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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그대에게 OST - Oh! Lovely Day
말을 뱉어놓고 보니 내가 참 큰일을 저지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를 무르고 싶었지만, 괜히 또 얘기했다가 팀장님이 자길 뭘로 보는 거냐며 화를 낼까봐 그럴 수도 없었다. 한
참을 고민하다가 결국엔 그냥 팀장님을 우리 집에 초대하기로 했다.
뭐... 어차피 밥만 먹고 가실 거니까 부엌이랑 거실만 잘 치워놓으면 되잖아. 요리만 간단하게 해드리고. 별일 없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팀장님인데. 라면 좋아하냐니까 그런 거 먹으면 죽는다던 팀장님인데..
그나저나 요리는 어떤 걸 해드려야 할까.
업무시간에 이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업무 중이던 창은 아래로 내려놓고 네이버에 ‘남자친구 밥상차려주기’를 검색하고 블로그를 이리저리 뒤져봤다.
월급루팡 제대로 한다. 나.
“스테이크..? 스테이크는 고기가 중요한데... 아. 근데 팀장님 양식은 좋아하시려나...? 한식을 ㅊ,”
“뭐하는 겁니까, 지금?”
“으악!”
손에 턱을 괴고 무심하게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고갤 쳐드니 팀장님이 인상을 쓴 채로 날 쳐다보고 있다.
“아.. 아, 팀장님..”
“........”
“아..안돼요. 보면 안돼요!”
이런 걸로 이렇게 고민하는 거 알면 내가 자기 좋아한다고 의심할 거 아냐!
다급하게 모니터를 가리며 한 손으로 화면에 띄워진 인터넷 창들을 닫으려고 노력했다.
“남자친구 밥상..?”
“...아...”
그 큰 모니터가 한 손으로 가려질 리가 없지...
기어코 키워드를 읽어내신 팀장님이 작게 중얼거리셨고, 나는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시발..
“이거 나 요리해주려고, 찾아보는 거예요?”
“네? 에? 아니.. 아니요. 그...”
“내가 왜 김여주씨 남자친구예요?”
“.......”
뎨동함다... 죽을죄를 지었슴다. 제가.. 감히 저같은 일개 사원이 이딴 거나 찾아보고 앉아있고...
또 팀장님 앞에 있으니 심장이 쭈굴쭈굴해졌다. 나는 왜 팀장님 앞에 서면 항상 쭈구리가 되는가...
“이런 거 찾아 볼 시간에 일처리에나 좀 신경 쓰지 그래요? 오늘 보고서도 엉망이던데.”
“....네...”
말을 마친 팀장님이 날 한번 쳐다보고는 다시 등을 돌리셨다.
한숨을 푹 내쉬며 팀장님의 뒷모습을 본 순간, 나는 불현 듯 떠오른 생각에 ‘저, 팀장님.’하고 팀장님을 불렀다.
그러자 팀장님이 무심한 표정으로 날 돌아보신다.
“저..팀장님은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
“그러니까, 그.. 한식, 양식, 일식 뭐 그런 거..”
“김여주씨 요리 잘해요?”
“네? 뭐..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닌데.. 근데 못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물어보는 게 꼭 말만하면 다 만들어 줄 것 같아서 물어봤어요.”
아니, 저는 팀장님이 좋아하는 음식 종류가 뭔지 좀 알아서 최대한 오차를 줄이고 팀장님께 만족감을 드리려고.. 나 뭐래니.
팀장님은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시더니 이내 입을 여셨다.
“아무거나.”
“........”
“라고 해둘게요.”
그리고 팀장님은 등을 돌려 제 갈 길을 가셨고,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자리에 퍽 주저앉았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인터넷 창을 끄고 책상에 팔을 포갠 후 얼굴을 푹 파묻었다.
으. 쪽팔려!! 상사 밥상 차려주기. 이런 거나 검색해보지, 왜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써가지고...
