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강의 4) 원(元), 천(天), 극(亟)의 갑골문
이칭맨 2017. 9. 15. 16:24
지금까지 사람의 모습을 나타낸 인(人)자와 그 변형, 그리고 상(上), 하(下)라는 지사자(指事字)를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러한 '사람 인(人)'자와 상(上)자가 결합된 글자와 그 유형에 속하는 글자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사람 인(人)'자에 ‘절반’의 의미가 있다는 제 해석에 아직 의심을 가지는 분들도 계시다면 이번 강의에서 좀 더 확신을 가지도록 해 드릴 것입니다.
1) 으뜸 원(元)
<원(元)의 갑골문과 금문>1
원(元)자의 갑골문은 위에 ①번 모양처럼 '사람 인(人)'자의 윗부분에 위쪽, 혹은 위로 움직이는 것을 의미하는 상(上)자가 온 모양입니다. ②번도 같은 원(元)자인데 인(人)자와 달리 사람 머리 부분을 크게 강조한 모양입니다.
사람의 머리 부분에 위쪽을 강조하는 상(上)자나 강조된 머리가 온 것은 사람의 가장 윗부분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고대에는 머리를 ‘우두머리’, ‘첫 번째’ 등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중국의 고대 삼대 왕조인 하(夏), 상(商), 주(周) 세 국가에서 가장 먼저 오는 왕조인 하(夏)나라의 하(夏)자에 머리를 강조한 ‘머리 혈(頁)’자가 들어가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즉, 머리는 우두머리이고, 가장 먼저 오는 것이며, 가장 높이 있는 것이므로, 으뜸의 의미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고대 중국의 한자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원(元)은 ‘시작 시(始)’의 뜻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서 ‘사람 인(人)’자에서 구지 사람의 옆모습으로 나타낸 것은 그 '절반'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사람은 남성, 혹은 여성과 같이 무언가 전체에서 절반에 속하는 특성을 지니고 태어난다는 뜻이라고 했죠. 이러한 개념을 반영해서 보면 원(元)자가 비록 ‘시작’, ‘으뜸’의 의미는 있지만 그것은 음(陰)과 양(陽) 중 어느 한쪽, 즉 전체의 절반에 해당하는 영역에서의 으뜸이라는 의미가 됩니다. 뒤에 소개할 ‘하늘 천(天)’자는 정면을 바라본 사람의 모습을 강조한 모양인데요, 원(元)자와 천(天)자의 의미상에 차이를 구분하려면 인(人)자에 이처럼 ‘절반’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파악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2) 하늘 천(天)
<천(天)의 갑골문>2
앞서 설명했듯이 원(元)과 천(天)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머리를 강조한 모양입니다. 단 원(元)자는 그 절반을 상징하는 사람의 옆모습이 반영하듯이 전체 순환의 전반부 절반에서 가장 높은 곳 까지 성장한 것을 의미하고, 천(天)자는 그 음(陰)과 양(陽) 전체를 상징하는 사람의 앞모습인 대(大)자가 반영하듯이 한 순환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합한 전체의 가장 높은 곳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전반과 후반이라는 개념 또한 시간적인 음(陰)과 양(陽)의 개념인데요, 이것을 고대에는 주로 선천(先天), 후천(後天)이라는 용어로 표현했습니다. 예를 들어 아기가 부모의 뱃속에 있는 시기가 선천(先天)이라면, 세상에 나와서 살아가는 시기는 후천(後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 저녁과 밤이 선천(先天)이라면 밝은 아침과 낮이 후천(後天)이라고 할 수 있고, 상(商)나라가 선천(先天)이라면 뒤에 온 주(周)나라가 후천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흘러가는 시간으로 표시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즉, 원(元)이란 선천의 끝이고, 선천의 꼭대기까지 자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천(天)은 후천의 끝이고 후천의 꼭대기까지 자라 나아가는 것인데, 결국 선천과 후천을 합친 전체의 꼭대기 까지 자라 나아간 것과 같은 뜻이 됩니다. 이것을 공간적으로 보면 선천(先天)은 지하에 해당되고 원(元)은 지표면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후천(後天)은 지상에 해당되고 천(天)은 무한히 높은 하늘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후천(後天)의 입장에서 보면 원(元)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기도 합니다. 가장 먼저 나와서 가장 높이 올라간 것이란 의미에서 원(元)에 시작이란 뜻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하나의 순환을 마치고 새로운 순환이 시작된다는 의미에서 시작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주역(周易)에서도 원(元), 형(亨), 리(利), 정(貞)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그 중에 원(元)은 새싹이 땅 위로 뚫고 나오는 이미지와 연관되고, 모체 내에서 자라던 생명이 세상에 태어나는 이미지와도 연관이 되며, 계절로는 봄의 이미지에 해당이 되기도 합니다.
