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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은 까마득한 옛 시절로 돌아가야만 한다. 일천오백년 전, 호남과 충청이 하나가 되었던 백제의 번성기에 시작된 역사는 오늘까지 면면히 이어저 행인의 발길을 재촉하고, 길가에 흐르는 계곡물 소리 조차 중후해 보이게 한다.
초입에서 만난 까치집을 아슴프레 바라보는 행인의 눈가에는 선운사 가는 길이 마치 저 아스라히 떠 있는 까치집 만큼이나 굳세어 보인다. 아득하고 깊어 보인다. 겨울이 지나는 소리를 듣고 찾아간 2월 8일 선운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역사가 깊으면 전하는 이야기가 많은 법, 수 많은 보물과 유형 무형의 문화재들이 가득하고 유서깊은 사적기가 전해온다. 그리고 그러한 인간의 흔적 못지않게 나무들의 생애가 빛나고 있어 행인의 발길을 머물게 한다.
송악은 이곳이 육지의 북한계선이라는데, 그 경계선임을 웅변이라도 하듯 이토록 장엄하게 암벽을 타고오른다. 줄기에서 공기뿌리를 뻗어 암벽에 달라붙는 덩굴성 식물인데, 미국의 아이비처럼 상록이어서 일까. 영어로는 코리안 아이비라고 부른다는 해설이 이채롭다.
높은 곳에 있어서 가까이 갈 수 없었던 송악을 우연히 만났다. 사천왕문 앞 팽나무를 타고 오르던 녀석인데, 열매를 참으로 많이도 매달고 있다.
그런데 이친구는 4월이 되어야 여무는 낯선 친구다. 다른 녀석들이 봄에 꽃을 피우고 가을에 결실을 거두는 것과 달리 10월에 꽃을 피우고 겨울을 이겨낸 녀석만 여물어 씨앗을 만들 수 있다.
왜 그랬을까.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기어이 가야만하는 데는 사연이 깊을 것 같다. 언젠가 그 속내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음 좋겠다.
조금 다른 잎이지만 이 친구도 송악의 잎이다. 세월을 살면서 이렇게 왼쪽과 오른쪽에 대칭으로 골짜기를 만들어 간다.
이런 줄기 보셨죠? 저 날카로운 가시, 겨울에도 멈출줄 모르는 정열의 붉은 줄기는 여름이 지나는 계절이 되면 맛있는 산딸기를 만든답니다. 복분자 딸기 말입니다. 그 달콤한 맛으로 술도 빚고요, 요구르트와 섞어서 갈아먹으면 건강식으로 으뜸이지요. 이곳 고창군 지역에는 마을 어귀 어디서든 이 친구를 만날 수 있지요.
저 멀리 산 속에서 흰 빛이 반짝반짝 하길래 무슨 빛인가 궁금했지요. 그런데 몇 걸음 더 갔더니, 아니! 바로 앞에서 그 답을 줍디다그려. 선운사의 대표 수종 동백, 그 동백나무는 가로수로도 가득한데 잎이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잖아요. 석양을 받아서일까. 저토록 반짝이네요.
삼나무에요. 남도지방의 대표수종이지요. 쭈욱, 쭈욱, 뻗어나간 자태가 힘 꽤나 쓰게 생겼지요?
이런 잎 보셨나요? 바로 삼나무 그 특별한 잎이지요. 바닥에 떨어진 잎이에요. 원래 삼나무는 상록인데, 늘푸를 수는 없잖아요. 바닥에 떨어지면 말이에요.
흐흐 내가 참 바보같은 말을 했네요.
오늘의 말괄량이들! 두 시간 동안 신나게 뛰어 놀았어요. 놀다보니 이런 놀이터도 있네요. 고사목이냐구요? 아니에요. 팽나무인데, 우리동네 나이먹은 정자나무처럼 생겼지요. 팽나무도 나이먹으면 이런일들을 만나는데 그래도 넉끈히 살아내지요. 꼬마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같이 즐겁답니다.
녹차 좋아하시죠? 마트 진열대에서도 인기가 높지요. 차나무의 잎은 겨울에도 이렇게 푸르네요. 사전에 보니 어린 차나무 잎을 따서 말린 것이 녹차이고 녹차잎을 발효한 것이 홍차라고 써 있네요.
선운사 앞에는 꽤 넓은 녹차밭이 있어요. 불가에서는 차맛을 음미하길 즐겨한다지요. 이 잎을 씹어 보았어요. 처음엔 맛을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오래 씹었더니, 아! 쌉싸름하고 톡 쏘는 것이 녹차 티백 한 이십개를 찻잔에 넣고 우려내면 그럴려나... 무슨 약용 식물 같네요.
깊은 맛이 나시나요? 동백나무 숲이에요. 우리나라 최고의 동백나무 자생 군락지 같나요? 힘있어 보이고 듬직해 보이네요. 천연기념물이라서 관계자외 출입금지랍니다. 튼튼한 펜스로 진입을 막고 있지요.