..그나저나, 팀장님. 아무거나가 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대답인 거 모르세요...?
어째 일이 더 복잡해진 것 같다.
-
팀장님을 대접하기로 한 토요일.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집 대청소를 시작했다. 팀장님께 대접해드리는 식사는 무려 저녁식사인데 말이다.
평소엔 그냥 널어놓고 살았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온다고 생각을 하니 바닥에 떨어진 휴지조각 하나도 다 더러워보였다.
팀장님의 집이 그렇게 깔끔한데. 분명 털어서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오면 날 더러운 여자라고 생각하실 거야.
팀장님께 뭘 만들어드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간단하게 파스타를 만들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막 한식이나 이런 거창한 걸 만들자니 내 요리 실력이 뽀록날 것 같고.. 또 음식 선정에 너무 고민한 티를 내면 안 되니까, 아주 흔하고 쉬운 파스타가 딱 적당할 것 같았다.
팀장님은 딱 봐도 느끼한 크림파스타는 싫어하실 것 같으니 약간 매콤한 토마토 해물파스타로 준비했다.
어제 저녁에 사놓은 재료들이 빵빵한 냉장고를 보고 만족스런 웃음을 짓다가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팀장님이 화장실에 들어오실 지도 모르니까 화장실 청소도 해놔야지.
하루 종일 청소에만 몰두하니 시간은 잘도 흘렀다. 배란다에 널어뒀단 빨래들을 개어 서랍에 정리해놓고 나와 시계를 보니 벌써 4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팀장님이 오기로 한 시간은 6시인데.. 두 시간 안에 끝낼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김여주.. 파이팅.”
싱크대 앞에 홍합묶음을 들고 서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요리를 시작했다.
사실 파스타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요리는 아니지만, 내가 지금 준비하는 게 ‘해물’이 들어간 파스타라는 게 문제였다.
해물손질 존나 좆같네...
애초부터 손질된 해산물을 사왔어야 하는데, 나란 병신은 어제 혼자 들떠가지고 그런 건 생각도 못한 모양이다.
“으악! 짜증나!!”
오징어 손질 겁나 복잡하고 어렵네... 손에서 미끌 거리는 촉감도 짜증난다.
팀장님에겐 좋은 것만 먹이고 싶다는 심보로 소스도 파는 거 말고 직접 만들려고 토마토랑 이것저것 사왔는데, 소스는 또 언제 만들어..
팀장님한테 그냥 내일 오라고 연락드릴까.. 한숨을 푹 쉬며 오징어 손질을 마저 했다.
해물 손질을 대충 끝내고나서 시간을 확인했고, 난 그대로 기절해버리고 싶었다.
“6시...”
그리고 팀장님은 시간 약속을 아주 칼같이 지키시는 분이지...
아니나 다를까, 딩동. 하고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발. 누가 내 인중 좀 때려줘봐. 나 기절 좀 하게..
“아. 으. 아. 어떡하지. 아. 아!”
“김여주씨.”
혼자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난리를 치는 와중에도 팀장님은 문을 두드리며 내 이름을 불러대셨다.
결국 머리를 부여잡고 작게 소리를 지르고는 손을 씻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열어주기 전에 거울을 통해 내 몰골을 확인했다.
흐트러진 머리를 빗고 눈 아래로 약간 번진 아이라인을 닦아낸 뒤에 문을 열었다.
팀장님 오래 기다리게 하면 화내실 게 분명해.
“뭐 하는데 문을 이렇게 늦게 열어요?”
역시나... 오늘도 역시 인상을 찌푸리신 팀장님이 거침없이 집안으로 들어오신다.
여자 집에 들어오는 게 아무렇지도 않으신 거 보니 여자 집에 꽤 들락날락 거리셨나봐?
집안으로 곧장 들어오신 팀장님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부엌 쪽으로 향하셨고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 팀장님 앞을 막아섰다.
“왜요?”
“저.. 아직 요리가 다 안돼서요.”
“........”
