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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키워드로 읽는 ‘홍성란’이라는 브랜드
임채성(시인)
# 첫 만남, 그 강렬한 이미지
홍성란 시인을 처음 만난 곳은 광화문의 한 서점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창비, 1999)라는 시집 속에서였다. 고정국, 오종문, 이달균, 이재창, 전병희 시인과 함께 실린 ‘6인 시조집’이란 소제목이 붙어 있는 앤솔러지로서 1980년대 후반 문단에 데뷔한 여섯 시인이 풀어놓는 이미지와 담론의 시학을 통해 우리 시조가 일궈낸 다양한 음색을 느낄 수 있는 시집이었다. 시조 창작에 뜻을 두고 전범(典範)이 될 만한 텍스트를 찾던 중에 발견한 보물이었다. 당시만 해도 시조집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모음집은 시조를 공부하던 습작생에게는 더없이 좋은 교과서였다.
그날 이후 홍성란이라는 이름은 결코 잊을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브랜드가 되었다. 활달한 시어와 거침없는 시상의 전개가 강렬한 첫인상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첫인상은 ‘시조이면서 시조가 아닌 것 같은 시조’의 느낌이었다. 형식과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는 자유로운 비상의 날갯짓을 보았던 것이다. 「푸른 별, 몽고반점」이라는 타이틀을 단 홍성란 시인 편 표지(도비라)에는 자신의 지향점을 자서 형태로 분명히 밝혀놓고 있었다.
“시조가 무던히 걸어가 닿아야 할 목표는, 시조의 형식이 형틀로 인식되지 않은 가운데, 그 정갈한 시어가 그려내는 언어 풍경과 언어 이면의 소리를 듣게 하는 데 있다. 내 문학의 지향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 풍경과 울림이 늙은 향나무 그늘 아래 소리 없이 솟는 맑은 샘물 맛 닮기를 희망한다.”
그때는 솔직히 그 문장들의 의미를 자세히 읽어내기 어려웠다. 그러나 문단 말석에 자리를 잡고 조금씩 연차가 쌓이게 되면서 ‘시조의 형식이 형틀로 인식되지 않은 가운데, 그 정갈한 시어가 그려내는 언어의 풍경과 언어 이면의 소리’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자서는 지금도 여전히 홍성란 시인의 문학 지향점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라 여겨진다. 실제로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에 수록된 15편의 시조들은 형식적 실험과 언어 너머의 의미를 탐구하는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그중 특히 내 눈길을 오랫동안 멈추게 했을 뿐만 아니라 첫사랑의 기억처럼 깊게 각인된 두 작품이 있다.
풀잎은 풀잎끼리 오늘도 사랑한다 입술은 입술끼리 밤새워 사랑한다 또 하루 거짓말같이 해가 지고 달이 뜬다 사랑이 이다지도 슬픈 줄 몰랐노라 익숙한 체위로 밤낮없이 사랑한다 또 하루 거짓말 같은 우리 인생 흘러간다
- 「악!」 전문(『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창비, 1999)
이 시는 내용보다 제목에 더 마음을 빼앗겼던 작품이다. 제목이 이럴 수 있다니 놀라웠다. 무료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권태를 깨닫는 순간의 경탄과 탄식을 ‘악!’이라는 외마디 비명으로 바꾼 시인의 심미안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두 수짜리 연시조를 행갈이 없이 줄글로 처리함으로써 시간적 순차성과 삶의 흐름을 표현하는 형태적 대담성에도 감탄했다. 은유적 이미지의 형상화가 아닌 진술적 나열만으로도 시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우물 밖으로 끌어내는 느낌이었다. 삶의 진정성을 표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 되었다.
단비 한번 왔는갑다 활딱 벗고 뛰쳐나온 저년들 봐, 저년들 봐. 민가에 살림 차린 개나리 왕벚꽃은 사람 닮아 왁자한데,
노루귀 섬노루귀 어미 곁에 새끼노루귀, 얼레지 흰얼레지 깽깽이풀에 복수초, 할미꽃 노랑할미꽃 가는귀먹은 가는잎할미꽃, 우리 그이는 솔붓꽃 내 각시는 각시붓꽃, 물렀거라 왜미나리아재비 살짝 들린 처녀치마, 하늘에도 땅채송화 구수하니 각시둥굴레, 생쥐 잡아 괭이눈 도망쳐라 털괭이눈, 싫어도 동의나물 낯두꺼운 윤판나물, 허허실실 미치광이 달큰해도 좀씀바귀, 모두 모아 모데미풀 한계령에 한계령풀, 기운내게 물솜방망이 삼태기에 삼지구엽초, 바람둥이 변산바람꽃 은밀하니 조개나물, 봉긋한 들꽃 산꽃 두 팔 가린 저 젖망울.
