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역사를 담다 7」 - 《시조21》 2023. 봄호 연재
사랑, 타임캡슐을 열다
김덕남
조선판 사랑과 영혼은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아름답고 처절한, 그래서 더 아픈 사랑! 400여 년을 아리게 하는 그것은 그리움일까, 외로움일까.
내 안에 일기 시작한 파문 하나가 커다란 물결로 퍼진다. 언젠가 보았던 TV 뉴스가 눈앞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 떠나자. 행장을 꾸렸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바꿔타는 순간 눈앞을 가리던 안개도 서서히 흩어지고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진다.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 컬링 하면 떠오르는 의성을 지나다 보니 안동이 눈앞이다. 산이 에워싸고 물이 돌아가는 곳, 값진 문화유산과 기품이 서려 있는 선비의 땅으로 몸보다 맘이 서둘러 들어간다. 안동대학교 문을 들어섰다. 오가는 학생들이 성균관 유생처럼 의젓하고 여유로워 보인다. 박물관이 있는 건물의 3층으로 올라갔다. 잘 정돈된 전시실 한쪽에 못 박은 듯 발이 붙었다. 내가 찾던 편지가 타임캡슐을 열고 말을 걸기 시작한다. ‘원이 엄마’의 숨결이 내 이마에 닿는다.
어찌 날 혼자 두고 그리 멀리 가셨나요
지금껏 내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해마다 봄풀은 돋아 설움으로 번져요
어린 것 철이 들면 무어라 말할까요
저 앞집 대감댁엔 담을 넘는 웃음소리
차라리 눈 귀 멀다면 가슴 반쪽 남을 텐데
산 넘고 물을 건너 어린 원이 보고파서
미투리 꺼내 신고 월영교 밟는 당신
에움길 물어 물어서 박물관에 오셨네요
- 김정 「미투리 신고 박물관에 오다」전문
여기 원이 엄마가 환생한 듯 죽은 남편에게 편지를 쓰는 시인이 있다. “어찌 날 혼자 두고 그리 멀리 가셨나요.” 원망하듯 애원하듯 망자를 부르지만 대답이 없다. “차라리 눈 귀 멀다면 가슴 반쪽 남”았을까. 다 녹아버린 가슴으로 슬픔을 억누르며 한 자 한 자 눌러 조선판 사랑을 소환하고 있다. “에움길 물어 물어서 박물관에” 온 편지와 미투리를 보며 시인은 전율하듯 절규하듯 시조를 쓰고 있다. 400여 년을 거슬러 원이 엄마와 아빠가 이 글을 읽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아릿한 아픔이 따라온다.
박물관 유리벽 안에 전시된 초서체 ‘편지’, ‘미투리’ ‘옷’ 등의 유물이 마치 어제 일같이 말을 걸어온다. 1998년 4월 안동시 정상동 일대 2기의 무덤에서 미라와 함께 100여 점의 복식이 출토되었다. 시신은 모두 두 겹으로 된 목관에 들어 있었고 석회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나무의 결이 생생한 하나의 관을 열자 망자의 가슴을 덮고 있는 “원이 아버지께”로 보내는 한글 편지가 나왔다.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세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는 “여보, 다른 사람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로 이어진다. 이러한 사랑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으니 그 슬픔을 어찌 다 말을 할 수 있을까.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살아서는 올 수 없으니 꿈에라도 다녀가라는 말에 지아비에 대한 지어미의 그리움이 사무친다. “뱃속 아이를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원이의 동생을 임신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면이 모자라자 종이를 돌려 위 여백에 다시 시작한다.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구구절절 서럽고 안타깝고 아픈 심정이 강물처럼 굽이친다. 등줄기가 서늘하게 아파온다. 사랑을 잃고 장례 절차를 밟는 사이 흘려쓴 편지글은 437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히 전달된다. 위 여백에도 빼곡하여 더 쓸 수가 없자 처음 시작하는 쪽으로 돌려 거꾸로 마지막 인사말을 쓴다. “하고 싶은 말은 끝이 없어 이만 줄입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고어체의 편지글 해석은 안동대 박물관에서 발행한 안내자료 참고 및 인용)
아, 이렇게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를 주고받은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 편지 외에도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다. 관을 덮고 있는 고성 이씨라고 쓰인 명정銘旌, 미투리, 치마, 여성 장옷, 아이의 저고리가 있고 2편의 한시, 11통의 서신 등이다. 수의를 벗긴 모습은 염습 당시의 하얀 얼굴에 수염이 나 있는 180cm 정도의 건장한 남자였다고 한다. 아버지가 ‘아들 응태에게’ 보낸 편지가 9통, 형의 편지가 2통이다. 형 몽태가 동생 응태를 애도하며 쓴 「泣訣舍弟」(울면서 아우를 보낸다) 제하의 만시輓詩에 “共汝奉旨甘(아우와 함께 어버이를 모신 지가) / 于今三十一(지금까지 31년인데) / 奄然隔重泉(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다니)...”라며 말미에 舍兄神亂哭草(형이 정신없이 곡하면 쓴다)고 하는 것을 보면 동생을 먼저 보내는 형의 마음이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 먹먹한 가슴 진정시킬 수가 없다. 무덤의 주인은 편지글의 내용과 고성 이씨 족보를 확인한 결과 서른한 살에 요절한 이응태(1566~1586)였으며, 또 한 기는 이응태 할머니 일선 문 씨로 밝혀졌다.
