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년 같으면 아직 쌀쌀한 날씨다. 그런데 올해는 이상기후인지 벌써 목련꽃이 만개하여 꽃이 흐드러지게 일찍 질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꽃이 지더라도 후속타로 봄꽃들이 릴레이로 피어나기에 꽃 잔치는 끊임없이 이어질 것이다. 꽃이 피니 봄인지 봄이오니 꽃이 피는 것인지 어쨌든 꽃과 대화를 해보니 즐거움이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올해는 매일 만나 대화를 이어가는 내 짝이 있으니 이중으로 즐겁다. 아끼고 보고 싶던 고등학교 때 짝 정재호가 대구에서 올라왔다. 딸이 초등학교 교사를 지내고 있는데 외손자가 초등학교 1학년이니 일찍 수업을 마치므로 엄마하고 같이 집으로 올 수 없으니 대구에 있는 외할아버지를 모셔와 당분간 할아버지가 손자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오후 2시 반 또는 3시 반. 그 사이 재호는 내게 전화를 한다. 용아, 시간 있나? 그래, 길가로 온나-. 같이 만나서 걷자. 우리는 만나서 학교 근방까지 걸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기 끊임없다. 벌써 2주째를 넘긴다.
재호가 말한다. “용아, 우리 딸이 너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아 너를 이렇게 만날 수 있는 것이 행운이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대박을 맞았다. 너를 만나면 선(善)이 내게 묻어오거든. 제자가 부처님께 묻는다. 선한 친구를 만나는 것이 좋겠군요.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좋은 것이 아니라 선한 친구는 전부이니라.”
오늘은 학교수업이 없는 날. 일요일이다. 우리는 불광역 플팻폼에서 10시에 만나 소요산으로 간다. 종로 3가에서 소요산 가는 전철은 벌써 사람들이 가득 찼다. 소요산까지 1시간 반 정도 걸릴 것이다. 앉을 자리는 없다. 손잡이를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하다 보니 몇 정거장을 지나고 앞에 앉은 사람이 내리고 재호가 앉고 그러자 옆에 있는 젊은이가 자리를 내준다. 괜찮다고 하니 젊은이는 곧 내린다고 자리를 양보한다.
지하철이 지나는 과정에 도봉산이 보인다. 재호는 도봉산도 가보고 싶다. 조금만 젊었어도 도봉산을 올라보는 건데… 산세가 아주 좋구먼. 바위가 병풍처럼 우뚝 솟았네. 재호는 등산마니아인데 도봉산을 못 가보았다고 아쉬움을 나타낸다. 그럼 올 때 도봉산역에 내려 산을 보면서 점심을 먹고 가자. 날이 더워 산의 아래쪽에는 벌써 진달래가 피어 붉게 물들어 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붉은 꽃을 보니 가슴이 울렁거린다. 우리에게도 저런 불꽃이 남아 있을까.
소요산역은 종점이다. 좌판커피기계에서 커피를 뽑아 한 잔씩 마시고 어슬렁어슬렁 등산객들 사이에 끼어 길 따라 소요산으로 갔다. 날씨가 덥지만 지리적 차이로 개나리는 만발하여 내 몸이 온통 노랗게 물든 것 같다. 아직 진달래꽃은 보이지 않는다. 봄 가뭄 탓인지 개울물은 많지 않아 개울바닥 바위들이 몸을 들어냈다. 여름에 장마가 지면 개울물이 제법 장관을 이룰 것 같다.
우리는 오늘 등산 목적이 아닌 그저 산을 소요(逍遙)하자고 했으니 천천히 걸으면서 이야기기 끊임없다. 우리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짝이었는데, 노인이 되었어도 짝이 되어 둘은 청소년이다.
올 때는 도봉산역에 내려 도봉산을 바라보는 음식점에서 고등어구이를 시켜 산을 보며 식사를 했다. 또 가볼 곳이 있지.
떡볶이 먹으러 가자. 와, 케리 미국무부장관이 먹었다는 그 떡볶이 집 있잖아. 재호는 마냥 소년 같다. 우리는 경복궁역에서 내려 통인시장으로 갔다. 통인시장 첫 골목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곳이 보였다. 떡볶이집이 두 곳인데 두 곳 모두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 곳이 기름 떡볶이 원조 집인데 이 집이 케리 국무장관이 오는 날 점포 문을 닫아 한 칸 지나 있는 집으로 가서 먹었다고 한다. 이 집 유리창에 미 국무장관이 떡볶이를 먹는 사진이 나 붙었다. 이 집은 원조 집이 문을 닫았기에 케리 장관은 이 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다는 속담이 있지만 선한 사람 옆에 있으면 행운을 맞는다. 살면서 선한 사람을 옆에 두고 살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케리 국무장관이 먹었다는 점포에서 줄을 섰다. 떡볶이를 한 쟁반 시켜놓고 먹으면서 재호가 세 쟁반을 더 주문한다. 집에 가져갈 것이니 포장해서 한 봉지는 나에게 주면서 너희 집으로 가져가고 두 개는 손자들에게 주겠다고 했다.
지난주에는 학생 때 친했던 용욱이와 연락이 닿았다. 용욱이는 반가워하면서 재호가 시간상 편리한 장소인 연신내에서 만났다. 그러면서 또 한 번 더 만나야지 하면서 토요일에는 삼청동 수제비 집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단팥죽 집으로 해서 북촌 꿀떡을 먹고 인사동에서 차를 마시고 우리 셋은 고등학교시절로 돌아가서 까르륵 소리내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