간지러 봄바람 간지러 홀아비꽃대 남실댄다.
-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전문(『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창비, 1999)
의고와 근엄을 갑옷처럼 두른 시조만 보아 오다 이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 그동안의 갑갑함이 확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형이란 율격 안에 갇혀 있는 것만으로도 답답한데, 지나치게 엄숙주의의 탈을 쓰고 있는 것이 시조라고 여겨지던 때에 이처럼 자유분방한 표현을 대하고 보니 여태껏 시조의 진경을 보지 못했음을 실감했던 것이다. 관능미가 물씬한 이러한 발칙한 상상력은 시인의 솔직함에서 기인하는 것 같다. 정직함이 아닌 솔직함은 시인의 본능이자 자질로서 서정시의 필요충분조건이 되기도 한다.
‘솔직’과 ‘정직’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솔직하다는 것은 자기감정에 충실한 것이고, 정직하다는 것은 남을 배려하는 것이다. 솔직함은 전부를 다 풀어헤쳐 놓는다. 이율배반적인 것들과 대책 없는 것들과 막무가내인 것들까지 가리지 않고 그냥 다 털어놓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는다. 반면 정직함은 전부를 다 풀어놓지 않는다. 이율배반적인 것들 중 일관성을 찾아 정리하고, 대책 없는 것들의 대책을 궁리한다. 그 때문에 정직함은 한층 더 정돈되어 있으나 고집스럽고 편집적이다. 믿음을 주겠다는 신념 아래 의도적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가리는 것이 있을 수밖에 없다.
위의 시조 「봄이 오면 산에 들에」는 가리는 것이 없다. 독자가 어떻게 읽고 생각하든 작가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분명히 엿보인다. 봄이 온 산과 들에 피어나는 야생화의 이름과 그에 대응하는 대칭적 수식의 표현을 통해 시인은 자신의 언어 기교를 한껏 뽐내기도 한다. 표현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미학적 발칙함의 원천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솔직함이라 할 수 있다. 자신감은 곧 자존감이다. 이러한 시적 태도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신념대로 움직이는 홍성란 시인의 성정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부터 홍성란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시인의 이름이 아닌 하이클래스의 명품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다.
‘브랜드(Brand)’는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평범한 물건보다 소비자가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하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고 광고·마케팅의 고전으로 일컫는 『포지셔닝(Positioning)』(Jack Trout & Al Ries, 1981)은 이야기한다. 따라서 브랜드를 만드는 브랜딩(Branding)’은 결국 차별화의 과정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쟁상대의 그것과 달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차별화를 위해서는 ‘브랜드 가치’가 필요하다. 브랜드 가치는 브랜드를 떠받치는 근본 신념이나 철학을 의미하지만 그 속에 남다른 개성이 들어있어야 한다. 개성에는 성실, 믿음, 세련, 고전, 야성 등의 다양한 페르소나가 있다. 이러한 페르소나가 소비자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자리 잡느냐에 따라 브랜드의 가치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시인의 브랜드는 자기 자신이다. 시인의 이름이 ‘브랜드 네임(Brand Name)’이 되고, 독자 또는 평론가에게 어떻게 인식되는지(포지셔닝 되는지)가 그 시인의 브랜드 가치이자 자산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홍성란’이라는 브랜드는 1989년 등단 이후부터 지난 30여 년 동안 독자와 평론가, 또는 동료 시인들에게 매우 각별한 존재로 포지셔닝되어 왔다. 시인이자 연구자이자 시조 전도사로서 시조 문단뿐만 아니라 예술계 전반과 교류하며 시조의 창작과 보급, 그리고 현대적 계승과 발전을 위해 열 일을 해온 것이다.