‘원이 엄마 테마공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응태 무덤이 발굴된 장소에서 500m 떨어진 곳인 안동지방법원 앞과 옆 주변으로 2005년 조성되었다. 원이 엄마는 고성 이씨 귀래정파 이응태의 부인이다. 미투리를 가슴에 안고 남편을 그리며 서 있는 모습이 애련하다. 돌에 새긴 편지글의 원본과 현대말 번역본, 쌍가락지 조형물 등과 귀래정이 있다. 그날의 사랑이 생생히 살아 21세기를 사는 우리 가슴을 촉촉하게 적신다. 원본에는 “엇디 ᄒᆞ야 나를 두고 자내 몬져 가시ᄂᆞᆫ고”처럼 남편을 ‘자내’라고 지칭하고 있다. 그것도 14번이나. 요즘이라면 막역한 친구나 아랫사람에게 예의를 차려 사용하는 호칭이다. 절친처럼 스스럼없이 부르는 호칭이 다소 의아하지만, 그 시절의 일반적인 호칭인가도 싶다. ‘자내’라는 원어를 ‘당신’이라는 요즘에 어울리는 말로 해석하여 이해를 돕고 있다.
성종실록에는 ‘우리나라 풍속은 남자가 여자 집에 들어가는(장가가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으며, 율곡, 회재 선생도 외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예를 볼 수 있다. 1900년대 중반까지도 결혼하면 신부는 바로 시댁으로 오지 않고 친정에 다소간 머물다 시댁으로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 풍습은 내 어릴 때까지도 어느 정도 이어졌다. 어머니도 16세에 결혼하여 친정에서 해를 묵히셨고, 재당숙모도 아기를 친정에서 낳아 시집올 때 웃각시가 안고 오는 것을 본 적이 있으니까. 이응태 부친의 편지에서 장인 안부를 묻는 것을 보면 이응태는 오랫동안 처가살이를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응태 부부의 애정 표현도 퍽 자유스러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낙동강변을 따라 안동호 월영교에 다다랐다. 387m 나무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밤이면 달빛이 호수 위를 비추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는 월영교月影橋다. 하필 그믐이라 달은 볼 수 없었으나 멀리 조형 달이 대신하고 있다. 어둠이 내려앉자 다리에서는 오색 빛을 비추기 시작한다. 색과 색이 바뀌며 무지개를 피운다. 물 아래 환상의 세상을 연출하고 있다.
