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시내를 통과해 제일 먼저 간 곳은 비겔란 조각공원이다. 버스에서 내리기 전 인솔 가이드 신현주씨가 비가 예정돼 있으니 우산이나 우비를 챙기라고 당부하는데 하늘을 보니 먹구름이 잔득 끼어 있어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다. 버스에서 내리자 오슬로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맞이해 공원 안으로 안내해 공원 입구에서 수신기를 통해 비겔란 조각공원에 대해 설명한다.
“비겔란 조각공원(Vigelands Park)은 노르웨이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인 구스타브 비겔란이라는 조각가의 청동작품들을 전시하는 공원이다. 비겔란조각공원이 탄생하게 된 데에는 1921년 오슬로 시와 비겔란과의 이색적인 계약이 있었다. 비겔란은 오슬로, 코펜하겐, 파리에서 조각을 배웠고 파리에 머물 때 로댕의 작품으로 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지만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그는 오슬로 시에‘인생의 행로’라는 작품을 기증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를 본 시민들이 그의 작품에 찬사를 보내면서 프로그너 공원에 조각작품을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조건은 시가 비겔란 조각공원을 건립해주는 대신, 작가는 현재 소장하고 있는 작품과 앞으로 제작할 작품들을 공원에 설치하는 것이었다. 대부분이 흉상과 부조인 초기의 조각들은 현재 오슬로의 비겔란 미술관에 있다. 후기에 만든 기념비적 작품들은 오슬로에서 가장 큰 공원에 모여 있는데, 그는 이 공원의 입구와 다리, 분수, 원형 계단, 모자이크 모양의 미궁과 그야말로 숲을 이루고 있는 인물 석상들을 비롯해 200개가 넘는 모든 조각 작품들을 설계했다. 비겔란 조각공원은 다리에 있는 청동조각상, 분수대, 원통 기둥 상징물 등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사람의 일생과 갖가지 희비(喜悲)를 나타낸 수백의 청동과 화강암의 조상(彫像), 군상(群像)들로 꾸며진 천수(泉水)·거대한 기둥·다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원 입구를 들어서면 우측에 이 공원을 만든 구스타프 비겔란(Gustav Vigeland)의 입상이 우리를 맞이한다.
다리 양쪽에 시작점을 알리는 용(?)과 여인이 뒤엉킨 돌 조각상이 있고 다리 청동상의 시작은 아기의 출생부터 시작하는데 연못은 엄마 뱃속의 양수를 의미한다고 한다. 화강암과 석등으로 이어진 100m 길이, 15m폭의 다리 난간에는 58점의 청동 조각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멀리서 봐도 금방 눈에 띄는 대형 조각에서 부터 가까이 가야 볼 수 있는 작은 조각까지 각양각색의 형상이 흥미롭다. 다리 양쪽 끝의 네 개 모서리에는 이무기와 인간의 모습을 소재로 한 독특한 조각들이 시선을 끈다. 시련과 고난에 직면할 때 좌절하거나 대항하는 인간 개개인의 삶의 방식을 표현한 작품들이다. 탄생, 행복, 슬픔, 분노, 절망, 죽음 등 인간의 모든 감정들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다리를 따라 걷다 보면 아빠와 아들, 엄마와 아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커플, 아이들과 놀고 있는 모습의 부모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작품은 바로‘화난 아이’(Angry Boy)다. 심술쟁이라는 뜻의 Sinnataggen(노르웨이어)로 불리는 이 동상은 너댓살로 보이는 꼬마가 주먹을 쥐고 발을 구르며 떼를 쓰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다. 어찌나 찡그리는 아이의 표정과 동작이 사실적인지 관람객들의 웃음과 함께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다. 인상적인 건 아이의 왼손이다. 청동 조각상이지만 마치 왼쪽 손만 따로 붙인 것처럼 금빛으로 반짝이는데, 이는 행운을 비는 의미로 관광객들이 만지면서 색깔이 변했다고 한다. 청동과 주철로 제작한 조각상들은 옷이나 장구 하나 걸치지 않은 맨몸 그대로다. 인위적인 기교 대신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표현하려는 비겔란의 생각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다리를 지나면 나타나는 공원에서 가장 오래된 조각 작품인 분수대는 여섯 명의 남자들이 수반을 받들고 있는 모습이며 주변에 20개의 청동 조각이 세워져있다. 분수대를 들고 있는 남자들이 무척 힘겨워 보인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힘겨움이 있는데 그 중 남자들이 짊어진 무거운 인생의 힘겨움을 보여주는 것 같다.
분수대 옆 생명의 나무에는 인간들이 다양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아이부터 어른까지 무언가를 열심히 하고 있다. 생명나무 받침대에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 조각되어 있는데 인생은 고해고, 유한하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는 느낌이 든다.
공원 끝부분에 있는 "모놀리트(Monolith)"는 멀리서 보면 커다란 기둥처럼 보이지만, 무게 260톤, 높이 17.3m의 거대한 화강암 기둥에 121명의 남녀노소가 서로 정상을 향해 기어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부조되어 있는 탑으로 모두 인생에서의 각 시기들(탄생·유년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죽음)인간의 본성을 잘 나타내 주는 것이며 실제 인체 크기로 조각되어 더욱 역동적은 느낌이 든다. Monolith 주위를 삥 두르고 있는 서로서로 껴안고 있거나, 함께하는 2명 이상의 조각상들이 있는데 역동적인 느낌이 든다.
비겔란은 이것을 완성하지 못하고 죽었으나, 초인적인 정력과 창작력 ·상상력은 그의 필생의 작업으로 평가를 더욱 높였으며 작품들의 테마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아우르는 희로애락이라고 한다. 비겔란 공원은 공원에 비겔란 작품을 설치한 것이 아니라 그의 작품에 맞춰 공원을 만든 점이 다른 조각공원과의 차이점인 것 같다. 좀 더 세밀히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고 싶었으나 비가 세차게 내리면서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서둘러 버스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