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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경찰에 협조해 주십시오. 경찰에 협조하는 것도 애국입니다. 어디에 가면 박태진 씨를 찾을 수 있습니까? 그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잔인무도한 방법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살해했어요. 우리는 지금 그 현장에서 오는 길이오.”
홍나리의 말에 여사장은 눈이 동그래졌다. 그 표정도 쇼는 아닌 듯했다. 여사장의 얼굴엔 실망과 분노의 빛이 스쳐갔다. 여사장은 앉아서 담배 연기를 날리고 두 형사는 그 여자 앞에 수숫대처럼 서 있었다. 응접탁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이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 여자는 범죄자의 아내이고 우리는 나라의 녹을 먹는 형사들이다. 그 여자가 우리를 도와 주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뉴스에 그런 보도가 안 나오던데……”
“잠시 후면 저녁 뉴스에 나올 거요. 죽은 여자는 카페 마담 임애숙 씨입니다.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여자입니다. 박태진 씨를 개과천선시키려고 고발했지만 그 대가는 참혹한 죽음이었습니다. 형사에게도 눈물이 있다면 마음껏 울어 주고 싶습니다.”
“평소에도 그런 식으로 수사를 하나요?”
“뭐가 말예요?”
“사람 마음을 이토록 아프게 하니, 그것도 신문의 한 방법인가요? 나 정말 마음 아파요. 한때 그 사람을 사랑했지만 지금은 미워요. 그를 사랑했던 모든 여자가 다 나 같을 걸요.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안다면 왜 안 가르쳐 주겠어요? 제 말을 믿어 주세요.”
“왜 부하들이 경찰의 접근을 막습니까?”
내가 물었다.
“경찰이 싫어서예요. 비록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지만, 술을 팔고는 있지만, 남편과는 무관해요. 죄인 취급 받는 게 싫어서예요. 임애숙, 나도 만난 적이 있어요. 그 애가 남편을 고발한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죽었다니 안 됐군요. 정말 안 됐어요.”
여사장은 머리를 싸쥐고 고민하는 척했다. 그 제스처가 쇼가 아니었기를 바란다.
“그이의 고향에 가 보시는 게 어떨까요? 그이는 가끔 고향을 들먹였어요. 죽으면 고향에 묻히고 싶다고, 고향의 흙이 자기를 받아 준다면 기왕에 태어났던 그 흙으로 돌아가고 싶다나요. 그런 면도 그에겐 있었지요. 그이 고향 주소를 가르쳐 드릴게요. 전라남도 완도예요. 완도 부두에 가면 찾을 수 있을지 몰라요.”
“고맙습니다.”
“실례했수다.”
홍나리와 나는 나이트클럽에서 나와 완도로 곧장 가지 않고 또 한 곳에 들렀다. 거기에 들른 다음에 완도로 갈 계획이었다.
과장에게 전화로 노영례와 만나 대화한 사실을 보고했다. 과장은 몸조심하라고 당부했다. 그놈들은 소매치기범이면서 조직 폭력배보다 더 잔인한 놈들이니 어디 가나 꼭 권총을 휴대하라는 말이었다. 우리에게는 권총이 있어서 든든했다. 과장이 우리에게 베푼 최고의 권리이자 두려운 무기이기도 했다. 권총은. 홍나리도 나도 권총을 사용할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홍나리와 나는 용산 한강로에서 차를 세웠다. 부두목 문어입이 운영했다는 모텔 앞에 지켜 서서 혹시 문어입이 나타나지 않는가 기다렸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두목이든 부두목이든 한 명이라도 붙잡는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곳은 그 모텔이 전부였다. 문어입은 돈을 물쓰듯 하고 재산을 많이 축적하지 않았다. 모텔은 그의 애인의 집이고 문어입의 소유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그 모텔에서 드나들며 사장 남편 행세를 했던 것이다.
승용차 안에 담배 연기가 가득 차서 통풍을 하려고 차창문을 열었다. 나는 소변이 마려워서 승용차에서 나와 소변 볼 만한 곳을 찾아 보았다. 빌딩마다 현관 셔터가 내려져 있고 작은 건물엔 화장실이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나는 떨면서 골목 담벼락에다 실례를 했다. 밤바람에 뼈 속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얼른 승용차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 옆으로 가니 따뜻했다.
