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주어지는(무료한) 일요일 오후에 창가에 앉아 고기 한 점을 구워 먹는다.
낮술 한 잔은 밤술 열 잔보다 낫고 밤술 열 잔은 한번 씨익 웃는 것보다 못하더라만, 낮술이 어디 있고 밤술이 어디 있던가. 지금 이 시간에도 카다나 고 년은 자고 있을 터이고 몽골 게르 안에서 사랑을 나누었던 고 년은 오전 업무에 한 창 바쁠 터. 벌써 오래 전에 만났던 스페인의 고 년은 아침 준비에 안 바쁘겠나...
한 열흘 전에 사다 놓았던 신선한(?) 야채를 씻어다가 고기 한 점 얹고 싸구려 양주 한 잔 마신 후 입속으로 구겨 넣는다. 입안 가득히 불룩거리며 양손으로 밀어 넣는 순간 ‘내가 이 뭐하는 짓고?’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은 이분법! 생각을 말자 하면서도 씨익 웃음이 나온다.
또 이분념을 즐기기 시작한다.
이곳 광주는 좀 거시기하다. 쥔이 없다. 요란스럽게(?) ‘항우생명광주놀이방’을 붙여 놓고도...
당연하다. 쥔이 뭔지를 모르는 거시기들만 모였응게~.
항원이 쥔이여, 도~ㄹ팍이 쥔이여? 그렇다고 늘 씰데 없는 글만 광주방에 자꾸 올리는 허파램이 쥔이여? 나도 내가 누군 둥 모리는디... 그래도 내하고 늘 함께 술 마시는 대금을 배우는 양반들은 자기들이 나보다 항우를 더 잘 안다. 항우를 마구 설명하고 있다. 암튼 고맙다. 두고 보자 씨이~.
얼마 전에 내가 머무는 광주대금연구소 건물에 수도 작업이 있었다. 집세가 싸다보니 비만 오면 세숫대야 받쳐놓고 낙숫물 소리 듣곤 했는데, 쥔이 과감하게 투자하여 옥상의 뚜껑 없는 물탱크도 치우고 부분적으로 방수도 하며, 수도를 직수로 연결하는 작업을 했다.
역쉬, 직수는 직수! 수도 압력이 세다보니 곳곳에서 물이 새어 나온다.
부산에 머물다가 광주 연구소에 와 보니 방안 벽에 물 얼룩이 흥건하다. 이상타 하고 생각했지만 그러나 나에겐 일체 좋은 현상 뿐!
다음 날, 3층 음악녹음실에서 올라오더니 이상하게 3층 천장에서 물이 샌다고 하면서 살피고 간다. 나도 영문을 모르겠다. 그래서 물 얼룩진 곳을 가만히 살펴보니 과거에 수도꼭지가 있었던 곳에서 가는 물줄기가 미세하게 분수처럼 솟고 있지 않은가? 그곳은 내가 입주할 당시에 수도꼭지가 있었던 곳으로, 아마 그 전에는 싱크대가 놓여 있었던 곳이었던 것 같았다.
아, 매꾸라(알아서 해석 하소) 시킨 곳의 패킹이 낡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드라이버를 가져와서 힘껏 죄었더니 웬걸... 낡은 패킹 사이로 물이 더 솟구쳐 분수처럼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 순간, 어이쿠 이거 큰일 났다 싶으면서 손으로 힘껏 막고 있으니 겨우 새는 것이 멈춘다만 손만 떼면 동맥 핏줄 터졌듯이 펑펑펑...
햐~, 그 순간에 네델란든가 어느 나라에서 소년이 둑 사이로 물이 새는 것을 제 팔뚝으로 막았다나 어쨌다나 하는 글이 생각나면서리... 암튼 큰일이 난 것이다.
손으로 막고 있으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그런데 허둥대는 그 틈새로, 나를 즐기며 지켜보고 있는 또 하나의 나가 있지 않은가? 심장을 두근거리며 허둥대는 나를 지켜보며 즐기고 있는 또 하나의 나를 동시에 발견한 것이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방바닥에 물이 흥건하면 어떻고 이불이 좀 젖으면 어떻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분법적 생각에 젖었을 때는 이미 물 건너 간 시각...!
낮술 한 잔에, 나는 세상을 즐기며 진지하게 살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그래서 생각나는 말은, 그 옛날 따그(중국말로 큰 행님)가 하신
‘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네가 있다. 그러나 내 속에는 네가 없다.’
(오늘 숙제 끝!)
첫댓글 그대 가슴엔 내가,
내 가슴 속엔 그대있어,
그것만 지니고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