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기행문 다 ?다 14쪽 짜리 글이다. 오래 걸렸군......
아름다운 제주의 실핏줄, 올레를 가다 2월 2일, 비행기가 뜨다. 제주올레를 가려고 기다렸는가? 아니다. 이번 방학은 그냥 뒹굴뒹굴하고 싶었다. 일도 싫고 아이들 밥이나 해 주고 머리를 비우고 게으르게 살려고 했다. 추임새 친구들이 좋아서 나서기는 했으나 미리 정보를 찾지도 않고 사진 한 장 보지 않고 그냥 나섰다. 현옥이가 다 준비하기에 그냥 묻어가려고 했다. 한 가지는 했다. 등산용품점에 가서 소품을 샀다. 모자, 스카프, 장갑. 배낭 매고 걸을 지도 몰라서 짐은 최소한으로 쌌다. 이렇게 설렘이 없는 여행도 있던가? 2일 새벽 5시에 휴대폰 알람을 설정해 놓고 잤다. 사흘 집을 비우는 지라 새벽2시까지 반찬 만들고 부엌에 서 있어 걱정하며 잤다. 비행기는 7시 30분에 뜬다. 5시 30분. 동래 세연정 주차장에서 현옥이, 정혜와 만나 영이네 차에 타기로 했다. 5시 30분, 전화가 와서 받으니 영이였다. 출발하려고 한다고. 휴대폰 알람은 진동이라 미처 깨지도 못하고 시간이 촉박하게 되었다. 먼저 출발하라고 하고 짐을 챙겼다. 마음이 급하다. 자는 남편을 깨워 데려다 달라고 하니 남편은 오늘 고3 예비등교하는 솔기를 걱정한다. 혼자서 학교를 못 갈테니 깨워주어야 하는데 시간이 빠듯하단다. 택시를 탄다고 하니 공항까지 가겠다고 한다. 차가 출발했다. 30분쯤 여유가 있겠다고 하며 아파트를 빠져나오는데 분명히 들고 나왔는데 모자가 안 보인다. 아파트 주차장 어디에서 떨어뜨린 것같다. 난감하기는 하나 말하기가 어려워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민등록증 가져 가냐고 묻는다. 현옥이가 준 준비물 명단에 없던 이야기였다. 안 가져간다고 했다. 그거 없으면 비행기 못 탄다고 짜증이다. 당황스러운 중에도 시계를 본다. 될 것같은데 조급증을 내는 남편이 이해가 안되지만 아침에 연속 실수하는 참에 뭐라 할 말이 없다. 차는 다시 돌아서 집에 갔다. 차가 서 있던 자리에 모자가 보였다. 신분증도 챙겼다. 다시 출발하는 차는 속도가 자꾸 난다. 시간이 없다. 늦으면 어째야하나 걱정이 되었다. 늘 미리 나가 마중하는 쪽이어서 긴장이 된다. 양산 쪽으로 길을 잡고 나갔다. 남양산을 지나서 대동을 지나 공항쪽으로 접어드니 시간이 되겠다고 운전을 여유있게 했다. 국내선 터미널 앞에서 인사를 하고 내린다. 공항청사에 가니 친구들이 보인다. 나같이 단촐하게 차린 현옥이, 대조될 정도로 큰 가방을 끌고 있는 미란이, 함박 웃는 영이, 차분하고 새침한 성희, 정혜, 경숙이는 국제선에서 내려서 지금 걸어오는 중이란다. 국내선인데도 외국인도 많고, 이른 아침 사람들은 신나는 표정으로 짐을 들고 분주하다. 검색을 하고 대기실을 나와 비행기를 탄다. 앞 날개 바로 뒷좌석이다. 날개의 각도를 조정하는게 한 눈에 보이고 날개아래 구름이 보일 자리이다. 이 비행기는 정말 크다. 드디어 비행기는 활주로를 뜬다. 제주로. 돌봄의 식탁 공항에 도착하니 아침이다 배도 좀 고프고 달콤한 피곤이 몰려온다. 숙소로 정한 ‘세화의 집’에서 픽업 서비스를 한단다. 10분쯤 기다리니 택시가 두 대 왔다. 숙소에서 보낸 차량이란다. 택시비도 저렴하게 해서 미리 얘기가 된 차였다. 제주 시내를 지나 여러 관광지 팻말을 거쳐 남쪽으로 점점 시골로 들어간다. 표선면 세화리에 있어서 ‘세화의 집’이란다. 나는 주인 이름이 세화인줄 알았는데. 택시 기사가 위치를 몰라 차를 세화리 입구에 세워놓고 제주 사투리로 다른 차 기사와 통화를 한다. 낯선 억양에 알쏭달쏭하고 알듯 말듯한 단어가 섞인 사투리가 정겹다. 숙소는 우리가 차 세운 바로 앞이었다. 숙소에 들어가니 밥상이 차려져 있다. 소파에서 쭈볏거리는 우리에게 우리 밥상이니 빨리 먹고 가란다. 깔끔한 나물과 생선으로 차려진 기분 좋은 밥상이었다. 밥 공기 가득 부어오른 밥이 부담스러웠는데 눈치를 챈 올레지기 언니는 ‘오늘 하루 종일 걸을 건데 이 정도는 해야지. 내일 되면 이 밥도 적다고 할 걸’하며 다 먹고 가란다. 다 먹은 밥상은 손도 대지 말라한다. 여러 모로 배려해주는 마음이 고맙다. 더구나 점심 사먹을 곳이 별로 없다며 찰진 주먹밥을 꼭꼭 싸 준다. 오늘 갈 3코스가 시작하는 온평포구까지 데려다 주고 올 때도 전화하면 차가 간다 한다.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 다시 이 숙수로 오는 지라 수건에 모자에 간단한 배낭으로 나선다. 숙소에서 산 올레 스카프를 매고 올레꾼이 되었다. 3코스의 출발점. 온평 포구 온평으로 봉고차를 타고 갔다. 올레지기 아저씨는 연신 말이 많다. 부산 사람이고 직업군인 출신이라는 아저씨는 올레지기 한 후에 자기만 바쁘다고 너스레다. 차 태워주고, 농사짓고, 집 손보고 다 자기 일이라 하면서도 사람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걸 즐기는 것같다. 맞장구를 쳐 주며 온평까지 간다. 온평 포구에 도착하니 ‘제주올레 3코스 출발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바닷가 자그마한 정자에 붙어있었다. 그 앞에서 떠들고 있는데 바로 앞 슈퍼에서 아저씨가 나온다. 자기도 올레지기란다. 어디서 왔냐. 숙소는 어디냐 하며 묻더니 올레 코스마다 비밀이 있다고 3코스에는 등대랑 똥돼지 키우는 걸 보고 가야 한단다. ‘등대’랑 ‘똥돼지’ 어느 만큼 있다고 길을 가르쳐 준다. 온평 슈퍼에 가니 민박과 슈퍼를 겸한 곳이라 안쪽에 올레에 온 사람들의 사진이 붙어있다. 생수를 사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가게 한 귀퉁이에 제주 토박이 물건을 몇 전시해 두었다. 올레에 이름을 걸고 있는 사람들은 살갑다. 올레에 온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잘해 주고 싶어한다. 보통 제주사람들의 무뚝뚝하고 무관심한 표정과는 다르다. 슈퍼를 나서려는데 비닐끈을 두 개씩 주며 길이 헷갈리는 곳에 꼭 표시해 두란다.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서. 오래된 친구의 편안함 천천히 걸어서 표선 쪽으로 간다. 200m마다 파란 화살표가 있어 우리가 갈 길을 알려준다. 우리 일행은 이 친구 저 친구 짝을 하면서 그동안 궁금했던 일도 묻고 모자도 챙겨주고 짐도 거들면서 편안함에 젖어든다. 1년만에 만나는 친구지만 어제 본 듯 편안하고 잘난 척을 해도, 못난 척을 해도, 예쁜 척 해도, 미운 모습에도 그저 웃고 넘겨지는 친구이다. 