홍나리는 차창문을 열고 차창문 밖으로 명멸하는 네온사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운전석 앞에 놓인 껌을 꺼내어 내게 주고 자기도 씹었다. 그녀의 머리칼에서 인간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그 흔한 향수도 뿌리지 않고 세수비누로 푸덕푸덕 세수나 하는 게 고작이었다. 그녀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이 밤에는 더 예쁘게 보이고 화장하지 않는 그 얼굴이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소금냄새는 싫었다.
8
“완도에 가면 그 새끼가 있을까?”
“허탕 치는 셈치고 가 보는 거죠.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겁니다. 기도나 하십시오.”
“나는 기도할 줄 몰라. 염불은 조금 알지만. 천수경 한 번 들려 줄까?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그 다음은 뭡니까?”
“거기까지밖에 몰라. 천수경을 듣기만 하고 외우지는 않았거든.”
“수사를 요술로 풀렵니까? 염불보다는 기도가 더 좋아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하게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그 다음엔 뭐야?”
“잊어 버렸어요. 듣기만 하고 한 번도 외워 보지 않아서……”
“크리스천이 아니군. 어릴 때 교회에 다녔다면서 그것도 몰라?”
“머리가 나빠서 외우는 건 딱 질색이었거든요. 사실은 주기도문이 뭔지도 몰라요. 무슨 기도문인지.”
“내가 가르쳐 주지. 주기도문은 주님이 주신 기도로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3절에 있는 말씀이야. 예배의 마지막 때 주기도문으로 마무리를 하지.”
“인터넷에서 찾아보셨구나.”
“어쩜 그리 잘 알지?”
“기도엔 격식이 필요 없으니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합시다. 문어입이 제발 자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렵니다.”
“그 정보는 맞는 거야? 문어입이 오늘 모텔에서 누구와 만난다는 그 정보.”
“뜻하지 않게 살인 사건이 생겨서 계획이 바뀔 수도 있겠죠. 그놈들은 살인을 곤충 한 마리 죽이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놈들이니까 문어입이 태연히 계획대로 추진할 것도 같고……거, 웬만히 좀 긁어요. 나까지 가렵구만.”
“가려운 걸 어떡해? 이가 있나?”
홍나리는 허리띠를 풀고 내의 속을 까 보았다. 내가 들여다보니까 부끄러운 듯 얼른 닫아 버렸다.
“목욕을 안해서 그런가? 언제 목욕탕에 갔더라. 오늘은 때를 좀 벗기려고 했는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생겼지 뭐야.”
“선배가 천박스런 행동을 하면 내가 여자로 안 볼 줄 알아요? 나한테 혐오감을 주려고 그런단 걸 다 알아요, 안다고요.”
“정말 가려워서 그래. 전에는 날마다 목욕을 했단 말이야. 일 주일 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내 심정을 생각해 봐. 찝찝해 죽겠어.”
“내가 지킬 테니까 얼른 목욕하고 와요. 저기 목욕탕 간판이 보입니다.”
“내일 하지. 자네 혼자 두고 목욕탕에 갈 마음이 안 생겨. 언제 문어입이 나타날지도 모르는데. 문어입은 두목보다 무서운 놈이야. 뚱뚱한 체구에도 불구하고 몸놀림이 바람같이 빨라. 그러니까 소매치기로 호의호식했지.”
“저기 한 남자가 나옵니다.”
나는 긴장했다. 남자 손님이었다. 남자 뒤에 여자가 졸랑졸랑 따라나왔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거리로 사라졌다. 모텔에서 천국을 구경하고 귀가하는 남녀일 게다. 잠시 후에 새파란 애숭이 한 쌍이 모텔로 들어가고 남자 한 명이 바삐 안으로 들어갔다. 목이 없는 고릴라 같았다. 홍나리와 나는 그 남자의 뒤통수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문어입과 인상착의가 똑같았다.
“안으로 들어갈까요?”
“기다려 보자.”
“잠시 후면 피 비린내 나는 혈투가 벌어지겠구나. 이 아름다운 밤에……”
9
그 남자는 틀림없이 문어입이었다. 문어입은 왼쪽 다리를 약간 절룩거린다고 했는데 그것도 일치했다. 더 이상 의심하고 자실 시간이 없었다. 홍나리와 나는 승용차에서 나와 모텔로 들어갔다. 모텔은 칠층 건물로 구조가 복잡했다. 일층은 복도가 디귿자로 돼 있고 이층은 비읍자로 되어 있었다. 층마다 복도 구조가 달랐다.
