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읽었던 심청전을 다시 읽어보니, 당시에 생각하지 못했던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효의 상징을 심청이라고 할 정도로 심청이가 효심이 크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공양미 300석이 있더라도 심봉사의 눈이 떠질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심청이가 없으면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큰 심봉사를 나두고, 인당수에 몸을 던지는 결정을 내리는 심청이가 이해가 안됐다. 또한, 공양미 300석을 구할 때도, 장승상 부인이나 마을 사람들에게 부탁을 할 수도 있었는 일을 왜 자기희생을 통해 구하고자 했는지 의문이다. 두번째 의문은 심봉사에게 공양미 300석이 있다면 눈을 뜰 수 있다고 말한 스님과 심봉사이다. 공양미 300석으로 심봉사의 눈이 무조건 떠진다는 보장이 없기에, 스님의 말은 심봉사에게 해결책이라기보단 헛된 희망을 품어주는 것에 가깝다. 이때, 경제적으로 심청이에게 의존하고 있는 심봉사가 덜컥 스님의 말만 듣고 공양미 300석을 마련하겠다고 결정을 내린 것 또한 의문이었다. 부모로서 어린 딸에게 의존하는 심봉사가 딸에게 공양미 300석을 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심청이에게 큰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심청전을 다시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심청전을 평면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