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액막염
손진숙
모임에 가려고 현관문을 나선다. 행여 약속시간에 늦을까 계단을 후다닥 뛰어 내려가다가 멈칫 섰다. 아차, 또 잊고 말았다. 나는 지금 계단을 오르내리면 안 된다. 우리 집 4층에서 한 층을 내려온 3층이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내려가는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병원을 찾은 건 한 달여 전. 오른쪽 무릎에 이상이 감지된 얼마 뒤였다. 손빨래를 한참 하다 일어나면 뜨끔하고, 높은 곳에 올랐다가 내려올 때도 통증이 일었다.
그날은 걸레로 방바닥을 닦으려고 무릎을 꿇으니 아팠다. 얼른 일어서 양쪽 무릎을 맞대 보았다. 감이 잡히지 않아 앉은 자세로 두 다리를 죽 뻗고 비교해 보았다. 아무래도 오른쪽 무릎이 부은 것 같았다.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갔다. 그때까지도 내일은 병원에 가봐야지 하고 여유를 부렸다.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기로 했다. ‘오른쪽 무릎이 붓고 아파요’라는 질문에 ‘전문의에게 진단을 받아보아야 한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저녁밥 지을 시간이 되었지만 하루도 미룰 수가 없었다. 서둘러 준비해 집을 나섰다. 다행스레 걷는데 아프지는 않았다. 도보로 30분 거리의 정형외과를 찾아갔다.
엑스레이를 촬영해 진찰한 결과, 활액막염이라고 했다. 활액막염은 관절의 활액막이 외상이나 심한 운동자극에 의한 염증 등으로 인해 자극을 받아 혈구와 단백질 섬유를 함유한 점액을 생성함으로써 관절이 부어, 굽히거나 펴는 동작이 제한되는 병이라 했다. 퇴행성관절염과 함께 발병했단다. 물이 차서 부었으니 물을 뽑아내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은 물이 또 차기 때문에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물리치료와 먹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간호사가 덜 걷도록 하고 무릎을 아껴 써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두 다리를 같이 쓰는데 왜 오른쪽 무릎만 탈이 나느냐는 물음에 오른쪽을 더 쓰고 붓고 아픈 무릎의 안쪽이 체중 부하를 더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물리치료실은 2층에 있었다. 계단에 눈길이 갔지만 발길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옮겼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가지 못해 씁쓸한 바람이 가슴 한쪽을 스쳐갔다. 물리치료는 초음파 치료 3분, 얼음찜질 20분, 저주파 전기치료 15분 순서로 진행되었다. 근육 조직에 침투하여 근육이완과 부기 제거, 통증 치료, 순환 정진의 효과가 있다고 했다. 지루한 생각에 물리치료사에게 신문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신문을 손에 들고 활액막염이 내 오른쪽 무릎에 침투한 원인을 나름대로 짐작해 보았다.
돌이켜 보니 오른쪽 다리를 더 많이 쓴 게 맞았다. 고생도 더 많이 시켰다는 데 수긍이 갔다. 십수 년 전에 오른쪽 발목의 아킬레스건이 끊어진 일이 있었다. 깁스를 하여 특수신발까지 제작하여 신고 다니지 않았던가. 기계만 정확한 줄 알았더니 사람의 몸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정밀한가 보았다. 평소 걸음을 떼놓을 때도 오른발을 먼저 내디뎠다. 공을 찰 때도 매번 오른발로 걷어찼다. 깨금발싸움을 할 때는 물론이고, 멈춰 있을 때에도 오른 다리에 몸무게를 기울이는 때가 많으니 그 무릎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무심하다 못해 박정하기조차 했다.
병원에 가기 한 달 열흘 전이었다. 다음날 ‘여수 모임’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1박 2일 동안 주부 자리 비울 채비를 위해 멀리 전통시장까지 걸어서 갔다 오는데 서너 시간은 족히 걸렸다. 집이 가까워지자 오른쪽 무릎이 약간 시큰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이 활액막염의 첫 신호였던가 싶다. 그런 뒤 별다른 증상이 없어 여수에 다녀오고 일상생활에도 그다지 불편을 겪지 않았다. 을
시골에서 태어난 나는 걷는 것만큼은 자신이 있다고 믿었다. 차비를 절약할 목적도 있지만 걷는 자체를 즐기는 편이었다. 나이 쉰을 넘어 그나마 튼튼하다고 믿었던 다리 가운뎃부분 무릎 고장이라니, 적잖은 충격이었다.
물리치료를 일주일, 약을 하루 세 번 열하루 복용했다. 다행히 아픔은 가시고 부기는 주저앉았다. 지금은 병원 출입을 그만둔 상태다. 집에서 얼음찜질을 하고 무릎보호대를 구입해 외출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는 착용한다.
활액막염은 오뉴월 메뚜기처럼, 갯벌의 망둥이처럼 뛰다시피 하는 내 걸음걸이를 변화시키고 있다. 계단을 피하고 평지만 골라 다니고, 걷기 보다는 탈것을 이용한다. 자리에 앉았다가 일어설 때도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같이, 신행 첫날의 신부같이, 아주 조심스럽게 일어난다. 늙고 병들어 쓸모없어져 마구간에서 퇴출될 날을 맞은 말의 신세를 보는 듯하다.
생生의 환희를 거쳐, 노老와 병病의 적막강산을 조심조심, 느릿느릿, 쉬엄쉬엄 걷고 있다. 활액막염으로 몸과 마음이 엇박자인 내 앞에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린다.
《수필과비평》 20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