이층 안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홍나리는 이층 계단에서 지키고 나는 삼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에서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여자의 신음소리가 나는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여자가 쎄게 눌러 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 방 앞을 지나갔다.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타지 않고 비상 계단으로 달려 올라갔다. 칠층이 마지막이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다. 옥상 도어가 열려서 바람에 삐그닥거렸다. 복도 창 밖으로 한강의 불빛들이 보였다. 다른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한강의 한쪽만 보이고 철교는 보이지 않았다. 기차 지나가는 굉음이 널컹덜컹 들렸다.
나는 홍나리 형사가 걱정되어 얼른 이층으로 내려갔다. 홍나리는 계단 옆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서 있었다. 나는 홍나리 옆에 바짝 붙어 서서 겨드랑이에 손을 집어넣고 간지럼을 태웠다. 긴장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홍나리의 표정은 차게 굳어 있었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왔다. 남자였다. 남자는 계단을 내려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멈칫거렸다. 그러더니 화다닥 계단 위로 달아났다. 문어입이었다.
문어입은 심해의 문어처럼 날쎄게 옥상 계단으로 도망쳤다. 그 동작이 어찌나 민첩한지 발 빠른 홍나리와 나도 따를 수 없었다. 옥상으로 올라가니 문어입이 보이지 않았다. 숨을 만한 곳이 없었다. 난간 밑을 내려다보니 옆의 오층 건물 옥상으로 달려가는 문어입의 공 같은 모습이 네온사인 불빛 속으로 보였다.
오층 건물은 보통 사람이 뛰어내릴 수 없는 높이였다. 홍나리는 권총으로 문어입을 겨냥했다. 내가 놀라서 말릴 틈도 없이 “탕!” 총성이 울렸다. 연이어 “탕! 탕!” 발사된 총성에 두개골이 흔들거렸다. 심야의 총성은 어둠을 뚫고 허공으로 울려퍼졌다. 문어입의 몸이 비틀거렸다. 다음 순간 문어입은 힘없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피 흘리는 다리를 끌고 도망치려 버리적거리는 동작이 네온사인 아래 환히 조명되었다.
홍나리와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옆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보았다. 문어입은 다리에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다. 문어입은 우리를 보고 헤헤 웃었다. 홍 형사가 권총을 겨누자 “씹할년!”하고 이를 갈았다. 나는 쏘지 마라고 홍 형사를 말렸다. 홍 형사는 내 말에 권총을 거두었다. 그녀는 문어입을 죽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문어입은 그 상처로 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과장에게 전화했다.
“잘했다! 그 새끼는 죽여도 좋아. 두목을 잡지 못해 조금 섭섭하다만, 자네들은 유능한 형사니까 곧 잡겠지. 뒷일은 걱정 말고 빨리 박태진을 잡도록! 박태진을 잡으면 표창을 상신해 주마.”
과장은 좋아서 환호성을 질렀다. 경찰차가 달려오고 거리의 차들이 멈춰 서서 문어입이 병원으로 호송되는 걸 구경했다. 병원차에 실려가는 환자가 한 동안 매스컴을 떠들썩하게 했던 문어입이란 걸 알고 시민들은 시원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그 나쁜 놈을 잡은 형사가 누구야. 저기 저 단발머리 여자 형사래. 아니 그 옆에 삐쩍 마른 애숭이 형사래. 뭐 둘이 합세해서 잡았겠지.
홍 형사와 나는 의기양양하게 승용차로 걸어갔다. 경찰서에 가서 보고서를 쓸 일이 남아 있었다. 범인을 다치게 했으니 그 경위를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박태진을 붙잡는 일이 더 시급했다.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사건이 터지고 천인공노할 살인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묻힐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사건의 홍수 속에 갇혀 산다. 멈춰 있는 동안 홍수가 우리를 삼킬 것이다.
10
홍 형사와 나는 지체하지 않고 완도로 승용차를 몰았다. 박태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노영례의 말을 믿고 막연히 완도로 달린다. 살인자는 불안해서 사건이 난 장소로부터 멀리 도망치려 한다. 사건이 난 시간은 점심 직후였다. 박태진이 서울을 빠져나가 마지막 은신처인 고향으로 도망쳤다면 이미 도착해 있을 시간이다.