홍성란 시인이 걸어온 등단 30년이 넘는 시간은 어떤 의미일까? 강산이 세 번은 바뀌고,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의 ‘한 세대(世代)’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그 파동의 높이와 깊이가 얼마나 역동적이었을 것인지 섣불리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올한 선배의 자취를 따라가고픈 후배 시인으로서 그 발자국을 톺아본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 그 때문에 이 글은 한 어리보기 후배 시인이 남다른 감성과 심미적 언어로 구축해온 ‘홍성란’이라는 대체 불가능한 카리스마적 브랜드에 바치는 헌사이다. 이는 완미한 서정으로 일군 시조의 궁극적 가치 지향에 대한 동조의식의 표현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의 황진이’라는 표현처럼 예술적 천재성을 지닌 홍성란이라는 브랜드를 뒷받침할 수 있는 키워드는 많다. 하지만 필자가 꼽는 키워드는 ‘꽃’, ‘방하착(放下着)’, ‘단시조와 사설시조’ 등 세 가지다. 이들은 홍성란 시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라 할 수 있다. 시적 제재로 사용된 ‘꽃’은 미학적 자기완성과 시적 성취에 대한 이상(理想)을 상징하며, 주제적 측면에서의 ‘방하착’은 관조와 달관에 이른 성숙한 자아를 표징한다. 또한 형식에 있어서의 ‘단시조와 사설시조’는 정형과 실험 사이 끊임없는 혁신과 법고창신의 의지로 읽혀진다. 제재와 주제, 형식 등 세 가지 측면에서의 키워드를 바탕으로 ‘홍성란’이라는 브랜드의 가치와 면모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믿는다. 지극히 주관적인 ‘수박 겉핥기’가 된다 하더라도 홍성란 시학이 추구해온 30여 년의 오롯한 자취를 따라가 보도록 하자.
# 꽃, 그 꼿꼿한 자존
홍성란 시인은 지극히 평범한 일상적인 언어로 삶의 본질을 꿰뚫는 비범한 시조를 써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시편들에는 평범과 비범을 넘나드는 꽃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에서 보여준 수많은 야생화들 외에도 복사꽃, 매화, 벚꽃부터 산철쭉, 영산홍, 산수유, 수수꽃다리, 명자꽃, 애기메꽃, 개나리, 어리연꽃, 냉이꽃, 진달래꽃, 분꽃, 금낭화, 귀룽나무꽃, 캄보자꽃, 달맞이꽃, 봄맞이꽃, 과꽃, 산나리, 도라지꽃, 제비꽃, 달개비꽃, 억새꽃, 구절초, 수크령, 백일홍, 수련… 등 세상의 꽃이란 꽃은 모두 가져다 모아놓은 ‘꽃밭’을 그려내고 있다.
꽃은 미학적 자기완성을 향한 문학의 지향점이나 이상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홍성란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꽃’의 이미지는 그보다 훨씬 깊은 알레고리적 의미를 담고 있다. 그들은 장미나 난초처럼 좋은 환경의 온실에서 인공의 손길로 가꾸어진 존재들이 아니라 길섶이나 들녘, 산과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비바람에 흔들리며 피고 지는 야생의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그 때문에 인간사의 오욕칠정을 대변하며 시의 주체이자 객체로서 기능한다. 또한, 이들은 고전적 자연서정과도 대척점에 서 있다. 꽃은 단순한 시적 제재로 쓰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주제의 형상화로 귀결되고 있음도 자주 볼 수 있다. 그 꽃은 시조의 궁극적 가치를 찾으려는 시인의 핏빛 자존으로 피어난 것들이다. 홍성란 시학이 견지해온 꽃의 형상화는 실존적 자기인식을 통한 세계관의 확립이자 미학적 성취를 향해 나아가는 시인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후회로구나
그냥 널 보내놓고는
후회로구나
명자꽃 혼자 벙글어
촉촉이 젖은 눈
다시는 오지 않을 밤
보내고는
후회로구나
- 「명자꽃」 전문(『바람 불어 그리운 날』, 태학사, 2005)
만해마을을 구성하는 빗돌로도 서 있는 「명자꽃」을 보면, 홍성란 시인이 개성적인 발화와 새로운 미적 질서 창조에 얼마나 능숙한 시인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고수와 하수를 가름하는 기준이 있다면 이런 것이 아닐까. 하수가 시적 대상의 이미지화에 급급하다면 고수는 대상물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형상화에 능숙하다. 다시 말해, 홍성란 시인은 사물의 외관을 회화적 이미지로 재현하기보다는 대상물에 개성적인 세계관이나 정서적 상황을 덧입혀 놓음으로써 존재론적 감각을 인식론적 세계로 확장시키는 데 탁월하다는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가 진리(본질)일 수 없으며, 상상과 묘사의 힘으로 그 진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별개일 수 있으나 존재론적으로 둘은 서로 의지하며 상호보완의 관계를 맺고 있다.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상상과 실재, 구상과 추상, 채움과 비움, 화려함과 덧없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타고난 언어 감각과 이미지 구현 능력으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채(文彩)를 빚어 올리고 있는 것이다.