가닥가닥 시詩를 뽑아 그대에게 바칩니다
얼기설기 엮어내어 지어 올린 신발 한 켤레
당신께 띄워 보내면 강물 건너 오실까요
서천西天으로 가는 열차, 기적소리 멀어지고
달빛 속에 물빛 속에 그대가 남았습니다
남아서 그리운 이름, 그리워 남은 이름
물결 한 올 일지 않고 가슴 깊이 파고드는
가늘어진 그대 음성, 얼어붙은 그대 눈빛
뜨거운 안부를 엮어 맨발 아래 놓습니다
- 성국희 「미투리–월영교에서」 전문
“가닥가닥 시詩를 뽑아” “얼기설기 엮어내어 지어 올린 신발 한 켤레”를 당신이 신고 오신다면 춤이라도 출 텐데. 이 미투리 짜서 “당신께 띄워 보내면 강물 건너 오실까요?” 엇갈리는 운명이 바늘 끝으로 찔러오듯 아프다. “달빛 속에 물빛 속에” 당신이 비치는데 당신은 어디에도 없으니. “남아서 그리운 이름 / 그리워 남은 이름”을 부르며 한 올 한 올 사랑을 엮고 있는 시인이여! 망자의 발아래 놓으면 오늘 밤 그 신 신고 월영교를 건너오리라.
월영교는 원이 엄마의 미투리를 상징하여 2003년 4월에 건립되었다. 미투리를 싸고 있던 한지에는 “...이 신 신어보지도...”, “...곁에 넣어...”, “...버리지 마시고...”의 글귀가 남아 있다. 병든 남편의 쾌유를 기원하며 머리카락과 삼실을 한 올 한 올 꼬아 미투리를 삼는 원이 엄마의 간절함을 느낀다. 한지가 크게 훼손되어 남아 있는 글이 이것뿐이라 안타깝다. 이 미투리 신고 저승길 가다 다시 돌아오라는 간절한 바람을 적었을까. 저승에서라도 이 미투리 신고 날 생각하라는 말을 적었을까. 가슴을 덮은 편지글에서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라고 했다. 또한 “나는 꿈에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라고 적었으니 이보다 더 간절한 말이 있을까. 이응태는 부인의 글을 저승에서 읽었을까. 부인의 꿈에 나타났을까. 애절하고 숭고한 사랑은 노래로 뮤지컬로 오페라로 소설의 소재로 재탄생하고 있다.
월영교 옆 강변에는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원이 엄마 테마길’이 조성되어 있다. ‘상사병(love bottle), 서로의 사랑을 담다’라는 테마로 울긋불긋한 작은 병 속에 사랑의 글을 써서 자물쇠로 채워 철망에 달아 놓았다. 원이 엄마와 아빠의 안타까운 ‘상사병相思病’을 ‘상사병(love bottle)’으로 치환시켜 놓았다.
이런 곳 이런 배경 맹서하기 좋은 곳
열쇠는 물속 깊이 던져두고 찾지 말자
언약은 풀리면 안 돼 입술 꼭 닫았다
- 김소해의 「자물쇠」전문
“열쇠는 물속 깊이 던져”버리고 “입술 꼭 닫”은 언약의 「자물쇠」 앞에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어둠을 빙자하여 반쯤 얽힌 상태로 키스를 퍼붓고 있는 연인을 흘끔흘끔 쳐다본다. 요즘 명승지나 관광지를 가면 사랑의 자물쇠를 걸어 둔 곳을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서울 남산에는 탑이라 할 만큼 거대한 사랑의 자물쇠탑이 있다. 그런데 여기는 특이한 ‘상사병’을 걸어두었다. 작은 병 속에 사랑의 편지를 넣어 자물쇠로 채워 놓았다. “열쇠는 물속 깊이 던”졌으므로 누구도 그 사연을 읽을 수가 없다. 사랑은 둘만의 것이므로. 어쨌든 저 안에 담긴 사랑이 맺어져 영원하기를 기원해본다.
원이 엄마 편지를 찾아 타임머신을 타듯 시간을 거슬러 갔다. 안동대학교 박물관, 원이 엄마 테마공원, 월영교, 상사병(love bottle)길을 걷는 동안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을 보았다. 영국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한국에는 ‘이응태 부부’를 들 수 있지 않을까. 로미오와 줄리엣이 허구라면, 이응태 부부는 실체다. 그래서 더 감동적이다. 이응태 부부의 사랑은 400여 년의 타임캡슐을 열고 1998년 KBS 역사스페셜, 다큐멘터리 저널 《내셔널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에 소개됐고, 2009년 3월에는 원이 엄마 한글 편지와 출토물을 다룬 연구논문이 국제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 표지 논문으로 실려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앞으로도 원이 엄마의 사랑은 영원히 살아 문학과 예술의 소재로 다양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김덕남 :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올해의시조집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등
- 《시조21》 2023.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