마음 밑바닥에 자기 사연을 담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 그대로 보기 좋은 친구들. 이 올레의 대장인 현옥이는 올레 코스에 대해 연구를 많이 해서 이것 저것 설명을 해 주고, 이미 올레를 걸어본 경숙이는 실제적인 것을 얘기해 준다. 비옷이며 스타킹 같은 용품을 많이 가져와서 나눠주는 미란이. 사는 게 궁금한 정혜, 늘 평안하고 정돈되어 보이지만 죽은 아들을 가슴에 묻고 살 성희, 우리는 저마다의 사연을 묻고 말하며 길을 걸었다. 멀리 등대가 보인다. 그냥 쳐다보고 길을 간다. 바다로 뻗은 그 길을 가기에는 남은 길이 너무 멀다. 오늘 갈 길은 22km. 서둘지 않으면 표선 해수욕장의 검은 모래를 밟아보기 힘들다. 출발시간이 너무 늦었다. 화살표교의 신화 등대를 보고 한참 가는데 파란 화살표가 없다. 아니 화살표가 계속 거꾸로 가라 한다. 길에 서서 보니 아직 온평 포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샛길을 놓쳤다. 원래 올레는 제주의 골목을 가리킨단다. 그래서 큰 길이 아니라 마을의 골목길 위주로 되어있어 길을 놓치기 쉽단다. 이야기에 빠져서 6명이 모두 길을 지나쳐 버린 거다. 되짚어서 돌아오니 좁은 골목으로 파란 화살표가 있다. 마음이 놓였다. 올레가 활성화되고 그 후로 몇 천년 지나면 사람들은 파란 화살표를 신으로 모실지 모르겠다. 구원의 화신으로, 모든 근심을 털어놓을 상징물로, 신의 다른 모습으로.... 계속 화살표가 나타나자 기분이 가뿐하다. 우리가 잘 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신의 보답처럼 기쁘다. 무밭과 검은 돌담, 잊을 수 없는 향기로움 샛길에 들어서자 마을이 나타난다. 탐스럽게 열매를 단 파아란 귤나무, 귤나무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집들, 귤나무 발치에 귀엽게 줄을 선 검은 돌담길이 연이어 나타난다. 무채색의 겨울에 갖가지 색칠을 한 제주의 겨울색은 아름답다. 어느 집 할 것없이 귤농장과 텃밭을 갖춘, 나지막히 붙은 집은 여유있고 평화로워 보인다. 다닥다닥 붙은 도시의 집들과는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제주의 골목길. 올레의 모습이다. 마을을 벗어나자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 차 있다. 신선하고 청정한 채소 냄새다. 둘러보니 무밭이 너르다. 제주의 검은 돌담에 에워싸인 넓은 무밭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파란 무와 무청이 푸르게 푸르게 이어져 있고 사이사이에 돌담이 끼워져 있다. 밭 하나하나가 육지보다 세너 배는 됨직하게 넓다. 영이가 밭 가의 무를 한 개 빼서 이로 껍질을 벗긴다. 우리는 돌려가며 먹는다. 무에서도 입 안에서도 신선한 느낌이 살아난다. 어릴 때 먹어본 생고구마처럼 향긋하다. 얼마를 가니 당근밭이 펼쳐진다. 당근 잎과 검은 돌담, 검은 흙 사이에 언뜻 보이는 당근의 주홍색 겹겹이 나타나 아름답다. 사람들이 챙 넓은 모자를 쓰고 고개를 숙여 당근을 캐고 있다. 맛있는 색에 끌려 침 흘려 가며 인사를 하니 몇 개를 선뜻 내 주시며 ‘올레 왔수까’하며 말을 건넨다. 흙이 묻은 당근을 길가 잡초에 슥슥 비벼 닦고는 먹는다. 달작지근한 당근과 탱탱한 물기가 맛있다. 이렇게 만나는 사람들이 정답다. 갈대가 무성한 중산간에서 통오름 가는 길을 놓치다. 제주의 계절은 가늠이 힘들다. 투명한 살구색으로 말라가는 갈대밭이 있고, 그 아래 쇠별꽃이나 개불랄꽃 같은 봄풀들이 꽃을 피우고, 바람은 살랑거리면서도 차다. 중산간에 들어서니 내내 그런 풍경이 펼쳐진다. 2월 2일 춥지 않은 겨울도 고마운데 봄꽃이라니. 중산간에는 마른 갈대가 길 옆으로 우거져 있다. 갈대숲에 앉거니 눕거니 하는데 사람들이 짝을 지어 지나간다. 친구 같은 20대, 부부인 듯 눈길도 마주치지 않는 50대, 쉬는 우리를 채근하듯 둘러보고 총총 사라진다. 그럴 게 뭐 있나? 놀멍 쉬멍 가는 올레 아닌가? 중산간에서 길을 또 잃었다. ‘세화의 집’ 올레지기에게 전화를 하고 여러 길을 답사해도 파란 화살표도, 나뭇가지의 비닐끈도 없다. 무성한 갈대 사이 어딘가에서 또 샛길을 놓졌다. 파란 화살표 신이 우리를 버린거다. 큰 길에 올라와 주위를 두리번 거리다 저 멀리 올레꾼인듯한 사람들을 보았다. 그 길에 들어서니 작은 오름이 저 멀리 발 아래 보인다. 통오름. 독자봉을 가보지 못하고 지름길로 온 것같다. 작은 오름에 몇 개의 무덤이 오름 위의 오름처럼 정성스럽게 올려져 있다. 아까 우리를 지나친 부부가 독자봉 위에 서성거리는 게 보인다. 제주에 또 와야 하는 이유 하나가 생겼다. 김영갑 갤러리-치열하고 아름답고 눈물나는 사진 다음 목적지는 김영갑 갤러리이다. 솔기를 위해 가 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고 한겨레신문에 난 김영갑의 삶이 기가 막혀 궁금한 곳이다. 사람 목숨과 바꾼 사진이 무엇인지 보고싶었다. 갈대가 마른 능선을 지나 길고 지루한 길이 이어져 있었다. 포장도로가 잠시 보이더니 도로 한 쪽에 폐교 같은 건물이 보였다. 김영갑 갤러리이다. 폐교 건물은 윤곽만 유지하고 있을 뿐 참 아름답고 재미있는 곳으로 변신하였다. 운동장이었던 곳은 일본식 정원처럼 이리저리 구불구불하게 다양한 경치를 보도록 해 놓았다. 2월인데 수선화 꽃밭이 곳곳에 숨어있고 김영갑이 구운 것 같은 다양한 모양의 토우들이 나지막한 담 위아래에 배치되어 있었다. 한 구비를 돌면 꽃이 보이고 조각이 보이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정원도 루게릭병으로 근육이 굳어가던 김영갑의 유작이란다. 갤러리 안에는 사진들이 가로로 길게 된 직사각형 액자 속에 놓여있었다. 구름이 산을 휘감고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사진은 바람소리 물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고도의 집중과 광기가 내비치는 사진은 오늘 걸어오면서 본 제주의 아름다운 경치가 다시 살아나는 듯 사실적이고 아름다웠다. 김영갑의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 그대로였다. 기계의 굴절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사무치게 박아내는 김영갑의 사진을 보니 목숨을 담보하여 피를 말리는 순간포착의 치열함이 묻어났다. 