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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설리반의 손 헬렌켈러의 꿈 원문보기 글쓴이: 우주인(조영찬)
2022년 5월 15일 하늘언어교회 주일예배 강론
하늘언어교회의 특수성3
오늘은 하늘언어교회의 특성에 대한 세번째 강론입니다. 하늘언어교회는 기존교회의 장단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더 나은 교회상을 세워나가기 위한 일종의 대안교회입니다. 하지만 하나의 개별교회이기보다는 일종의 교회 운동의 성격을 부여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기존교회에서 하느님 말씀을 최대한 그대로 전한다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하느님 말씀을 왜곡하거나 일부만 부각하고 다른 부분은 도외시하는 등 심한 불균형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복음은 진리인 말씀을 청중의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것인데 진리인 말씀이 왜곡되어 있는데다 상황에 대한 적용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왜 그렇게 되는가하면 상황은 너무 다양하고 광범위해서 상황 전체를 파악하고 읽어내는 일이 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정치상황에 맞게 말씀을 전하려면 한국의 정치를 공부해야 합니다. 한국의 경제 상황에 맞게 전하려면 한국의 경제체제인 자본주의를 공부해야 합니다. 장애인에게 적용하려면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장애인복지론 등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목회자도 이러한 광범위한 상황을 모두 공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진리화와 상황화 모두에서 발달이 지체된 채 더 이상 성장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기존의 수량적인 성장지향적, 기복주의적 관습에 따라 사회와 분리된 게토적인 환경에서 동어반복적인 예전이 지속되고 있을 뿐입니다.
저는 남들보다 불리한 조건을 가진 시청각장애인입니다. 그래서 상황이나 진리 모두를 파악하는데 훨씬 더 많은 장애와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타개책은 무엇일까요? 저는 점자 텍스트를 통해 공부하고 제 자신의 상황을 분석해서 스스로에게 적용해가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과제입니다. 하지만 외부의 상황을 보고 들을 수 없다면 자기 자신에 대한 상황화의 길이 남아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하늘언어교회를 통해 진리를 저의 상황에 적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자기 상황화 과정이 공감대를 형성한다면 독자분들은 진리를 각자의 상황에 적용하는 길을 걸으면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모두가 복음의 진리를 각자의 상황에 적용해가는 길을 함께 모색하자는 것이 이 하늘언어교회의 취지입니다. 이제 그러한 취지를 달성해가는 구체적인 방법론에 대한 세번째 강론을 전해드리겠습니다.
3-1. 하늘언어교회는 종교화의 단계를 넘어서 진리화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모든 언어적인 자원을 총동원하고 통합해서 선을 이루어가려고 합니다.
종교화와 진리화는 앞서 여러번 말씀드렸습니다. 종교적인 신앙은 교파나 교단 등에 소속된 교회 건물에 들어가 그 건물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폐쇄된 체계입니다. 반면에 진리적 신앙은 태양이 인종이나 남녀 등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에게 빛과 열을 공급하듯이 종교인과 비종교인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고 장소나 시간을 가리지 않고 하늘나라를 건설해가는 삶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종교와 진리는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구성요소에도 무한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적인 교회는 건물 안에다가 강대상과 의자와 성경 등 간소한 요소만 갖춰지면 바로 예배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삶을 지향하려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갖추고 있는 성경과 교리는 물론이고 경제, 정치, 사회복지, 학교, 교정시설, 마트, 자연, 상담실, 문학, 영화, 오락, 예술 등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세계가 바로 진리적인 삶의 현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교 시스템을 주시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진리의 복음 즉 하늘나라복음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 사는 길에는 세상에 필요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진리와 선의 도구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하늘나라가 실현되는 진리의 현장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늘언어교회는 단순한 종교 의례를 치르기 위한 교회가 아니라 종교와 복지와 학문과 예술을 통합해서 보편적인 진리를 실현해나가는 삶을 추구합니다. 종교는 주로 이분법을 토대로 활동하지만 진리에서는 삼분법을 선호하게 됩니다. 이분법은 헬라철학에서 주로 사용하던 방법론이고 삼분법은 성경이 자주 보여준 탁월한 방법론이기 때문입니다. 이분법의 함정은 육체는 악하고 영혼만 선하다는 영지주의 이단 등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적인 삼분법에서는 영과 혼과 육 모두가 하느님의 피조물이기에 한 가지도 버릴 수 없이 소중하다는 입장을 취합니다. 이렇게 종교의 길은 낮은 수준으로 퇴보하는 길인데 반해 진리의 길은 무한히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는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빛나는 길입니다.