그 살인범은 고향에서 두 발 뻗고 잘 것이다. 물론 금의환향이 아니니까 쥐새끼처럼 몰래 고향 집에 잠입했겠지. 가족들이 박태진을 숨기고 형사들에게 시치미 떼는 것도 계산해 둬야 한다. 그런 것까지 다 계산하고 피 마르는 숨바꼭질을 해야 한다. 박태진 같은 악당은 절대 빈 몸으로 다니지 않는다. 권총을 지참했을지도 모르니 조심해야 한다.
완도까지 거리가 멀어서 한 시간 반씩 교대로 운전했다. 피로가 엄습해 오며 졸음이 눈두덩을 자꾸 내려덮었다. 눈을 떠 보면 옆에서 운전하고 있는 홍나리가 있었다. 미안해서 내가 운전하겠다고 하면 교대할 시간이 안 됐다며 더 자라고 내 등을 다둑거렸다. 홍나리는 인정도 있었다.
도중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우동을 사 먹었다. 한밤에 낯선 곳에서 사 먹는 우동은 꿀맛이었다. 우리가 탄 승용차는 어둠 속을 가르고 네 시간 동안 달렸다. 반대편 도로 위로 차들이 끊임없이 지나가서 심심하진 않았다. 긴 터널을 지나니 전라남도란 표지판이 보였다. 장성이었다. 홍나리는 장성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중학교는 부산에서 다녔고 고교는 대전에서 다녔다.
고교가 학력의 전부였다. 부친이 사업에 실패해서 전국 팔도에서 안 살아 본 곳 없이 방랑생활 같은 소년기 시절을 보냈다고 하소연하는 홍나리. 그녀가 과거를 진지하게 내게 고백한 것은 처음이었다.
“왜 우리가 이렇게 바쁘게 서둘지?”
“그걸 몰라서 물으십니까? 빨리 승진하려고 그러죠.”
“누가? 내가?”
“예, 선배님이요.”
홍나리는 픽 웃었다. 웃을 때 입냄새가 나지 않고 옷에서 소금내가 풍겼다. 홍나리의 냄새였다.
그녀는 가려운 곳을 득득 긁었다. 바빠서 옷을 자주 세탁해 입지 못하니 옷에서 소금내가 풍긴다.
그녀는 날 샐 때까지 어디서 좀 쉬어 가자고 했다. 잠시라도 운전을 중단하고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그녀도 나도 심신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끔찍한 살인 현장을 보았고, 박태진의 본처 노영례를 만나려고 오랫동안 기다렸고, 그녀의 부하들과 입씨름. 몸싸움. 모텔 앞에서 문어입을 기다리고 그를 체포하기까지의 과정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스쳐갔다. 지금도 쉬지 않고 어둠 속을 달리는 두 형사. 우리에게 휴식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죄에 휴식이 없듯이 형사는 자나깨나 범인을 추적해서 붙잡아야 한다.
승용차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한적한 산길을 달렸다. 숲 사이로 계곡이 보였다. 홍나리는 승용차에서 내려 계곡 물로 목을 축였다. 계곡물은 얼음처럼 찼다. 군데군데 얼음판이 보였다. 새벽 네 시였다. 멀리서 닭 우는 소리가 꼬끼요 꼬끼요 들렸다. 홍나리가 내 얼굴로 물을 뿌렸다. 나도 물로 응수했다. 그녀는 장난할 때도 웃지 않아서 자칫하면 싸움으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
그녀와 나는 승용차로 들어와서 넓은 뒷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어둠 속에서 잠복 근무를 하면서도 그녀와 나는 항상 일정 거리를 유지했었다. 오늘 밤은 피곤해서 그런지 거리 개념이 사라졌다. 어둠 속에서 본 홍나리는 형사가 아닌 숙녀였다. 새근새근 숨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고개를 한쪽으로 돌리고 잠들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그녀의 사타구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직업 의식이 사라지고 비로소 평범한 남자와 여자로 돌아왔다. 나는 벼르고 벼렀던 그 일을 감행하려고 그녀의 바지 자크를 내렸다. 바지 자크가 열리고 하얀 팬티가 드러났다. 허리띠를 끌렀다. 그 순간 그녀의 입에서 야무진 질책이 터져 나왔다.
