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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시 : 2009.12.11(금)~12.12(토)
2. 일정 : 부산→담양 백양사(1박)→담양 축령산→관방제림→죽녹원→부산
출발
날씨가 좋았다. 겨울답지 않게 햇살이 빛나고 햇볕도 따뜻하였다. 만덕터널을 지나 남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전남 담양 백양사에 도착하니 16시 50분, 4시간 정도 걸렸다.
사람은 추하고 백양사는 그림 같다
곧장 백양사로 갔다. 문화재관람료(입장료)가 2500원이었다. 사찰 입장료가 왜 이리 비싸담. 투덜거리며 주차장으로 갔더니 주차비를 내라고 했다.
“입장료에 포함 되어 있는 거 아닌가요?”
“주차비 5000원입니다.”
표정이 없는 관리인의 해명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5000원? 1시간도 주차하지 않을 텐데 하루치를 내라고? 아마 나 혼자였으면 차를 돌렸으리라. 백양사로 걸어가면서 나는 계속 투덜거리고 친구는 달래는 모양새가 이어졌다. 그러나 불만은 이내 사라졌다. 주위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사람은 잊음을 복으로 가진 존재이다. 불같은 사랑도 헤어지면 잊히듯이 입장 때에 얻은 불만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매표소를 지나자 단청을 입힌 일주문이 나타났고, 왼쪽에는 잘 정비된 잔디밭이 있었다. 왼쪽에 계곡을 두고 포장도로가 이어졌다. 계곡을 따라 쌍계루까지 그림 속을 걸었다. 길가에는 소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고 그 사이를 아기단풍나무가 열을 지어 심어져 있었다. 이곳의 단풍은 가을이면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하는 곳이다. 그러나 진작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갈참나무였다. 500년, 700년의 수령을 가진 그들의 키는 생각보다 작았으나 위쪽이 평평하다 싶을 정도로 독특한 수형을 지니고 있었다. 말없이 쳐다보던 친구가 갈참나무를 안았다. 그리고는 보기보다 굵음에 놀람을 나타내었다. 갈참나무는 세 사람이 안아야 될 정도로 굵었다. 백양사는 백제 무왕 때 세워졌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본래 이름은 백암사이었으나 1034년 중연선사가 보수한 뒤 정토사로 불려졌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법회 3일째에 흰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나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양으로 변했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다시 환생하여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절을 하였다 한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이후 사명寺名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 전한다.
성보관이 나타났다. 늦은 시간임에도 개방되어 있는 대문이 반가워 들어갔으나 아쉽게도 유물관은 잠겨 있었다.
인공연못이 보였다. 계곡에 보洑를 쌓아 만든 작은 연못이지만 어스름한 시간 탓인지 고즈넉한 호수 같은 분위기가 묻어났다. 백제인의 후손답게 연못을 다듬고 갈아서 저절로 예쁘다는 느낌을 주었다. 경상도 호수가 자연미를 살렸다면 백양사 호수는 자연미에다가 인공을 가해서 풍경화보다 더 풍경화다웠다. 조금 일찍 왔더라면 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리라. 잔잔한 파도를 타고 흐르는 그림자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사진 속에서 보았던 물위의 반영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연못 양쪽으로 산책길이 있고 주위에는 단풍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보가 있는 아래쪽에는 억새가 못다 날린 털을 달고 균형미를 맞추고 있었다. 보는 징검다리 구실도 하고 있어 건너가보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자그마한 섬이 연못 가운데 있었다. 손바닥만 한 섬이었으나 이 섬이 없었더라면 연못은 단순하거나 식상한 아름다움을 주었을 것이다. 저녁 어스름이 내려왔지만 연못물은 더욱 맑았다. 고개를 들자 백양사 뒤쪽으로 크고 흰 바위산이 보였다. 이른바 학이 날개를 편 모습을 닮은 백학봉이다. 연못이 있고 단풍나무가 있고 쌍계루가 있고 그 뒤로 우뚝 솟은 바위산이라. 세상에, 어쩜 이리도 그림 같은 아름다움을 지녔을까. 신기하고 기기묘묘한 중국의 장가계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편안하고 고요하며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게 하는 아름다움이었다. 여기에 단풍이 채색을 한다면! 아아 생각만으로도 눈이 부셨다. 생각의 끝을 잡고 이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고 고심에 젖어 보았으나 머리는 전혀 작동할 생각을 않았다. 포은 정몽주도 고심한 묘사를 어찌 내가 나타내랴.