제가 학교에서 전공한 학과가 세 가지입니다. 신학, 사회복지, 상담학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어릴 때부터 꿈꾸던 학문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신학, 철학, 문학이 그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저의 전공과 꿈을 통합해서 모든 요소가 조화를 이루는 길을 모색해 갈 것입니다.
활동 지평이 문학이나 예술로 확장되어 있다는 것은 현실에서의 제약은 큰 문제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저의 장애와 인맥의 부족 때문에 현실적인 하늘언어교회의 활동은 거의 온라인으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과 이상을 문학작품 등으로 예술화하거나 신학도서 등으로 학문화해간다면 서서히 이 운동의 중요성에 동조하는 이들이 나타날 수 있고 그러한 동조자들을 통해 성경적인 진리를 세상에 확장해갈 수 있는 길이 시나브로 열려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3-2. 하늘언어교회는 삼분법을 지향합니다.
세상을 유형화하고 범주화하는 데는 크게 비분법과 이분법과 삼분법이 있습니다. 비분법이란 아무런 분별이 없는 가장 무지한 단계를 지칭한 것으로 제가 임시로 만든 용어입니다. 이분법이란 세상을 흑과 백, 선과 악, 우리와 저들 이런 식으로 사과를 쪼개듯이 둘로 나누는 사고방식입니다. 이분법은 성경적인 방법이 아니고 이기적이고 왜곡된 인성이 빚어낸 논리적 오류입니다. 이 이분법의 폐해는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합니다. 우리 대 그들의 이분법은 우리만 선하고 우리를 뺀 나머지는 모두 사탄의 자식이니 폭탄테러를 하던 핵폭탄을 투하하던 모조리 죽여도 상관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 종교를 믿는 이들은 그렇게 악으로 규정된 이들을 죽이는 것이 신을 기쁘게 해드리는 일이라는 극단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분법의 폐해는 종교의 백화점인 우리나라에도 만연해 있습니다. 지금도 구교인 가톨릭은 개신교를 저질적인 종교로 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이분법에 갇힌 이들은 세상을 너무나 극단적으로 보기 때문에 하느님만 가지신 심판권을 인간이 마음대로 휘둘러서 선과 악을 판가름해버리는 무서운 월권행위를 일삼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러한 이분법의 사악함을 간파하고 수천년전에 이미 삼분법을 제시했습니다. 성경을 딱 펴자마자 시작되는 창세기부터 삼분법의 서막이 올라갑니다. 태초의 7일은 전삼일, 후삼일, 안식일이라는 완벽한 삼분법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 세분이 하나로 일체를 이루고 계십니다. 구원에도 과거 현재 미래의 삼중시제가 존재합니다. 이렇게 삼분법은 이분법의 극단성을 넘어서는 가장 안정되고 이상적인 분류법입니다.
우리 하늘언어교회도 이러한 성서적인 삼분법에 따라 모든 것을 세가지 이상으로 규정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의 이름도 하나님, 하느님, 하늘님 등 세가지로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개신교는 하나님만, 가톨릭은 하느님만 고집하는데 이 둘의 공통점은 이분법이라는 것입니다. 이분법에서는 하나님만 채택하고 하느님은 절대 거부하거나 하느님만 채택하고 하나님은 절대 거부하는 식입니다. 그러나 삼분법에서는 하나님도 하느님도 둘다 취할 수 있는 관대하고 포용력 넘치는 자세를 가집니다. 사실은 교회라는 용어도 세가지 이상의 개념으로 번역을 해야합니다. 특히 우리 하늘언어교회는 종교, 복지, 예술과 학문 등 세가지 이상의 요소를 포괄한 진리차원의 교회를 지향합니다. 아래에 구체적인 용어와 명칭을 제시합니다.
3-3. 교회라는 용어의 세가지 번역
교회를 뜻하는 헬라어인 에클레시아는 가르침과 교제와 나눔 등 성서적 삼분법을 실현해가는 성도의 모임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단순히 교회라고만 번역해버리면 가르칠 교자를 내세워서 오직 가르치는 기능만 강조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이름 외에 예수님의 도를 따르는 무리라는 의미에서 도회라고 번역할 수도 있고 복음을 맡아서 전하는 모임이라는 의미에서 복음회, 줄여서 복회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를 우리교회 이름에 적용하면 하늘언어교회는 하늘언어도회, 하늘언어복회 등의 이름이 가능하게 됩니다.
이름을 이렇게 다양화해야하는 은유는 사람들이 교회라는 이름을 접하면 기존의 이분법적인 종교 단체만을 연상하여 기존 교회와 똑같이 운영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기 때문입니다. 용어와 명칭의 다양화는 사고와 관념의 다양화를 유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세속적 이분법보다는 성서적 삼분법에 익숙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적으로는 느닷없이 교회가 아닌 도회나 복회라는 개념을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편의상 교회라고 공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회나 복회는 내부적으로 회원님들끼리 알고 방침에 따라올 수 있도록 할 예정입니다.