한때 세상은
날 위해 도는 줄 알았지
날 위해 돌돌 감아오르는 줄 알았지
들길에
쪼그려 앉은 분홍 치마 계집애
- 「애기메꽃」 전문(『애인 있어요』, 시인생각, 2015)
「애기메꽃」의 ‘꽃’은 존재의 실존적 환기이다. ‘애기메꽃’은 시간 속에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현존재다. 존재자는 ‘시간의 구속성’을 벗어날 수 없다. 망각에서 소환된 존재는 언제든 다시 망각의 터널 속으로 매몰될 수 있다. 시인에게 존재(자)의 실존은 망각과 현실 사이에 있다. 박제화된 기억 속에서 ‘애기메꽃’은 실존의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 ‘꽃’은 망각과 실재, 과거와 현재 사이에 걸쳐 있다. 실존은 이렇게 두 개의 대척점들 사이에서 움직인다. 그것은 욕망에 저항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성찰을 이끌어낸다. 「애기메꽃」은 풍화된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존재론적 탐색이자 자존 회복의 열망이다. 유년기에 가졌던 자기애(Self-love)의 감정을 돌아본다는 것은 현상태에 부족한(또는 결핍된) 자존감을 되찾고 싶은 욕망의 표출이다. 그러니까 시인에게 있어서 ‘애기메꽃’은 순수의 시대에 가졌던 꼿꼿한 ‘자존’의 상징이자 여전히 품고 싶은 사회화된 ‘욕망’이다. 여성과 자연의 동일시를 통한 에코 페미니즘적 정서는 여성이 사회의 주체로 올라서고자 하는 욕망을 대변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적 한계에 부닥친 시적 자아의 자존 모색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에코 페미니즘적 사유는 나무와 풀에게도 전이되어 식물적 상상력의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 방하착, 그 달관의 경지
홍성란 시인의 종교적 뿌리는 가톨릭이다. 하지만 불교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의 시편에서 자주 드러나는 불교적 사유 때문이리라. 가톨릭은 1965년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발표한 ‘비 그리스도교 선언’을 통해 타종교와의 화합을 다짐하며 종교 간의 대화와 평화를 강조한 바 있는데 홍성란 시인이 그 선봉에 서 있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는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제행무상(諸行無常)이란 불교 용어를 자주 인용한다. 세상 모든 만물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없기에 ‘지금-여기’의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실존적 고통과 고독의 시간을 견디며 피워올린 성숙한 자아의 달관적 세계인식이라 할 수 있다.
초기의 시풍이 태풍도 두렵지 않다며 꼿꼿한 자존을 세우던 원색의 여름꽃이라면, 지금은 온갖 풍상을 다 겪은 후에 한결 진한 향기를 풍기는 가을의 들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화려한 언술과 꼿꼿한 자존을 내세우던 작풍이 어느새 세계와 대상을 관조하며 응축된 사유를 통해 더욱 단단해지고 여유로워진 내적 성숙으로 진화한 것이다. “아니, 서러운 건/ 별도 아닌/ 눈물도 아닌// 시드는 꽃이다/ 팽팽한/ 자존이다”(「황진이 별곡」)고 했던 시인은 이제 “산야에 구르다 얹혀/ 물가에 구르다 앉아// 콧대도 낯빛도 문드러지고 문드러져// 비운 듯/ 기운 듯 말가니 늙은 돌”(「매혹」)이 되었으니 말이다.
