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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그리워도
허여사는 오늘도 조반을 자시고 나서는 손자 둘의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하였다.
두어 마장거리에 있는 학교지만 매일같이 무거운 가방을 들고 손자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 지 벌써 4년째다.
그때 1학년에 입학한 손자가 4학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형제가 학교를 함께 다녀도 되련마는 ‘매일같이 아이들을 학교에 좀 데려다 주시면 좋겠다. 는 며느리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어 그렁저렁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긴 하지만 허여사는 이제는 다리도 아프고 허리도 아파서 책가방을 든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어서 한번은 며느리에게 말을 하였던 것이다.
“ 어멈아. 나 이제는 아이들 데리고 다니지 못하겠으니 어떻가면 좋으냐.”
그러자 며느리는 들은 척도 하지를 않고는 그대로 출근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시어미가 무어라고 말 하겠는가.
허여사가 이곳 아파트에 사는 둘째 아들네 집으로 온 것은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그때 허여사는 밭과 다락 논을 합해서 2천 평이 넘는 농사를 짓고 있었다.
농촌이라는 곳이 일 년 3백65일 어느 한날 바쁘지 않은 날이 없지만 그중에서도 가을이 되면 김장밭에 배추와 무씨 뿌리고 조밭과 벼가 익는 논에는 허수아비를 해 세워 새들이 익어가는 곡식을 따먹지 않도록 조치를 해야 하고 고추도 따서 지붕에다 말려야 가을김장을 제때에 할 수가 있었다.
이처럼 바쁜 동안에 벼가 누렇게 익어가기 시작을 하면 동네에서는 한꺼번에 벼 타작을 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서로 날짜를 의논해 받고 돌아가면서 품앗이로 타작을 하는 것이다.
좁은 면소재지의 리별 작은 마을 바닥이 되다 보니 일꾼도 제때에 얻어야 하지만 날씨가 궂게 되면 날을 받았다가도 물려야 하므로 허여사는 해마다 누구보다도 일찍 타작 날을 받았던 것이다.
타작 날이 되면 새벽녘에 일어나서는 그날의 반찬감과 국거리를 내놓고 일을 거들려고 오는 여자들에게 밥이며 반찬들을 만들게 하였다.
타작꾼들이 오면 식전부터 빈속에 일을 시킬 수가 없어서 감주를 담갔다가 한 사발씩 들여 안긴다.
“ 해마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먼저 시작을 하는 타작이니 잘들 부탁합니다.”
허여사가 일꾼들에게 수건을 한 장씩 나누어 주면서 부탁을 하면 모두가 좋다고 입이 벌어지는 것이다.
“ 이 댁의 타작을 해야 감주도 맛을 보지만 무엇보다도 아주머니가 담가놓으신 막걸리 맛이 천하제일이니 막걸리부터 한잔하고 시작을 해야지요.”
“ 아니야 식전부터 술을 마시면 기계 돌리는데 위험할 수도 있어요. 아직 날이 샜다고 하지만 어둠이 가시지 않았으니 제누리때나 막걸리를 내 오세요.”
어물전에 망신을 꼴뚜기가 시킨다지만 여러 사람들이 모였을 때에 입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은 항상 주정뱅이라고 별명이 붙은 양서방이었다.
그의 말이 최근에 잘 먹히게 된 것은 어느 해 면서기네 타작을 하는 날인데 그날은 날씨가 안개가 잔뜩 끼고 흐린데다가 더구나 새벽부터 막걸리 한잔씩을 마시고 탈곡기를 밟기 시작을 하였는데 오정호라는 키가 아주 작은 사람이 볏단을 나르다가 옷소매가 탈곡기에 말려 들어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왼쪽 팔이 기계에 쏠려 들어갈 번 한 것을 옆에서 거들던 사람이 재빨리 탈곡기에다가 볏단을 던지는 비람에 기계가 멎어 용케도 왼쪽 검지와 중지만 다친 적이 있은 후부터였다.
사실 농촌에서 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한 일인데 가장 많이 다치는 것은 지게에다가 곡식을 지고 일어서다가 허리를 다치는 경우였다.
어떤 때 쇠꼴을 비거나 혹은 벼와 조를 베다가 잘못하여 손가락을 베는 경우도 있지만 특히 밭일을 하다가 뱀에 물리는 경우에는 치명상을 입을 때도 있어 가장 조심을 해야 한다.
