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너는 무엇이기에
- 구명숙 「봄의 강물에 시의 길을 묻다」, 김철교 「아침에 읽는 시」 읽기
김철교(시인, 평론가)
1. 왜 시?
“시인은 눈에 보이는 현실 사물들에 자신의 상상 대상과 상황을 연결시켜 현실을 넘어서는 즐거운 상상계를 창조한다.” 프로이트의 말이다. “예술가는 보통사람이 외면하는 무의식에 의도적으로 퇴행해 잠정적으로 접촉하고는, 다시 현실로 복귀해 자신이 체험한 무의식 내용을 은유와 환유와 상징으로 변형시키고 미적 형식으로 가공한 작품을 창조해 내는 독특한 능력을 지닌다.”(『예술작품과 정신분석』, 이창재 외, 학지사, 2012)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하는 것은 심리상담에서의 치유 활동과 같다. 특히 시는 우리의 무의식에 깊이 파고들어서 어두운 그림자를 불러올려 정화함으로써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구원자 역할을 한다.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의 목적에 관해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다.
2. 구명숙 「봄의 강물에 시의 길을 묻다」 읽기
울퉁불퉁 돌멩이 길
가시덤불 흘러가는
인생길을 아파하네
시는
빛나는 봄 시냇물인가
씻고 씻기며 흘러
끝내 겨울 강으로 저물어가는
얼어버린 시간의 결박을 풀며
이 봄 강물은
누구의 푸른 혼으로 굽이치는가
- 구명숙 「봄의 강물에 시의 길을 묻다」
『한국문학의 100년을 열다』(시문학사 2021) 전문.
이 시는 ‘시와시학’에서 2013년에 발간한 구이람(구명숙의 필명)의 시집 『산다는 일은』에 처음 실렸다. 이 시집 시인의 말에서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어지러운 시선을 멈추게 하고, 낡은 삶을 환기시켜 줄 참 시를 위해 낙타처럼 묵묵히 걸어가야겠다. 그리고 시를 위해 자주 축배를 들고 싶다.”고 말하고 있다.
“시는/ 빛나는 봄 시냇물”이어서 시를 쓴다는 것은 “울퉁불퉁 돌멩이길/ 가시덤불” 같은 “인생길”에서, “얼어버린 시간의 결박을 풀며” 위안을 주기 때문에 축배를 들일이다.
예술가는 물론 예술작품을 접하는 수용자들도 작품을 통해 자신의 근원적인 모습을 불러낼 수 있다. 자신을 붙잡고 혼내기도 하고 다독이기도 한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그것이 자신을 세상의 질곡으로부터 구원해 평안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비록 예술작품이 각종 은유의 가면을 쓰고 있을지라도, 무의식 속에 잠겨 있는 실재(實在)는 은연중에 혹은 명시적으로 내비치기 마련이다.
3. 김철교 「아침에 읽는 시」 읽기
책갈피에서
허브 한 포기 뽑아 든다
줄기마다 올망졸망 시어(詩語)들이
이파리로 달려 있고
씹으면 향긋한 언어의 색깔들이
내 정신을 말갛게 헹궈낸다
김철교 「아침에 읽는 시」 『내가 그리는 그림』(시선사, 2021) 전문
여명의 가벼운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창가에서 화자는 시를 읽는다. 시 한 편 전체의 맛을 음미하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시어 하나를 붙들고 온갖 이미지를 떠 올릴 수도 있다. 비록 그 시어 하나의 이미지가 지금 읽고 있는 시와 전혀 관련이 없어도 좋다.
시를 읽는 아침,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그날의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풀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도 있다. 시를 쓴 그 시인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시를 읽는 사람의 “정신을 말갛게 휑궤”내어 ‘지금-여기’를 밝고 맑게 바라볼 수 있는 심안을 주는 것이 시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