밖에서 보니 이런 풍경입니다. 저기 저 드문드문 붉은 빛이 보이지요? 동백꽃이 막 시작되었답니다. 아직은 쌀쌀한 날씨이지만 아랑곳하지 않지요.
이렇게 말이에요. 아직은 수줍을 뿐이지만 추위를 이겨내면서 이렇게 불쑥 일어서고 있어요.
이렇게 노오란 속내도 드러내기 시작했어요. 아마 활짝 피워내기까지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겠지요. 그런데 이렇게 일찍 꽃을 피우면 꽃가루는 누가 옮겨주지요? 벌 한 마리 없고 바람도 그다지 흔치않은 이 계절에 말이에요.
저에요. 노랗게 예쁜 깃털을 자랑하는 동박새지요. 동백꽃에게는 없어서는 안되는 최고의 친구지요.
동백꽃이 피면 동박새는 바빠집니다. 그래서 항상 동백나무 근처에서 머무는 새랍니다.
이 사진요? 동박새가 보고파서 멀리서 잠시 빌려왔어요.
동백꽃은 추운 계절에 외롭고 강인하게 피워내는 모습 때문에 시인들이 무척이나 사랑해 왔답니다.
이 시 한 번 읽어보세요. 김용택 시인이 노래한 '선운사 동백꽃'입니다.
여자에게 버림받고 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 맨발로 건너며 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 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 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 다시는 물지 말자 눈물을 감추다가 동백꽃 붉게 터지는 선운사 뒤안에 가서 엉엉 울었다
선운사, 하면 어떤 이는 동백꽃 보다 꽃무릇을 이야기해요. 맥문동처럼 생긴 친구인데 이 계절에도 얼마나 싱싱한지 몰라요. 그런데 저 친구는 여름이 오기 전에 사라진대요. 그 후 저 자리에는 길다란 꽃대 위에 빨간색 꽃이 핀답니다. 매우 정열적으로 말이지요. 그러니까 저 친구의 꽃과 잎은 함께 하늘을 바라보지 못한답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부르지요. 상.사.화.
오늘 출연진이에요. 또 하나의 작은 역사를 만들었지요. 아득한 곳으로의 여행은 사람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기에 부족함이 전혀 없답니다.
어! 그런데... 여기는 무슨 풍경이죠? 애덜에게 시켰냐구요? 아니에요. 천만에 말씀요. 송악, 동백꽃, 꽃무릇... 선운사만이 던져주는 매력입니다. 아픔, 고통, 인고, 희열... 하여튼 이곳은 뭔가 있는 곳 같아요. 어린 아이에서 어른까지 정성스런 순간에 머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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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안가봤을때 써 놓은 글을 읽는 것과는 정말 느낌이 다르네요. ^^ 아이들이나 어른이나 직접적인 구체적 경험이 이래서 중요한 것인지... 대장님의 잔잔한 통솔(?)아래 너무나 여유로운 우리들... 하늘과 바람과 선운사와 그곳에서 만난 모든 것들. 다 기억할 수는 없어도 송악의 여운은 오래갈 듯 합니다. 잠깐씩 팁을 주시는 대장님.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동박새(?) 이야기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였구요. 그러나 그 모든 새로움 가운데에도 제 눈은 마지막 사진에 제일 오래도록 머물렀습니다. 다섯놈이 얼마나 해맑은 모습으로 어울리던지 오늘의 나들이가 참 감사하더군요.
고맙습니다. 제게 영광의 감투를 주셨네요. 어떻게 아셨죠? 제가 권력욕이 많은 걸 말이에요. 덥석 물어버릴까. 아구구.. 생각해 봐야겠어요. 아님 엄마에게 물어볼게요. 아! 그건 그렇구요, 느낌님은 이 글 다 못 읽으셨어요. 제가 잠시 쉬었다가 나머지 올렸는데요, 그 잠시 쉰 틈에 보셨으니 이걸 어쩌죠..**$$^^
그러게요. 남은 흔적이 더 있었네요. ㅎㅎㅎ 2부가 있어서 다시 들린 맛이 부럼으로 땅콩 깨어 먹던 고소한 맛이 나에요. '동박새'를 본 기쁨까지. 매일 들려 '선운사'의 느낌을 길게 가져보려합니다. 출연진이 참 情스럽네요.
귀한 모습들 보여주시는 황샘...감사해요^*^ 멋진 여행기 잘봤구여~ 아이들 노는 모습에 절로 신이 납니다.
아! 대천으로 돌아오셨나보군요. 수술하신 발은 모두 나으셨는지요? 어서 '건장'해져서 숲산책 같이 떠나요..
아직 이천에 있어요 .부모님은 세째오라비가 모시고 있구여...아직 외출도 못하고 집안에서 있는데 집안일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조만간 대천가면 찾아뵐께요.
아니, 저런! 예상보다 길어지는군요. 암튼 건강관리에 중요한 시점 같네요. 맘편하게 잘 지내시다가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