가슴이 아팠다. 그 때, 아는 사람이 보였다. 강용근 선생님. 부산지부에서 사무국장 한다더니 웬 제주도?? 반갑게 인사하고 보니 뉴질랜드 사는 처제와 여행 온 것이었다. 바쁜 중에도 완급을 조절하는 마음이 대견하게 느껴졌고, 가족을 위해 어떻게든 짬을 내는 마음이 보기 좋았다. 오늘 제주시에 묵고 내일 일찍 부산으로 간단다. 낯선 곳에서 익숙한 사람을 보는 즐거움이 또 있었다. 점심으로 나온 주먹밥을 갤러리 정원에 앉아 먹었다. 호일에 싼 찹쌀 주먹밥 하나와 단무지 서너 조각, 나무젓가락이 다 였다. 간이 배인 주먹밥이 정말 맛있었다. 다음에 가족끼리 산에 가면 나도 이런 주먹밥을 싸야겠다. 갤러리에 들어가서 사진집과 엽서를 솔기 몫으로 샀다. 취향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사무치게 고운 사진을 찍어서 남긴 고인에게 드리는 돈이다. 달랑달랑 가벼운 배낭이 순식간에 무거워졌다. 물을 먹어서 없애고 가방을 다시 쌌다. 신천 바다목장과 마을 김영갑 갤러리를 지나니 산길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 구름이 다양한 무늬로 다가오고 바다가 멀리 보이는 길이다. 바다의 출발, 육지의 끝인 길에서 이어지는 바다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덜거덕 거리는 돌길을 지나고 돌고 돌아 목장 앞에 섰다. 울퉁불퉁한 돌길에 파란 화살표를 그린 신심과 배려가 고마웠다. 까만 돌도 자세히 보니 붉은 색, 푸른 색이 다 섞여 색칠한 것처럼 보였다. 화산암이라 갖가지 모양이 참 신기했다. 자꾸 보니 신기한 것도 없이 그냥 행복해졌다. 예쁜 건 이렇게 사람을 조건없이 달뜨게 한다. 목장 입구에 화장실이 있어 화장실도 가고 담에 앉아 쉬었다. 해안 초소 같은데 군인도 없고 네모난 콘크리트 공간만 있었다. 목장으로 가는 입구는 아주 교묘하게 나무를 설치를 두었다. 사람은 갈 수 있으나 짐승이나 차는 못 가게 좁은 ㄷ자형 공간을 만들어 두었다. 제주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입구였다. 한 편에는 제주바다를 끼고 한 편에는 너른 목장 가를 가는 바다목장길은 평안하고 한가로웠다. 수평선과 지평선 사이에 서 있으면 지금처럼 평평한 지구를 느낄 수 있겠지. 목장 가에는 길쭉하고 까만 멍석에 밀감껍질을 널어서 말리고 있었다. 멍석이 끝나는 아득한 곳에 말이 몇 마리 서 있었는데 아! 목장이 얼마나 큰지! 그대로 바다로 뻗어 나갈 것 같았다. 목장이 끝나고 신천 마을이 나타났다. 미란이는 목장 근처부터 많이 아픈지 다리를 절룩거리고, 경숙이도 허리가 자꾸 아프다고 한다. 신천 마을회관 앞에 서 있으니 택시가 두어 대 지나간다. 경숙이가 미란이랑 차 타고 표선에 가 있겠다고 우리더러 그냥 가라고 한다. 태워주고 가겠다는데 차도 안 오고 미란이가 뭔가 미적거린다. 다리가 아프지만 걸으면서 제주를 느껴보고 싶단다. 회관 앞에서 서 있는데 올레꾼들은 우리 앞을 지나쳐 잰 걸음으로 지나간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경숙이에게 차비를 주고 앞서 걷는데 현옥이가 되짚어서 태워주고 오겠다더니 금방 따라왔다. 회관 앞의 트럭기사가 표선까지 태워주겠다 해서 타는 걸 보고 왔단다. 안심이 되었다.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미란이는 말씨만은 씩씩하다. 표선으로 신천마을 길을 죽 걸었다. 무밭과 검은 돌담, 귤나무, 나지막한 집들이 다시 나타났다가 숲이 보이기도 하고 길은 계속 있다. 파란 화살표와 함께하는 길은 마음이 편하다. 마을을 벗어나자 다시 바다가 보인다. 바다를 낀 해안길. 제주 바다가 점점 편안하게 다가온다. 아름답다 멋지다는 말이 사라지자 마냥 기분이 좋고 행복하다. 조개껍데기로 된 호수, 표선해수욕장 눈 앞에 너른 모래사장이 보인다. 호리병처럼 육지를 파고든 모래성이다. 표선해수욕장은 한창 썰물이다. 둥그런 해안선 따라 음식점이 늘어서 있다. 멀리서도 모래는 축축해 보인다. 제주의 검은 돌 사이에 조개껍질처럼 하얀 모래는 도드라져 보인다. 모래 호수 해안선을 타고 음식점들이 빙 둘러져 있었다. 올레꾼들이 두어 팀 해안선을 따라 돌아가는 육지길로 갔다. 우리 일행은 망설임 없이 양말을 벗고 모래사장에 내려섰다. 백사장이 지름길이기도 하고 모래를 밟아보고 싶었다. 백사장 곳곳에 작은 웅덩이가 파져있었고 바닷물에 젖었던 모래는 축축하고 차가웠다. 신발 안에서 하루 내내 갖혀 있던 발은 차가운 감촉에 시원스레 풀어졌고 아삭아삭 소리나는 백사장을 걷는 마음은 상쾌했다. 결 고운 모래에 새 발자국이 가볍게 새겨져 있었고 그 위를 우리들 몸무게를 담아 푹푹 패인 발자국이 어지럽게 이어져 갔다. 군데군데 바늘땀 같은 구멍이 나 있고 구멍마다 공기방울이 뽀글거리고 그 아래 꼬물거리는 것들이 튀어서 나오기도 했다. 물웅덩이 자갈에는 고동들이 붙어 숨쉬고 작은 웅덩이에 괸 투명한 바닷물이 살랑거렸다. 길고 넓었다. 백사장 건너 먼저 도착한 경숙이가 손짓하는게 보이는데 가도 가도 모래가 끝이 없었다. 표선해수욕장 골목을 뒤져 어촌식당에서 옥돔구이를 먹고 숙소에 전화했다. 올레지기 아저씨가 오신다고 한다. 고마워라. 봉고를 타고 집에 갔다. 중간에 표선의 슈퍼에 들러 무밭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쓰는 것같은 챙이 넓고 목이 가려진 모자를 사고 꾸물 거리는 하늘을 걱정했다. 고마운 올레지기 양말을 벗어 발을 살폈다. 다리는 괜찮은데 왼쪽발에 물집이 잡혀 있었다. 이만한 게 어디랴 발을 씻고 나오는데, 아저씨가 원적외선 장작불에 지지면 물집이없어진다고 나와 보란다. 제주 현무암으로 만든 아궁이에 장작이 타고 있었다. 불 가까이 발을 대고 지난 이야기 하며 노는데 아저씨가 금방 고구마도 구워내고, 한라봉도 따서 준다. 어릴 때 우리가 놀고 있을 때 엄마가 간식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아서 천진하게 즐거웠다. 마루에 들어오니 올레지기 언니와 오늘의 손님 두 분이 계신다. 한라산 소주를 사와서 상에 내 놓으니 이야기꽃이 핀다. 언니는 어린시절 유복하고 행복했던 추억이랑, 자기 집안 자랑이 한창이다. 제주 와서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극복한 이야기 등등 우리는 맞장구나 쳐 주고 많이 들었다. 