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의 성은 권씨(權氏)이고, 휘는 세억(世檍)이요, 자는 수백이니, 안동인(安東人)이다. 고려 태사(太師) 휘 행(幸)이 성을 하사받은 조상이다. 대대로 명망과 덕행이 있었다. 근세에는 휘가 시(諰)인 탄옹(炭翁) 선생이 경술(經術)로 드러났으며, 벼슬은 한성부 우윤(漢城府右尹)을 지냈다. 이분이 전의 현감(全義縣監)을 지내고 좌찬성에 증직된 휘 유(惟)를 낳았고, 이분이 호조 판서를 지낸 휘 이진(以鎭)을 낳았다. 이분이 통덕랑을 지낸 휘 형징(泂徵)을 낳았는데, 바로 공의 선고이다. 선비는 나주 정씨(羅州丁氏)로 찬성 응두(應斗)의 후손이요, 참의 시윤(時潤)의 손녀요, 승지 도복(道復)의 따님이다.
공은 숙종(肅宗) 신묘년(1711, 숙종37) 2월 25일에 공주(公州) 무수동(無愁洞)에서 태어났다. 6세 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어 집의 서쪽에 장사 지냈는데, 공이 날마다 그곳에 가니 판서공이 나무랐다. 그러자 대답하기를, “어미의 무덤을 보고자 해서입니다.” 하니, 판서공이 감동하였다. 자라서는 성격이 너그럽고 여유로웠으며 기쁘거나 성난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어떤 이가 시험 삼아 마음을 어지럽히면 비록 울컥하더라도 동요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이 사람이 성내지 않는 것은 노여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내야 할 때에만 성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고 지극하였으며, 부모님의 뜻을 잘 받들어 은혜와 의리가 두루 흡족하게 미쳤다. 서모(庶母)가 돌아가시고 나이 어린 고아만 남자 자기의 자식보다 더 정성을 다하여 어루만지고 돌보며 길렀다. 재물에는 욕심이 적었으나, 부지런히 은혜를 베풀면서 말하기를, “재물이 없다고 반드시 모두 죽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 중에는 혹 이것으로 인하여 골육 간에 화목을 잃는 경우가 있으니 도대체 이것이 무슨 마음이란 말인가.” 하였다. 다른 것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것을 미루어 보면 알 수 있으니, 법도 있는 가문에 사람이 있다고 하겠다.
임신년(1752, 영조28) 가을 8월 3일에 몰하니, 향년 42세였다. 묘소는 진산(珍山) 우곡(牛谷) 축좌(丑坐)의 언덕에 있다.
전배(前配)는 선원 이씨(璿源李氏)로 부사 익형(益炯)의 딸이요, 선묘(宣廟)의 별자 인성군(仁城君) 이공(李珙)의 후손이다. 인성군이 해령군(海寧君) 이급(李伋)을 낳고, 이분이 광평군(光平君) 이명(李溟)을 낳고, 이분이 영원군(靈源君) 이헌(李櫶)을 낳았으니, 부사는 이분의 아들이다. 3남 2녀를 두었다. 아들은 상희(尙憙), 상점(尙點), 상형(尙衡)이고, 딸은 이구환(李九煥)에게 시집갔으며, 막내는 아직 출가하지 않았으니, 모두 전배의 소생이다. 부인은 법도가 있고 공손하였으며 칭술할 만한 것이 많았다. 공보다 1년 먼저 태어나서 41세에 별세하였으며, 공의 묘에 부장하였다. 후배(後配)는 연안 김씨(延安金氏)로 사인 행성(行成)의 딸이다. 유복자가 있으나 거론하지 않는다.
명은 다음과 같다.
대대로 석덕이 있었으니 / 世有碩德
탄옹 선생이 선각이셨네 / 炭翁先醒
조정에 서서 위의를 단정히 하고 / 立朝正色
예를 말하고 경을 진달하였다네 / 說禮陳經
상서가 뒤를 이으니 / 尙書繼踵
국가의 동량이었네 / 王國之楨
가문이 높고 커서 / 門閭高大
후손들이 편안하였으니 / 垂裕謐寧
자손들이 많이 번성하여 / 子姓濟濟
집안을 잘 보전하였다네 / 保乂維城
오늘의 아름다움에 이르렀으니 / 式至今休
매우 명철하게 생을 잘 마쳤구려 / 彌性孔明
어진 조상과 어진 자손이 있어 / 賢祖賢孫
가족이 안정되었도다 / 家族底平
이것도 또한 다스리는 것이니 / 是亦爲政
효성을 미루어 성심을 드러냈도다 / 推孝見誠
하고픈 일 많았으나 수명이 짧아서 / 心長壽短
무덤 속으로 거두어들였구려 / 斂之原塋
오직 지혜 있는 이는 알 것이니 / 惟知者知
이 명에 새겨 기록하노라 / 勒諸斯銘
[주-D001] 이명(李溟) : 대본에는 ‘李演’으로 되어 있는데,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紀略)》과 《승정원일기》 숙종 22년 4월 2일 기사에 근거하여 바로잡아 번역하였다.[주-D002] 상희(尙憙) : 《국역 성호전집》 제62권 〈통덕랑 권공 묘갈명(通德郞權公墓碣銘)〉의 뒷부분에는 ‘尙熹’로 되어 있다. 《해좌집(海左集)》 권24 〈호조판서시공민권공신도비명(戶曹判書諡恭敏權公神道碑銘)〉과 《번암집(樊巖集)》 권42 〈자헌대부호조판서권공시장(資憲大夫戶曹判書權公諡狀)〉에는 ‘尙熺’로 되어 있다.[주-D003] 이구환(李九煥) : 1731~? 성호의 손자이다. 아버지 이맹휴(李孟休)가 일찍 세상을 떠나 할아버지를 모시고 수학하였으며, 성호가 졸하자 승중(承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