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의 관계도 그렇지만 어떤 장소와 인연을 맺는 데도 무르익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남산화랑'에 처음 발을 들여놓던 날 그 생각을 했다. 새로 이사한 동네서 뜻밖에 화랑을 발견하고 반가웠던 것에 비하면 인연을 맺기까지는 시간이 많이도 걸렸다. 내가 갈 때마다 아직 'OPEN'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이고, 게으름 때문에 아무 시간에나 자주 찾아가보지 못한 게 두 번째 이유이다.
처음 남산화랑이란 이름을 보았을 때 나는 좀 의아했다. 해운대처럼 화랑이 밀집해 있기는커녕, 금정구에서 음식점거리로 조성하여 주점과 음식점들이 즐비한 길 끝자락에 홀로 뎅그러니 있었으니까.
그림은 부드럽고 온유했다
살포시 뺨을 기대면 그대로 나를 감싸줄 것 같았다
화폭 물들인 은은한 색감은 더할 수 없이 편안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남산화랑은 다른 어느 화랑보다 소중하게 생각된다. 먹고 마시는 문화로 번성한 거리에서 홀로 예술의 공간으로 우뚝 서 있으므로. 남산화랑에선 그림뿐만 아니라 긴 세월을 담고 있는 고가구, 골동품 등을 함께 감상할 수도 있다. 조각품도 있다. 그래서 그 곳에 한 번 들어서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한두 시간쯤은 금세 지나가버린다.
어떤 이는 화랑이 그림만 전시하는 데가 아니더냐고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화랑 대표 김영운 씨의 말을 들으면 그것도 이유가 있다. 그림이라면 무조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고가구나 골동품에 대해선 관심이 많단다. 그러니까 화랑에 그림만 전시되지 않은 것은 고가구와 골동품을 보러 와서 그림도 감상하라는 배려다. 화랑이 위치한 동네의 특성상 화랑도 변모를 한 셈이다.
어쨌거나 나는 그처럼 감상할 게 많은 남산화랑이 좋다. 그 곳에 갔다 오면 어쩐지 임도 보고 뽕도 딴 기분이다. 그림이나 고가구, 골동품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랄 게 없으니 오히려 보고 느끼는 것 자체가 마냥 즐겁기만 하다. 김 대표로부터 이런저런 설명을 듣는 것은 덤으로 얻는 행운이고, 덕성과 미모를 갖춘 안주인으로부터 얻어마시는 차는 혀끝에 달다.
남산화랑은 다른 화랑들보다는 좀 늦게 문을 연다. 때문에 오전에 가면 헛걸음하기 십상이다. 대신 밤늦게까지 불을 밝혀놓고 있다. 다른 화랑들처럼 세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정감어린 모습으로 범어사에서 내려오는 길 끝에 수줍은 듯 서 있다. 그래선지 옷을 근사하게 차려입고 그림을 보겠다고 작정하고 가는 수고 대신 저녁을 먹은 후 산책 삼아 느릿느릿 가보아도 좋은 곳이다.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 곳에 있으면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왔다 들르는 사람도 있고, 저녁식사 후 산보 삼아 나온 부부가 들어오기도 하고, 등산 갔다 오다가 "난 그림이 도대체 뭔지 모르겠더라"고 너스레를 떨면서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다. 물론 멀리서 남산화랑을 믿고 찾아오는 단골들도 많다. 남산화랑은 그처럼 동네 한 귀퉁이에 앉아 문화의 첨병 노릇을 하고 있다. 그것이 남산화랑이 한가한 듯 붐비고, 붐비는 듯 한가한 이유이다.
나는 그림에 대해 아는 게 없다. 한편으론 모르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다. 어떤 분야든 아는 만큼 보이기도 하지만 또 그만큼 즐거움이 줄어들 수도 있다. 느낌보다 판단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내 분야가 아니라면 너무 깊이 알고 싶지 않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가슴에 닿는 느낌을 그저 즐기는 게 나의 그림 감상법이다. 어떤 예술 장르든 작업과정은 작가의 몫이지만 완성 후에는 그것과 만나는 사람의 몫이니까. 감상자의 감성에 따라 느낌이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 작품은 감상자의 감성을 통해 거듭난다고 할 수 있다. 같은 그림도 때에 따라, 기분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그것을 나는 남산화랑에 쉬엄쉬엄 가서 느낀다.
남산화랑을 처음 본 것은 삼 년 전, 어느 초가을이다. 이사한 후, 신고식을 하는 심정으로 범어사에 갔다 내려오는 길이었다. 범어사에서 내려오는 일방통행로에는 사찰 아래라는 것이 우스울 정도로 닭고기와 오리고기를 파는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오뎅이나 커피를 파는 이동차량들도 사이사이 서 있다.
나는 그 중 한곳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돌아서다가 마침 쌩 하고 지나가는 차에 놀라서 커피를 쏟았다. 길 커피 사장님이 다시 커피를 타주며 투덜거렸다. 차를 타고 오는 손님들 덕에 장사도 하지만 자칫 위험스런 일이 생길 때는 가슴이 내려앉는다고 했다.
나는 커피를 들고 소소하게 부는 가을바람 속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 길에 차가 다니지 않고 조그맣고 예쁜 가게들이 들어선다면, 거리의 화가가 초상화를 그려준다면, 사람들이 자신이 쓰던 물건을, 책을, 골동품을 들고 나와 한가롭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면, 크고 작은 화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부담 없는 가격에 그림을 살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면 참 좋겠다….