내일의 5코스에 대한 이야기, 내일 비오니 잘 준비하란 이야기 등등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중간에 방에 들어와서 잤다. 방에 오니 현옥이가 암 검진 받은 이야기도 하고 미란이의 아들 간병기도 이어졌다. 단숨에 잠 들었다. 둘째날, 비오는 남원 쇠소깍 올레 아침부터 짐을 싸느라 여러 생각을 했다. 비가 조용히 촉촉하게 와서 어쩌면 비옷이 없어도 될 것 같고, 어쩌면 오래 비 맞으면 안 될 것같고, 비가 오니 모자도 울로 된 검은 모자는 아닐 것 같고 어제 산 모자는 가방에 넣기 그렇고 해서 짐을 꾸리느라 시간을 보냈다. 미란이는 비옷을 몇 개씩 가져와서 나눠준다. 등산화 위에 방수천을 두르고 있으니 세화의 집 안주인이 신발을 보호해야 한다며 비닐과 고무줄로 다른 친구들의 발목과 신발을 싸준다. 세심한 배려에 마음이 뿌듯하다. 남원으로 가는 봉고차 안에서 아저씨의 말씀이 이어진다. 비오면 참 멋진 코스라고. 비오면 소주 들고 두 분이 한 잔하는 곳이라는데 기대가 된다. 비가 곱게 조용히 오고 가끔은 한꺼번에 몰아서 굵게도 온다. 오늘의 날씨가 가늠이 안된다. 차에 내릴 때 비옷을 다 챙기고 복장을 꾸렸다. 아저씨가 준비를 잘 해 왔다며 칭찬한다. 그래, 우리는 살림 사는 아줌마니까 그렇지. 맨날 남만 챙기다가 눈치가 는거지. 큰 엉 아름다운 산책로 해안을 끼고 산책로가 나 있다. ‘엉’이란 제주말로 바닷가나 절벽의 언덕이란다. 김영갑의 사진에서 튀어나온 듯한 풍경 푸르고 맑은 물빛, 물결 아래 바위들이 이리 저리 엎어져 있다. 바다와 하늘이 한 덩어리가 되어 바다가 하늘에 오르고 하늘이 바다에 내려 앉고 비는 안개처럼 깔리는 바다길. 황홀한 풍경이다. 산책로는 언덕 능선으로 이어져 있다. 바닷바람을 피해서 뒤로 제끼고 누운 나무들(돈나무라고 영이가 말했다). ‘아이고, 내가 못살아’하는 신세타령이 절로 보이고 드러눕듯이 기운 모양이 섹시하기도 했다. 길가에는 화원에서나 보던 열대식물들이 비죽 비죽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계절이 뒤섞인 풀들의 향연이 보기 좋았다. 산책로의 아치를 이루는 나무길에서 어두운 굴 너머 보이는 은은한 빛이 고왔다. 싱그런 나무냄새가 흙에서 나무에서 하늘에서 공기에서 흘러나와 길 가는 우리를 에워쌌다. 산길을 걸으며 산이 주는 선물을 한껏 만끽하며 길을 걸으며 진흙이 이겨진 길도 비오는 제주의 일부라 여기며 걸었다. 어둑어둑하고 축축한 날씨에 친구들과 이리저리 짝을 하며 화제를 바꾸어가며 살아가는 이야기, 아쉬운 이야기를 하며 길을 걸었다. 더러는 동백도 있고 더러는 바다도 보아가며 한 구비 돌 때마다 또 다른 바다가 나타나고 새로운 풍경이 일어나 맞아주었다. 환호하기도 하고 풍경에 압도당해 숨 막혀 가며 사진도 찍고 눈도장도 찍은 긴 바다 길은 정말 멋졌다 미치게 고운 바위들 바다길에 들어섰다. 해녀들이 다닌 길인듯 겨우 한 사람 지나가는 길을 파란 화살표에 의지해서 내려왔다. 바로 아래 바다가 흰 속살을 뒤집어가며 밀려오고 있었다. 바다의 색은 뭐라 말할 수 없다. 각도에 따라 다양한 농도와 색상을 보여주며 인간 언어의 천박함을 비웃어 주는 물빛. 바위 또한 마찬가지다. 맑은 날에는 검게만 보이더니 속에 품은 온갖 색깔을 한껏 드러낸다. 붉은 빛 푸른빛 흰빛 구리빛을 활짝 펼쳐 보이며 빗물을 감고 반짝이는 보석이 되었다. 한라산에서 날아올 때부터 원래 그랬다는 듯 오밀조밀한 모양을 두루 뽐내며 유연한 선으로 무늬를 입힌다. 맑은 날은 입체감이 없어 그저 펑퍼짐해 보이더니 뿌연 비안개와 물기 때문에 도드라지고 처지고 각이 날아오르면서 정감 있는 예술품 같다. 바위에서 화산 냄새가 날 것 같다. 오랜 세월 만들어진 땅의 긴 역사를 증언이나 하듯이 바위는 저마다의 언어로 말을 걸어 오고 있었다. 뒤로 하고 걷는 마음이 안타깝고 아쉽다. 다시는 이런 풍경을 보지 못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나고 서글퍼져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공천포, 검은 모래사장 바다를 낀 산책로에 올라와 한참을 가니 가도 가도 선경이 펼쳐지는 바닷길. 예쁜지 아닌지도 모르게 아름다움은 우리를 압도한다. 미적 감각은 없어지고 그저 좋기만 하다. 비는 그쳤다가 오다가를 반복한다. 비옷을 벗고 가볍게 나서는 길도 좋고, 비에 젖어 더 진하게다가오는 나무와 바위를 보는 것도 더욱 좋다. 바다를 낀 산책로는 무성한 나무 덤불에 가리기도 하고 툭 트여 시원스레 보이기도 한다. 가끔 앞이 가로막힌 올레길에서 잡목 가지를 자르고 시야를 틔우는 무리를 보았다. 올레를 살리려고 하는가 싶어 좋기도 하고, 또 다른 훼손이 걱정되기도 했다. 발 아래 시꺼먼 바닷가가 보인다. 화산석을 포개놓은 오밀조밀한 색과 달리 아스팔트처럼 검다. 여기가 공천포 검은 백사장인가 보다. 제주 사람들이 여름이면 노동에 지친 몸을 모래찜질로 달래주는 곳이란다. 관절이며 신경통이 낫는다나. 어제 본 표선모래사장은 검은 해안선 가운데 새하얀 호수더니 공천포는 새까맣다. 제주는 참 신기한 곳이다. 내려가는 길이 애매했다. 좁은 길이 가파르게 나 있는 걸 손으로 디뎌 가며 내려갔다. 바위 아래 모래사장은 돌이 부서진 건지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새까맣고 정밀한 입자들이 신발을 옆으로 기분좋게 밀려왔다. 그 앞에 바닷물이 부서지며 들이치고 있었다. 쇠소깍의 태우 5코스를 출발하기 전 올레지기 아저씨가 쇠소깍을 봐야한다고 했다. 제주 사람들도 잘 모르는 절경이라고. 쇠소깍의 태우 이야기도 하셨다. 태우란 뗏목의 제주말이란다. 바다쪽에서 육지쪽으로 줄을 매어 놓고 태우를 탄 사람들이 줄을 잡고 천천히 전진하는 배란다. 진주에서 본 줄배와 같은 건가 보다. 동네 청년회에서 운영하는데 비 오면 안한다고 이 정도의 비에는 어떨지 모르겠다고 했다. 쇠소깍에 오니 비는 별로 안 온다. 멀리서 보니 검은 벼랑이 보인다. 움푹 움푹 굵은 주름처럼 깍인 자국이 있다. 깔끔하게 단장된 윗길도 있고 아래로 내려가는 흙길도 보인다. 아래로 가까이 가 보았다. 전망대 정자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검은 벼랑이 도도하게 이어져 내려오다 물 가까이는 진하고 붉은보라색으로 되어 물 위에 띠를 두른 것처럼 보였다. 계곡처럼 패인 양쪽이 모두 그러해서 물 담은 양재기처럼 보였다. 물빛은 정말 맑고 투명했다. 연초록빛이 감도는 물 속에 검거나 붉은보라의 큰 바위들이 연초록 물빛을 이고 드문드문 보였다. 