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강재(鳳岡齋.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기남길253번길 74)
봉강재는 파평 윤씨의 시조인 태사공 윤신달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1751년에 창건한 재사로서, 조선 중기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평면구성이 독특하며 치목수법이 우수, ㄱ자형 팔작지붕에 겹처마로 정면 6칸, 측면 4칸의 구조로 되어 있다. 평면상으로는 통문5칸의 온돌 강당 전면에 툇마루를 놓고 우측에 중문의 원로인이 거처하는 고문실이 온돌 2문으로 연립하고, 그 전면에 통문 루가 강당 우측 ㄱ자 평면 끝에 자리하고 있다.
강당의 좌측단 온돌 1칸은 1977년 보수할 당시 부엌칸을 개수 변경한 것이다. 강당천장은 고미반자로 처리하였고 루(樓)는 처마도리 위에 대들보를 걸고 그 위에 판대공을 이용하여 원형 종도를 받는 3량(樑)을 채택하고 있다.
기둥은 모두 원주를 쓰고 도리도 모두 굴도리를 사용하였으며 주요 구조부재(構造部材)의 치목(治木)은 주로 도끼나 자귀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재사 전면 좌우측에 동서재는 195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구조적으로 별다른 특색이 없고 각주에 납도리를 사용한 홑처마 박공와가로 구성되어 있다.
재사(齋舍) 우측의 회의실은 1981년에 신축한 철근 콘크리트 라멘조(造)로 지붕은 겹처마팔작와가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통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출처:포항시청)
‘조선씨족통보’와 ‘용연보감’ 등의 문헌에 따르면, 윤신달은 파주 파평산 기슭에 있는 용연지라는 연못 가운데에 있던 옥함 속에서 출생했다고 한다. 그가 태어날 때 겨드랑이에 81개의 비늘과 발에는 7개의 검은 점이 있었고, 손바닥에는 윤(尹)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성을 윤(尹)으로 하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는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에 기여하였으며, 그 공으로 벽상삼한익찬이등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의 관작을 받아 후손이 그를 시조로 받들고 본관을 파평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기계면 봉계리에 파평 윤씨 시조 윤신달의 묘와 재실인 봉강재가 있다.
관향인 파주시가 아닌 포항시에 시조의 묘가 있는 것은 윤신달이 동경(現 경상북도 경주시)대도독으로 30여 년간 재임하다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