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
비탈 아래 가는 버스
멀리 환한
복사꽃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
- 「소풍」 전문(『춤』, 문학수첩, 2013)
이러한 불교적 사유가 빛을 발하는 시편이 「소풍」이다. “여기서 저만치”라는 관념적 거리를 “인생”이라 규정한 시인의 눈에 들어온 풍경은 특별한 듯하면서도 특별하지 않다. “비탈 아래 가는 버스”는 우리의 인생 그 자체다. 동적인 ‘버스’와 정적인 ‘비탈’, 생명 에너지가 충만한 ‘복사꽃’과 생기가 소진된 ‘봉분’의 대비는 우리 삶의 빛과 그림자를 함축하는 메타포라 할 수 있다. 시인은 대조적 풍경을 통해 삶과 죽음이 따로 있지 않고, 서로서로 인연을 맺고 있다는 것을 설파한다. 인생을 ‘소풍’이라 했던 천상병 시인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삶과 죽음의 등치를 통해 인생을 읊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결국 공(空)과 색(色)은 하나로 맞닿아 있다는 ‘공즉시색 색즉시공(空卽是色 色卽是空)’의 법문을 봄날 어느 하루의 풍경첩 속에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무상생(有無相生)의 이미지는 “진달래 피었구나/ 너랑 보는 진달래// 몇 번이나 너랑 같이 피는 꽃 보겠느냐// 물떼새/ 발목 적시러 잔물결 밀려온다”(「진달래꽃」)에서도 발현되고 있다. 이처럼 아무렇지 않게 툭툭 내뱉는 시어 하나하나가 다채로운 의미망을 구축해간다는 점에서 홍성란 시학의 돌올함을 엿볼 수 있다.
흙탕이 좀 튀었으나
그것은 생의 무늬
꼴뚜기도 망둥이도 모두가 스승이었다
번뇌가
보리(菩提)라는 말 오늘에야 들었다
- 「메아리」 전문(『매혹』, 현대시학, 2022)
불교사상의 핵심은 ‘고집멸도(苦集滅道)’로 집약된다. 인간사의 모든 괴로움은 번뇌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니 이를 사라지게 하는 깨달음에 드는 순간 득도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번뇌는 결국 마음이다. 마음은 불편에서 편리를 창조하고, 불안에서 평안을 이끌며, 우울을 환희로 바꾸는 등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하는 중요한 특징이다. 하지만 그 마음 때문에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힘들어한다. 결국, 번뇌를 없애는 길은 마음에 달려 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화엄사상도 이에서 연유한다. 「메아리」는 마음(감정)의 구속에서 벗어나 궁극의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안내한다. “흙탕”을 더러운 얼룩이 아닌 “생의 무늬”로 받아들임으로써 노여움이나 괴로움 같은 번뇌는 사라진다. “꼴뚜기도 망둥이도 모두가 스승”으로 여겨질 때 우리의 삶은 얼마나 평온하고 여유로워질 것인가. 좋은 가르침뿐만 아니라 나를 괴롭혔던 번뇌까지도 깨달음의 원천이 됨을 낮은 목소리로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내 얼굴 편치 않은 건/ 내가 날 괴롭힌다는 것// 헛간 데 떠다녔다고 하루가 웃는 들길에서// 나 말고/ 날 쥐었다 폈다 누가 할 수 있겠니”(「저녁의 마음」)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의 삶 자체가 ‘번뇌’이고 ‘보리’라고 일깨워주는 시편은 시집 『매혹』을 관통하는 핵심주제이기도 하다. 괴로움의 원천이 된 ‘마음’들을 내려놓음으로써 평안을 구하는 구도자적 태도는 더 둥글어지고 더 넓어진 품으로 세상과 만나려는 시인의 현재 자화상이기도 하다. “쓴맛을 알게 되었으니 웃을 일이 남았다”는 「블랙커피」의 진술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진정한 깨달음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옛 선사들의 말씀이 이들 시편에 어른거린다.