어스름 짙어와 푸른 달이 연못에 뜰 때
한 병의 술을 앞에 두고 홀로 따르고 마시면
백학봉이 잔 속으로 들어온다
새는 어둠 속으로 집을 찾아들고
절은 고고한데
사람만 어지럽구나.
매표소에서 백양사까지는 대략 15분 정도 걸렸다. 연못 끝의 백양사 성보문화재 가운데 가장 오래된 누樓인 쌍계루(雙溪樓)는 해체되었고 재건축 공사 중이었다. 사천왕문 못 미쳐 오른쪽에는 돌벽돌로 계단을 쌓고 그 위에 가로가 긴 직육면체 화강석을 얹어 “이 뭣고”라고 적은 다음 다시 화강석 위에 세로로 긴 돌비석에 “曼庵大宗師古佛叢林道場”이라고 적혀 있었다. 불교에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하여 선을 참구參究할 때 의제로 삼는 것을 화두라고 하며 ‘이 뭣고?’ 하며 참구하면 해탈을 한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2층의 범종각이 보이고 마당 가운데는 그리 크지 않은 피나무(보리수나무라고 적혀 있음)가 있었다. 피나무 아래에는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늘어지는 가지가 부러질까 염려하여 받침대를 해 놓았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는 않으나 수형이 아름다웠다. 대웅전 뒤편에 팔각팔층석탑 진신사리탑이 있고 그 앞에는 배롱나무 몇 그루와 제법 모양을 갖춘 모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멀리 시선을 던지니 백학봉이 한 눈에 들어왔다. 무리지은 흰 바위군이 마지막 햇살을 받고 빛나고 있었다. 절을 나왔다. 저물어 어두웠으나 올라올 때의 포장도로를 버리고 연못의 오른쪽 길을 따라 내려갔다. 배가 고프기에는 아직도 여유가 있는 시간이라 찬찬히 둘러보며 내려가니 어둠이 깔린 주위의 풍경이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감성이 풍부한 친구는 연못길을 벗어남을 못내 아쉬워했다. 백양사를 나와 저녁을 먹을 식당을 찾았다. 염불이 흩어지는 절 아래에는 네온등만 화려하였다.
