초창기에도 담임이 여러 번 바뀐 전력이 있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한 일이었다. 불미스런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모두 그럴만한 여지를 제공했고, 선배 교사들은 정말로 부끄러워해야할 일이었다. 나는 이동을 하는 사람이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지만, 발을 동동 구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이가 있었다. 나의 동기 김수영(가명)! 그렇다. 동기모임 어쩌고 저쩌고 한 말들은 모두 나의 자랑스런 동기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다. 승진을 하지 않았지만(우리 나이대에 그것도 남교사가 승진을 하지 않으면 입지가 곤란한 면이 있다. 그러나 자기 분야가 확실한 사람이면 또 문제가 달라진다.) 토박이말 연구의 권위자였고, 어려운 업무와 6학년을 동시에 맡겠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반을 넘겨받은 수영과 잠깐 만났다. 학교를 다니면서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말을 나눠본 적은 없었다. 말을 놓기도 존대하기도 애매했지만, 먼저 말을 놓아주어서 편안했다. 어려 보이는 아내가 와서 교실 짐정리를 돕는 모습이 다정해 보였다. 나는 고맙다고, 이렇게 멋진 동기가 있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나는 부탁 같은 건 잘 못해도, 호들갑스러운 칭찬에는 일가견이 있다. 교감선생님께서 간곡히 부탁을 하여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어쩌겠냐고 했다. 아니다.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나라도 나는 이미 맡았던 학년이었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주저주저 했을 것이다. 내게 그런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워낙 정답게 지낸 사람들이 많은 학교여서 당분간은 안테나가 그쪽으로 향해 있을 것이다. 토박이말에 관한 자료를 얻으러 왔다는 구실을 만들어서라도 한번 더 만나러 가 볼 일이다. 그러면 자기 분야에 관심을 가져주는 동기에게 최선을 다해 자료를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