“더러운 손 치워라 잉.”
나는 도둑질하다 들킨 개처럼 깨갱하고 손을 움츠렸다. 나는 시치미를 떼고 담배를 피웠다. 그녀가 무슨 짓을 했냐고 따지면 꿈 꿨냐고 되물을 참이었다. 이 산 속엔 그녀와 나 두 사람밖에 없었다. 따라서 거짓말을 잘하는 쪽이 이길 수도 있다.
홍나리는 손을 뻗어 내 입에 문 담배를 빼앗았다. 담배를 재떨이에 부벼 끄고 나를 향해 돌아누웠다. 그때처럼 그녀가 아름다워 보인 적이 없었다. 까만 눈이 별처럼 어둠 속에서 반짝거렸다. 그녀는 안경을 벗으면 더 순해 보였다.
그 눈은 아직까지 내가 본 적이 없는, 순하고 사랑스런 눈이었다. 가슴이 떨려 왔다. 그 여자를 송두리째 안고 싶은 마음. 욕망이 부르릉부르릉 엔진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면서도 내 육신과 영혼은 궤도를 벗어나 우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거기가 블랙홀이든 은하계 밖이건 그 여자와 함께라면 치닫고 싶었다. 마구 소리치며 흩어지고 싶었다.
“그렇게 날 깨뜨리고 싶냐?”
“정말 미치겠습니다.”
“박태진을 잡을 때까지 참아. 그후엔 네 맘대로 해.”
“알겠습니다.”
나는 그녀의 명령에 따랐다. 희망은 박태진이었다.
오늘 계획을 상의했다. 먼저 완도읍으로 가서 박태진의 집을 찾아야 한다. 노영례가 적어 준 주소를 가지고 박태진의 형을 만나 찾아온 용건을 말하고 협조를 구한다.
박태진의 가족은 그 형을 말한다. 고향엔 형의 가족과 친척들이 살고 있다. 박태진이 버젓이 낯을 들고 고향 집에 찾아가 활보하리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숨어 있을 것이다. 과연 그가 고향에 내려와 있을지, 고향에 왔으면 그의 형 집에 숨어 있을지 다른 친척 집에 숨어 있을지도 모른 채 박태진이 있는 걸 전제로 하고 계획을 짰다.
“완도엔 며칠 간 묵을 생각이죠?”
“박태진이 붙잡힐 때까지? 아니면 박태진이 완도에 없다고 믿을 때까지겠지.”
“그자가 만일 다른 곳으로 샜다면?”
“박태진이 갈 곳은 고향밖에는 없어. 서울에 있으면 붙잡힌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는 이미 서울을 떠났어. 시골이 안전하지.”
“그놈은 난놈이라 가까운 인천이나 멀찍이 부산에 둥지를 틀 수도 있죠.”
“박태진 같은 거물은 소매치기를 하고 싶어서 타관에서 살지도 못해. 타관에선 다른 소매치기범들이 텃세를 하니까. 고향에 내려가서 때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 거야. 부두목이 붙잡힌 줄도 모르고 또 한 탕 하자고 접선을 시도하겠지. 소매치기범은 좀이 쑤셔서 고향에도 오래 있지 못할 거야. 오늘과 내일이 가장 중요한 날이지.”
홍나리의 말을 들으니 잠이 스르르 왔다. 잠에서 깨어 보니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차창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승용차는 도로에서 떨어진 숲 속에 주차되어 있었다. 홍나리는 내 옆에서 천진하게 자고 있었다.
11
홍나리와 나는 완도읍으로 들어와서 노영례가 가르쳐 준 주소를 가지고 박태진의 집을 찾았다. 고깃배 선창에서 멀지 않은 언덕바지에 있는 옛날 한옥이었다. 대문도 없었다. 실례합니다 하고 소리쳐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안에서 똑딱똑딱 도마질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 안에서 아낙이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아낙은 귀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부엌 문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야 아낙은 방문객이 온 것을 의식했다.
“서울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박태진 씨 여기 왔습니까?”
“어버버, 어바바 바바!”
“뭐라고 하는 거야?”
홍나리는 나에게 물었다.
“벙어리인가 봅니다.”
“어바어바 으으으!”
