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jxagoravzw(엑사고라조)
구속하다, 속량하다 redeem .
1. 고전 헬라어 문헌의 용법
동사 엑사고라조(Polyb., Plut.)는 아고라조(ajgoravzw, 59)의 강의형이며,
(a) `사다',
(b) `구속하다'(Diod.)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노예들을 속전을 주고 구해내는 것에 적용 가능한 말이었다(예: 기원전 1세기 경의 디오도루스 시큐루스[Diodorus Siculus]에 의해 구해낸 것).
2. 70인역본의 용법
엑사고라조는 70인역본에서 단 2:8에 한번 나오는데, 아람어 제반(사다, 얻다)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거기서 갈대아인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시간을 벌려는" (buying time ) 시도를 하고 있다.
3. 신약성경의 용법
엑사고라조는 신약성경에서 4회, 바울 서신에만 나타난다.
(a) 엑사고라조는 갈 3:13에서 `속량하다'라는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 4:5에서도 마찬가지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엑사고라조는 여기서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를 가리킨다. 여기서 그 강조점은 이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매입에 있다(갈 4:1 이하).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 대가를 친히 지불하시고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며 따라서 믿음에 의한 칭의를 통하여 참 자유를 주신다(참조: 갈 3:24-갈 3:25). 율법은 하나님의 거룩한 명령이며 영원히 유효하기 때문에 구속은 필수적인 것이다. 따라서 자유로 향한 변화 속에서 죄가 드러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가 체험된다.
그러나 구속은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상거래적인 `구매'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께 확실히 순종하시고 그분을 섬기시는 한편 하나님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향하여 행동하신다. 그러므로 구속은 우리로부터 단절되지 않으니 우리는 구속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b) 엡 5:16에서 엑사고라조는 `사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골 4:5에서도 마찬가지다: "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이 말은 여기서 `완전히 사다, 매점하다', 즉 시간이 제공하는 기회를 `사다(즉, 최대한 이용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조: J. H.T hayer; F.Buchsel; D.H.Fie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