허여사네 타작은 넓은 밖앗마당에서 시작을 하는데 일꾼들이 열명이 넘으니 일이 수월하게 잘도 진행이 되어 한나절이 되자 반 이상의 벼를 털고 나면 점심을 먹게 된다.
점심으로는 쇠고기 국에다가 꽁치를 조리고 배추김치와 두부전골에 북어 볶음까지 곁들여 기름이 잘잘 흐르는 쌀밥을 한 사발씩 퍼서 먹게 되면 그 이상의 맛을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일꾼들은 점심 후에는 낟갈이 옆이나 응달진 나무 그늘에서 한잠씩 자고 일어나서는 해지도록 타작 마무리를 하는데 게떼기며 까부람질은 미처 다하지를 못해서 다음날 다시 부인네들을 얻어서 하는 것이다.
타작이 끝나고 마당에다가 볏가마니를 쌓아놓고 그 더미를 보게 되자 허여사는 한 해 농사를 지은 것이 힘은 들었지만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가을타작을 하고 나서 며칠 후에 다시 콩타작을 하고 메밀을 심으려고 일꾼을 얻고 있는 참인데 갑자기 둘째 아들이 식전에 전화를 한 것이다.
“ 왜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를 했냐.”
아들 둘이 있지만 똑같이 안부 전화라는 것을 별로 하지를 않는 아이들이라서 엄마는 그것이 늘 서운하였는데 전화가 왔으니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를 한줄 알았다.
“ 집사람이 해산을 하려는데 어머니가 오셔서 봐주셔야 되겠어요,”
아들은 엄마나 아버지의 안부도 묻지 않고 여편네의 해산이야기부터 꺼내는 것이다.
“ 나 지금 농사를 벌려 놓아서 못 간다. 산파 불러서 낳으면 되지 않니.?”
사실 엄마는 지금 형편으로는 어디를 갈래야 갈수도 없을 만큼 바쁘기도 하지만 영감의 진지를 해드려야 되니 갈 수가 없기도 하였다.
그런데 아들은 사흘만 오셔서 봐달라고 떼를 쓰다 싶이 하니 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버스를 타고 아들네 집에를 가니 아들이 뛰어 나오면서 방금 애가 나올 것 같은데 엄마가 마침 잘 오셨다면서 다 죽어가던 얼굴이 활짝 펴지는 것이다.
허여사가 그 소리를 들으니 무척 화가 나는 것이었으니 산파를 불렀으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를 그 산파의 수고비가 아까워서 엄마를 불러대는 며느리가 참으로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며느리는 입에다가 수건을 물고 문고리를 잡고 안간힘을 다하는 중에 아이는 이미 양수가 터지고 머리끝이 보이기 시작을 하였다.
문 닫을 사이도 없이 얼른 아이를 받고 보니 사내아이인데 아이는 충실한 듯 “응애 ”하고는 울음을 터트렸다.
물을 얼른 데워서 아이를 씻기고 나니 한참동안이나 어지러웠다.
그러고 보니 조반도 거르고 아들네 집에 오자마자 애를 받고 씻기기까지 하였으니 나이 많은 허여사가 아무리 강단이 세다고 해도 맥을 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들은 그날 상부 기관에서 감사가 나온다고 애가 나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회사로 출근을하니 뒤치다꺼리를 어머니가 할 수 밖에 없었다.
시어머니가 찬장 문을 열자 훅 하고 역한 냄새가 나는 것이어서 닫혀있는 냄비뚜껑을 열어보니 언제 만들어놓은 호박찌게인지 거기에서 쉰 냄새가 풍기고 있었다.
미역 한 줄거리 없고 단지 있는 것이라고는 언제 사왔는지 말라비틀어진 빵과 우유봉지가 뚜껑이 뜯긴 채 있었다.
하기야 며느리가 그동안 출근을 하느라 살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서 그렇겠지만 무엇을 먹고 살아왔는지 모를 정도로 찬장은 너무도 텅 비어 있었다.
신식 사람들이 빵과 우유만 먹고 산다는 말은 듣긴 하였지만 아이들을 서양 사람을 만들려는 것인지 보이는 것이라고는 그런 것뿐이니 허여사는 한숨만 나왔다.
모처럼 왔으니 첫국밥을 안 끓여 줄 수도 없어서 허여사는 이웃집 가게에 가서 미역 한 줄과 쇠고기 한 근을 사가지고 와서는 급하게 밥을 짓고 국을 끓여서는 며느리에게 차려 주었다.