아낙은 내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자기가 벙어리란 걸 알리려고 했다. 아낙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박태진이 어디 있냐고 물어도 모른다고 고개를 흔들 뿐 하던 일만 계속했다. 아낙은 우리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예견했던 대로였다. 자기 살붙이를 체포하려고 찾아온 형사에게 순순히 은신처를 가르쳐 주겠는가.
아낙의 양해를 얻어 집 안을 수색했다. 방문도 열어 보고 창고와 변소도 들여다보고 마루 밑도 살펴보았다.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박태진은 고향 집에 오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이상한 점이 없다는 게 이상했다. 시골 집치고는 너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신발이 너무 가지런히 놓여 있고 방에 걸려 있는 옷도 손댄 흔적이 보인다. 경찰이 찾아올 줄 알고 미리 치운 흔적.
홍나리와 나는 박태진이 있다는 흔적 하나라도 찾으려고 시간을 끌며 그 집에서 떠나지 않았다. 아낙은 태연한 척하면서도 형사들에게 신경 쓰고 있었다. 밖에서 남편이 바튼기침을 하면서 들어왔다. 박태진의 형은 털털한 어부 차림이었다. 형은 우리를 보자 안색이 달라졌다. 형은 형사들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그는 체격이 작고 동생 박태진과 얼굴이 딴판이었다.
“아침 일찍 어디에 다녀오시죠?”
“고깃배에 가서 어구 좀 손질하고 왔어라우. 밥 묵고 출어할 것인깨 사전 준비를 해야제라우.”
“그 고깃배 좀 볼 수 있습니까?”
내 말에 형은 머뭇거렸다. 박태진의 형은 소박하고 건실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의 눈이 무엇인가를 숨기고 있었다. 홍나리도 그 낌새를 챈 듯하다. 아낙이 밥상을 차려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밥그릇이 세 개였다. 우리더러 밥을 먹으라는 뜻이었다. 배가 고팠지만 홍나리와 나는 아낙이 차려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아낙은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나오지 않았다.
형은 방에서 혼자 밥을 먹었다. 쩝쩝거리는 소리와 국 마시는 소리가 후루룩 후루룩 들렸다. 밥 먹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밖에서 기다리는 형사를 의식하고 식사를 제대로 못하는 듯하다. 범죄자의 형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홍나리와 나는 어부의 뒤를 따라 고깃배 선창으로 갔다. 날씨는 청명하고 푸근했다. 완도는 따뜻했다.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먹이를 찾아 선창가를 배회했다. 통통통통 동력선의 기관음이 낭만을 불러 일으켰다. 동력선은 파도를 일으키며 정박한 배들 사이로 빠져나가 먼 바다로 달려갔다. 고깃배들이 하나 둘 조업 항해를 떠나고 있다.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우리에겐 그 평화가 없다. 언제 이 선창이 피 비린내 나는 혈투장으로 변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아름다운 바다마저 슬픔으로 마셔야 한다. 홍나리도 표정이 밝지 않았다. 홍나리가 새침한 얼굴을 하면 내 마음도 어두워진다. 선창으로 나오면서도 누군가 뒤통수를 칠 것 같은 두려움. 나는 언제나 그녀의 뒤편에서 그녀를 보호해 주지만 내 뒤에는 어둠뿐이었다. 앞에서 달려드는 적은 막을 수 있어도 뒤는 취약지대. 나는 뒤를 흘끔거리며 홍나리의 뒤를 따라갔다.
12
“저것이 내 배요.”
어부는 다른 배들 속에 있는 십 톤짜리 큰 목선을 가리켰다. 조타실도 있고 그물 인양기도 달려 있었다. 규모가 큰 배인데 함께 일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조업을 하는데 아내가 몸이 아파서 혼자 나간다고 했다. 혼자 고기를 잡을 수 있냐고 묻자 해 봐야지요, 하고 자신 없는 대답을 하는 어부.
홍나리와 나는 배 위로 올라가서 조타실과 여기저기를 살폈다. 홍나리의 시선이 배 밑 고기 저장실(물칸)에 멎었다. 나는 몸이 으스스 떨렸다. 그 안에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 박태진이 그 안에 숨어 있다면 우리 목숨도 위태롭다. 박태진은 흉기를 소지하고 있다. 임애숙을 죽인 그 비수로 우리를 죽일지 모른다. 그가 권총을 소지하고 있다면?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홍나리가 물칸을 보여 달라고 했다. 어부는 뚜껑을 열고 빈 저장실을 보여 주었다. 저장실 안에는 바닷물만 담겨 있었다. 홍나리는 뚜벅뚜벅 걸어가서 용감하게 저장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 얼굴에 실망의 빛이 스쳐갔다.