날렵한 선녀가 어디서 나타나거나 산신령이 허연 김 속에 나타나 술 한 잔을 건네도 당연하게 보이는 풍경이었다. 아! 좋아라. 계곡 따라 한라산의 물이 내려와서 모래톱에서 태평양의 물을 만나 하나가 되어 바다로 흘러가는 곳이었다. 계곡이 죽 길었다. 전망대가 서너개 있고, 전망대마다 경치는 서로 달랐다. 어느 곳은 물이 참 좋고 어느 곳은 바위가 두드러지고 정말 환상적이었다. 모래톱은 쇠소깍과 바다를 한 번에 볼 수 있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사람들이 아쉬운 마음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물 가운데 흰 줄이 놓여져 있고 줄을 따라 바다 쪽에 나무를 얼기설기 엮은 태우가 있었다. 태우는 물에 떠서 흔들거리고 아무도 없었다. 태우를 한번 타 보려고 마을 청년회에 전화를 하고 주변 가게에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비 와서 안한다’ 였다. 아깝다. 이중섭 미술관과 미루나무 까페의 차 한 잔 5코스를 마치니 아직 해가 남았다. 택시에 나누어 타고 이중섭 미술관에 왔다. 여기는 6코스 중간지점이다. 우리는 6코스를 걷지 않는다. 이중섭 화백이 제주에 피란와서 살던 집이 있고 그 옆에 미술관이 있다. 미술관 주차장에서 만나 올라갔다. 이중섭 거주지는 제주식 초가이다. 이 초가의 곁방을 6.25로 피란 온 이중섭의 가족이 살았다. 가난과 고통에서 산 이중섭의 일생에서 가장 행복했다는 시절인데 여기서 해초도 주워먹고 어렵게 살다가 생활고로 결국 아이와 부인을 일본으로 보낸다. 이게 네 명 살던 방이라니!! 어른 하나 누우면 발이 닿고 손이 닿을 방 하나, 벽에 시가 하나 붙어 있었다. 아무리 예전이라 해도 너무 초라하고 답답하다. 부엌이었을 통로도 좁아터져 둘이 들어갈 수 없는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미술관은 너르고 번듯했다. 이중섭 작품은 담배갑에 아이들을 그린 거 좀 있고 황소그림 복사본 같은 게 보였다. 이중섭의 황소는 ‘워낭소리’에 나온 일소였다. 어깨가 떡 벌어지고 근육이 장대한 일소가 고달픈 눈빛을 던진다. 이곳의 압권은 이중섭이 부인 남덕에게 보낸 엽서와 편지였다. 아기자기하고 닭살스런 사연이 가득 찬 편지는 남덕을 지칭하는 수많은 수식어가 낯이 간지러웠다. 요새 아이들이 애인에게 보내는 편지보다 더 낭만적이고 꿈에 가득찬, 그리워하는 마음을 주체 못하는 말들을 50년대에 주저없이 늘어놓은 그 편지에 입이 벌어진다. 이중섭은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가족과 예술이 이 세상의 중심인 사람, 이 세상 어느 것도 이것보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었나 보다. 그 시대에 이런 편지를 보내다니 시대가 사람을 몰라 볼 게 뻔하다. ‘꽃남’의 대사로 쓰면 잘 어울리는 이중섭의 편지는 감동적이다. 이중섭 거주지 아래 미루나무 까페에 갔다. 어둡고 좁은 내부가 마땅치 않았지만 쉰다는 게 정말 좋았다. 더구나 까페 오른편에 장작이 타는 난로가 빨간 불빛을 비추고 있었다. 난로 가에 둘러 앉아 신발을 벗고 젖어서 허애진 발을 불에 대는데 기분이 정말 좋았다. 까페 뒤쪽으로 가니 문을 틔운 방이 보이고 주인의 솜씨인 듯한 아이 그림이 있었다. 그 안쪽이 부엌이었다. 문을 나서 화장실에 가는 계단에 올라서니 이 집의 전체 모양이 보였다. 제주 옛집을 그대로 두고 내부를 개조해서 만든 집이었다. 아이그림이 있는 방과 부엌 작은 공간이 옛집 그대로였다. 소박하게 정성들여 꾸민 화장실을 나오며 다시 보아도 참 멋진 까페였다. 제주옹기의 도도함 저녁을 먹으러 음식점 ‘안거리 밖거리’로 갔다. 고 고우영화백 부인이 운영하는데 진짜 맛있다고 세화의 집 안주인이 강추한 음식점이다. 옹기가 포개진 선반이 벽 역할을 하였다. 보리밥 정식을 시켰다. 반찬이 눈이 휘둥그레지게 많고 맛깔스러웠다. 우리를 위해 이렇게 거창한 밥상을 주시는 게 고마웠다. 올레꾼들이 두 세 사람 보이고 바로 옆 식탁에는 삼대가 섞인 가족끼리 외식하며 제주 사투리로 얘기했다. 선반의 옹기를 보니 뚜껑 깨진 우리집 다기와 광택이 똑같았다. 어디를 가도 같은 걸 찾아보기 힘들더니 제주옹기였나 보다. 광택이 은은하고 도도하고, 단단하면서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옹기였다. 선반에는 국그릇 밥그릇 접시들이 있었고 앞쪽에는 더 큰 그릇들도 보였다. 다기도 있냐고 물어보니 ‘대정’이라는 곳에 가면 볼 거라고 한다. 제주로 가는 길에 있단다. 일정상 이번에는 가기 힘들겠지만 다음에 오면 보러가야겠다. 이중섭 거리와 시가지 숙소로 가려고 전화하니 거리가 멀어 바로는 못간다고 길을 알려준다. 동문 사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표선으로 오면 나오시겠단다. 동문사거리는 이중섭거리를 걸어 구부러진 길을 걸어 간다고 한다. 이중섭 거리는 축제할 때처럼 표지들이 줄지어 있고 길 가에 자그마한 가게들이 이어져 있었다. 대형마트 말고 가게가 늘어선 길을 걸어본지 참 오래 되었다. 작은 도시의 시가지를 횡단하는 기분이었다. 능선을 올라가 대형 아케이트가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걸었다. 아케이트 안에는 활기있고 호화로운 쇼핑센터의 흥겨움이 느껴졌다. 오른쪽 길은 능선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었다. 이런 저런 가게의 진열장을 보며 즐기면서 재미있게 동문사거리에 왔다. 버스를 타고 표선에 오니 아저씨가 봉고에서 내리신다. 정말 반가웠다. 이틀간 정이 들었나 보다. 숙소의 마지막 밤 숙소로 돌아왔다. 좀 익숙해져서 우리집처럼 정답다. 다리가 불편한 미란이는 대문에 들어오자마자 장작불 옆으로 달려간다. 붉은 제주돌로 주변을 싸고 장작이 활활 타는 아궁이 위에는 고구마가 구워지고 있다. 올레지기 언니가 우리보고 ‘불 좋아하는 것들’이라며 놀린다. 나중에라도 불 좋아하는 부산 것들로 기억하겠다고 한다. 교대로 장작불에 피곤한 발을 지지고 오니 온 몸이 상쾌하다. 원적외선이니 뭐 그런 거 몰라도 따뜻하고 포근하고 아늑하고 정답고 그리운 뭔가가 들어있는 불빛이다. 마루에 나오니 오늘 새로 오신 손님이 계신다. 교수님 같은 인상에 혼자 여행을 많이 하신 분 같다. 텔레비전에서 킬로만자로 등산하는 프로그램을 내일이라도 갈 것처럼 열심히 보신다. 안주인이 참 좋아하는 게 느껴진다.