“어서 일어나서 국밥 먹어라.”
시어머니가 차려오신 밥상을 보자 며느리는 상 앞으로 달려들더니 허겁지겁 몇 때를 굶은 사람처럼 밥을 쓱쓱 국에다가 말더니 훌훌 들이마시는데 오뉴월 한낮에 들판에 매어놓았던 황소가 강물을 들여 키듯이 밥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이 하고는 다시 국 한 그릇만 더 달라고 하였다.
허여사는 한편으로는 애를 낳느라 여러 날을 굶어서 그렇겠거니 하면서도 아무리 굶었다 손치더라도 어머니 진지 잡수시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밥을 넘기는 그가 참으로 불쌍하기도 하였다.
아무리 조실부모하고 삼촌댁에서 자랐다고 하지만 인간의 도리는 알고 자랐어야 하는 것인데 며느리는 도통 기본적인 예의라는 것을 모르고 자란 아이 같았다
허여사도 밥을 보니 그제야 자신도 배고 고프다는 것을 느꼈지만 부화가 은근히 나는 판에 밥 잘 못 먹었다가는 체할 것 같아서 물만 한 사발 마시고 말았다.
허여사는 사흘을 억지로 있다가 다음날 아들을 불러서 말을 하였다.
“ 나 오늘 시골로 돌아 갈 터이니 그리 알고 이제는 네가 밥을 해먹여라. 국 걸이는 내가 사다가 냉장고에 넣어 놓겠으니 미역을 물에 잘 씻어서 국을 끓이데 한 시간 이상을 끓여야 제 맛이 날 것이니 그리해서 먹여라.”
어머니가 말씀을 하시자 아들은 어머니의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듯이 어머니의 팔소매를 붙잡더니 사흘만 더 있다가 가시라고 하였다.
허여사는 그들의 행동거지로 보아서는 당장 돌아가고 싶었지만 항상 마음이 여린 그는 기왕에 온 몸이니 하고는 사흘이 되자 다시 떠나려는 생각을 하였는데 사람의 일이란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 말인지?.
며느리가 셋째 아이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날부터 하혈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허여사는 그동안에 애기를 돌보아줄 사람이 없게 되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는 할 수 없이 붙잡혀 앉게 된 것이다.
집엘 가면 타작마무리도 해야 하고 바로 벼 수매도 해야 되는데 가지를 못하다 보니 허여사는 근심과 걱정이 태산 같았다.
동네에서 늘 일을 거들어 주는 박서방 네가 있어서 아쉬운 대로 뒷일을 부탁을 하긴 하였으나 모든 뒤처리까지를 생각하면 당장 가야하는데 가지를 못할 처지니 밥맛이 다 없었다.
허여사는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내일이면 낫겠지 하였는데 낫지를 않으니 일 년을 아들네 집에서 살게 된 것이다.
그러는 중에 첫째 손자가 입학을 하게 되고 어멈은 몸이 회복이 되어 출근을 하게 되니 허여사는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것이다.
허여사가 남편에게 시집을 가게된 것은 고모님이 어느 날 오시더니 주인을 서신다고 하자 고모님의 말씀이라면 껌벅 돌아가시는 시늉이라도 하시는 아버지였기에 말이 오간지 석 달 만에 신랑 얼굴 한번 상면하지 않은 채 시집을 간 것이니 그때 신부의 나이는 열아홉 살에 신랑은 스물 한 살이었다.
신랑 신부가 워낙 나이가 어리다 보니 살림이 무엇인지 조차 잘 알지 못하였는데 시집 간지 석 달이 겨우 넘자 시어른들은 집에서 좀 떨어진 동네에 사랑방 하나를 얻어주면서 세간을 나가서 살라는 것이었다.
수저 두벌과 밥사발 두벌 그리고 요강 하나를 들고 세간을 나자 땟거리가 없어서 주인에게 며칠분의 곡식을 꾸워서 먹어야 했다.
처음으로 살림을 하는 것도 서툴지만 먹을 것이 없으니 살아나가기가 막막하였다.
