⑯ 교육인적자원부 월간 『교육마당 21』: 현장탐방 글 김귀숙 사진 김경수
학생 수가 적어서 행복해요
“교장 선생님 오늘 저 논술 못해요.”
“왜? 무슨 바쁜 일이 생겼니?”
“저 오늘 친척 결혼식 때문에 서울 가야 해요.”
“그래, 좋겠구나. 잘 다녀와.”
3학년 승미가 교장 선생님을 쪼르르 쫓아와 얘기한다.
하교하기 위해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놀던 이삭이도 1층 현관 옆에 있는 교장실 창문으로 고개를 쑥 들이밀며 이야기를 건넨다.
“교장선생님. 저 어젯밤에 어린이 강원일보에 글 올렸어요.”
“그래, 이삭이 글 읽어봤어. 학교 기사도 올렸던데.”
“어머, 교장 선생님이 벌써 보셨구나. 어땠어요?”
“잘 썼어. 이삭이가 학교 기사까지 올릴 줄은 몰랐어. 나 그것보고 기분이 참 좋았어.”
이처럼 교장 선생님과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지낼 수 있는 건 올해 초 새로 부임한 이갑창 교장 선생님이 특기적성 지도를 직접 하면서부터다. 교장선생님은 전교생 이름도 다 알고 있다. 이름을 불러주면 아이들은 참 좋아한다. 그래서 모두 친구 같다.
책과 신문 읽기로 논리력·창의력 길러
한전초등하교는 강원도 양구읍 한전리 양지바른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시골 초등학교. 60여 명의 전교생 중 절반이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이 지역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다.
강원도 두메산골이라는 교육환경 탓에 양질의 교육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이 학교를 알고 나면 무너지고 만다. 아이들이나 교사들 모두 오히려 학생 수가 적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적어서 좋은 게 참 많아요. 맘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선생님도 학부모도 아이들도 모두 같이 해요. 교육공동체 모두가 힘을 합치니 안되는 일도 없고 시끄러운 일도 없어요.”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논술 교육. 학생 수가 자꾸 줄어들어 언제 6학급이 무너질지 모른다는 막연한 불안감과 주소를 옮겨서라도 근처 큰 학교로 전학가려는 학부모들의 욕구를 해결해 보자는 생각에서 나왔다.
아동문학가이기도 한 교장 선생님의 특기를 십분 활용해 ‘책과 신문읽기를 통한 논술력 기르기’를 학교 특색 과제로 선정했다. 학년마다 권장도서와 필독도서를 정해주고 아침 독서시간이나 점심시간, 방과 후 여가시간 등을 이용해 책을 읽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고 있다. 또 어린이 신문을 전교생이 구독하면서 의미를 가지고 신문을 읽고, 신문활용학습(NIE)을 이용해 논리력과 사고력을 기른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엔 교장 선생님이 1시간씩 논술특강도 펼치고 있다.
이렇게 지난 1학기부터 시작한 논술교육이 이제 슬슬 결실을 맺어가고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책을 골라 독서활동을 펼치면서 독서력이 향상되고 생각하는 힘이 길러졌다. 친구나 부모님과 토론을 하고 독서신문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후 활동을 하면서 상상력과 논리력이 좋아졌다. 또 전교생이 일간지와 주간신문을 꾸준히 읽어 지식과 교양이 쌓이고 문제 분석력과 판단력도 길러졌다.
학부모, 교사가 함께 힘을 모아
처음부터 모든 게 쉬웠던 건 아니다. 무엇보다 교육공동체가 모두 힘을 모아야 했다. 그리고 전문적인 지도기술이 부족해 어려움도 뒤따랐다. 그래서 아이들만 배울 게 아니라 학부모와 교사도 함께 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사고력과 창의력, 논리력, 발표력을 길러주기 위해 외부 전문강사 초청수업을 자주 펼쳤는데, 이때 학부모와 교사들도 함께 했다. 그 결과 학부모와 교사의 지도기술이 향상되고 관심도도 높아져 효과는 배가 됐다.