석식 후 산책
사방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저녁을 먹고 숙소를 나와 황룡강변 산책을 나섰다. 황룡강(黃龍江)은 영산강의 제1지류로 내장산국립공원에 있는 백암산에서 발원하며 지방하천이 시작되는 장성호가 중간에 있다. 총연장 약 50km 중 37,6km는 지방하천구간이며 9,41km는 국가하천이다. 밤은 깊어 가로등에 비치는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국도를 지나는 차량소리가 간간이 들리는 와중渦中에 갈대에 바람이 부딪치는 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의 소리, 오싹한 바람소리, 강물의 파도소리가 어울려 시골의 밤은 짧아져 갔다. 강변을 따라 걷는 길은 밤이라 더욱 아름다웠다. 달빛을 반사하는 강물은 반짝였고 은어라도 뛰어 오를 것만 같았다. 강변의 정취가 주는 정의情意를 사람의 뇌에 입력시켜 고정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숙제를 해 오라는 축령산 편백림
숙소를 나와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알아둔 정보대로 영화촌이 있는 금곡마을로 향했다. 아침을 먹은 후 영화촌을 구경하고 금곡에서 축령산 편백림으로 올라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다가 아침과 영화촌을 다 놓쳐 버렸다. 할 수 없이 축령산 편백림으로 곧장 가야 했고,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도착한 곳은 “추암(괴정)” 마을이었다. 원래 등반 기점으로 잡았던 금곡과 추암은 축령산 정상을 가운데 두고 서로 반대편에 위치할 만큼 완전히 반대 방향이었다. 아침은 친구가 가지고 온 초코파이와 밀감으로 대신했다. 축령산은 전남 장성군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웬만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이 산이 주목을 받는 이유는 산을 둘러싸고 있는 숲 때문으로 이 숲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완전히 헐벗었던 산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이는 임종국씨로 1956년부터 시작된 육림은 그가 세상을 떠난 1987년까지 계속되었고 그러다보니 어느덧 90만평의 숲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의지가 90만평의 조림지를 가져온 셈이다. 축령산 등반로는 추암과 대곡, 금곡 세 곳이 있고 추암에서 축령산 오르는 길은 두 개가 있었다. 산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 길은 가까우나 포장이 되어 있는 임도이고, 우측 길이 산길이었다. 임도로 들어선 우리를 보고 마을 입구에서 누런 호박과 커피 등을 팔던 아주머니가 오른쪽 산길을 권했다. 산을 느끼는 분인가 보았다. 권유대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한참을 올라가도 편백림이 나타나지 않았다. 능선에 올라서도 마찬가지였다. 능선에서 축령산 정상을 올려다보니 왼쪽 사면은 낙엽수뿐 상록수는 거의 없었고, 오른쪽에 편백나무인지 소나무인지 멀어서 구분이 되지 않는 상록수림이 보였다. 저긴가? 올라가면서 보니 10년이 채 되지 않은 소나무만 보일 뿐 편백은 거의 없었다. 정말 이상하다. 소나무길 능선을 돌아 임종국 선생 기념비에 도착하였다. 기념비는 3단인데 1, 2단은 화강암이고 3단은 오석이며 가로로 春園林種國造林功德碑라고 적혀 있었다. 추암에서 여기까지는 2.06km. 춘원선생공덕비 주위에도 고대했던 편백림이 보이지 않았다. 산불조심 완장을 단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금곡 방향을 가리켜 주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금곡과 모암 쪽에만 편백림이 있었다. 금곡으로 내려갔다. 비로소 편백나무와 삼나무 조림지가 나타났다. 편백과 삼나무가 주종이고 낙엽송, 리기다소나무, 서어나무, 층층나무, 느티나무, 해송, 때죽나무, 왕버들나무, 비목 등이 명찰을 달고 하늘을 뚫고 솟아 있었다. 편백나무가 없는 곳은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떡갈나무 등이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원래는 참나무류 숲이었으나 편백림으로 조림한 모양이었다. 조림지 남서쪽 산록은 마치 독일의 잘 조림된 침엽수림지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와!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편백나무와 삼나무-수십 년 정열을 갈무리한 쭉쭉 뻗은 수천의 미녀들을 보라. 곧게 뻗은 시원함이 있고, 그 사이를 흐르는 여인의 머리카락보다 부드러운 바람이 있고, 저절로 콧구멍을 벌렁거리게 만드는 향기가 있고, 인간에 대한 기다림이 있고, 느림의 여유가 있고, 욕망과 고뇌를 씻어주는 푸름이 있었다. 아울러 삶에 대한 도전을 충전해 주는 힘도 가지고 있었다. 