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따라 지하철이 꽤 한산했습니다.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녹천역에서 신촌까지 가려면 시청에서 전철을 갈아타야 합니다.
열 정거장을 가다가 네 정거장을 가기 위해 갈아타야 하는 곳이 시청역입니다.
여유가 있기는 했지만 목적지가 가까운지 자리가 비어있음에도 간혹 서 있는 승객들도 꽤 있었고, 덕분에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을 수 있었습니다.
습관처럼 책을 꺼내 읽고 있었고, 석계역을 지날 때 여럿이 내리고 타면서 시선이 자연히 출입문쪽으로 돌아갔습니다.
2학년1반 (열차의 둘째 칸 첫번째 문) 왼쪽 문 앞에는 다른 열차와 다르게 경로석을 대신하여 자전거를 세워둘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20대 중반을 조금 넘은 것으로 보이는 여자 승객이 마시던 커피를 쏟아서 상당히 당황한 모습으로 가방에서 꺼낸 티슈통을 모조리 비우면서 바닥을 닦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냥 지켜보니 티슈를 다 사용했음에도 바닥에는 여전히 커피물이 이리저리 열차의 진동에 따라 움직였고, 신이문역에 정차하느라 생긴 진동으로 흐르기 시작했고, 그 여자분은 다른 손님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어제저녁 주머니에 넣어둔 휴지가 생각났습니다.
친구들과 한잔하면서 사용하던 것인데 많이 꺼내놨던 터라 구겨져 다시 통에 넣을 수 없던 것을 주머니 속에 넣어 둔 것이었습니다.
책과 휴대폰을 자리에 두고 그 여자분에게 다가가 휴지를 내밀면서 “이거 사용하세요”라고 했더니 놀라면서도 무안한지 얼른 받아들고 바로 몸을 숙여 바닥을 닦기 시작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저도 도와줄까 싶었지만, 여분의 휴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지랖을 떠는 것이 아닐까 해서 바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여자분은 바닥을 깨끗하게 정리하고는 플라스틱 커피잔을 조심스레 들고 있었습니다.
시청역에서 내릴 때까지 서 있었고, 빈 잔을 들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서 내리면서 “제가 버려드릴께요”라고 했더니 괜찮다면서 더 꼭 움켜쥐었고, 아까는 감사했다고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너무나 즐거운 모임이 되었습니다.
전철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난감한 모습을 지켜보았음에도 누구 하나 그 흔한 티슈 한 장 건네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각에는 다수가 여성 승객들이었으니 가방에 티슈는 대부분 있지 않았을까요?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인지 유튜브를 보면 흔히들 말하는 [국뽕]이란 말이 어마어마하게 회자되고 있는데. . .
뭐 꼭 그런 게 아니더라도 주변에 곤란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을 아름답게 산다는 것이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좀 더 가졌다면 덜 가진 사람과 나누고, 가진 게 없다면 조금 더 가진 사람에게서 배우고, 그런 식으로 서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 아닐까요?
앞으로는 주머니 속에 꼭 몇 장의 티슈를 넣어 다니려고 합니다.
곤란한 이를 안심하게 하고, 제 마음의 행복을 키워가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