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4,11,~12, (토일)
1박2일 성지순례.
1, 강화 석모도 보문사
2, 강화도 전등사,
3,서울 정릉 길상사.
2015,04,12, 일, 맑음,
인사동 골동품 상가서울 종로구 인사동.
북쪽으로는 관훈동(寬勳洞), 동쪽으로는 낙원동(樂園洞), 남쪽으로는 종로2가, 적선동(積善洞), 서쪽으로는 공평동(公平洞)과 접해 있다. 조선 초기에 한성부 중부 관인방(寬仁坊)과 견평방(堅平坊)에 속하였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당시 행정구역 개편 때는 원동(園洞), 승동(承洞), 대사동(大寺洞), 이문동(李門洞), 향정동(香井洞), 수전동(水典洞) 등이 인사동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사동, 이문동, 향정동, 수전동, 승동, 원동 등의 각 일부가 통합되어 인사동이 되었으며, 같은 해 9월 출장소 제도 신설로 경성부 북부출장소 인사동이 되었다가 1915년 6월 경성부 인사동이 되었다. 1936년 4월 동명이 일본식 지명으로 변경됨에 따라 인사정이 되었으며, 1943년 4월 구제(區制) 실시로 종로구 인사정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이 동(洞)으로 바뀔 때 인사동이 되었다. 법정동인 인사동은 행정동인 종로1·2·3·4가동 관할하에 있다. 인사란 지명은 관인방과 대사동의 이름에서 연유한다.
댓절골, 향우물골, 이문동, 원골 등의 자연마을이 있었다. 댓절골은 큰 사찰인 원각사(圓覺寺)가, 향우물골은 우물 옆에 향나무가, 이문동은 순화궁의 이문(里門)이 있었다는 데 명칭이 연유한다. 149번지는 중종반정 때의 정국공신 구수영(具壽永)이 살던 곳으로, 조선 후기에 김흥근(金興根)의 소유였다가 헌종의 후궁 경빈이씨의 순화궁(順化宮)이 되었다.
3·1운동 당시 33인이 모인 태화관(泰和館)이 있었으나 재개발사업으로 헐리고 12층의 태화빌딩이 건립되었다. 일제강점기 말부터 골동품상가가 밀집되어 있으며, 축제로는 관훈동과 함께 1988년부터 해마다 '관훈·인사동 전통문화의 마을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종교기관으로는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승동교회가 있다. 주요기업으로는 성신양회공업(주)의 본사가 있다.
자, 모두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인사동거리로 향해 봅시다.
인사동에 도착.
문화의 거리를 상징하는 탑 모형.
이쁜아가씨들이 한복을입고 거리를 거닌다.
거리에는 사람의 물결,
백혈병돕기운동,
중국관광객.
중국관광객.
외국관광객.
중국관광객.
자세히 보니 중국관광객이 상당히 많다.
또다른 외국인도 보이고,,,,
가게 앞에 머뭇거리는 동양인들은 대부분 중국 관광객이다.
여기도 중국,,,,
여기도 중국 관광객들.
여기는 서양인들이 영업중,
서양관광객.
여긴 캄보디아 인,
인사동 거리를 관광하고 다시 정릉으로 달린다.
길상사에서 5분 거리에 누룽지백숙 식당이 있다.
인물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