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화급을 다투는 문서를 전하는 일, 즉 전령(傳令)은 천인인 조예(皂隸:노예)의 몫이었다.
먼 거리를 단숨에 달려가야 하니 튼튼한 다리와 건장한 체격은 필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으나 이 때 비인간적 방법이 동원된다.
전령의 한쪽 옷소매를 걷어 올린 다음 팔뚝[臂]의 맨 위쪽에
새끼줄이나 칡으로 피가 안 통할 정도로 꽁꽁 묶는다.
이 때 전해야 할 문서를 함께 묶고 封(봉)이라 쓴 다음 서명을 한다.
팔뚝에 묶인 문서는 수령자만이 개봉할 수 있고,
개봉하는 자만이 그 봉비(封臂)의 끈을 풀 수 있다.
묶는 순간부터 피는 통하지 않고 팔이 끊어질 듯한 고통은 시작된다.
고통을 잊기 위해서는 쉴 새 없이 팔을 앞뒤로 휘저어야 하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수령자를 만나야 한다.
그러니 잠시도 쉴 틈 없이 계속 달릴 수밖에 없다.
전근대의 수많은 비인간적 대우 중에 하나였던 봉비(封臂)를
우리는 무신란의 핵심인물인 정중부(鄭仲夫)에서 보게 된다.
고려 때 해주(海州) 사람인 정중부(鄭仲夫:1106~1179)는
눈매가 날카롭고 이마가 넓으며 살결이 희고 수염이 근사한 7척(尺) 장신의 헌헌장부였다.
하지만 그는 신분이 천했다.
어느날, 그가 사는 고을에서 개경(開京:개성)에 있는 재상에게 군적(軍籍:군사 문서)을 보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일이 정중부에게 맡겨졌다.
당연히 봉비(封臂)를 해서다.
전례대로 팔뚝에 봉비를 하고 해주에서 개경까지 단숨에 달려가 문서를 전하자,
그의 봉비의 끈을 풀어주던 재상 최홍재(崔弘宰)는 한눈에 비범한 인물임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서 바로 공학금군(控鶴禁軍)에 편입하여 왕을 모시게 했다.
역사에 등장하는 금(禁)은 대부분 임금이 사는 공간을 나타낸다.
금궐(禁闕:궁궐)이나 금부(禁府:의금부)가 그런 예인데, 금군(禁軍)은 왕을 시위하는 군인이다.
조예의 신분에서 한순간에 최측근에서 국왕을 모시는 호위무사(護衛武士)가 된 것이다.
하지만, 숭문천무(崇文賤武)의 시대인 고려에 살았던 정중부는
문신들의 멸시와 천대를 받아야하는 암울한 운명앞에 놓이게 된다.
임금을 호위하는 영광스러운 자리였을 것으로 생각했던
호위무사라는 자리가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놓게 된다. - 계속 -
淨山/金柄憲
첫댓글 2부를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알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렇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