렘넌트가 알아야 할 "누림 캠프와 유일성" (행 1:8) – WEEA
<서론> 상관없다.
렘넌트들이 ‘유일성’을 찾는 방법이 있다. 이것을 어떻게 찾느냐는 것이다. 이 응답을 어떻게 받느냐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사실 오직과 유일성은 같은 말이다. 지금부터 세 가지가 상관이 없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렘넌트는 중요하다.
1) 사건
모든 일어나는 사건, 상관이 없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요셉은 노예로, 감옥으로 갔다. 아무 상관이 없다. 모세의 경우는 왕궁에서 나올 때 완전히 실패했다. 사무엘과 다윗은 굉장히 외로운 가운데 있었다. 특히 다윗은 수십 년 쫓겨 다녔다. 아무 상관이 없다. “내게는 부족함이 없다”라고 말했다.
2) 응답
심지어 응답도 상관이 없어야 한다.
3) 무응답
무응답도 상관이 없다. 이게 유일성을 찾는 방법이다. 심지어 에스더나 다니엘은 죽음도 상관이 없다고 했다.
이게 굉장한 답을 찾아낸 것이다. 신앙생활에 승리한 사람은 응답이 온 것도 상관이 없었다. 응답이 안 온다? 상관이 없다. ‘with’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게 응답이다. 렘넌트는 꼭 기억해야 한다. ‘Immanuel’ 이게 응답이다. 무응답, 응답이 상관이 없는 것이 모든 것이 합해져서(oneness) 응답이 된다. 30년씩 훈련을 받은 사람도 문제가 오니 다 흔들린다. ‘아, 저 정도구나~’ 싶다. 완전히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에 상관이 없다. 렘넌트는 꼭 기억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가는 길에 많은 일들이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렘넌트들이 흔들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때는 큰 응답도 온다. 이때마다 교만해지면 어떻게 하겠는가? 응답을 안 받는 게 나을 것이다. 어떤 때는 응답이 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흔들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일들을 늘 만나는데 그때마다 흔들리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본론>
1. ‘오직’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그래서 무엇부터 발견해야 하는가? 이것을 누리고 있으면 ‘오직’부터 나온다.
(1) 반대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이 오직은 주로 반대쪽에 있다. 쉽게 말해, 생각지도 않은 곳에 있다는 말이다.
(2) 눈에 안 보이는 응답 속에서
그래도 눈에 드러나는 게 아니다. 주로 눈에 안 보이는 데 있다.
(3) 버려져 있는 전도 열매 이전에 있는 보좌 속에서
이게 또 버려진 곳에 많이 있다. 그러니 진짜 응답은 경쟁이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버려진 곳에 있기 때문에 누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이것을 못 보면 여러분들은 외롭다고 생각이 되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못 보니까 ‘나를 도울 사람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진짜 응답은 진짜 여기에 다 들어있다. 여기에서 오직을 보는 것이다.
2. 세 가지는 같은 것
이 오직을 누리는 데는 세 가지가 있다.
(1) 누림
이 자체를 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자체를 누리는 것이다.
(2) 기다림
기다린다.
(3) 도전
그리고 ‘오직’이 언제부터 역사하기 시작하는가? 도전(挑戰)해야 할 게 보인다. 그때 가는 것이다.
3. 유일성 응답
이럴 때 결과로 오는 게 ‘유일성’ 응답이다. 렘넌트는 꼭 기억해야 한다. 여러분이 딱 이러고 있으면, 이게[유일성] 온다. 렘넌트가 이 응답을 못 받으면 세상에서 살기 힘이 든다. 이 응답을 못 받으면 살 이유가 없다. 이 응답을 누리면 경쟁자도 없다. 쉽게 말하면, ‘영순위’가 된다. 일순위, 이순위 이런 게 없다. 영순위가 된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전도운동은 다른 사람이 따라하지 못한다. 여러분이 이 응답을 찾아 누리면 완전히 증인이 된다. 그래서 우리 다락방은 새로 시작하면 된다. 여러분이 어디를 가든지 반드시 이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유일성 응답이 온다.
(1) 문제 속에서
특히 이 속에 들어있다고 보면 된다. 문제 속에 유일성 응답이 들어있다.
(2) 갈등 속에서
갈등과
(3) 위기 속에서
위기 속에… 반드시 이 속에 들어있기에 찾기가 쉽다. 사람들은 이쪽으로 잘 오지 않는다. 그러니 경쟁자가 없다.
저는 전도가 제일 쉽더라. 왜 쉬운고 하니, 현장에 가니 빈곳이 천지다. 거기에 오지 않는다[전도사 시절 교적부 정리를 통해 오지 않는 아이들 찾아간 얘기]. 절대 렘넌트는 이런 것에 두려워하거나 갈등하면 안 된다. 여러분은 미래가 있기에 현재의 것에 상관이 없다. 꼭 명심해야 한다.
<결론>
1) 지금[발판]
그러나 지금 있는 일을 무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게 발판이다. 길을 가는데 돌이 있으면, 어떤 사람은 걸림돌이 된다.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된다. 여러분의 지금 문제는 발판이다. 저것은 꼭 기억해야 한다.
2) 오늘 – 미래
렘넌트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오늘’을 가지고 ‘미래(未來)’를 보는 것이다.
3) 미래 – 오늘
더 나아가는 발자국이 있다. 미래 것을 당겨서 오늘 보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있어도 괜찮다. 발판. 지금 하고 있는 게 여러분의 미래다. 지금 여러분이 예배하는 게 미래다. 그러면 저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 당겨서 보는 것이다. 이러면 경쟁하지 않고 이기는 렘넌트가 된다. 렘넌트 전도학 메시지를 놓치면 안 된다. 이것은 하나씩 하나씩 나오기 때문에 렘넌트들이 꼭 붙잡아야 한다.
기도하겠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렘넌트들에게 영적인 눈을 열어 주옵소서! 오늘과 미래를 보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문제와 갈등과 위기를 보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