# 형식, 그 자율과 혁신
일찍이 유성호 교수(한양대, 문학평론가)는 홍성란 시인을 일컬어 “시조 양식의 외연을 넓히면서 동시에 그 오래된 정체성을 지켜 가는 창조적 긴장을 수행”하는데 “시조의 형식적 다양성을 통해 확장과 응축과정을 매우 활달하고 자연스럽게 보여준다”(『따뜻한 슬픔(책만드는집, 2003)』 해설)고 평가한 바 있다. 이처럼 홍성란 시인은 시조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단시조와 정형 양식에 자율과 혁신을 부여한 사설시조 창작에 특별한 공력을 들이는 시인이다. 응축과 확장이라는 시조미학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시조를 차원 높은 현대서정시로 승화시켰다는 평가는 단시조와 사설시조에서 그가 보여주는 다양한 형식실험과 이를 통한 시적 성취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때문에 홍성란 시인은 단시조와 사설시조라는 양극단에서 모두 특장을 보여주는 시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장경렬 교수(서울대, 문학평론가)가 “홍성란 시인은 전통에서 시조를 탈취하여 오늘날의 시조로 만들려는 눈물겨운 싸움을 하는 많지 않은 시조시인이다. 전통에 빌붙어 또는 전통의 묵인 아래 시조를 한번 슬쩍 건드려보는 것으로 만족해하는 평범한 시조시인이 아니다”(『춤』 해설)라고 평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얼마만 한 축복이었을까
얼마만 한 슬픔이었을까
그대 창문 앞
그대 텅 빈 뜨락에
세계를 뒤흔들어놓고 사라지는
가랑잎
하나
- 「춤」 전문(『춤』, 문학수첩, 2013)
‘풍요’와 '과잉'의 시대, 축약된 언어 속에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장르가 시조라고 할 때, 그 본령은 분명 단시조일 것이다. 3장 6구 45자 내외로 규정된 단아한 형식은 현대인의 복잡다단한 의식과 풍부한 상상력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웬만한 시조시인들은 연시조에 천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만큼 단시조는 언어 조탁의 인내력을 시험받는 형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홍성란 시인은 앞서 인용한 여러 시편에서도 보이듯 단시조를 미학적 본령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그 때문에 그는 언어의 표층적인 의미와 심층적인 의미 사이에서 절차탁마의 시혼을 가다듬는다. 이미 발표한 시조라도 마음에 온전히 들 때까지 제목을 고치고 표현을 가다듬는 일을 멈추지 않는 것도 이런 연유 때문이리라. 이러한 창작 태도는 쉽게 읽히되 결코 쉽게 잊히지 않는 짙은 여운과 감동을 새기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위의 시조 「춤」은 홍성란 시학이 추구하는 단시조의 전범이라 할 만하다. 군더더기란 찾아볼 수 없다. 여기에 덧붙일 말이 끼어들 자리도 없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이란 이런 것인가, 감탄만 자아낼 뿐이다. 기-승-전-결의 전개는 종장에 와서야 말하고자 하는 내용의 전말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무릎을 치게 만든다. 여기에 “가랑잎/ 하나”의 움직임을 ‘춤’이라는 제목으로 형상화하고 있으니 그 시상의 전개와 언어조탁의 기교가 너울너울 춤추는 것 같다.
삶의 현장이 보여주는 적나라함과 그 다양성을 다의적으로 표현하는 연시조에 비하면, 단시조는 가장 단순하고 단조로운 선으로 시적 대상을 포착하는 크로키와도 같다. 이처럼 순간을 포착하는 심미안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언어적 기교는 다른 여러 시편에서도 발현된다. “어쩌다 너를 적시고 가는 산들바람에// 웃음 절로 입가에 번질 때 그때처럼// 버릴 것 다 버리고 나니/ 홀로 환한 천지간”(「해우소」)의 ‘똥과 오줌’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의 향기’나 “갠 하늘 그는 가고/ 새파랗게 떠나버리고// 깃 떨군 기슭에 입술 깨무는 산철쭉// 아파도/ 아프다 해도/ 빈 둥지만 하겠니”(「그 새」)로 표현된 쓸쓸한 이별의 정한 등 그 제재와 주제도 다양하다. 홍성란 시인은 이렇듯 인간사의 면면을 자연의 풍경에 빗대어 단시조로 빚어냄으로써 장형화, 요설화된 현대 자유시에 맞설 수 있는 시조의 멋과 위의를 드높이고 있다.