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토지 이야기, 서희 이야기, 진주 이야기를 하다가 방에 와서 짐을 꾸렸다. 내일은 비가 안 온다니 짐을 다 넣고 간단히 가도 되겠다. 가져온 큰 가방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중요한데 내일 가는 8코스 끝에 있는 ‘대평슈퍼’에 택시로 배달시키고 간단히 지고 가기로 했다. 무거운 가방을 메지 않아도 된다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아쉽다. 오기 쉽지 않은 제주 여행, 두고 가는 것이 소중해서 아쉽기만 하다. 8코스 흐림. 8코스 출발은 월평포구이다. 차를 타고 월평으로 가려는데 주인 부부가 부산하다. 두 분이 오늘 제주에 볼 일이 있어 함께 나간다고 한다. 부엌도 대충 치워놓고, 거실도 정돈해 두고 왔다 갔다 바쁜데, 텔레비전은 여러 소식을 전하느라 진지하게 떠들어 댄다. 우리 일행은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고 짐을 챙겼다. 혹시나 남겨둔 물건이 없도록 구석구석 찾아보고, 주인 없는 물건은 누구 건지 일일이 물어주며, 빈 공간 없이 짐을 쟁여넣고 가방의 균형을 잡고, 사이사이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먼저 챙긴 사람은 이불을 개고 베개를 정리했다. 편안했던 방바닥에 드러누우니 집안일에서 멀어진 며칠이 참 여유로워서 고마웠다. 차가 출발하자 멋진 가로수가 늘어선 길이 나타났다. 주인 아저씨가 잔밤을 주웠다던 나무인데 민박하던 아가씨가 한 되를 그냥 앉은 자리에서 까먹은 이야기가 늘어졌다. 잎이 우거지고 밤이 열리면 이어진 그 길이 멋질 것같았다. 적당한 위치에서 짐을 ‘대평슈퍼’에 보내기로 했는데 위치를 설명하느라 또 한참이다. 외지인으로 정착한 이 분들은 사람을 참 좋아하신다. 잘해 주셔서 고마웠고 친절한 마음을 배운 것 같아 고마웠다. 세화언니의 가방 서비스 차창 밖으로 한라산이 하얀 얼굴을 드러낸다. 하늘이 개이면서 먼지 하나 없이 한라산 봉우리가 나타난다. 참 드문 일이라고 제주 사는 여인네가 연신 바라본다. 석고상처럼 명암을 준 한라산의 굴곡이 곱다. 봉고차의 지붕 덮개를 올리고 몸을 내밀었다. 바람은 차다. 차는 주유소에 들어섰다. 우리는 화장실에 가려고 내렸다. 주유소에서 한참 시간이 걸렸는데 현옥이가 늦게 차에 타서는 “계산을 했다”고 그냥 가면 된단다. 센스!! 미처 그런 생각은 못했다. 민박집의 인심 덕분에 예상보다 비용 적게 들이고 여행할 수 있어 어제 제주 올레에 기부금을 조금 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싶었는데, 그래 이런 방법도 있구나!!. 부부가 참으로 황당해 하며 한편 고마워하신다. 기름도 넉넉하고 내친 김에 대평 슈퍼에 들러 가방을 전해주고 가겠다고 한다. 우리도 믿음직하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고맙다. 우리를 월평포구에 내려주고 코스 끝의 대평 포구에 갔다가, 서쪽으로 제주도를 빙 돌아 제주시에 가신단다. 끝까지 배려해 주시는 분들이 있어 기분 좋은 여행이다. 대포포구. 차가 지나가는데 올레꾼처럼 보이는 사람이 어느 골목으로 들어간다. 여긴가 저긴가 입구를 못 찾아 이리 저리 보는데 차는 이미 앞서 나간다. 길가에 올레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출발지 월평포구를 지나친 듯 했다. 밭 사이의 좁은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간편한 가방만 챙겨 여기서 내려 바다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걸었다. 거무스레한 돌담과 파란 마늘밭이 펼쳐진다. 아름답고 소박하고 몸에 착 달라붙는 익숙한 제주의 풍경이다. 곧 바다가 나타나고 제주 올레의 길잡이 파란 화살표가 보였다. 대포 포구다. 조용한 항구에 배가 여러 척 정박해 있다. 파도를 피해 방파제를 만들고 배를 넣는, 어디나 흔한 지혜가 깃든 항구들. 항아리같이 동그란 공간에 배들이 옹기종기 붙어서 흔들리는 모습은 평화롭고 단조롭다. 마늘밭처럼 익숙하고 다정한 풍경이다. 해안을 따라 길이 이어지고 있다. 집 몇 채만이 길 가에 서 있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중문단지의 여든 살 해녀 길 따라 가다보니 웬 걸! 멀리 호텔이 보이기 시작한다. 사진에 나오는 제주의 관광호텔이 해안을 따라 죽 이어져 있다. 올레에 익숙해져서 인지 관광지가 보이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해안가에 해녀들이 물질을 하고 있었나보다. 멀리 바닷가에서 까만 점들이 해안으로 점점 가까이 오더니 그물에 해산물을 가지고 바다에서 걸어 나온다. 신화의 한 장면 같다. 신이 점지한 사람들이 바다에서 나와 나라를 세우고 삶을 일구고 사는 이야기들. 그 먼 거리를 혼자 헤엄쳐 오는 해녀들이 대단해 보인다. 물에서 나와 모자를 벗는데 세상에! 다 나이들이 들었다. 검은 머리가 섞인 희끗희끗한 머리칼이 바람에 날린다. 물에서는 물개처럼 자유롭더니 육지를 걷는 걸음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바싹 마른 몸에 등도 굽고 다리도 불편하다. 지고 가는 그물이 무거워 보인다. 오르막길을 가며 천천히 오르는 해녀에게 말을 붙여 보았다. 나이다 여든이란다. 아직도 물질은 몇 년 더 잘 할 수 있단다. 숨이 차고 힘들어 보이는데도 이마에는 자부심과 의지가 가득하다. 그물 속에는 낙지가 한 발을 주욱 뻗으며 의뭉스럽게 뻗대고 있다. 생기가 가득하다. 시장에서 보던 것들하고는 정말 다르다. 전복도 고기 한 마리도 반짝거린다. 조금만 가면 해녀들이 잡은 것을 파는 곳이 있다고 거기 가서 사 먹으라고 한다. 오르막길이 끝나니, 집들이 듬성듬성 늘어서 있다. 한 채 한 채 멋스럽고 편안해 보인다. 중문단지란다. 관광객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보기 좋은 차림의 관광객이 많다. 사람이 많은 관광지라 불편하기도 하다. 끝없이 펼쳐지는 주상절리 길 주상절리가 길 아래 있다기에 내려갔다. 사진에서 많이 봐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해안가 바위를 곱게 잔주름을 접어 세워 놓은 것같다. 하늘로 뻗어나간 거대한 바위는 그 끝이 안 보이는데, 접힌 면은 칼로 깍은 듯이 예리하고 단정하여 천상 조각품이다. 