그래서 그때부터 새색시는 동네의 일감을 찾아서 일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니 모내기 때면 모품을 팔았고 밭곡식이 올라오기 시작을 하면 감자밭도 매고 마늘 뽑기 보리 베기를 비롯해서 도라지 밭 까지 매다 보니 그런대로 산 입에 거미줄은 치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신랑에게 군대 영장이 나오게 되니 새 색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연하여 날마다 울면서 지냈는데 이웃아주머니들이 남자는 군대를 갔다가 쓴맛 단맛을 다 맛보아야 진정한 남자 노릇을 한다고 위로를 해주어서 억지로 마음을 달래면서 신랑이 군에 갔다 올 때까지 열심히 품을 팔자니 마침 임신이 되어 일을 하기는커녕 움직이기도 싫었지만 먹고 살자니 억지로 참으면서 지났다.
그리고 나서 남편이 군대에서 제대한 것은 입대하지 3년만이었는데 남편이 돌아오니 그야말로 뛸 듯이 기뻤지만 신부가 그 내색을 할 수는 없었다.
그때야말로 마음 같아서는 어린 아이처럼 만날 신랑의 손을 붙들고는 산으로 들로 싸다니고 싶었지만 원래 신랑이라는 사람은 평소에도 말이 없는 사람인데다가 얼마나 멋이 없느냐 하면 반가워도 반갑다는 말을 도통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허여사 또한 남들 모양 아양을 떨 줄도 모르다 보니 남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세월을 보낸 것이다.
남편은 원래 학교를 다닐 때에는 손으로 물건 만들기를 좋아하고 육상을 잘 뛰어 군 대항 선수로 출전을 할 정도여서 군대에 가서도 부대 대항 육상기록대회에서 우승을 하였다.
학교 졸업 후에는 한동안 집에서 아버지가 하시는 농사일을 하다가 보니 힘이 들자 동네의 목수 간에서 목수일을 배웠다.
목수일을 배우고 나니 그때만 해도 6,25사변 후라 농촌에서는 집들을 많이 짓던 때여서 남편의 목수일은 일 년 내내 계속되다 보니 수입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 용단을 내려서 삼간짜리 집을 지었으니 시집간 지 5년 만에 집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집을 마련한 후로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논과 밭을 좀 사서 집에서 먹을 양식을 대게 되어 그제서야 허여사는 남의 집에 쌀을 꾸러가지를 않게 되었고 세월이 가다보니 아들 둘에 딸 삼형제를 낳아 가족이 많아진 것이다.
남편은 한편으로는 농사를 짓고 목수 일을 계속하였는데 봄이 되면 비료대금이며 논밭 가는 소 품값에다가 인건비가 적지 아니 들어가는 바람에 목수일을 해서 받는 임금가지고도 부족하여 농협에서 대출을 받아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농비가 모자랄 정도로 농산물의 가격이 너무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농사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
농사를 지으면서 아들과 딸 모두를 학교에 보내느라 고생도 많이 하였다.
부모는 큰 아들을 장가를 미리 들이고 세간을 내주기 위해서 시골의 농토 일부를 팔아서 전셋집을 마련해 주었다.
며느리가 방직공장에 다니는 알뜰한 여자라고 주인애비가 꿀을 붓는 바람에 믿거라 하고 맏며느리로 맞았는데 세간을 내어주고 애를 낳은 이후의 그들의 동태를 살펴보니 결혼시킨 지 1년이 넘어도 시댁에를 잘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봄날 모처럼 집에를 올 때에는 그래도 시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술 한 병이라도 사들고 와야 하는 것인데 빈손으로 오는 것이어서 시아버지는 매우 서운해 하시는 것이었다.
“ 아이들이 바빠서 그냥 왔는가 봐요.”
허여사가 그래도 아이들의 역성을 들기 위해서 한마디를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를 않더니 벽력같이 소리를 냅다 지르는 것이었다.
“술이나 가겟방에 가서 한 병 사올 일이지. 웬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지금까지 남편은 한 번도 큰 소리로 부인을 나무라거나 욕을 한바가 없는 분이었는데 그날은 허여사의 귀청이 떨어질 만큼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깜짝 놀라서 나가자빠질 번 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사랑에 있던 아들이 튀어나오더니 벽력같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 아이들 잠깨라고 왜 아버지는 무식하게 소리를 지르신대요.”
허여사가 아들의 말을 들어보니 영 이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자기도 모르게 아들을 향하여 달려들었다.
“ 너 말 다 했냐. 아버지가 무식하시다고. 그래 그런 무식한 아버지 집엔 왜 왔냐. 응. 당장 나가거라. 이집은 내 집이야. 꼴도 보기 싫으니 당장 나가란 말이야 이놈아. 아이고 원통해. 아이고 분해….”