다른 어선들이 모두 떠나고 옆에 배 두 척만 남아 있었다. 그 배들은 조업을 쉬는 배였다. 홍나리와 나는 생업에 방해될까 봐 고깃배에서 내려왔다. 홍나리는 선창가로 올라가지 않고 옆의 빈 배로 훌쩍 건너갔다. 그녀는 권총을 겨누고 빈 배의 조타실로 다가갔다. 나는 홍나리를 호위했다.
바늘 간 데 실 간다고 우리 사이엔 말이 필요 없다. 나는 홍나리의 행동에 섬찟한 전율을 느꼈다. 조타실은 비어 있었다. 홍나리는 발로 차서 저장실의 뚜껑을 열어 젖혔다. 나무 뚜껑은 공허한 소리를 내며 바닥 위로 엎어졌다.
“박태진 나와! 나오지 않으면 쏜다!”
홍나리의 고함이 바다 위로 퍼졌다. 축대에서 놀던 갈매기들이 놀라서 퍼덕거렸다. 나는 홍나리가 허공에 대고 연극을 한 줄 알았다. 그녀의 느낌은 컴퓨터처럼 정확하다. 보통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를 듣고, 미세한 움직임도 빠뜨리지 않는다. 그녀의 귀엔 파도소리 외에 다른 소리가 들렸던가 보다.
내가 혀를 내두르고 감탄하기도 전에 까만 머리 하나가 저장실 구멍으로 천천히 기어나왔다. 공포에 질린 박태진의 얼굴이 보이고, 물에 흠뻑 젖은 그의 전신이 배 위로 올라왔다. 박태진은 추워서 턱을 덜덜 떨었다. 추위와 공포에 사색이 된 그 얼굴을 보고 적개심 대신 동정심이 생겼다. 얼른 수갑을 채우고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다. 살인범도 인간이니까 따뜻하게 보호 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홍나리는 권총으로 박태진을 겨누고 있고 나는 수갑을 꺼내어 채우려고 했다. 그 순간 얼굴이 떨어져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나는 박태진에게 얻어맞고 바다 위로 떨어지려다 간신히 배 모서리에 매달렸다. 홍나리도 쓰러져 있었다. 박태진은 비호같이 선착장으로 달려갔다. 나는 권총을 꺼낼 새가 없었고, 홍나리는 일어나지 못한 채 고통에 일그러진 얼굴로 박태진을 겨누었다.
총성이 울리며 선착장으로 뛰어가던 박태진의 몸이 허공에서 춤을 추었다. “첨벙!” 소리와 함께 살인범은 바닷물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나는 배 위로 올라가서 정신을 수습했다. 쓰러진 홍나리를 일으켜 주고 박태진이 사라진 물 속으로 권총을 겨누었다. 박태진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으로 헤엄쳐 간 듯하다. 박태진은 헤엄의 명수였다. 파도에 배가 뒤뚱거렸다. 박태진이 배 밑에 숨어 있다는 신호였다.
바닷물에 붉은 피가 솟구쳐 올랐다. 나는 그곳을 향해 쏘았다. 실탄이 다 소진될 때까지 쏘았다. 잠시 후에 박태진의 검은 점퍼가 물 위에 떠올랐다. 그의 손과 발이 떠올랐다. 그는 살려고 바둥거렸다. 나는 바닷물로 뛰어들어 흐느적거리는 박태진을 배 위로 끌어올렸다. 홍나리가 도와 주었다. 홍나리의 입이 돼지 입처럼 부어 있고 피도 흘렀다. 나는 그때 그녀의 입가에 떠오르는 회심의 미소를 보았다. 승리자의 미소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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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
홍나리(33)……강력계 형사, 소매치기 살인범을 쫓는다
진수일(30)……주인공 나, 홍나리의 파트너
박태진(40)……소매치기 두목, 살인범
노영례(35)……태진의 본처
임애숙(28)……태진의 첩, 태진에게 살해됨
문어입……소매치기 부두목
과장……형사과장
카페 아가씨
태진의 형과 형수
나이트클럽 직원들
구경꾼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