또한 교회의 성격을 기존의 교회와 대비해서 다르게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오전에 예배를 보는 교회에 비해 오후에 예배를 본다는 의미에서 오후교회(도회, 복회), 세상의 종교들의 길인 이분법적인 교회들에 비해 하늘나라를 지향하는 교회라는 의미에서 하늘교회, 초월교회 등의 명칭이 모두 가능합니다.
이러한 성서적 삼분법적 사고는 몇몇 종교 용어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걸쳐서 적용을 해나간다면 유익함이 많다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이렇게 둘로 나누면 좋은 사람에 대해서는 너무 추켜올리고 나쁜 사람에 대해서는 극도로 멸시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나 삼분법으로 사람을 보게 되면 가장 선한 사람에서 시작해서 가장 악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바라봄으로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안목을 키울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은 양극단을 빼고는 대다수는 선과 악을 둘다 가지고 있고 각 사람의 속성중에는 먹고마시고 숨쉬는 등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그냥 자연 그대로인 속성도 존재함을 인정한다면 쓸데없는 편견과 선입견으로 사람을 우상시하거나 악마시하는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4. 하늘언어교회는 실험교회입니다.
실험이란 무언가를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교회는 세상에 속한 요소로서 하늘의 진리를 추구하는 사명을 띠고 있습니다. 하늘의 진리는 완전하고 땅의 교회는 불완전합니다. 불완전한 것으로 완전한 것을 추구하려면 모든 불완전한 방법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더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를 기획하고 있는 저는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중증으로 알려진 삼관인에 속합니다. 삼관인은 너무나 상황이 보통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교회의 운영도 특성에 맞게 조정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신학계나 복지계나 어디에서도 삼관인이 교회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전혀 없습니다. 또한 그러한 선례조차 없습니다. 즉 저에게는 선배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느님께 지혜를 구하며 평생을 연구하고 모색해서 저에게 맞는 교회 패턴을 찾아가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실험적인 성격을 띨수 밖에 없습니다.
3-5. 의심과 비판과 부정의 방법론을 통해 초월을 지향합니다.
기존교회에서는 의심을 나쁜 것으로만 취급합니다. 그러나 학문하는 방법론에서는 의심은 없어서는 안되는 배움의 필수 요소입니다. 어거스틴은 의심을 믿음의 성장을 위한 요소로 활용했습니다. 예수님 제자 중에서도 도마는 의심을 통해 현대인의 합리적 사고를 대변함으로 현대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례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데카르트는 합리적 의심을 통해 최종적으로 가장 확실한 사실에 도달하고자 했습니다.
다음으로 비판은 옳은 것은 옳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판단하는 방법론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온통 세상의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은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고 비도덕적인 삶을 사는 이들을 끊임없이 비판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에 매여서 하느님의 도를 거부하는 유대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셨습니다. 따라서 잘못된 것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부정은 보통 나쁜 의미로만 이해하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많은 개념입니다. 부도덕한 범죄나 더러운 것 등을 부정이라 생각합니다. 긍정적이지 못한 어두운 성향등을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부정은 좋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마땅히 회개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거론하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부정은 옳은 길을 가는 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요소입니다. 부정의 방법론은 인정의 반대말로 무엇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거짓은 진실이 아니다, 우상은 옳은게 아니다, 범죄는 하느님 뜻이 아니다 등 올바른 신앙을 위해서 부정의 방법론은 필수불가결한 것입니다.