“거실에서 TV 좀 보시면서.. 기다려 주세요. 그, 금방 다 돼요! 금방..”
내 말에 팀장님은 날 빤히 보다가 한숨을 쉬며 등을 돌려 소파로 가 앉으셨다.
“배고프세요?”
“아뇨. 김여주씨가 어떤 요리를 내 놓을지 몰라서 배 안고프게 빵 좀 적당히 먹고 왔어요.”
“..눼...”
너무해.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팀장님 대접할 준비만 했는데...
입을 삐쭉 내밀고 본격적으로 파스타를 만들기 시작했다. 두 시간을 꼬박 서서 손질한 해물들을 보니 뿌듯하기도 하다.
이제 소스를 만들어야지... 아니. 우선 그 전에 면부터 삶아야하나?
소스 만들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까 소스 먼저 만들어야겠다. 그렇게 결정을 하고 토마토를 썰기 시작했다.
토마토를 썰다가 말고 뒤를 돌아봤더니, 팀장님이 무표정으로 TV를 보고 계신다.
저 재미있는 무한도전을 저런 표정으로 보는 사람은 팀장님 밖에 없을 거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토마토를 마저 썰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양파를 썰기 시작했다. 토마토랑 양파를 같이 끓여 묽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양파를 썰기 시작하자 눈가가 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양파를 다지기 시작하자 눈 앞이 흐려질 정도로 눈물이 차올랐다.
흐. 시발. 존나 매워...
눈 앞이 흐릿해질 정도로 눈물이 찼는데, 양파즙에 젓은 손과, 양파즙이 튄 팔 때문에 눈물을 닦을 수도 없었다. 괜히 양파즙이 들어갔다가 극한의 고통을 맛볼까봐.
그리고 결국.
“아!!”
내 손을 썰어버렸다.
혹시나 아이라인이 번질까봐 눈물을 쥐어 짜내지도 못하고 눈물을 눈에 머금고만 있으니, 눈앞이 흐릿해 벌어진 참사였다.
비명을 지르며 놓친 칼이 바닥에 떨어졌고, 흐릿한 눈 사이로 보이는 새빨간 피에 ‘으아아.’하고 이상한 소릴 냈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한번 꽉 꿈뻑거리자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맑아진 시야로 손에서 흐르고 있는 피가 제대로 보였다. 헐.. 피 대박. 토마토보다 더 빨개.
멍하니 피가 흘러나오는 손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웬 손이 내 팔을 휙 잡아채간다. 팀장님이었다. 언제 이렇게 소리 없이 오셨어요...
멍하니 팀장님을 보는데 팀장님이 수돗물을 틀더니 내 팔을 휙 잡아다 끌어 흐르는 물에 내 손을 집어넣는다.
“이럴 줄 알았다, 내가.”
“뭘 이럴 줄 알아요..”
“김여주씨는 뭘 하든 조용히 넘어가는 일이 없잖아요.”
“.......”
피가 흐르는 내 손을 신경질적으로 보고 있는 팀장님을 빤히 쳐다봤다.
..팀장님 화났다. 왜 화났어요. 나는.. 나는 팀장님 맛있는 거 만들어주고 싶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청소도 하고..
아까 막 두 시간 동안 서서 홍합이랑 오징어랑 이상한 것도 막 다듬고 그래서 허리도 아프고...
방금은 또 팀장님한테 예뻐 보이겠다고 아이라인 번질까봐 눈물 참다가 이런 건데.
팀장님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맨날 화만 내고..
“..흐..”
“...?”
“...흐으...”
“...울어요?”
나도 모르게 서러움이 폭발해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울음소리가 새어나갔다.
팀장님은 황당하다는 말투로 내게 우냐고 되물었고, 나는 팀장님께 잡히지 않은 나머지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눈물 날 정도로 아파요?”
“..흐윽...으...”
아니라고 고개만 가로 저으며 눈물을 닦아냈다.
