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은 사건을 반영한다. 이름에 론을 붙이려면 사건을 말해야 한다. 세상을 사물로 보면 여럿의 집합이지만 사건으로 보면 하나의 원형을 복제한 것이다. 이론으로 보면 하나다. 이원론이니 다원론이니 하는 말은 언어적으로 성립될 수 없다. 이름은 한 사람에게 붙이는 것이고, 이론은 사건에 붙이는 것이다. 사물은 해당사항이 없다.
세상의 모습이 다양한 이유는 관측자가 다양한 위치에서 사물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것은 관측자의 위치선정 문제다. 코끼리의 어느 부분을 보는가는 관측자 마음이 아니고 코끼리에게 물어봐야 한다. 코끼리가 코끼리로 되는 과정을 사건화하여 이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은 으뜸이다. 일은 으뜸이니 원이고, 이는 버금이니 차고, 다는 딸림이니 양이다. 이원론이나 다원론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오를 자격이 없는 잘못된 말이다. 일원론, 이차식, 다양형이 맞다. 일원론은 으뜸이니 자연의 사건이고, 이차식은 버금이니 인간의 관점이고, 다양형은 딸림이니 사물의 모습이다. 일원론이 하나의 가게라면, 이차식은 가게의 주인과 손님 포지션이고, 다양형은 그 가게에서 판매하는 메뉴다.
으뜸 - 일원론.. 사건의 원인.. 시작.. 자연의 변화하는 절차
버금 - 이차식.. 대칭의 진행.. 선택.. 인간의 관측하는 포지션
딸림 - 다양형.. 사물의 결과.. 종결.. 변화의 인식하는 표지
세상은 사건이며 사건은 연결이므로 1이다. 사건의 진행은 대칭을 쓰므로 2다. 사건의 결과는 어떤 접시에 담아내느냐에 따라 다양하다. 사건은 원인과 진행과 결과가 있으며 원인은 1, 진행은 2, 결과는 다로 나타나는 것이다. 관측자는 일원을 봐야 한다. 이차나 다양을 본다면 잘못 보고 있는 것이다. 포드시스템으로 돌아가는 공장의 라인은 하나이고, 거기서 작업자의 선택지는 일을 하거나 퇴근하거나 둘이며, 거기서 생산되는 제품은 종류가 다양하다. 시장은 하나고 거래는 수요와 공급 둘이며 상품은 부지기수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어떻게 통제하느냐다. 1에서 통제된다. 2에 개입하면 반작용한다. 다에 개입하면 혼란해진다.
우리가 국어공부를 안해서 혼선이 빚어졌다. 사건의 시작, 진행, 종결에 따라 일원, 이차, 다양이다. 들어오는 전기는 하나고, 스위치는 켜거나 끄거나 둘이며, 매달린 전등의 종류는 다양하다. 자동차가 사용하는 연료는 하나이고, 운전자의 선택은 가거나 멈추거나 둘이며, 그 자동차를 타는 승객과 싣는 화물은 다양하다. 각자 다른 부분을 보고 헛소리를 한다면 곤란하다. 바르게 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어디를 봐야 하는가? 계의 통제가능성을 봐야 한다. 자동차를 통제하려면? 가솔린을 끊어야 한다. 자연은 에너지로 통제된다. 밥을 굶기면 말을 듣는다. 자연에는 일원론도 있고 이차식도 있고 다양형도 있지만 그것을 통제하는 수단은 하나이고, 수단을 조작하는 방법은 둘이고, 그걸로 도출되는 변화는 여럿이다. 목숨은 하나고, 선택은 YES 아니면 NO 둘이고, 결과는 희노애락애오욕이 다양하다.
우리는 사물이 아닌 사건을 상대해야 한다. 선수는 게임을 하는 거지 공을 차는게 아니다. 공은 눈에 보이지만 게임은 사람들 사이에 약속된 추상적인 존재다. 눈에 보이는 공에 집착하면 안 된다. 문제는 포지션이다. 플랫폼에 들어오는 기차는 일원론이다. 기차는 앞이나 뒤로 움직이는 이차식이다. 그 기차를 타는 승객은 다양형이다. 기관사인 당신이 가야할 자리는 하나의 기관차다. 승객이 가야할 자리는 다양형의 객차다. 문제는 자신이 승객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난 승객이므로 다양형의 좌석을 제공하라구. 일등석이 좋아. 특실을 대령해. 스위트룸이 좋아. 펜트 하우스는 없냐? 이러면 피곤하다. 지식은 한 명의 기관사를 위한 것이다. 당신은 마땅히 기관사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공부를 할 이유가 없다. 지나가는 뜨내기 승객은 꺼져! 멋대로 자신을 고객으로 규정하고 다양한 메뉴를 내놔라고 요구하며 갑질하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