허여사는 화가 머리 끝가지 치밀어 올라오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마루위에 놓여있는 아기 지저귀 담가 놓은 세숫대를 아들을 향해서 집어 던지니 아들은 물벼락에 똥기저귀가 얼굴에 가서 붙으니 퉤퉤 하면서 지저귀를 벗어 던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기저귀를 뒤집어썼거나 말거나 울분을 참을 수가 없었다.
“ 너. 내가 다시 말하는데 앞으로 이집에는 얼씬도 하지 말아 이놈아. 이 시각부터 나는 너를 아들로 생각지도 하지 않을 것이니까 말이야.”
그러자 방문이 열리더니 며느리가 나오면서 팔짱을 끼고 고개를 바짝 쳐들더니 악을 쓰듯 말을 하는 것이었다.
“ 어머니, 혹시 무엇을 잘못 잡수신 것은 아닌가요. 아무리 내가 낳은 자식이지만 어엿한 가장인데 어떻게 그렇게 나무라실 수가 있지요.”
허여사가 그 소리를 들으니 기가 막혀서 금방 살치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었다.
“ 무엇이 어째. 이……”
허여사는 그리고는 다음 말을 잇지를 못하고는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자 남편이 뛰어 나오면서 얼른 부인을 끓어 안았지만 아들은 뻔히 보고만 있더니
“ 공연히 어른들이 애들처럼 저렇게 장난을 치시니 원 ” 하고는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때 옆집에 사시면서 항상 허여사를 다독여주던 고모님이 들어오시는데 화가 잔뜩 나신 채였다.
“ 아니. 저 놈이 언제부터 부모 괄씨를 하려 드는 게야. 하늘이 무섭고 땅이 무섭지도 않으냐 이놈아. 어서 역괭이 같은 여편네를 얻더니 사내놈이 줏대 없이 이제는 부모까지 넘보려 들어.”
“ 할머니는 제 삼자인데 왜 남의 집에 와서 시끄럽게 굴어요. 예.”
아들은 할머니가 만만한지 문을 박차고 나오더니 대드는 것이었다.
“ 아이고 말세야 말세. 어서 저런 강아지만도 못한 놈을 낳았냐. 글쎄. 이제는 할멈한테까지 삿대질을 다하고 아이고 분해라. 저런 놈 상판대기 보기 싫어서 나는 갈란다.”
할머니는 그리고는 사립문을 향하여 침을 퉤퉤 뱉으면서 나가시는 것이었다.
이리 되니 잠깐 사이에 집안의 분위기는 살벌해지는 것이었다.
사실 아들 중에 큰 아들은 자라면서도 반듯하게 자라고 이웃에서는 효자가 났다고 할만치 결혼을 하기 전만 해도 객지에 나가 있으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하였다. 그런가 하면 매 토요일마다 집에 와서는 농사일을 거들기도 하고 비료 대며 농기구 수리비를 내놓기도 하였는데 장가를 들고 어린 애를 낳은 후에는 전화는커녕 휴일이 되어도 좀처럼 집에 오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번은 초여름에 집에 푸성귀가 한참 날 때에 아들부부가 모처럼 오기에 반가워서 시어머니는 사립문을 열고 손자를 받으려고 하자 며느리는 “ 어머니 손이 지저분하니까 손을 씻고 받으세요.” 하는 것이었다.
허여사는 불끈 화가 치밀었지만 모처럼 오는 길인데 화를 낼 수도 없어서 멀쑥해서 돌아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 어머니 요즘에는 위생에 주의를 하셔야 할 때입니다. 까닥하면 전염병이 옮을 수도 있거든요,”
아들의 말에 어머니는 고만 기가 막혀서 더 이상 대꾸를 하고 싶지를 않아서 바로 고모님 댁으로 간 것이다.
그런데 웬만한 며느리 같으면 저녁을 해놓고 어머니를 모시러 와야 할 텐데 그러지를 않고 저녁을 저희들만 해먹고는 휭하니 서울로 가고 말았던 것이다.
허여사야말로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아들 자랑을 얼마나 많이 하였는데 생각한 것과는 딴판이니 세상에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그날 이후 큰 아들네 집에는 발씨녕도 하지를 않았고 큰 아들 또한 집에를 오지 않는 것이었다.
