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시: 2023년 4월 18일(화) 10:00~
2. 모이는 곳: 경복궁역 3번출구
3. 서촌 골목길 산책
4. 경복궁의 서쪽에 위치하고 주로 조선시대에 중인이 살았던 서촌을 2팀으로 나누어 김상진, 이명희 2분의 해설사와 함께 걸었습니다. 가랑비가 흩날리는 날씨임에도 명쾌한 해설과 함께 근현대사의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들으며 매우 유익한 걷기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통의동 백송터에서 시작하여 골목길이 멋있는 창성동 세종마을 미로미로, 상촌재, 윤덕영 집터, 옥인동 윤씨가옥, 수성동 계곡, 윤동주 하숙집터, 박노수 미술관, 이상범 가옥, 이상의 집 등을 둘러 보았습니다. 특히 이명희 해설사님의 물길에 대한 관심과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약 2시간 30분에 걸쳐 둘러보고 토속촌에서 삼계탕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으며 gute Leute에서 차를 마신 후 해산하였습니다.
<통의동 백송터>
통의동 백송은 높이 16m, 흉고둘레 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백송으로 기록.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1997년 7월의 집중폭우로 쓰러지면서 현재는 밑동만 남은 상태.
<상촌재>
종로구에서 2017년 6월에 개관한 전통한옥 문화공간. 장기간 방치되어있던 경찰청 소유의 한옥 폐가를 2013년 종로구에서 매입해 1년여에 걸쳐 복원. 19세기 말 전통 한옥 방식으로 조성된 상촌재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별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옛 중인들의 주택을 상정하여 건설.
<윤덕영 집터(벽수산장)>
친일파 윤덕영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은사금으로 옥인동 면적의 절반 이상을 사들이고 지은 벽수산장이 있던 곳. 지하1층 지상3층의 벽수산장은 당시 ‘한양의 아방궁’으로 불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 1954년부터 UNCURK(국제연합한국통일부흥위원회) 청사로 사용되다 1973년 도로정비사업으로 철거. 현재 정문기둥 4개 가운데 일부가 골목길에 남아 당시의 흔적을 보여줌.
<옥인동 윤씨가옥>
1919년 지어진 가옥으로 남산골한옥마을에 이집을 똑같이 복제해 만든 집이 있으며 안채 앞쪽의 기둥 머리를 일반 민가에서는 보기 드문 익공양식을 채택하는 등 당시 최상류층 주택의 면모를 보여줌.
<수성동계곡>
조선시대 계곡의 물소리가 요란하다하여 수성동으로 불린 계곡은 경치가 뛰어나 많은 시인묵객들이 사랑하던 장소. 겸재 정선은『장동팔경첩(壯洞八景帖)』에 돌다리인 기린교가 있는 수성동을 묘사. 2011년 이곳에 있던 옥인시범아파트를 철거하고 수성동계곡을 복원.
<윤동주 하숙집터>
종로구 누상동 9번지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를 다니던 시절인 1941년 5월에서 9월까지 약 다섯 달간 하숙했던 소설가 김송의 집이 있던 곳. 그는 이곳에서 ‘십자가’, ‘태초의 아침’, ‘못자는 밤’ 등 10편의 시를 썼다고 전해짐.
<박노수 미술관>
원래 윤덕영이 딸과 사위를 위해 벽수산장 남쪽에 지은 집. 1930년대 근대 건축가 박길룡이 설계한 2층 벽돌집으로 한식과 양식의 건축기법에 일본식과 중국식이 섞여 있는 독특한 형태로 1972년부터 박노수 화백이 소유. 2011년 집과 함께 미술작품과 수석 등 총 994점을 종로구에 기증. 종로구는 기증 작품을 바탕으로 서울시 문화재자료 제1호인 이집을 구립 박노수미술관으로 2013년 9월 개관.
<이상범 가옥>
청전 이상범(1897~1972) 화백이 1929년부터 197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43년을 거주한 곳. 옆에 붙어있는 청전화숙은 1938년 신축되어 작품 활동과 제자 양성에 힘쓴 곳으로 2005년 등록문화재 제171호로 지정.
<이상의 집>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매입하여 문화공간으로 개방한 곳. 《날개》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작가 이상이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와 스물세 살 때까지 20년간 살았던 집이 있던 곳.
5. 참가자(가나다순, 경칭 생략): 김동섭, 김태중, 민용기, 서홍석, 성기태, 이성철, 조영화, 천복남, 최호남, 황선일
6. 다음 걷기는 5월 18일 개원기념식에 참석하는 것으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6월에는 낙산성곽을 걸을 예정입니다.
7. 소요경비: 241,200원
- 중식: 205,000원
- 음료: 36,2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