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8.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은 속제가 아니고 진제의 방식이다.
보리살타, 즉 보살이 부처님이 되는.......성불하는 목적은
온 우주의 일체 그 모든 중생들을 단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제도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보살이 그 모든 걸 다 아는 일체지의 부처님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야바라밀을 닦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보살은 반드시 반야라바밀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반야바라밀을 닦는 방법에 대해
대지도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아래의 내용은 대반야바라밀다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보살이 만일 색(色)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이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 대지도론/용수보살(나가르주나) 지음/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동국역경원
오온, 즉 색수상행식을 관하고 행하는 방법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속제의 방식과 진제의 방식....
속제의 방식은
색수상행식을 무상(無常)/고/무아로 관찰하는 익히는 방법이고,
진제의 방식은
색수상행식을 공/무상(無相)/무원으로 관찰하고 익히는 방법입니다.
보살이 만일 색(色)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이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위 말씀을 요약하면,
보살은 색수상행식을 무상하다거나 항상하다고 관찰하고 닦는다면,
그것은 반야바라밀다를 수행하는게 아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위는 속제의 방식을 말씀하신 것인데,
속제라는 것은 결국 진실하고 절대적인 진리 즉 진제가 아니기에
속제를 아무리 익힌다 한들 속제 그 자체만으로는 결코 해탈할 수가 없기에,
색수상행식을 진제 방식인 공[空]으로 관찰하고 공[空]을 익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반야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은 곧 공[空]을 익히는 것 입니다.
그래서 속제인 무상/고/무아를 익힌다면 그것은 잘못된 겁니다.
무상/고/무아는 대치실단/대치법입니다.
항상/락/유아를 없애기 위한 대치로써 필요한 것 입니다.
공 그 자체에는
항상함도 없고 무상함도 없으며, 고도 없고 락도 없고,
무아인 유아니 이렇게 따져볼만한 것 자체가 없습니다.
하지만, 반야부 경전들을 보면...
갖 보리심을 낸 초보 보살인 경우는 속제인 무상/고/무아를 익혀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만약 이런 처음 발심한 초보 보살에게 공[空]의 깊은 도리를 이야기 한다면,
그 보살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오히려 마음을 접어버린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또 단번에 진제로 건너 뛸 수 없기에,
먼저 속제를 익혀가다가 진제를 깨달아 진제로 건나와야 합니다.
보살이 만일 색(色)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은 항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색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이는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며,
수상행식은 무상하다고 관찰해 행한다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이 아니다.
보리살타, 즉 보살이 닦는 반야바라밀다는 가장 진실한 것 입니다.
모든 법의 있는 그대로의 실상이지요. 그게 바로 공입니다.
그래서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다함은 공[空]을 익히는 것입니다.
공[空]을 익힌다라는 뜻은 뭘까요?
공 그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음>을 익힌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 다음과 같은 명구가 나옵니다.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 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에서 무지 역무득까지.."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색수상행식도 없고, 안이비설신의도 없고,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18계도 없고, 12연기도 없고, 사성제도 없고, 지혜도 없다는 얘기인데,
이것들 이외에도 공 그 자체에는 그 무엇도 없다는 걸 의미합니다.
공 그 자체에 뭐가 있다면, 그건 결코 공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반야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은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닦는 것과 같다...........라는 말씀이 반야경에 많이 나옵니다.
이것은 <단멸론>이 아닙니다.
진제의 측면일 뿐입니다. 본래무일물.....
대지도론 8.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은 속제가 아니고 진제의 방식이다.
[출처] 대지도론 8.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은 속제가 아니고 진제의 방식이다.|작성자 마하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