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사랑하는 전남대 후배들에게
전남대학교 후배 학생 여러분,
저는 1974년에 전남대학교 철학과에 입학하였으며, 1980년 5·18 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겼던 여러분의 선배들 중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전남대학교 철학과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독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지난 1989년 신설된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특별 임용되어 올해 20년을 맞게 된 사람으로서, 최근사태에 대하여 몇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2007년에 전남대학교가 한나라당 최고위원인 정몽준 울산공업학원(울산대학·울산과학대학) 이사장에게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하는 것을 저지한 바 있으며, 올해도 지난 18일 또 다시 반대시위를 함으로써, 정몽준 이사장 스스로 수여식을 고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습니다.
2007년 여러분은 울산과학대학의 청소 용역업체 근로자 해고 문제를 빌미로 삼아 반대하였으며, 올해에는 “5·18 민주화운동을 이끌었던 전남대가 한나라당 최고위원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는 이유를 들어 반대했습니다.
저는 정몽준 이사장의 명예박사 학위 수여를 반대하는 학생 여러분들에게 다른 의견도 있다는 점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5·18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던 전남대학교가 더 이상 상극적이고 폐쇄적인 정치논리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분 스스로 5·18의 정신을 욕되게 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을 당부드립니다. 저는 5·18 당시 맨발로 죽음의 문턱을 세 번씩이나 넘었으나, 지금까지 어느 자리에서도 그 사실을 내세운 적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많습니다.
독일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저는 울산대학교에 특별채용이 되어 지금까지 교수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논리대로라면 5·18 민주화 운동의 한복판에서 시위대가 되어 투쟁했던 전남대학교 출신은 어느 곳에서도 채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특히 경상도 지역에서는 더욱 그럴 것입니다. 그러한 논리는 여러분 스스로를 억압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울산대학교에 전남대학교 출신 교수는 저 혼자였으며, 최근에 두 분이 더 임용되었습니다. 현재 울산대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전남대 출신 교수는 총 13명(의과대학 포함)입니다.
학생 여러분들은 정몽준이라는 한 자연인을 한나라당 최고위원으로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남대학교가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몽준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학이 인간 정몽준을 관찰하고자 할 경우에 울산대학교 이사장이라는 지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울산공업학원과 아산사회복지재단의 이사장으로서 우리 사회에 기여한 사실만으로도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는데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동시에 대학이 인간 정몽준을 관찰하고자 할 경우에 대한축구협회회장과 세계축구연맹 부회장으로서 우리사회에 기여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을 것입니다. 정몽준 이사장은 현대중공업의 대주주로서, 현대중공업을 세계 1위의 조선업체로 성장시킨 글로벌 리더십을 갖춘 경영인입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현대중공업에 세 분의 사장이 있는데, 두 분은 호남 출신입니다. 그리고 울산공장의 규모에 준하는 새로운 공장이 현재 군산에서 들어섰습니다.
그가 한나라당에 입당하고 최고위원이 된 것은 최근의 일이고, 그런 그가 5·18문제의 귀책자로 거론되는 것이 적절한지는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학생 여러분들이 옳다고 믿고 있는 그런 기준으로 정몽준 이사장도 판단해야 했다면, 여러분의 선배들인 13명의 전남대 출신자들이 울산대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수많은 호남출신 인사들 역시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것조차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전남대학교 후배 학생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5·18 정신을 보다 고귀한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들은 5·18 묘지에 참배하러온 정치인들이 그날밤 룸살롱에 갔던 사실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5·18 정신을 볼모삼아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소인배들의 무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진실이 무엇입니까? 5·18 희생자들은 더 이상 말이 없습니다. 5·18 가해자들 역시 만족할 수준은 아니지만 대체적으로 척결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5·18 정신을 볼모로 삼아 정치적 이익이나 생각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우리는 그들을 가장 우선적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파당을 지어야 자신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런 잘못된 생각에 끌려가야 되겠습니까? 저는 5·18 정신은 불의가 아니라 정의이고, 투쟁이 아니라 화합에 있다고 봅니다. 위대한 정신을 잘못된 잣대로 악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후배 여러분, 저의 생각이 잘못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스스로도 옳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항상 희망찬 내일을 위하여 정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진 울산대 교수
첫댓글 김 교수님, 좋은 말씀입니다. 나는 간혹 비호남 사람들로부터 '5.18정신이 무워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5.18정신을 반정부 투쟁정신으로 왜곡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호남에서 야당의 승리를 두고 호남 사람들은 맹목적이란 말도 합니다. 마치 민주당을 고수하고 한나라당을 미워하는 것이 5.18정신이냐고 비꼬기도 합니다. 정말 5.18정신이 국민들 가슴에 와 닿는 그런 정신임을 선양하는 것이 광주-전남인의 긍지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라 봅니다. 호남인의 정치적 아량과 선진화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때입니다. 정몽준 의원에게 명예학위를 준 것은 그 분의 사회적 기여을 높이 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