처음부터 아이들이 지금처럼 책 읽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건 아니다. 노는 것만 좋아하고, 만화책을 고르는 아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아침 등교시간이나 점심시간, 방과 후 시간에 학교 도서관을 들르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주변의 도움도 많았다. 도서관은 그럴 듯하게 꾸며져 있으나 정작 읽을 책이 별로 없었다. 그러든 중에 지난 3월 도서출판 비룡소로부터 800만 원 상당의 도서 1,050권을 기증 받았고, 이 학교 졸업생이 중앙지 어린이 신문을 기증한 데 이어서 강원일보로부터는 주간지인 어린이 강원일보를 반액 할인받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각종 군이나 도 단위 대회에서 여러 아이들이 웅변대회나 글짓기 대회, 논술대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상하며 학교 이름을 알리고 있다.
“아이들 모두를 꼬마 문사로 만들겠다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그저 기본기를 길러서 살아가는 데에 보탬이 됐으면 하고 시작했지요. 그런데 상을 받은 아이가 재능 있는 소수 특정인이 아니고 여러 아이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고르게 수준이 높아졌다는 사실이 뿌듯해요. 아이들 스스로 작품을 인터넷으로 투고해 자신감과 함께 글쓰기의 생활화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논리력, 창의력과 함께 정보화 능력도 함께 기르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었죠.”
줄어가던 학생 수가 이젠 늘어나
최근엔 아이들의 수상 소식과 더불어 학교가 양구교육청 혁신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데 이어서 강원도교육청 혁신대회에서 장려상을 수상하자 학부모들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아이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려던 학부모들이 이 학교에서 졸업시킬 것을 굳게 약속했다. 지난 1학기 초 55명이던 학생 수도 5명 늘어나 60명이 됐다. 게다가 가족들의 전·출입 때 아이들을 이 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서는 등 학교 교육활동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가 높아졌다.
“논술교육을 시작한 지 아직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결과를 얘기하기엔 부족함이 있지만 하나하나 작은 변화를 보면서 보람과 긍지를 느껴요. 지금까지의 과정이 논술력을 기르기 위한 기초 훈련과정이었다면 앞으로는 좀더 전문적인 단계로 지도 영역을 넓힐 생각입니다.”
교육활동은 특정인이 잘 해서 이루어지는 게 결코 아니라는 생각을 증명해 준 한전초등학교. 산간벽지라는 교육환경을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길러주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여겼던 학부모와 교사, 그리고 아이들. 교육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뜻과 힘을 모았기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가르침이 현실로 이루어진 건 아닐까.
“열정만 있으면 부족한 건 채울 수 있어요”
교육양극화 현상이 날로 더 심각해지고 학부모님들의 욕구는 끝이 없어 자꾸만 큰 학교, 더 많은 교육활동을 요구하는 요즘. 이갑창 교장 선생님은 학교를 살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논술교육을 시작했다. 막상 마음을 먹으니 열악한 환경은 그저 조그마한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단다. 오히려 교육공동체가 힘을 모으는 계기가 되었다.
“교장선생님, 한전 아이들이 참 밝고 상상력이 뛰어나요. 여러 학교를 다녀봤는데 어쩜 시골 아이들이 그렇게 활발하고 발표도 잘 하는지 저 많이 감명 받았어요.”
외부에서 강사를 초청해 수업을 했더니 강의와 실습을 하고 다녀간 선생님들이 하는 말이다. 물론 듣기 좋으라고 인사치레로 하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을 믿는다고.
“우리 아이들은 참 밝고 명랑합니다. 평소 신념처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열정만 있으면 부족한 건 채울 수 있다’는 말을 증명해 주고 있는 아이들이에요.”
무슨 일을 하던 우리 아이들을 위한 것이냐만 생각한다는 이갑창 교장선생님. 올해는 논술교육을 위한 기초를 다지는 해였다면, 내년에는 NIE 등 본격적인 논술 훈련에 들어갈 계획이란다.
<2007. 11월. 교육인적자원부 월간 교육마당. 글 김귀숙, 사진 김경수. 아동문학가. 양구 한전초등학교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