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사와 설성이 있는 설성산의 반대쪽인 북쪽 산줄기 기슭에 위치한 연화정사는 설성면과 장호원읍과의 경제 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이천시 관내의 남쪽에 위치한 설성면은 본래 충청북도 음죽군 원북면이었다. 일제시대 초기인 1914년에 이천군에 편입되면서 설성산과 노성산에서 이름을 따 설성면이라 하였다. 연화정사는 원래 음주사의 자리였다. 연화정사는 석불입상만 서 있는 옛 음주사 자리에 1982년 3월부터 그해 11월까지 8개월간공사를 하여 같은 해 11월 14일 법당낙성식을 하였다. 연화정사 이전 절의 역사는 음주사를 통해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럴러면 현재 연화정사 대웅전 옆에 보존되어 있는 석불입상과 관련하여 고찰해 보아야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석불입상은 1018년(현종9) 중앙에서 준지방관인 감무를 두어 아문을 설치하면서 시장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에서 현재의 위치에 석불입상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즉 설성면 자석리는 고려 때 음죽현 관아가 있던 곳이었다. 그런데 《고려사》지리지를 보면 음죽현에 감무를 파견하는 것은 1018년 이후의 일이다. 《고려사》에 의하면 감무의 파견은 빨라야 고려 예종대(1105 - 1122)이후의 시기이다. 따라서 석불입상의 조성 연대도 예종 이후가 되면 연화정사의 전신이라 할 음주사의 창건도 이 무렵의 일이다.
고려 예종때(1105 - 1122)에 창건된 음주사의 역사는 그 후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단지 절터만 남아 있던 곳에 1967년 대웅전을 세우고 산신각·요사채를 건립하여 연화정사라 하였다. 그러나 수년 후 산사태가 일어나 미륵불만 남고 모두 파손된 상태로 있었는데 1982년 원봉스님이 대웅전과 요사를 지어 절을 중건하였다.
연화사 전경
연화정사 수정각
보수중인 대웅전
이천 자석리 석불입상
이천 문화제자료 제41호
석불이 있는 이곳은 예로부터 미륵당이라고 전하는데 높은 석축을 쌓고 그 중앙에 석불을 모시고 있다. 전체 2매의 석재로 이루어져 있고 머리에는 둥근 갓이 얹혀 있다.
얼굴은 긴 타원형으로 이마의 중앙에는 이 세상에 비추는 광명을 상징하는 백호가 표현되어 있으며 두 귀는 비교적 짧고 목에는 번뇌 업 고난을 상징하는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 크기에 비해 눈 코 입 귀등 각 부분이 작게 표현되어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잃고 있다. 법의는 두 어깨를 모두 덮은 통견으로 희미한 옷주름이 아래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두 손과 함께 마멸이 심해 정확한 것을 알 수는 없다. 뒷면은 아무런 조각 없이 편평하게 처리되었다. 이목구비와 짧은 목, 몸체에 비해 좁은 어깨, 간략화된 옷주름 등에서 고려 후반의 불상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연화정사 산신각
산신각내 산신상과 산신탱화
연화정사 요사채
대웅전 불사중이라 임시로 보관되어 모셔진 부처님
연화정사 범종루
연화정사에서 바라다본 전경
연화정사 입구에 있는 돌탑
돌로만든 첨성대
연화정사 찾아가는 길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이천IC에서 내려온다. 이곳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장호원 방면을 향한다. 가남을 지나 4㎞ 정도를 더 가다 보면 왼편으로 운봉주유소를 만나게 되고 이곳을 지나면 우회전하는 길이 나온다. 자석리와 연화정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서있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계속 직진하면 왼편으로 자석1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그에 약간 못미친 곳에는 자석리석불입상과 연화정사를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에 따라 마을회관 옆으로 난 길로 좌회전하여 들어서면 마을로 들어가게 된다. 마을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산속으로 난 비포장도로를 계속 따라 올라가면 연화정사에 도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