순간, 나는 걸음을 멈추었다. 길을 다 내려와 집 쪽으로 방향을 잡는데 쇼윈도에 걸린 그림을 스치듯 본 것이다. 고개를 드니 '남산화랑'이란 간판이 보였다. 의아한 심정으로 쇼윈도를 보니 한 폭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림은 부드럽고 온유했다. 살포시 뺨을 기대면 그대로 나를 감싸줄 것 같았다. 화폭을 물들이고 있는 은은한 색감은 더할 수 없이 편안했다. 그 작가가 누군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화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언제 문을 열고 닫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 나는 유리벽에 이마를 대고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비슷한 느낌의 그림이 여러 점 걸려 있고 고가구와 골동품이 띄엄띄엄 놓여있었다. 고즈넉한 풍경이 정적 속에 갇혀 있었다. 그것이 이상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잔영은 오래 남았다.
그 후, 나는 가끔 화랑 앞을 지나칠 때마다 혹시 문이 열려 있나 눈여겨보았다. 문은 항상 닫혀 있었다. 나는 혼자 구시렁거렸다. 누군지 참, 배부른 작자도 다 있네. 열한 시가 넘었는데 대체 뭐하는 거야? 나는 화랑의 문이 닫혀 있을 때마다 화랑주인을 한심해 하며 그 길을 지나다녔다. 그렇다고 오후에 일부러 짬을 내어 가볼 만큼의 열의는 없었다.
그러다가 비로소 인연이 무르익은 것인지 전혀 뜻밖의 장소에서 남산화랑 대표 김영운 씨를 만났다. 어느 산행 모임에서였다. 우선 생각보다 나이가 많아서 그동안 혼자 욕한 것이 영 미안했다. 그는 부산 화랑업계에서 40여 년이나 된 베테랑이었다. 까칠해뵈는 인상과 달리, 그는 그림에 대한 내 궁금증에 답을 잘해 주었다. 재미난 얘기도 많았다. 사람 사는 얘기니까, 내가 모르는 세상이니까 참 재미있었다.
어떤 이는 김 대표가 갖다 준 그림을 며칠 갖고 있다가 살 마음을 접고 그의 친구에게 갖다주라고 했다. 친구는 두 말 없이 그것을 샀다. 김환기의 그림이었다. 김환기가 누구인가. 웬만한 갑부도 살 엄두를 내기 어려운 그림이다. 모르는 사람이면 모를까, 친구 사이에 그런 일이 생겼으니 물린 사람은 친구를 볼 때마다 배가 좀 아프지 않았을까.
그의 오랜 고객 중에는 이사를 하거나, 개업한 집에는 반드시 그림을 사서 선물한 사람도 있었다. 그 그림들 중에는 현재 굉장히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들이 많다. 한 폭의 그림에 '미래'를 담아 선물하는 센스를, 그때는 아마 받는 사람도 몰라봤을 것이다.
그날, 나는 비로소 내 눈길을 끌었던 화가의 이름이 오순환인 것을, 남산화랑이 거의 오순환 화가의 작품만 전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김 대표는 그의 인간성을 칭찬하는데 입에 침이 마를 정도였다. 아무리 어려워도 쉬 타협하지 않고 한 번 신뢰하면 끝까지 가는 사람이라 그림이 점점 더 좋아진다 했다.
그의 말에선 화랑의 대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하는 진정성이 있었다. 작가의 청년 시절부터 안 지 이십여 년, 그 세월 동안 변치 않은 두 사람의 관계가 놀라웠다. 나는 오 작가의 그림이 주는 편안함과 아늑함, 순한 표정을 한 서민적인 풍모의 인물들이 전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떠올렸다. 결국 한 사람의 작품은 한 인간이 지닌 인간성의 깊이가 아니겠는가.
어떤 평론가는 오순환의 그림에 대해 "그의 그림은 너무 여려서 세상의 한파와 상처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강한 것만이 어려움을 이기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 드러눕는 듯 일어서는 들풀의 강인함이 태풍도 견뎌내듯 연약함 속에도 강한 에너지가 있다. 나는 지금까지 알지 못하던 오순환이란 화가가 궁금했다. 더구나 그의 그림 중 하나는 내 마음을 사로잡은 참이었다. 오묘한 유백색의 환희라 할까. 백자에 소담스레 꽂혀있는 하얀 꽃들의, 경이로울 정도로 깊고 은은한 색감에 매료된 것이다.
나의 궁금증은 며칠 전 해소되었다. 마침 남산화랑에서 '오순환 개인전'을 기획한 것이다. 늦게 도착하니 그가 오붓하게 모인 사람들(모두들 팬인 듯했다) 속에서 수줍은 듯 웃고 있었다. 그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다. 나도 그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전시회하고 나면 좀 더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느냐고. 그는, 이젠 없다고 했다. 에스키스(회화작품의 초고나 구상)하는 과정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표현한 후에 그와 똑같이 그리기 때문이라 했다. 그만큼 그의 그림들은 숙성의 과정을 충분히 거친 후 탄생한다는 얘기이다.
나는 그림을 돌아보며 슬며시 웃었다. 이제 보니 그의 화폭에 있는 남자와 여자가 죄다 그와 그의 아내를 꼭 닮아있었다. 소설가가 소설의 어느 구석엔가 자신을 숨겨두듯 화가 역시 화폭에다 자신의 분신을 옮겨 놓는 것일까.
그날, 남산화랑의 밤은 작가와 함께 즐거웠다. 지나가던 사람도 환한 불빛에 이끌려 들어왔다가 현장에 있는 작가와 인사를 나누며 기뻐했다. 내 이웃에 있는 남산화랑은 그렇게 소박한 모습으로 나에게, 우리에게 기쁨을 준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그곳으로 마실을 간다. 전시회는 아직 계속되고 있다.
정 인 소설가
◇약력: 2000년 '21세기문학' 으로 등단. 소설집 '당신의 저녁''그 여자가 사는 곳', 부산작가상· 노근리평화문학상 수상. 현재 부산작가회의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