이렇게 중요한 것인데도 나쁜 것을 뜻하는 부정과 혼동해서 배제해버렸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전혀 이 방법론의 중요성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도 박사과정에 가서야 이 방법론의 중요성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성경 구절인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라고 할 때의 부인이 바로 부정입니다. 즉 자기의 모든 옳지 못한 면들을 부정하면서 계속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된 길을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종교화의 단계에서 진리화의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의심과 비판과 부정의 동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기 비판과 자기부정의 길이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다들 쉽고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쉽고 편한 길은 멸망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의 길은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어려운 길로만 가서도 안되고 쉬운 길이 무조건 잘못된 길이기만 한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어디로 인도하시느냐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쉬운 길이 실상은 어려운 길일 수도 있고 우리가 보기에 어려운 길이 실상은 쉬운 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단히 눈에 보이고 생각으로 떠오르는 것들을 의심하고 비판하고 부정함으로 최종적으로 하느님이 인도하시는 길로 갈 수 있도록 늘 깨어 있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교회의 특성을 얼추 소개한 것 같습니다. 매주 급하게 작성하느라 다소 산만한 부분들이 있는데 나중에 다시 정리해서 제시해드리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이제 우리교회의 방향과 고유의 빛깔을 어느정도 이해하셨을테니 모임의 방법에 대해 제안을 드리고자 합니다. 그동안에는 경황이 없어서 기존 교회의 예전에 맞추어 주보를 작성하고 설교를 하는 식으로 진행해왔습니다. 그러나 양이 아닌 질을 추구하는 모임에서 기존 교회가 수없이 하고 있는 방식을 똑같이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주일부터는 미리 강론을 보내드리고 집에서 읽으신 다음 저의 집에 오셔서 내용에 대해 토론하거나 상황에 따른 대화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원고를 이미 보냈는데 제가 점자를 읽느라 시간이 경과될 수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 읽는것은 유익함이 반감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용을 읽으신 분들은 그 내용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문자 등으로 보내주시거나 당일에 오셔서 함께 대화를 나눠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5월 15일 소식
1. 5월 둘째주에는 아카시아 향을 맡기 위해 두차례 산에 다녀왔습니다. 아카시아는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후각으로 느낄 수 있는 향이 대단히 강한 꽃입니다.
그래서 시각과 청각을 잃은 삼관인들도 아카시아향은 마음껏 음미할 수 있습니다.
후각은 삼관인에게 유일하게 남은 거리감각입니다. 촉각과 미각은 대상과 접촉해야 느낄 수 있지만 후각은 대상과 어느정도 떨어져 있어도 맡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각,청각과 함께 후각을 거리감각이라고 명명해보았습니다. 그래서 후각은 삼관인에게 극히 중요한 감각입니다.
흔히 삼관인에게 중요한 감각을 촉각, 특히 손의 촉각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삼관인에게는 촉각뿐 아니라 미각과 후각이 있으며 상상속의 감각도 있기 때문에 세상을 느끼는 감각을 손끝과 같이 국소와 말초로 한정해서는 안됩니다.
후각을 통해서도 우리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후각의 가장 중요한 점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는 점일 것입니다. 주어진 것을 사용하지 않으면 퇴화되기에 후각도 자꾸 사용하고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아카시아 철이 지나기 전에 부지런히 아카시아향을 맡아서 기억속에 고이 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2. 5월 14일(토)에는 우리교회의 장동희 성도님과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송악 저수지인근 숲속힐링을 둘러보고 오다보니 도고라는 지역에 ‘세계 꽃 식물원’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입장료가 1인당 8000원이었는데 알고보니 그 입장료는 쿠폰으로 교환되어 식물을 구매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장미향허브’ 상록덩쿨나무 ‘호야’와 공기정화식물 ‘금천죽’라는 식물 등을 샀습니다. 저녁식사를 위해 ‘맷돌순두부’라는 식당에 들렸는데 맛이 일품이었고 손님도 많았습니다.
현재 저희 집 즉 하늘언어교회 베란다에는 기존에 있던 꽃들과 새로 사온 꽃들의 향기가 어우러져 향기의 파티가 한창입니다. 모처럼 힐링의 나들이를 제안해 주시고 입장료 등 세심하게 안내해 주신 장동희 성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3. 오는 세째주 목요일 저녁에는 천안밀알선교회의 초청으로 말씀을 전하기 위해 가게 되었습니다.
4. 우리교회의 모임은 기존에 해오던 종교관습에 대해 반성적인 자세를 요청하는 모임입니다. 무엇을 생각없이 반복적으로 하게되면 무익함과 맹목성을 야기하게 됩니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틀에 짜여진 것을 되풀이하는 관습을 가급적 피하고 미리 메시지를 읽고 오셔서 그와 관련된 주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진행하고자 합니다.
모임에 직접 오지 못하는 분들도 카톡 등을 통해 고견이나 질문을 주시면 경청하고 답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핸드폰 번호는 010-6367-5418입니다.
한소네6으로 카톡을 하기 때문에 한소네가 켜져 있을 때만 반응이 가능하므로 답변이 지체될 수 있음을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5. 매달 네째, 다섯째 주에는 제가 남을 목회하기보다는 저 자신이 연약한 양으로서 목회를 받는 주간으로 삼고자 합니다.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가서 예배에 참석할 수도 있을 것이고 목사님이나 성도님들을 만나서 상담을 하거나 힐링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명한 신학자나 목사님들의 책을 읽고 은혜받은 내용을 여러분과 나눌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계속해서 영적으로 성장해가려면 남을 가르치는 일보다 배우고 공부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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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설리반의 손 헬렌켈러의 꿈 원문보기 글쓴이: 우주인(조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