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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한 믿음은 십자가에 나를 진멸하는 것입니다. / 2023년 2월 26일 주일 오후 예배
본문 / 여호수아 7:1-26
얼마 전 중국에서 한 부부가 8년 전 시험관 시술로 출산한 아이가 부모와 유전자가 불일치하는 것으로 밝혀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하자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들을 출산했지만 어이없게도 8년이 지난 후에 이 아이가 자신들과 혈연관계가 전혀 없다는 검사결과를 받은 것입니다.
얼마나 충격이겠습니까? 시험관 시술까지 하며 내 혈육을 얻으려고 했는데 그렇게 해서 얻은 아이가 나와 혈연관계가 아니라는 그 믿기지 않는 사실이 말입니다. 병원의 직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실수한 것입니다. 엉뚱한 사람들의 것을 시술한 것입니다. 자신의 아이는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고 지금 아이의 친부모가 알 수가 없다고 합니다.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다루었는지 말입니다.
이 사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믿음이 있다. 나는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의심하지 않고 심판대 앞에 갔는데 하나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시고 너는 내 자녀가 아니다. 네 믿음은 진짜가 아니라고 하면 그 충격과 두려움은 이 세상에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너는 내 자식이라고 8년이 아니라 평생을 믿고 키운 그 믿음이 어느 날 깨어지는 충격과 같겠습니까?
지금까지 기른 정이 있으니 내 자식이라 여기며 살면 되지만 하나님이 내 믿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당한 고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원한 고통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받은 자니라.” 말씀합니다.
이 부부가 왜 유전자 검사를 했을까요? 의심이 든 겁니다. 그래서 한 번 설마 설마하며 시험한 것입니다. 어떤 남편이 결혼하고 아내가 아이를 낳습니다. 그런데 크면서 자신을 닮은 곳이 정말 한 군데도 없더라는 겁니다. 아니 이렇게 안 닮을 수가 있을까?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닮으면 그런 의심이 없었을 텐데 정말 하나도 닮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몰래 유전자 검사를 했다는 겁니다. 결과는 부자관계가 아니라고 나온 겁니다. 아내가 운전교육을 받으면서 강사와 간음을 한 것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믿음을 의심해 봐야 합니다. 믿음을 의심하면 믿음 없는 것으로 아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앞에 나는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지금 어떤 길을 가는지, 지금 내 믿음이 맞는지, 지금 이대로 심판대 앞에 가면 과연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이것을 확인하지 않고 덮어놓고 의심 없이 믿는다고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내 믿음을 의심하지 않고 인정한다고 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으면 가짜인 겁니다. 내 믿음을 어떻게 확인해야겠습니까? 하나님을 닮았는지 확인해야 되는 겁니다. 내 멋대로 자기 마음대로 믿으면 하나님을 닮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내 마음과 인생의 주인의 자리에 교만하게 앉아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닮겠습니까?
하나님을 온전하게 닮으신 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받들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아버지가 내 안에 있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어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처럼 사셨습니다. 그것이 십자가의 삶이었습니다. 자신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뜻만을 받들고 순종하는 십자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을 닮은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내 죄를 대속해주신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순종하는 믿음이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만 하는 적당한 순종이 아니라 내가 원치 않아도 하나님이 원하는 온전한 순종 말입니다.
그 온전한 순종이 없으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닙니다. 적당한 믿음으로는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간을 생각하면 두렵습니다. 누구든지 아간처럼 적당히 순종하고 적당히 믿는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간이 심판을 받는 모습을 보십시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아간의 불순종은 사울의 불순종과 동일합니다. 사울이 진멸하라는 것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자신이 심판을 받은 것처럼 아간도 하나님이 진멸하여 온전히 바치라는 것을 진멸하지 않음으로 자신이 진멸을 당하는 심판을 받고 만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아간의 죄로 말미암아 그의 모든 것을 심판하셨습니까? 범죄 한 것은 아간인데 아간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함께 심판했습니다. 그의 아들과 딸들도 말입니다. 소와 나귀와 양들은 말 것도 없습니다. 다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무섭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긍휼과 인자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지만 그 공의로 심판을 행할 때에는 하나님처럼 무서운 분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처럼 두려운 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적당히 믿지 않는 것입니다.
여리고를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진멸해야 할 그 여리고 있는 것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 아간 자신이 진멸 받아야 하는 여리고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간의 재산을 물론이고 그 자식들까지 즉 아간에게 속한 것은 다 진멸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진멸하지 않으면 자신이 진멸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게 아간인 것입니다.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이스라엘과도 함께 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범죄 한 것은 아간 한 사람입니다. 몰래 범죄 한 아간 한 사람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별 것도 아닌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36명이 죽은 것입니다. 백성이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다고 말씀합니다.
난공불락 같았던 그 막강한 여리고 성도 말씀에 순종하자 무너지고 정복했는데 아이 성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성을 정복하러 갔다가 36명이 죽고 혼비백산하여 도망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안에 진멸해야 할 것 즉 하나님의 공의를 대적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간이 여리고 성에서 진멸하지 않고 몰래 숨긴 은과 금과 외투만이 아니라 바로 아간 자신이 진멸해야 할 자가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정말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상상도 못할 정도로 아주 예민한 분입니다. 죄에 대하여 결코 눈을 감아주고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번은 봐주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은 죄에 대하여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로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을 하고 광야 40년을 지나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정복을 하는 데 온전히 바친 물건을 진멸하지 않으면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죄를 십자가에 진멸하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우리는 내 죄를 대속해주신 주님의 십자가에 내 죄를 다 진멸하였습니까? 지금 교회 안에는 아간과 사울처럼 적당히 진멸하고 적당히 순종하고 적당히 믿는 척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하나님이 아간을 통해 심판을 미리 보여주시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 진멸해야 할 죄를 진멸하지 않고 내가 원하고 할 수 있는 것만 적당히 진멸하고 내가 원하는 것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과 자존심과 온갖 더러운 감정과 교만한 자아를 섬기기 위해서 죄를 그대로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겁니다.