이미지출처 : pixabay.com
3) 극(亟), 극(極)
이번엔 원(元)과 비슷한 글자인 극(亟)자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극(亟)의 갑골문>3
극(亟)자는 원(元)자와도 비슷하지만 아래쪽에도 땅을 의미하는 선을 하나 그어 놓은 것이 다릅니다. 극(亟)자는 하늘과 땅, 이쪽과 저쪽, 음(陰)과 양(陽)에 머리와 발이 닿은 사람을 그려놓은 것입니다. 이는 이쪽과 저쪽, 하늘과 땅, 음(陰)과 양(陽)의 중간에서 양쪽을 연결하는 것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쪽과 저쪽의 중간에 있다는 것 외에도 본래 ‘사람 인(人)’자가 절반의 의미가 있으므로 이쪽과 저쪽의 절반인 중앙의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즉, 극(亟)이란 본래 중앙을 나타낸 글자입니다. 《서경(書經)》의 <홍범(弘範)>이란 글은 상(商)나라의 기자(箕子)란 인물이 하늘의 법도를 설명한 것을 적은 글인데, 그 내용 중에 중도(中道)에 대해서 말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도(中道)를 상징하는 표현으로 극(亟)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봐도 극(亟)의 본래의미가 중(中)과 중도(中道)의 의미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절반을 의미하는 인(人)자만 가지고 중앙의 의미를 표현하기엔 좀 부족하다고 느꼈나 봅니다. 이 글자가 서주(西周)시기로 가면서 점차로 ‘입 구(口)’자와 ‘칠 복(攴)’자의 갑골문자가 추가되어서 아래와 같은 오늘날의 극(亟)자에 모양을 갖추게 됩니다.
<극(亟)의 금문>4
위에 금문(金文) 모양에서 좌측에 ㅂ자 모양의 글자가 바로 '입 구(口)'자의 갑골문입니다. 구(口)자는 본래 구덩이를 뜻하는데 고대인들은 구덩이 안에 물이 차오르는 정도를 가지고 중도(中道)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이나 주역(周易)을 설명해야 하므로 여기선 결론만 언급하고 나중에 ‘입 구(口)’자를 해설하면서 조금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할 것입니다. 물이란 너무 적어도 안 되고 너무 많아도 안 됩니다. 항상 적당한 양을 유지하는 것이 물의 흐름과 관련된 중도(中道)이고 그 법칙을 본받는 것이 오행(五行)과 역(易)입니다. 사실 중(中)자의 갑골문도 아래 ②번 모양처럼 구(口)자의 중앙에 긴 선을 그은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③, ④번 처럼 깃발을 나타내는 모양의 중(中)자도 있지만요. 극(亟)자에서의 구(口)자도 단지 중앙이란 의미를 넘어서 중도(中道)의 덕(德)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기 위해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중(中)의 갑골문>5
극(亟)자의 금문(金文)에 나오는 구(口)자는 단지 이쪽과 저쪽의 사이에 구덩이 처럼 빈 공간이 있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 빈 공간을 인(人)자가 중앙에서 연결하여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죠.
복(攴)자는 무언가의 경계부위에 주로 사용되는 글자입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 따로 설명하도록 할 것입니다. 복(攴)자가 나타내는 경계는 이쪽 절반이 끝나고 다음 절반이 시작되는 경계를 의미합니다. 극(亟)자에 ‘절반’을 의미하는 인(人)자가 온 것은 앞서 설명한 원(元)자의 개념과 통합니다. 이러한 절반의 중앙부위도 이쪽과 저쪽의 경계이므로 경계를 의미하는 복(攴)자가 들어간 것입니다.
이 극(亟)자에 ‘나무 목(木)’자가 붙으면 극(極)자가 되는데, 극(亟)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추가적으로 건물의 지붕에 용마루를 뜻하는 동(棟)의 뜻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후한시대 한자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극(極)은 동(棟, 용마루)의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용마루란 아래와 같이 건물의 지붕에서 양쪽에서 오는 경사진 서까래를 중앙에서 받쳐주는 부분을 말합니다. 이러한 집의 구조는 주역(周易)의 택풍대과(澤風大過)괘에서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상징하는 구조형태로 반영되어 나옵니다.
양쪽으로 경사진 지붕은 이쪽과 저쪽, 음(陰)과 양(陽)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그 중앙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용마루는 바로 중도(中道)이자, 양쪽이 통합된 구조인 태극(太極)을 상징합니다. 고대 동양철학에선 태극(太極)에서 음양(陰陽)이 분화되어 나오기 때문에 용마루가 상징하는 태극(太極)이 바로 음(陰)과 양(陽)이 통합된 근원적인 존재가 되는 것이고, 그런 이유로 태극(太極)에서 극(極)이란 표현을 쓴 것도, 극(亟)이 중(中)과 통한다는 근거가 됩니다.
극(極)이란 이렇게 지붕에서 가장 높은 용마루 처럼 중앙이면서 동시에 가장 높이 있는 지점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극(極)에는 그 끝까지 간다는 의미에서 '다하다'는 뜻도 생기게 됩니다.
게르 羅 탑 평면도 만다라
이미지출처 : pixab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