팀장님이 흐르던 물을 끄더니 식탁에 올려져있던 휴지를 가져와 내 상처부위를 꾹 감싸 눌러 준다.
그리고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려대는 날 가만히 쳐다만 보신다.
침묵 속에 시간이 좀 흐른 뒤, 내 눈물이 조금 잦아들자 팀장님이 머리를 쓸어 올리며 한숨을 쉬신다.
“...하아...”
“.......”
“비켜 봐요.”
“..네?”
눈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되묻는 날 팀장님이 슬쩍 옆으로 밀어내고는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워 드신다.
그리고 양파를 마저 다지기 시작하신다. ...? 지금 뭐하시는 거지..?
멍하게 팀장님이 하는 것만 쳐다보다가 팀장님이 다져진 토마토와 양파를 냄비에 쏟아 붓는 걸 보고 정신이 들었다.
“팀장님, 지금 뭐하시는..”
“와인식초 어디 있어요?”
“네? 아.. 여기...”
회사에서 하던 게 습관이 돼서, 팀장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찬장을 열어 식초를 꺼내드렸고, 팀장님은 능숙하게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헐...
“아.. 아니, 팀장님.. 제가 할게요.”
“손 그렇게 만들어 놓고 잘도 하겠네요.”
“.......”
팀장님의 말에 반박할 말이 없어 그냥 입을 꾹 다물었다.
팀장님한테 요리를 대접해주겠다고 한 건 난데, 팀장님이 요리를 하고 계셔...
무표정으로 냄비를 휘젓는 팀장님을 빤히 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뭐가요.”
“..요리 해드린다고 해놓고... 팀장님이 요리하게해서...”
“죄송한 거 알면 가서 약이나 바르고 와요.”
“.......”
“뭘 멀뚱히 서있어요. 설마 약도 사다줘야 됩니까, 내가?”
“아, 아니요!”
팀장님의 말에 급하게 두 손을 가로젓고는 거실로 뛰어갔다.
그리고 마치 팀장님에게 업무를 받은 것처럼 부리나케 약통을 꺼내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
아..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진짜 깊게 베였네.
약을 바를 틈도 없이 계속 새어나오는 피에 치료를 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손으로 계속 지혈을 하며 환부를 한번 확인했다가 요리 중인 팀장님의 뒷모습을 보다가를 번갈아했다.
팀장님은 어느새 파스타 면까지 삶고 계시는 중이었다. ..미치겠다, 정말.
좀처럼 멈추지 않는 피에 애가 타는 건 나였다.
한참 뒤에 피가 좀 멎는 듯 싶어 급하게 약을 대충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그리고 서둘러 부엌으로 다시 뛰어갔고, 그땐 이미 팀장님이 소스와 해산물을 볶고 계시는 중이었다.
“...다... 하셨어요?”
“거의 다 한 것 같은데요.”
“..죄송합니다...”
“됐어요.”
면이 다 삶아진 것 같아 물기를 빼려는데 팀장님은 이마저도 하지 말고 식탁에 가 앉아있으라고 하셨다.
그 말투가 굉장히 예민하게 느껴져 나는 어떤 반박도 하지 못하고 고분하게 식탁에 가 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팀장님이 알아서 접시까지 척척 꺼내시고는 파스타가 담긴 접시 두 개를 식탁 위에 올려두셨다.
...대박. 존나 잘 만들었다... 마치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처럼 데코도 완벽했다.
멍청한 표정으로 파스타를 가만히 보는데 팀장님이 ‘왜요. 맛 없어 보여요?’하고 묻는다.
“아니요! 완전.. 완전 대박... 팀장님은 요리도 잘하시네요.”
“그냥 취미.”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죄송하다는 소리 벌써 세 번째예요. 이제 그만해도 돼.”
넵...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포크를 집어 들었다. 다친 손이 왼손이라 다행이다.
팀장님 앞이니까 소식하는 척 해야지. 포크로 파스타 소량을 집어 돌돌 말았다.
