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살의 기생 초요갱에게 왕자대군 삼형제가-->>
사주팔자에 도화살(挑花煞)이 끼인 여자라면 쉽게 말해서 남자들이 저 죽을 줄 모르고 달려드는 여자인데
이런 여자에게는 물 묻은 바가지에 깨들러붙듯이 남자들이 꼬인다고 한다. 당연히 미모도 출중해야하겠고
몸매도 또한 비너스정도는 되어야 되지 않나 싶다.
남자가 달려드는 여자라면 당연히 조선시대 기생을 생각하게 되는데 보통 조선시대 기생이라면 당연히 황진이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유명한 황진이는 어우야담, 송도잡기등에는 보이지만 조선왕조실록에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고 조선왕조실록에 16번이나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기생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초요갱이란 기생이다.
한자로 초요갱(楚腰?)이라하니 옛날 중국의 초(楚)나라 여인들이 허리가 가늘어 미인이 많다는 소리에
인근국의 여자들이 그 허리를 닮으려고 단식하다기 굶어죽었다는 이야기에 따라 허리가 가늘어 이름을
그렇게 누군가가 지어준 모양인데 이 초요갱은 양대(陽臺), 자동선(紫洞仙), 옥부향(玉膚香)과 함께
미모가 출중하고 가무에 능하여 조선조 세조가 4대 기녀(技女) 라고 극찬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세조의 잔치때마다 대궐로 불리워가서 연회에 흥을 돋우었다고 하는데 이 초요갱에게 반한 왕자대군들이
그야말로 아름다운 꽃을 보고 몰려드는 벌때처럼 들러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상대가 왕족인 대군들이라면 초요갱이 음란하거나 권력에 다가가기 위해 유혹했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보다 차라리 위에서 말한 도화살이 끼어 남자들이 체면불고하고 죽자살자 달려든 형국이 되어 세종대왕의
이복아들 형제 셋이서--비록 시차를 두기는 했으나-- 함께 이 초요갱과 정을 통했으니 --.
초요갱은 세종대왕의 7남인 평원대군 이임과 동거하다가 평원대군이 죽자 배다른 동생 화의군 이영과 계양군 이증과
사통하였다. 쉽게 말해 이복형제 셋이서 한 여자에 완전히 함몰되어 조선조 초 최대의 섹스스캔들로 비화 하였다한다.
세조 9년 온 한양 바닥에 소문이 낭자하자 세조가 이증을 불러 물었다.
“정말 초요갱과 사통하였는가? 어디 여자가 없어서 형제 셋이서 한 여자와 사통 한단 말인가?” 하고 힐문하자
이증은 “결코 그런 일이 없삽고 그건 틀림없이 누구의 모함입니다” 하고 극구 변명하였으나 이증은 그날 밤에도
초요갱의 집에서 묵었다고한다.
그후 정치적인 사안으로 화의군 이영은 유배를 가고 사통하였던 초요갱은 장 80도의 중형을 받았다.
그런지 얼마되지않아 세종말년에 좌의정을 지낸 신개의 막내아들 신자형과 눈이 맞아 안방을 차지하였다.
이 사실이 세조때(1457년 6월 26일) 사헌부에서 보고하기를 신자형이 본부인을 멀리하고 초요갱의 말만 듣고
여종 둘을 때려죽였다고 하여 처벌을 요구했으나 정난공신이라 직첩만 뺏고 해결이 되었다.
석달 후인 10월 7일 신자형의 7촌조카인 안계담이 초요갱을 차지하고자 신자형의 안방을 쳐들어갔으나 아내 이씨는 놀라
도망치다가 넘어졌고 초요갱을 찾지 못한 안계담은 노비들을 마구 구타하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초요갱을 보고 완전 환장한
경우이리라.
도화살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도화살을 월장도화(越牆挑花)라고 부른다. 월장은 담장을 넘는다는 뜻이니
그 여자를 만나보기 위하여 남자들이 담을 넘어서까지 여자집으로 몰려간다. 아마도 초요갱의 사주에
바로 월장도화살이 끼어있지 않았나 싶다. 남자를 당기는 강한 흡인력이 있다는 증거다.
좌우간 남자란 숫컷들은..
왕자인 형제지간에 구멍동서가 되기도 하고, 형제이기도 하고, 이 나그네야놈도 예외는 아니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