경이로웠다. 화산의 장난인지 파도의 흔적인지 저렇게 바위를 다듬어 놓을 수 있다니.... 더욱이 흐린 날씨인지라 바위의 검붉은 색은 사람을 잡아끌었다. 사진 속의 주상절리는 자그마한 조각품처럼 보였다. 규모가 너무 커서 망원렌즈로 멀리서 잡아 찍어야 전체 모양이 보이기 때문이리라. 막상 실물을 보니 규모에 놀라고 그 섬세함에 다시 놀라게 된다. 게다가 불그스럼하게 버티는 바위 아래 투명하게 넘실대는 바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힐 때마다 바다는 희고 고운 속옷의 레이스를 휘날리듯 펄럭이고 있었다. 한 모퉁이를 돌아 관람대에서 보는 경치도 아름답고, 다시 한 모퉁이를 돌아 있는 관람대도 떠날 수가 없었다. 다시 길을 걸어 앞으로 가야하는 것이 아쉬움의 연속이었다. 주상절리를 뒤로 하고 다시 중문단지로 올라왔다. 계단 끝에 해녀 한 분이 해산물을 팔고 계신다. 팔딱거리는 생선, 해삼, 전복이 그릇에 가득하다. 침 흘리고 바라보다 조금만 먹기로 했다. 소주와 횟거리 앞에 절경이 멀리 보인다. 한 잔이 달고 상큼했다. 아마도 이 맛을 잊기 어려울 거라 생각하며 아껴 먹었다. 중문단지를 뒤로 하고 정원을 따라 바다로 걸었다. 호텔의 정원이라 풍경화처럼 멋지다. 옹기가 가득 놓여 있기도 하고, 방갈로가 귀엽게 나타나기도 하고, 꽃이 피기도 했다. 숨쉬는 공기처럼 바다가 한 쪽에 붙박이로 늘어서 있고 한 편은 사람이 꾸민 정원과 집들이 어우러져 보기 좋았다. 낙지와 경숙이 어느 호텔 마당에서 화살표는 아래로 내려갔다. 계단 아래 길이 있고 저 멀리 바다길을 따라 다시 주상절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올레꾼들만 다니는 길이다. 자갈길을 따라 주상절 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함께 이어졌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내려오니 여러 해녀들이 손님에게 회를 팔고 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까만 고무옷을 입은 그대로 고동을 삶고 회를 쳤다. 우리는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여기를 그냥 지나치면 아쉬워할 것 같았다. 물에서 건져낸 생미역을 먹고, 고동도 먹고, 생선회, 멍게, 해삼을 조금씩 섞은 한 두 접시였다. 바다에서 갓 올라온 것이라 모두 바다 냄새가 났다. 발 아래 철썩이는 맑은 바닷물과 소주가 구분이 안될 만큼 모든 것이 맑고 바다였다. 우리는 바다가 내준 회거리와 소리, 색깔에 취해 일어설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경숙이가 지나간 시간의 속이야기를 했다. 충격이었다. 강단 있고 야무지고 매력적이고 가족의 지지를 받는 것같아 부러워했는데, 그런 아픔도 겪는단 말인가? 살짝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지나간 이야기라 쿨하게 정돈해서 말하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바다에서 흘러나오는 전설처럼 들렸다. 발동이 걸린 경숙이가 회를 더 사고 미역을 더 먹고,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제주 어디메쯤 다 쏟아두고 가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털어놓았다. 시간이 정지한 듯 우리는 이야기에 빠져 들어갔다. 지나갔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 시간에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듣고 흘리고 듣고 흘리는 그 시간을 바다가 오가며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처럼 씩씩하게 길을 걸으며 가지 않는가? 상처가 훈장이 되고 자부심이 되어가며 나이 먹고 살지 않는가? 주상절리의 신비 다시 길을 나섰다. 자갈길 사이에 노란 모래밭이 보였다. 첫날은 표선의 하얀 조개모래를 보았고 다음날은 까만 찜질모래밭, 오늘은 노란 모래를 본다. 제주는 참 재미있는 곳이다. 길 옆은 주상절리가 병풍처럼 드리워져 더 접근하지 못하게 육지 쪽을 막고 있다. 노란 모래밭에 잠시 앉았다 길이 꺽이는 곳까지 왔는데, 영이하고 경숙이가 모래밭에 누워서 오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노래 소리도 들린다. ‘그래, 안 가면 어때? 이렇게 쉬고 놀고 이야기하려고 나선 길인데...’ 바위에 앉아 신발도 오랜만에 벗어본다. 땀에 절어서 발이 하얗다. 병풍 같은 절벽 아래는 동그랗게 안으로 파여 있다. 안쪽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먹어보니 민물이다. 해안가에 샘이 있다더니 정말인가 보다. 절벽을 타고 몇 줄기씩 맑은 물이 떨어지는 곳이 여기저기 있다. 영이나 경숙이는 모래밭에서 신발도 벗고 쉬는 것 같더니 금방 차비를 차리고 다가온다. 기분 좋은 얼굴이다. 길이 꺽이는 곳은 절벽이 고리처럼 천정을 이룬 짧은 동굴이다. 바위를 큐빅처럼 깍아서 천정을 만들고 벽은 폭이 풍성한 천으로 주름을 잡은 주상절리다. 바닥의 돌에 누워 보니 궁전의 회랑처럼 아름답고 품위 있다. 세월이 파도와 바람을 사용해서 깍은 아름다운 신전이다. 이야기가 있는 바다 별장 길고 밋밋한 바다길이 이어진다. 자갈길이다가 흙길이다가 바다를 붙박이로 달고 가는 길이라 지루하기도 했다, 하늘이 개이면서 구름이 그린 것처럼 곱다. 바위는 검붉은 빛이 났다가 흐린 날씨의 햇빛으로 명암을 받아 다양한 층을 각가지 색을 뿜어낸다. 검은 백여 가지와 붉은 빛 백여 가지가 포개지고 이어지는 바위길은 수채화이다. 게다가 태호석처럼 물결무늬가 돌출된 바위들이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다. 어느 집 정원에서 사랑받을 돌들이 여기서는 천지삐까리이다. 귀한 것이 지천이 이곳 역시 제주다. 김영갑의 사진에 나오는 명암이 고루 섞인 구름덩어리들이 햇빛과 어우러져 만드는 그림은 참 신비롭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순간의 예술이 펼쳐졌다. 사라진다. 길을 가다 이제 다 와 간다 싶은 곳에 자그마한 별장이 서 있었다. 