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에 대한 나의 기대치는 엄청났다. 칸 영화제에서의 극찬, 로튼 토마토를 비롯한 해외 평단의 높은 점수와 안좋은 평을 찾기 힘들 정도로 호평 일색인 국내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도 기대하지 않을 방법이 있다면 알려주길 바란다. 그러나, 대개 그렇듯, 기대가 너무 컸다. 기대가 높을수록 그것을 충족하지 못하고 떨어질 때 더 아픈 법이다. 깔끔하게 잘 만들었다는 점은 인정한다만, 지금의 호평일색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수준이다. 최근 <내부자들>을 봤을때의 느낌과 상당히 비슷하다. 영화 자체는 크게 흠잡을 것도, 그렇다고 칭찬할 것도 없이 그냥그냥 무난한데 무서운 속도의 흥행이나 평단과 관객의 호평은 고개를 갸웃거리게 했었더랬다.
<시카리오>의 촬영감독은 ‘로저 디킨스’다. 그렇다, 촬영 하나는 기가 막히다는 뜻이다. 단 한 쇼트도 허투루 찍지 않는 듯 한 장면 한 장면을 명장면으로 만드는 그의 솜씨는 특히 이번 영화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듯 하여, 촬영이 영화 전반을 이끌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배우들 역시 그들의 이름에 걸맞게 호연을 펼치며 각자의 역할을 소화해낸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Full Metal Bitch’ (전장의 암캐)였던 에밀리 블런트는 이 영화에서는 그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언뜻 강인해보이지만 실은 유약하고 무력하기 그지 없는 FBI 현장 요원으로 분했고, 조쉬 브롤린의 뻔뻔한 연기도 좋았으나 무엇보다 <시카리오>는 베네치오 델 토로의 영화임을 부인할 수가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도 무기력한 듯 풀려 있다 언뜻 서늘하고 강렬한 눈빛을 뿜는 델 토로의 모습만이 강렬한 인상으로 맴돈다. 그의 캐릭터 ‘알레한드로’를 중심으로 한 속편 제작이 확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레한드로’가 상당히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것을 증명한다.
영화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그 범주에 속할 수 있는 폭력의 악순환을 건드리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의 가장 매력적인 인물인 ‘알레한드로’의 전사가 드러나는 순간 영화의 물음은 객관성을 잃고 변질된다. ‘알레한드로’의 싸움이 그저 악에 맞서는 것이 목적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복수를 위한 것이었음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시카리오>는 한 등장인물의 당위성과 매력, ‘복수극’의 쾌감 혹은 비극을 위해 자신이 던지는 물음의 깊이를 포기했다. ‘알레한드로’가 그저 프로페셔널하고 냉소적인 투입 요원이었더라면, 그리고 자신의 목표였던 카르텔의 두목을 잡은 뒤에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악의 고리를 조망했더라면, 영화는 한층 묵직해지지 않았을까. 많은 이들이 칭찬하던 영화의 ‘긴장감’ 또는 ‘서스펜스’ 역시 나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장면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그 분위기를 전반적으로 꾸준히 이어받지 못하고 중간중간 다소 루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시카리오>에 느꼈던 아쉬움은 사실 너무 높았던 기대치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보고 나서 ‘잘 빠졌다’ ‘잘 만들었다’는 느낌은 확실히 받았으니까. 하지만… 가끔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외모에 대해 칭찬하고, 나 역시 그 연예인의 외모가 출중한 것은 알겠으나 왠지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는 연예인들이 가끔 있다. 개인적인 예를 들자면 소녀시대의 윤아가 그렇다. <시카리오>는 마치 윤아를 보는 기분이었다. 남들이 모두 잘 만들었다고 호평을 하고, 나 역시 웰메이드라는 점은 인정하나, 왠지 나에게는 큰 감흥을 주지 못했다. ‘심연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그 심연 역시 당신을 바라본다’는 유명 구절로 귀결되는, 악을 악으로,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하고 괴물을 잡기 위해 괴물이 되는 류의 주제의식을 가진 많은 영화들 중에, <시카리오>가 손에 꼽힐 수 있을까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저을 것이다.
※ 박티노의 소감은 짧ㅡ게 EP. 01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끝입니다.
첫댓글 추구하는 바 처럼 가볍지만 매우 즐겁고 깊은 리뷰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