맏며느리가 시부모와 대면도 하지를 않고 있기에 두 부부는 작은 아들을 장가 들일 때에는 맏며느리와 같은 애는 절대로 얻지 않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때 작은 아들은 서울의 한 의료부품 상가에서 직원으로 근무 하고 있었는데 일이 잘 되느라 그랬는지 맞은 편 회사의 직원으로 있는 아가씨와 연애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하루는 부모님에게로 인사를 왔다기에 어머니가 대하고 보니 조실부모를 한 가운데 삼촌댁에서 불우하게 자란 아이인데 그의 관상을 본 엄마는 첫눈에 벌써 마음에 들지를 않아서 아들에게 다른 여자를 알아보라고 하자 아들은 그 여자가 아니면 장가를 가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부모는 할 수없이 결혼을 승낙하고는 큰 아들과 마찬가지로 논을 팔아서 전셋집을 마련해 준 것이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성격을 닮아서 별로 말이 없고 다른 사람과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대인관계는 좋은 편이었다.
그런데 장가를 들인 후에 둘째 며느리의 태도를 살펴보니 시어머니가 사람을 잘못 본 예감과 같이 이 아이 역시 시부모에 대해서 맏며느리와 같이 판을 박은 듯이 부모를 우습게 취급하는 것이었다.
시아버지는 아들 둘을 두었지만 며느리들로 해서 부모자식간의 간격이 벌어진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생전 술을 자시지 않던 분이 날마다 술을 자시는 것이었다.
그는 술을 마셨다 하면 정말 정신이 없을 때 까지 마시다 보니 얼마 후에는 병원에 입원을 자주 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우선 마음이 편해야 하고 술도 어느 정도 쯤은 자제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남편은 마음이 상하다 보니 덮어놓고 술을 마시는 것이다.
날마다 술을 자시게 되니 그 다음부터는 농사를 돌려다 볼 생각도 하지를 않았다.
남편이 그렇다보니 제때에 작물을 심지도 못하였지만 곡식을 심었다 할지라도 제대로 김을 매주고 피살이며 비료를 제때에 해주어야 하지만 그런 것에 대한 시기를 놓쳐 밀 보리는 제대로 자라지를 못해서 수확이 줄었고 벼는 잎마름병이 도져서 여물지를 않아 예년의 반도 수확을 건지지 못한 것이다.
가을마다 벼를 수매를 해야 하지만 등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정도라서 수매 대금도 손에 들어오지를 못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수확이 제대로 나오지를 않자 농토를 다음 해에는 남에게 도지로 주겠다는 것이었으나 가뜩이나 농사가 되지를 않아서 빌려 쓴 영농자금의 이자도 갚지 못할 판에 농사까지 짓지를 않겠다니 허여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자기가 아무래도 농사꾼이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는 할 줄도 모르는 농사를 배워 가면서 일을 하였던 것이다.
해가 바뀌자 곧 봄이 오고 해토가 되기 시작하면서 허여사는 일꾼을 얻어서 감자를 심고 는 무 배추에 아욱이며 상추 파 씨를 뿌렸다.
4월로 접어들면서 푸성귀가 자라고 5월이 가까워지자 날씨는 한결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문밖출입도 하지를 않고 음식도 제대로 자시지 않던 남편이 하루는 부엌에서 밥을 짓는 허여사를 부르더니 어버이날이 언제냐고 묻는 것이다.
이제 열흘만 있으면 돌아온다고 하자 남편은 새삼스럽게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이 보고 싶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하지 않던 소리를 하는 것이어서 허여사도 마음속으로는 먼젓번에 야단을 친 것이 마음에 걸리긴 하였으나 부모의 마음은 속일 수가 없는 것이라 한번 저들이 왔다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는 남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식이 부모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당연히 찾아뵙고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옳지만 그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배가 없었으니 섭섭한 마음은 끝이 없었다.
“ 여봐요, 당신 정신 좀 바짝 차리세요. 그 애들이 여길 누구를 보고 싶다고 오겠어요, 거리에 나가기만 하면 푸성귀들이 얼마든지 살 수가 있는데 집의 것 뜯어 먹으러 오겠어요.“
하기야 돈이 없지 물건이 없는 것도 아니다. 게다가 시골집에 오면 아이들의 잠자리가 불편하여 잠도 제대로 못 잔다고 하는데 여길 귀찮게 뭣 하러 오겠는가.
“ 여보. 이번에는 그래도 모처럼 어버이날이니 애들이 무얼 사오겠지. 그냥 오겠소.”
