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천리 평촌 성당에서의 아쉬움을 안고 그냥 돌아서자니 섭섭하여 이 근처가 고향이라며 평소 고향 마을에 오래된 성당이 있다고 자랑을 삼던 지인을 떠올렸다. 휴일이라 혹 고향집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했다. 짐작대로 마침 시골집에 있으니 들러서 점심이나 같이 하자는 전갈이다. 그가 가르쳐 준대로 죽산면 어은리로 향한다.
평평한 논 한 뙈기 없는 산골이다. 이 척박하고 가난한 동네에서 농사를 지어 7형제 모두를 훌륭하게 키워내신 지인의 부모님이 존경스럽다. 계곡물이 흘러내리는 다리를 지나 지인의 집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자연을 정원으로 이용하고 있는 전원주택이다. 홀로 되신 아버님이 지키고 있는 고향집에 휴일이면 틈 나는 대로 형제들이 모여서 함께 농사를 지으며 아버님을 보살피고 있는 참 건강한 가족이다.
인정 넘치는 푸짐한 밥상을 받아 놓고 푸지게 점심을 먹었다. 5,000 천 포기나 되는 고추 모를 심는다는데 방해가 될까봐서 서둘러 집을 나서며 지인이 가르쳐 준 '어은 공소'로 향한다.
국도변 '어은 공소'를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고 계곡을 따라 난 길을 한참을 들어와 지인의 집을 찾았는데, 거기서 또 골짜기로 몇 분을 더 달린다.
이제 제법 깨끗하게 단장된 아담한 마을이 보인다. 참 깊은 산골이다. 좀더 시선을 멀리 하니 마을 앞 다리 건너에 성모상을 안고 있는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정갈하게 앉아있다. 바로 저 건물이다. 지인의 자긍심 묻어나는 "우리 동네 성당은 오천리 성당 건물과는 비교도 안 된다."는 말처럼, 한 눈에 봐도 남다른 내력과 전통을 지닌 건물이다. 찬 기운 탓에 세상 구경 나오려던 새잎들이 잠시 주춤거리는 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는 앞 마당은 제법 널찍하다.
공소라는 것도 난생 처음 보는 것이지만, 한옥으로 된 성당의 모습을 보는 것도 처음이다. 내부를 들여다 보니 벽에 달려 있는 시계의 빨간 불빛이 현재 시각을 알려 주며 우리을 반긴다. 조금 전에 보았던 오천리 평촌 성당에서 받은 실망이 되살아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사람의 온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이 어은 공소에서는 지금은 정기적인 미사나 공소예절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씩 미사가 봉헌되고, 피정행사가 있을 뿐이라니, 사람이 없는 농촌 마을에서 이 정도라도 관리되는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 같다. 건물 주변을 돌아보니 겨우내 눈에 밀려난 지붕의 너와들이 마당으로 떨어져 부서진 흔적들이 보여 안타깝다.
지인의 말에 의하면 '어은골'의 '어'는 고기 '魚', '은'은 숨을 '隱'이라 하니 이 깊은 산골 마을 어은골은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어 이룬 교우촌이며, 어은골 주민 대부분은 천주교 신자로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단다. '어은 공소'는 이 마을의 자랑거리이면서 옛 어른들의 삶의 애환이 담긴 건물로 지금은 문화재 제28호로 등록되었다. 125 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선조들의 신앙정신이 베어있는 곳. 숙연함이 느껴진다.
* 진안 성당 어은 공소 *
소 재 지;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죽산리 453(등록문화재 제28호)
자료에 의하면 어은동은 이미 1888년에 공소가 설립된 유서 깊은 마을로, 이곳에 교우들이 거주한 것은 병인박해 이후이였다. 진안 지역의 교우들은 대개 고산 지방에서 이사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전주 본당(현 전동 본당) 관할이었던 어은동 공소는 1900년 9월 22일 전주 본당에서 분가해 전주 동남쪽 지방인 진안ㆍ장수ㆍ남원 일대까지 관장하는 본당으로 설정되었지만, 현재는 진안성당 소속의 공소가 되었다.
천주교 박해로 인해 교도들이 각지에 흩어져 살면서 자연적으로 성립된 교우촌의 하나로 본격적인 성당건축이 이루어지기 전의 형식을 띠고 있다. 외부는 전통가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으나 건물로의 진입 방법이나 실내 평면이 전통 평면 형식과는 전혀 다르며, 집회공간의 기능이 건물 평면에 나타나는 보기 드문 구조이다. 우리나라 초기 천주교사 연구에 중요한 건물이다. 바실리카 양식에 亞자형 출입 구조의 1층 목조 건물이다. 외관은 전통 가옥 형태를 띠지만 건물 진입 구조나 실내 평면이 전통 가옥과는 다르게 시공되었다. 우리나라 초기의 성당 건축 양식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천주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1900년 전주천주교회(현 전동성당)을 모 본당으로 하여 생겨났으며 현재는 진안성당 소속의 공소가 되었다. 초대 신부로는 전라도 지역의 두 번째 신부인 김양홍(스태파노) 신부가 임명되었으며, 근처 18개 공소를 관할하였고 신자 수는 약 1,4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첫댓글 선배 형제 자매님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어은동 천주교회......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