별다른 장식이 없는데도 눈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정원의 나무들이 날림으로 심은 것이 아니고 하나하나 조형과 각도를 맞춰서 짜임새가 있었다. 집도 어디나 볕이 잘 들게 창들이 동그랗게 나있고, 드나들기 폭의 복도와 쓰기 좋은 크기의 방이었다. 1층 방 앞에는 유리문 앞으로 바다를 향한 앞마루가 보였다. 완만한 곡선을 내밀며 부드럽게 휘어지는 마루는 참 매력적이었다. 집 앞 길 너머에는 식구들이 바다를 보며 밥을 먹을 정원석이자 식탁이 있고 주위에 작은 화단을 놓았다. 집 앞 바다는 양 옆이 막혀 오롯이 이 집만을 위한 해수욕장이었다. 돌들을 골라 편하게 내려가게 정돈한 흔적도 있고 파도도 알맞게 철석이며 돌 사이에 앉을 자리도 넉넉했다. 누가 살려고 이 집을 지었을꼬? 다른 올레꾼들을 다 지나쳐 보내고 우리는 빈 별장을 돌며 감탄을 했다. 아마도 본인이 살기위한 집일거다. 누군지 참 복도 많다. 등등 곳곳에 침을 흘리고 묻히고 나지막한 담 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주변을 보고 있었다. 차가 한 대 집 앞에 선다. 부유해 보이는 신사가 차에 내려 이 집을 다정하게 보더니 우리를 본다. 우리가 집이 너무 좋아 못 떠난다고 너스레를 떨자 구경해 보라고 자세히 안내를 해 준다. 건축일 하시는 사장님이시란다. 여기서 살려고 지었는데 아내가 제주시에서 꼼짝도 안해서 결국 팔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쉬워 한다. 이 자리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내장재 하나하나 설계 하나하나 공들여 지은 집이라하신다. 집 앞 바닷가에 민물이 난다고, 바닷가 샘이 있다고 말씀하시며, 내려와 보라 하신다. 돌을 밟고 건너 가니 바닷가 터가 제법 된다. 바위 아래 작은 샘이 있다. 물을 먹어보니 삼다수 그 맛이다. 물은 제법 양이 많다. 2미터 앞이 바다인데 이런 물이 솟다니, 참 신기하다. 물이 솟는 바위 위에는 손을 쌓은 돌탑이 소나무 건너 보인다. 하나밖에 안 보이는데 두 개란다. 예전에 이혼하려는 부부가 육지에서 무작정 제주에 내려와서 이 곳 샘 옆에서 텐트를 치고 한 달을 살았다 한다. 아내와 남편이 한 달동안 각각 돌탑을 쌓고 여기서 자고 먹으며 앞으로의 나날을 생각했다고. 한 달이 지나자 육지로 돌아가 지금은 계속 함께 산다고 한다. 그래, 그 정도의 성의가 되는 부부라면 그럴 수 있지. 올 때는 죽으려는 각오로 제주에 왔겠지만 바다와 파도, 섬이 주는 삶의 여유라면 그럴 수 있지. 자연은 공짜로 물도 주고 땅도 주고 파도소리도 주고 다 베푸는데 한 달동안 배웠으면 마음이 부자가 되지. 이혼을 하려면 이런 데서 함께 살지 말아야겠다. 독한 마음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군. 13억, 이 별장의 가격이란다. 그럴 만 하지만 대단하다. 10 억 정도면 팔 수 있다고 한다. 부자는 좋겠다. 지을 동안 행복했고 볼 때마다 좋을 거고..... 다시 길을 나선다. 바다길의 연속이다. 마늘밭건너 바다가 보이는 찻집(정선우감독) 마을로 들어서자 나지막한 검은 돌담과 파랗게 피어나는 널찍한 마늘밭이 층층이 펼쳐진다. 첫날은 무 받이 돌담으로 층을 지어 나타났고 오늘은 온통 마늘밭이다. 싱싱한 푸른 빛과 제주 돌담은 동화 속 마을 같다. 대평포구에 들어섰다. 어디나 보던 포구 풍경이다. 어촌 풍경은 참 화려하다. 낡아 보이는 어선도 하늘색, 빨간 색으로 알록달록 어울리고 그물도 한 색을 보태고, 그물 옆 하얀 스티로품들도 화안하고, 물색, 하늘색, 방파제 색까지 무엇 하나 획일적인 것이 없다. 온통 색깔 잔치이다. 거기다 마늘밭 돌담 집 안팎의 색채까지 다양하기 그지없다. 대평포구를 한 바퀴 도니 9코스 시작점 너머 해안절벽이 보인다. 바다 위에 깍아지른 절벽이 서 있다. 저 절벽 위 길이 9코스란다. 경치가 참 좋겠다. 해안 마을의 풍경이 기가 막힌다. 마늘밭 한 가운데 집들이 보이고 다른 편에 바다도 보인다. 대평 포구에 찻집이 유명하다기에 가 보기로 했다. 길을 걷다 보니 벌써 다른 찻집이 하나 더 생겼다. 육지 사람이 하는 찻집답게 디자인 북에서 빠져나온 듯한 모습이다. 내부가 참 재미있게 생겼다. 들어가 보고 싶은 집이다. 정선우 감독이 하는 찻집은 마늘밭 한 가운데 있었다. 초록색 밭 사이에 낮은 집이 있어 정스럽기도 하더니, 마당에 들어서니 그 너무 바다가 보인다. 멋지다. 나무 몇 그루가 심어진 정원도 무심한 듯 아기자기하다. 바깥 탁자에 앉아 보는 경치도 낮은 돌담에 앉아 보는 경치도 그림 속으로 걸어들어 온 것 같다. 스며들어 다시 일어서지 못하게 사람을 취하게 한다. 안쪽에서 주인이 나와 들어오란다.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 중앙 탁자에 앉으니 유리문 너무의 마늘밭, 바다. 돌담 두 줄, 절벽까지 정말 아름답다. 좁은 실내에는 방도 있고 구석도 있고 평온하다. 시골 집을 개조한 까페는 비좁은 듯, 정겨운 듯 마음이 절로 풀어진다. 대평슈퍼의 한라산 짐을 찾으러 대평 슈퍼에 오니 사람이 없고 가게 한 켠에 우리 가방들이 세워져 있다. 바깥문이 열리더니 활달한 여자분이 들어온다. 주인인가 보다. 우리를 기다리다 나갈 일이 생겨 안 그래도 마음이 바쁘시단다. 현지에게 줄 ‘한라산’ 소주를 찾으니 많이 없다고 한다. 뒤져서 소주를 나눠서 샀다. 강한 것 3개, 약한 것 3개 물 맛이 좋으니 소주도 맛있다. 집에서 마시면 이 맛이 날지 모르지만. 경숙이가 민박집을 봐야한다고 우리를 끈다. 민박집은 아파트 식으로 아예 집 한 채를 다 내준단다. 가족끼리 오면 좋을 것 같다. 깔끔하고 정돈된 집이 보기 좋았다. 담에 오면 여기도 좋을 것 같다. 안에 민박하시는 분이 제 집처럼 편안하게 누웠다 일어난다. ‘해녀의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해안가 여기저기에 해녀의 집이 많았는데 드디어 한 번 들어가 보게 되었다. 저녁은 깔끔하고 맛깔졌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출발, 비행기를 탔다. 아쉽고 감질 나는 여행이었다. 여행 직전 다리를 다친 명숙이와 다시 오자고 하며 비행기는 출발했다. |
출처: 추임새 인격을 향한 한 걸음 원문보기 글쓴이: 추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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