저절로 차분해지는 분위기에 얹히어 천천히 숲길을 걷다 보니 몸과 마음이 수림 속으로 둥둥 떠 다녔고 고단하고 상처받은 내 영혼도 원래의 정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각과 행동이 사라져 버렸다. 주위의 풍광마저도 달아났다. 오감을 버리고자 애쓸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걷기만 하면 되었다. 걷고 또 걷게 만드는 분은 시도 때도 없이 변하는 숲의 빛깔이었고 흠뻑 느끼게 하는 분은 습기 찬 숲의 냄새와 바람이었다. 이 분들이 시원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모르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 사람이란 때때로 숲을 걸어야 되는 존재인가보다. 편백림은 금곡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귀가 시간 때문에 공덕비에서 2km 쯤 내려갔다가 도로 올라왔다. 왼쪽에 모암 통나무집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갔다 오지 않으면 후회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쪽의 편백과 삼나무는 금곡보다 키는 작았으나 풍성미를 가진 미녀들이었다. 길은 호흡이 가쁠 정도로 급경사였다. 아쉽게도 시간이 촉박하여 통나무집까지 가지 못하고 1km쯤 가다가 돌아섰다. 공덕비로 돌아왔다. 새삼스럽게 다시 축령산 안내도를 훑어보았다. 기념비를 기점으로 삼을 때 북쪽에 금곡이 있고 남쪽에는 추암이 자리 잡았고 대곡은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동쪽에 매암이 튀어나와 있었다. 이들 다섯 마을은 전체가 임도로 연결되어 별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거리는 25km쯤 되었다. 모암 통나무집은 별 모양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임도를 통하여 산을 내려왔다. 장성 8경 중 2경인 축령산 휴양림, 언제 걸어도 좋으리라. 축령산은 우리들에게 철마다 오라는 숙제를 주었다.
점심
점심은 떡갈비를 먹었다. 친구가 맛집을 뒤져 알아온 덕택에 떡갈비의 참맛을 즐길 수 있었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죽방관방제림
담양의 관방제림은 담양읍을 감돌아 흐르는 담양천 북쪽 제방을 따라 각종의 거목이 열을 지어 있으며, 남산리 동정마을에서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2km에 걸쳐 이어져 있었다. 관방제림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의 종류로는 푸조나무(111그루), 느티나무(43그루), 팽나무(18그루), 벚나무(9그루), 음나무(1그루), 개서어나무(1그루), 곰의 말채, 갈참나무 등으로 약 420여 그루가 자라고 있었으며 현재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구역 안에는 185그루의 큰 나무가 있었고 1번부터 177번까지 고유번호를 달고 있었다. 담양의 관방제림은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고 나무를 심은 인공림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문화적 가치에 앞서 산책로로 전국에 알려진 곳이다.
담양천변에 주차를 하자마자 둑으로 올라갔다. 노거수들이 나타났다. 묵직한 우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한참이나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80년대 말에 와 본 곳이건만 새로운 곳이었다. 둑 위를 걸었다. 떨어진 낙엽이 내는 소리는 둑이 울림통이 되어 크게 들렸다. 177명의 어르신들은 아무 말씀도 없으셨으나 입가에 헤르만 헷세가 언덕에 누워 구름을 보며 지었을법한 미소를 가지게 해 주셨다. 이런 길을 걸음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곳에는 종교도 문화도 아니 사람조차 없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길만 있을 뿐이었다. 곳곳에 벤치가 보였으나 앉아지지가 않았다.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이 간혹 있을 뿐 둑길은 우리의 길이었다. 1km를 걷다 돌아섰다. 관방제림 아래에는 포도鋪道가 있었고 그 옆에 잔디가 심어져 있었다. 잔디 옆의 강변에는 나무를 깔은 보도가 있었고, 담양천 중간 중간에 돌다리가 있었다. 돌다리, 건너보지 않고 어쩌랴. 돌다리 하나하나마다 어릴 적 여름철의 소낙비 냄새가 났다. 손을 잡은 젊은 연인들이 보여 더욱 좋았다. 이들에게서는 싱그러운 젊음이 묻어날 뿐 지하철속의 젊은 쌍과 같은 찌푸림은 느껴지지 않았다. 누군가 데이트 코스를 추천해 달라고 하면 관방제림 둑길을 말해 주자. 제 일 순위에 두어도 결코 비난을 받지는 않으리라. 관방제림은 300년 세월의 무게가 한없는 부드러움으로 변하는 길로써 산림청 주최 “2004년 제5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곳이다. 한 손에는 연인의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생수 한 병만 들고 걷어도 좋은 길이다.