그리고 입을 작게 벌려 파스타를 밀어넣는데, 팀장님이 입을 여신다.
“평소처럼 먹어요. 김여주씨 사내식당에서 밥 먹는 거 다 봤으니까.”
“.........”
“산적같이 먹던데.”
...시발... 쪽팔려.
쪽팔림에 눈을 꽉 감았다가 입에 들어온 파스타를 천천히 씹었다.
와.. 대박. 진짜 맛있어. 모양뿐만 아니라 맛도 꼭 파는 파스타 같다. 소스를 분명히 팀장님이 만드신 건데도 말이다.
“우와. 팀장님. 이거 진짜 맛있어요. 팀장님 요리 정말 잘하시나 봐요.”
“원래 소스도 토마토가 좀 씹히게 만드는 편인데, 김여주씨가 토마토를 워낙 잘 다져놔서.”
그렇게 말하신 팀장님이 물 컵을 입에 가져다대셨다.
와.. 진짜, 팀장님이랑 결혼해서 같이 살면 이렇게 요리도 해주고 그러시겠지?
진심 팀장님 같은 남자랑...
“결혼하고 싶다..”
“푸흡.”
“어? 팀장님. 괜찮으세요?!”
물을 잘만 마시던 팀장님이 갑자기 물이 역류한 듯 내뱉고는 미친 듯이 콜록대신다.
나는 서둘러 팀장님께 휴지를 뜯어 내밀었고 휴지를 받아든 팀장님이 잔기침을 하며 입 주변을 닦으신다.
“뭐라고 그랬어요, 지금?”
“네?”
“결혼 어쩐다 했잖아.”
“...아...”
작게 말한다고 말한 건데, 용케 들으신 모양이다.
..그냥, 뭐랄까... 팀장님의 요리에 대한 평가 같은 건데...
“그냥.. 이렇게 요리 잘하는 남자랑 결혼하면 좋겠다. 그런 말이었어요. 평가 같은..”
“평가?”
“아니, 제가 감히 팀장님을 평가한다는 게 아니라요. 그러니까.. 그.. 별 뜻 없이 한 말인데.. 놀라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팀장님을 좋아한다지만 어떻게 벌써 결혼까지 꿈을 꾸겠어요.
좀 진정이 되신 듯, 팀장님은 크흠. 하고 헛기침을 하시고는 포크를 드셨다. 그리고 짧게 고개를 가로젓는다. 정신이 어질하신가보다.
“그런 말 아무한테나 하지 마요.”
“네..?”
“결혼 어쩌고 그거 말이에요.”
“.......”
“이대리 같은 사람이었으면 죽자고 달려들었을 거니까.”
팀장님의 입에서 나온 ‘이대리’라는 말에 정신이 어질하더니 등 뒤로 소름이 끼쳤다. 아.. 생각만 해도 싫다.
그리고 문득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 집에 초대한 사람이 이렇게 강철같은 팀장님이라서.
...사실 좋아해야하는 건지, 슬퍼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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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주말을 훔쳐간 것처럼 시간은 잘도 흘렀고, 어느 덧 출근 날이 됐다.
그리고 나는 이젠 너무 당연한 것처럼 팀장님의 차를 타고 출근을 한다.
팀장님도 이게 익숙하고 편해지신 것 같다. 우리가 탄 차 안에 맴도는 이 침묵도 너무나 익숙하고.
평소와 같이 창밖을 보고 있는데, 급하게 핸드폰에서 진동이 여러 번 울렸다.
“손은 괜찮아 졌어요?”
“네..네?”
핸드폰을 확인하려던 걸 멈추고, 나는 동그랗게 뜬 눈으로 팀장님을 쳐다봤다.
헐...
“팀장님 지금.. 저한테 말 거신 거예요..?”
“.......”
“와.. 대박...”
“사람 무안하게 그딴 식으로 굴 거면 내려요.”
