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를 빠져나와 34번 국도를 한 시간쯤 달렸나. 경북 안동시에서 청송을 지나고 황장재를 넘어 영덕으로 빨려들 듯 내려갔다. 풍광이 완전히 바뀌었다. 사방이 온통 분홍빛이다. 붉은빛이 화사하다 못해 요염하다. 이 세상 어디가 아닌 별세계로 들어선 느낌이다. 차창을 내리면 희미한 복사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다닌다.
지금 영덕은 복사꽃이 한창이다. 꽃을 보려고 굳이 길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다. 34 국도 양 옆이 전부 복숭아밭이다. 열흘쯤 전부터 복사꽃이 피기 시작했다. 황장재에서 영덕읍까지 붉은 수평선이 10㎞ 가까이 이어진다. ‘서울 촌놈’은 이만큼으로도 가슴이 벅찬데, 영덕 토박이들은 시큰둥하다. 복사꽃이 만개(滿開)했을 때와 비교하면 별 것 아니란 거다. 꽃색도 아직은 흰색에 가까운 분홍빛으로, 날이 지날수록 붉어진다.
지난 6일 영덕을 찾았을 때, 화개2리 문효균(52)씨는 오십천을 끼고 있는 자신의 복숭아밭에서 복사꽃을 속아내고 있었다. 꽃이 많으면 복숭아가 많이 열리지만, 크기가 작아 소득이 떨어진다. 문씨는 “다음 주 이맘 때면 복사꽃이 볼 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덕은 전국적으로도 복숭아를 많이 생산하기로 이름 높다. 지품면과 영덕읍을 흐르는 오십천 주변은 모래가 많아 물이 잘 빠져 복숭아재배에 알맞다. 예전부터 이 지역이 복숭아로 알려진 건 아니다. 1959년 태풍 사라가 한반도를 사납게 할퀴고 지나갔다. 논밭이 폐허로 변했고, 오십천이 범람하면서 자갈과 토사로 뒤덮혀 농사 짓기 힘든 척박한 땅으로 변했다. 이 지역 농민들은 고민 끝에 복숭아나무를 심기로 했다. 다른 곡식이 자라기 힘든 땅에서 오히려 잘 자라는 복숭아의 성품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화(禍)가 복(福)이 됐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복숭아는 영덕의 수요 수입원이 됐고, 봄이면 복사꽃이 관광객을 불러들인다. ‘복사꽃큰잔치’ 축제가 열리는 4월 17일은 영덕 군민의 날. 군민의 날이 이 날로 정해진 건 이맘 때 복사꽃이 만발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복사꽃은 영덕군의 상징으로 사랑 받고 있다.
영덕 어디서 사진을 찍어도 복사꽃이 배경에 걸릴만큼 복사꽃이 흔하지만, 복사꽃 촬영 명소로는 지품면 오천1리 오천솔밭이 꼽힌다. 오십천 맑은 물이 복사꽃 들판을 두르고 흐르고, 뒤로는 무릉산이 걸려 그야말로 ‘무릉도원’이다.
삼협리(정식 행정명칭은 삼화1리) 복사꽃마을도 유명하다. 34번 국도에서 삼화1리 마을회관 쪽으로 우회전해 좁은 길을 타고 언덕을 올라가면, 언덕을 타고 흘러내리는 복사꽃과 오십천이 한 눈에 들어온다. 단 지대가 높고 복숭아나무 나이가 많아서 꽃이 늦게 핀다. 복사꽃은 오래된 복숭아나무일수록 늦게 핀다. 대신 꽃색이 붉다.
만개의 절정에서 흐드러진 복사꽃을 보려면 지품면 신양리로 간다. 34번 국도에서 지름면사무소를 지나 우회전하면 온통 복숭아밭이다. 지대가 낮아서 다른 지역보다 복사꽃이 일찍 피기 시작했다.
달산면 주응리 입구 대서천변도 꽃이 좋다. 영덕읍에서 10㎞쯤 떨어진 신양리에서 옥계유원지로 가는 69번 지방도로변에 있다. 오십천 지류 대서천을 거슬러 오르다 옥계계곡 못미쳐 주응리가 나온다. 복사꽃밭 가운데 함석지붕 원두막과 커다란 바위가 드문드문 박혀 운치있다.
영덕 여행수첩
가는 길: (서울에서 출발할 경우)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서안동IC에서 빠져나와 34번를 달리면 안동시를 거쳐 영덕군에 들어선다.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서울에서 서안동IC까지 약 3시간, 서안동IC에서 영덕읍까지 1시간쯤 널린다. 영덕대게축제: 4월13~15일 강구삼사해상공원과 강구항 일대에서 열린다. 대게 잡이, 어선 무료승선, 대게 요리경연, 대게 먹기대회 등 체험 행사가 준비된다. 복사꽃큰잔치: 영덕읍 영덕군민운동장에서 ‘영덕군민의날’인 4월 17일 있다. 윷놀이, 화살꼽기, 씨름, 널뛰기 같은 민속놀이가 다양하다. 영덕물가자미축제: 4월 28~29일 축산항에서 열린다. 물가자미 잡이, 물가자미 빨리 썰기, 물가자미 말리기 시범, 풍요 기원 풍물놀이, 가요제 등이 진행된다. 그밖에 볼거리: 강구항에서 축산항, 대진포구를 거쳐 영해로 이어지는 918번 도로는 동해안에서도 풍광 수려하기로 손꼽히는 해안도로다. 영덕읍에 있는 영덕초등학교 창포분교 뒷산 ‘풍력발전단지’도 볼 만하다. 높이 80 풍력발전기 24기의 날개가 바람이 불면 거대한 바람개비처럼 돌아가는 장관을 볼 수 있다. 매달 ‘4’와 ‘9’가 들어가는 날 열리는 영덕5일장과 강구장(3·8일), 영해장(5·10일)에서는 옛 장터의 정취 속에서 질 좋은 영덕 수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 문의: 영덕군 문화관광과 (054)730-6396, www.yd.go.kr
/4월12일자 주말매거진에 쓴 기사입니다. 아마 지금쯤 영덕 복사꽃은 그 요염한 아름다움과 관능적 향기가 절정에 올라섰을 것입니다. 다시 가보고 싶군요. 사진은 김승완 기자가 찍었습니다. 구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