“ 참 당신도 매년 오지 않는 아이들인 것을 알면서도 뭘 기다려요. ”
그런 소리를 하고 나서 며칠 후에 어버이날이 되었지만 맏아들이나 딸들에게서 전화 한통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난 허여사는 그날이 이름이 있는 날이라 쇠고기 한 근을 사다가 국을 끓이고 김을 구워서 상을 차렸다.
조반을 억지로 한술 뜨고 난 남편이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는 것이다.
“ 오늘이 당신이 말씀하시던 어버이날이에요. 뭐 서운한 것 있어요,”
“ 그런가. 손자들이 보고 싶구먼.”
“ 걔네들 오지도 않을 거니까 .기다리지도 말라니까요.”
허여사의 말을 들은 남편은 창밖만 우두커니 내다보는 것이었다.
편안할 것 같던 남편의 상이 일그러지자 허여사의 마음도 편치를 않았다.
어떻게 기른 자식들인데 부모 알기를 우습게 아는 것인가.
더구나 TV에서는 어버이날을 기해서 자녀들이 선물이며 꽃다발을 안고는 부모님을 찾아뵙는 화면을 내보내건만 이 집안의 아이들은 왜서 남들처럼 부모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도 않는 걸까.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을 평하기를 정이 많은 국민이라고 칭찬을 한다는데 오늘날에는 사회가 왜 이렇게 변화무쌍하며 부모 자식 간의 정이 멀어지는 가정들이 자꾸만 늘어나는 것인가.
허여사는 저녁에 고모님을 오시라고 해서 저녁을 함께 하였는데 남편은 기분이 좋다면서 고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여서 늘 죄송했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 이제 날씨도 좋아지고 있으니 어서 건강을 회복해야지.”
고모님이 말씀을 하셨으나 남편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에 남편은 식전에 눈을 뜨자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부인의 손을 잡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 당신. 왜 식전부터 어디가 아프신 거예요?”
아내가 옆으로 다가앉으면서 말을 하였지만 남편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하지를 못한 채 스르르 눈을 감는 것이었다.
“ 여보. 여보.”
허여사가 남편을 끌어안고 불러 보았으나 남편은 그 이상 방응을 보이지 않았다.
“ 아이고 불쌍해라, 당신이 이렇게 가셔도 되는 건가요.”
허여사의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나오는 것이었다.
허여사는 남편의 장사를 지내고 나서 남편이 명을 달리 한 것이 순전히 자식들 때문이라는 생각에 날마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으로 세월을 보냈다.
허여사는 농사철만 되면 고향의 농토에 대해서 걱정이 생기고 그동안 도지로 남을 주다보니 고향에 있을 때에는 철철이 푸성귀며 강낭콩에 옥수수를 실컷 먹을 수가 있었지만 아들네 집에 와서는 누구 하나 옥수수알갱이 하나 갔다가 주지를 않는 인심이다 보니 고향이 그립고 더구나 애 책가방을 드다를 수도 없어서 집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기 시작을 하였다.
그날도 늘 대로 두 아이의 책가방을 메고 학교 교문 앞까지 갖다 주고 돌아서 나오다가 길가에 있는 대형마트엘 가서 파나 한 단 사려고 이것저것을 고르는데 누가 와서 팔을 붙들기에 쳐다보니 고향에서 호의호제하며 지나던 종하 엄마였다.
“ 아니. 형님이 어쩐 일로 여길 다 오신대요. 네 .”
“ 아이구 오래간만이네 , 왜 그렇게 못 보겠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 그러게 말이에요. 형님이 가신 뒤로 동네에서는 늘 형님 말씀을 하면서 불쌍하다고 그래요.”
“ 뭣이 불쌍해 밥 먹고 잘 지나는데….”
“ 형님이 아들네 집에 가서 고생을 많이 하신다는 얘기는 동네사람들이 다 알고 있어요.”
“ 그랬어,”
“ 동네에서는 지금 형님을 어떻게 하던지 댁으로 모셔 와야 한다고 야단들이예요.”
이날 허여사는 모처럼 만난 종하 엄마를 데리고 집으로 왔던 것이다.