“아.. 아니요. 죄송합니다. 그냥, 너무 신기해서...”
“참나.. 누가 들으면 내가 사람이랑 말도 안하고 사는 사회부적응자인 줄 알겠네.”
와. 이 침묵 속에서 팀장님이 먼저 말을 걸다니.
신이 나서 카톡이 온 것도 까맣게 잊고 몸을 팀장님 쪽으로 틀었다.
“아직 다 안 낫긴 했어요.”
“부담스러우니까 몸은 틀지 말지?”
“팀장님 이제 저 안 싫어요?”
“뭐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팀장님이 먼저 말 건 게 너무 신기해요.”
“그만 좀 하죠? 다시는 먼저 말 안 걸기 전에.”
냉랭하게 말하는 팀장님이 무서워 곧장 ‘넵.’하고 대답하고는 몸을 틀어 제대로 앉았다.
자꾸만 입 밖으로 비실비실 웃음이 튀어나온다. 팀장님이 먼저 말 걸어줬다.
손가락 괜찮냐고 물어봤어. 이거 나 걱정하는 거지? 그럼 나랑 사귀자는 거 맞지?
혼자 망상에 빠지고 있으니 어느덧 차가 회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끝낸 팀장님이 먼저 차에서 내리셨고 나도 따라 내렸다. 그리고 팀장님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가며 핸드폰을 열어 카톡을 확인했다. 배수지한테 온 거네.
엘리베이터가 멈춘 소리가 들렸고, 나는 배수지와의 대화창에 들어가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곧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숮
숮
야 김여주
숮
너 괜찮아?
1 뭐가?
밑도 끝도 없이 괜찮냐고 물어보면 뭐 어쩌라는 거야.
답장을 끝내고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올라가는 층수를 보다가 힐끗 팀장님을 쳐다봤다.
“왜요.”
“네?”
“왜 쳐다보냐고.”
“..항상 생각하던 건데, 팀장님은 뒤에도 눈이 달렸어요?”
“아침부터 말장난해요?”
“...죄송합니다.. 팀장님이 먼저 말 걸어준 게 기분 좋아서..”
“아, 그 얘기 좀 좀!”
“........”
내게 다그치는 팀장님의 표정이 무서워서 정색을 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곧 또 입 꼬리가 올라갔다. 좋은 걸 어떡해요.
또 팀장님께 혼날라, 팀장님께 안 들키게 샐샐 웃고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멈춰 섰고, 팀장님이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시고 난 그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손에 쥔 핸드폰에 또 여러 번 진동이 울렸고, 나는 곧장 카톡으로 들어갔다.
수지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숮
숮
아직 몰라?
숮
오세훈 너네 회사 취직했대
숮
아직 못 만났어?
숮
아 오늘부터 출근이라 못 만났으려나?
배수지의 카톡을 읽자마자 저절로 걸음이 멈춰졌고, 두 발이 얼어붙은 듯 복도바닥에 딱 달라붙었다.
누가 취직을 해?
‘오세훈.’ 눈에 보이는 그 세 글자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김여주씨! 안 오고 뭐해요?”
내가 자길 따라오지 않자 날 부르는 팀장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바삐 움직이는 틈바구니 가운데에서 꼭 내 시간만 멈춘 것 같았다.
그렇게 핸드폰만 바라보며 멍하니 서있는데, 내 옆쪽에서 오는 사람과 몸이 퍽 부딪쳤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핸드폰을 보며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아... 죄송합,”
부딪친 사람에게 허겁지겁 사과를 하며 핸드폰을 집어 드려는데, 나와 부딪친 사람이 먼저 몸을 숙여 내 핸드폰을 집어 든다.
그리고 핸드폰을 내게 내미는 익숙한 손을 보는 순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더듬더듬 고개를 들어 올렸고, 눈이 마주쳤다.
“안녕, 누나.”
“..오세훈...”
....오세훈과.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4.12.27 20:13
첫댓글 헐....세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