청량한 담양녹죽원
담양은 전통적으로 죽세공품으로 유명한 곳인데 지금은 중국제품 때문에 많이 쇠퇴하고 대신 떡갈비와 녹죽원의 관광 사업이 활기를 띄고 있는 듯하였다. 돌다리를 건너 죽녹원으로 갔다. 담양군에서 조성한 담양읍 향교리의 죽림욕장 죽녹원은 관방제림과 담양천을 끼고 있는 향교를 지나면 바로 왼편에 보이는 대숲을 이른다. 산책로는 2.25km에 이르며, 곳곳에 조형물, 폭포, 연못, 정자, 생태전시관이 있어 상쾌한 느낌을 유지하며 걸을 수 있다. 입구는 약간 오르막인데 길 가운데는 돌계단이고 왼쪽은 시멘트 포장길이며 오른쪽은 큰 돌을 비스듬히 배열한 비탈길이다. 죽녹원 간판을 단 열녀문처럼 생기고 태극무늬를 머리에 단 철제 대문을 지나면 매표소이다. 입장료는 1000원. 입구를 들어서니 물레방아와 함께 대나무가 나타났다. 댓잎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으며 대나무 숲길을 걷으니 푸른 댓잎을 뚫고 쏟아지는 햇살의 기운이 신선함을 선물하였다. 아쉬운 것은 길옆의 대나무에 낙서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곳곳의 대나무 아래에 대나무 잎에서 떨어지는 이슬을 먹고 자란다는 차나무가 보였다. 이 차나무의 잎으로 죽로차를 만든다고 한다. 운수대통길을 지나 노무현 대통령 방문기념비에 이르면 오른쪽이 ‘사랑이 변치 않는 길’이고, 직진 방향이 ‘추억의 샛길’이다. 사람이 많아져서 인적이 드문 추억의 샛길로 직진을 했다. 산 정상까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정상 주위는 참나무와 소나무를 베어내고 대나무를 이식하고 있었다. 죽녹원 아래에 한옥체험 마을이 있었으나 시간이 없어 들르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성인산(죽녹원내에서 제일 높은 곳임)을 지나 동상이 있는 곳에서 철학자의 길로 가다가 선비의 길로 되돌아 나와 퇴원하였다. 나가는 길은 바닥을 대나무를 엮어서 만들어 놓았다. 죽녹원은 생각한 것보다 컸다. 또 여러 갈림길이 있고 재미있는 이름도 붙여져 있어 골라 걷는 재미도 있었다. 짧지만 시원함을 느낀 산책로이었다. 이곳 역시 80년대 말에 와 본 곳이었으나 내가 워낙 생경한 인간이다 보니 처음 보는 곳처럼 느껴졌다.
귀가
죽녹원을 나와 귀갓길에 올랐다. 멀지 않은 곳에 메타세콰이어(수삼나무)거리가 있었으나 시간이 없어 볼 수가 없었다. 전에 본 것으로 위안을 삼고 귀가를 서둘렀다. 귀가 내내 편백림과 대숲의 향기가 콧가에 묻어났다. 그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다는 행복함이 넉넉하게 다가왔다.
참고
편백나무와 삼나무는 생김새가 비슷해 구별하기가 쉽지 않지만 나뭇잎을 보면 알 수 있다. 부챗살처럼 펴진 것이 편백, 솔방울처럼 뭉친 것이 삼나무이다.
첫댓글 수고가 많았습니다........좋은 정보에 감사


내가 죽록원에 갔다 온 것 같네. 백양사에서 죽록원 에 이르는 주변 사물을 보고 느끼는 감정이 너무 풍부하여 아! 소리가 저절로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