그런데 종하 엄마가 전해준 소식은 허여사에게 충격적인 소식이었으니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남편이 돌아가시기 전에 전답에 대한 명의를 모두 자기( 허여사 명의)앞으로 해놓았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자식들이 혹 넘본다 할지라도 엄마의 허락이 없으면 아무것도 차지할 수가 없다는 말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요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면 자식이 부모 몰래 고향의 집과 전답을 팔아가는 경우도 많아 부모는 하루아침에 집에서 나앉기도 한다는 소문도 들려 허여사는 은근히 근심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종하 엄마의 말로는 언젠가 큰 아들이 면사무소에 와서 자기네 전답에 대해서 알아보다가 명의가 전부 어머니의 것으로 되어 있자 면사무소 직원과 옥신각신했다는 말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복덕방을 운영하고 있는 자기 남편의 말이 이 기회에 논밭을 팔아서 시내에 작은 아파트라도 하나 사서 혼자 편안하게 사시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하였다는 것이다.
종하 엄마는 나중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형님이 허락만 하시면 남편이 나서서 손해 보지 않게 논밭을 팔아드리겠다 하고 이번에 들어가면 형님네 집을 수리해서 놓을 테니 미리 미리 준비를 하고 있다가 아무 때고 연락만 하면 돌아오시라고 까지 하는 것이었다.
사실 허여사의 마음은 비단결같이 곱기만 하였지 집안의 모든 돈거래는 생전에도 남편이 다 하였기 때문에 셈수에 대한 것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향에 있을 때에도 장엘 가게 되면 종하 엄마를 데리고 다니면서 함께 장을 보고 셈은 종하 엄마가 해주었던 것이다.
허여사는 요즘에 와서 밤저녁이면 팔 다리가 아프기도 하지만 더 이상 아들네 집에 있는 것이 싫어서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만날 고민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종하 엄마를 만나는 바람에 용기를 얻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기 시작을 한 것이다.
“형님. 아무 때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형님은 원래 남에게 싫은 소리도 한마디 하시지 못하시는 분이잖아요.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오셔야 해요.”
허여사는 그날 저녁에 종하 엄마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보았다.
“ 그래야지. 어멈을 어멈같이 대하기는커녕 하인처럼 부려먹으려는 며느리 자식의 그동안의 행위에 대해서 허여사는 너무도 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 있던 허여사는 벌떡 일어나서 낡아빠진 1층장 농을 열고는 손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남편이 처음으로 집을 지은 다음에 받은 돈으로 사준 금반지가 손에 잡혔다.
입을만한 옷을 찾아보았으나 5년 전에 아들네 집으로 입고 왔던 낡은 세타와 모처럼 5일장에서 나들이 복으로 사 입었던 헐렁한 바지 그리고 날씨가 추우면 걸쳐 입던 잠바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허여사는 그것을 작은 보자기에다가 주섬주섬 싸고 나서 서랍을 뒤지니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으로 받은 잔전이든 손지갑이 있어 열어 보니 천 원짜리를 합해서 만원은 실히 되었다.
고향에 가려면 장거리버스를 한번 타고 시내버스를 갈아타면 되니까 노자는 쓰고도 남을 것 같았다.
이튿날 아침 조반을 먹고 나자 아들부부는 일찌감치 출근을 하면서 아이들에게는 공부를 잘 하라고 한마디씩 하였지만 어머니에게는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도 없이 그냥 나가는 것이었다.
허여사가 아이들을 뒤세우고 책가방을 메고 앞장을 서면서 오늘이 책가방 메는 것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을 하니 공연히 눈물이 왈칵 쏟아지는 것이었다.
허여사가 가방을 들고 학교로 가다가 생각을 하니 다른 아이들은 모두가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데 유독 허여사의 손자들만 할머니가 가방을 가지고 가는 것이다.
5년 동안 고향에 가고 싶어도 한 번도 가지 못했고 동네에서 잔치가 있다는 기별이 와도 돈이 없으니 부조도 하지를 못한 채 지나온 세월이 너무도 억울하였다.
종하 어멈을 진작 만나기라도 하였다면 오늘 같은 용기를 벌써 가졌을 것인데 첩첩 산중에서 살고 있는 비구니처럼 허여사는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면서 살아왔던 지난날이었다.
교문이 저만치 다가오니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
1학년에 들어간 손자 녀석이 책가방을 받아 메고 교문 안으로 들어가자 큰 손자 아이가 다시 받아가지고 들어가고 있었다.
“ 아이들에게야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허여사의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데 학교에서는 시작을 알리는 차임벨 소리가 은은하게 들리고 있었다.
金 斗 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