교회에 나아 예배하고 헌금하고 봉사하면 죄를 다 진멸한 것입니까? 그것이 온전히 자신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까? 아간이 진멸하지 않은 것은 여리고 성 즉 세상에 있는 금과 은과 외투가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육체의 정욕과 탐심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 기생 라합과 그 집에 동거하는 자는 모두 살려 주라 이는 우리가 보낸 사자들을 그가 숨겨 주었음이니라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진멸하지 않으면 자신이 진멸을 당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일도 정말 두려운 사건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아간과 동일한 것입니다. 스스로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기로 하고서는 진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마음에 사탄이 가득하다고 하였습니다. 정말 충격적이지 않습니까?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지금 이 시대의 교회에서 칭찬을 받고 있을 겁니다. 아마 교회에서 감사패를 받고 믿음이 좋은 사람들도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판대 앞에 가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시고 불법을 행하는 자로 심판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얼마 전 우연히 한 교단의 어느 단체의 회장 이 취임식에 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회장의 임기는 1년입니다. 감사예배를 드린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강단에 올라와 격려와 축사를 하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보통 한 두 명은 하는 것은 보았어도 삼십 명도 넘는 것 같았습니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년씩 하니 전직 회장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다 감사패를 주는 겁니다. 그 많은 감사패는 받아서 다 어디에 쌓아놓을까 그것도 궁금했습니다. 그것다 쓰레기 아닙니까? 1년 후에 또 누군가 그 짓을 할 것입니다. 돌아가면서 감투를 쓰는 것입니다.
축사하는 사람들에게 준 돈은 얼마며 감사패에 들어간 돈은 얼마일지 성도들의 헌금으로 하는 것일 텐데 하나님의 돈을 헛되게 쓰는 것도 화가 나고 말입니다.
그런데 말하는 것은 기막힙니다. 내가 죽고 주님이 사는 십자가의 믿음으로 교회를 살리자는 겁니다.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에 대하여 말하는 겁니다. 영광은 자기들이 다 차지하고 인간의 이름과 만족을 위해 예배하면서도 그 정욕과 탐심을 위한 잔치에서 십자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말한다고 진리입니까? 하나님은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부정하게 그 다락방을 지으며 자기의 이웃을 고용하고 그의 품삯을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큰 집과 넓은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문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네가 백향목을 많이 사용하여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거나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변호하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네 두 눈과 마음은 탐욕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포악을 행하려 할 뿐이니라.”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백성이 입술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입술로는 십자가를 외치면서 정작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은 것입니다.
마치 선거에 나와 정치 구호를 외치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 같습니다. 국민들은 뻔한 거짓말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속여도 또 속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있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의 입이 마치 번지르르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정치인처럼 된 것입니다.
아간은 이 시대의 교회에서 세상의 힘과 명예와 영광과 권세를 차지하고 높임과 인정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진리인양 서 있는 것입니다. 목사와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였습니다. 목사와 성도들은 아간이 도둑질하고 자랑하는 그 금과 은과 외투를 부러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진멸하기 위해 벌거벗고 죽으셨지만 이 시대의 목사와 성도들은 예수님이 벗어주신 그 흰 옷을 입고 부끄러움을 가리려는 것이 아니라 그 흰 옷을 싼 값에 세상에 팔아버리고 세상의 힘과 영광과 명예로 옷을 입은 것입니다.
만약 아간이 이 세상에서 심판을 받지 않았다면 그는 그 은과 금과 외투로 세상의 영광과 힘으로 바꾸었을 겁니다. 아간의 아들과 딸들은 아버지의 영광과 힘을 그대로 물려받았을 겁니다. 아간의 가문은 축복을 받은 것으로 인정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상에 있을 때 아간을 즉시 심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교회와 모든 시대의 성도들에게 보여준 겁니다. 심판대 앞에 갈 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 내 안에 있는 아간을, 그 정욕과 탐심과 교만한 자아를 숭배하는 그 죄악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진멸하지 못하면 끝까지 싸우지 않으면 세상과 마귀와 함께 심판을 받고 마는 것입니다.
아간을 진멸하지 못한 그 증거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나타나겠습니까? 세상과 죄를 즉 자신을 이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십자가를 말하지만 세상을 사랑하는 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상과 하나가 되고 세상과 닮은 자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을 진멸하고 계속해서 십자가를 붙들고 자신의 자아숭배와 싸우는 자들은 하나님을 닮은 자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 나를 부인하는 즉 진멸하는 그 믿음이 없이는 순종할 수 없고 순종하지 못하면 믿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자들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간을 진멸하기까지 가나안에서 한 발자국도 전진할 수 없었던 겁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안에 있는 죄를 십자가에 못을 박고 진멸하지 않으면 즉 회개하지 않으면 죄를 끊어내지 않으면 하나님은 함께 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나 혼자 구원의 길을 가겠습니까? 자기 혼자 가는 길은 생명의 길이 아니라 사망의 길인 것입니다.
온전한 믿음은 십자가에 죽을 때까지 나를 그 육체의 정욕과 탐심과 온갖 자아숭배와 교만한 자아를 못을 박고 진멸하는 것임을 잊지 말고 날마다 죄와 싸우는 그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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