시방 노래허냐,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
필연이 어떻더냐 둥그더냐 모지더냐 사랑을 속이고 미움을 속여분 아가, 길은 걸어간 뒤에 생긴다 안 하더냐 걸어온 길 보이면 인자는 헤어지거라 인자는 변절하거라 둘러댄 말이라메, 그 인사 어사화가 어울리기나 하겄냐, 회자정리라 안 하더냐 이쯤에서 정리해 불고
기회는 왔을 때 퍼뜩 잡아야제 이년아,
- 「남원잡가」 전문(『춤』, 문학수첩, 2013)
힘쓰는 기쁨 빼앗지 말라 설하시는 아흔두 살
삶은 밤 속살을 티스푼으로 긁어 드리니 아니야, 숟가락으로 살살 내가 긁어먹는 손맛도 있지 숟가락 쥐는 힘이라도 쓰고 속살 긁어내는 힘이라도 쓰고 이렇게라도 움직거려야 살지 걷지도 못하고 뒹굴뒹굴, 하는 일이 없잖아 힘을 써야지 돈을 못 쓰면 힘이라도 써야지 살살
모녀의 빛바랜 사진 속에는 아홉 살 과꽃이 한창이었네
- 「축복」 전문(『매혹』, 현대시학, 2022)
사설시조는 ‘구속 안에서의 자유’를 가장 쉽게 실현할 수 있는 형식이다. 평시조에서 일탈한 파격을 선보임으로써 일부에서는 시조가 아니라고 폄훼하기도 하지만, 『청구영언』에도 118수의 작품이 실려 있을 정도로 누가 뭐래도 우리 시조의 한 형태인 것만은 분명하다. 홍성란 시인의 사설시조는 두 가지 지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청구영언』의 ‘만횡청류(蔓橫淸類)’에서 비롯된 ‘능청스러운 말부림과 풍자적 허튼소리’로 위선적인 근엄함을 깨부수는 ‘일탈의 미학’과 슬픔의 정서를 드러내되 반어적인 화법에 의한 감정 확장을 통해 슬픔을 해소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위의 시조 「남원잡가」는 풍자와 일탈의 미학을, 「축복」은 감정 확장을 통한 슬픔 해소라는 지향에 잘 부합하는 작품들이라 할 만하다.
「남원잡가」는 월매가 춘향을 다그치는 입말의 역동성이 사설시조의 재미를 더한다. 남도 사투리로 구성한 이러한 말 엮음의 기교는 낭창낭창한 가락의 운용으로 이어져 음악성을 배가시킨다. 특히 “~허(더)냐”의 각운 반복은 라임을 얹어 부르는 랩송의 가사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또한, 해학과 풍자, 재치와 반어의 수사적 장치가 돋보이는 표현들은 ‘새로 쓰는 춘향전’의 의미를 더욱 새롭게 만든다. 잘 알려진 고전소설의 한 장면을 사설시조로 재구성하면서 ‘패러디’와 ‘오마주’를 통한 상상적 변용을 가능케 하는 것은 시인의 각별한 언어감각 덕분이리라.
「축복」은 「남원잡가」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홍성란 표 사설시조’의 한 지향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아흔두 살’의 노모와 그의 딸이 ‘삶은 밤’을 까먹는 정경이 애틋하면서도 따스하게 그려져 있다. 화자는 무수한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늙은 어머니와 그 딸의 양태에 주목한다. 화자는 노모의 육신에 새겨진 삶의 비애를 바라보면서도, 그것에 대해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노모의 ‘아흔두 해’ 삶이 마주하는 현실이란 결코 쉽게 말해질 수 없는 복잡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힘을 쓰는’ 일이며,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내내 같은 모습으로 평안할 수만은 없다는 것을 시인은 모녀를 통해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슬픔과 비애를 교직한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는 모녀의 사랑을 더욱 눅진하게 만드는 힘이다. 이처럼 역설적인 묘사와 재현, 그로부터 비롯되는 의미화의 심층은 홍성란 시학이 견지하는 주요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 ‘홍성란’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위하여
등단 30년이 넘는 시인을 온전하게 살펴보려면 박사학위 급의 논문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어두운 눈길과 아둔한 정신에도 불구하고 한 경지에 오른 선배 시인을 조명하는 일에 선뜻 나선 것은 시조와 시조 문단의 상생 발전을 도모하고자 하는 바람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시조의 풍요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문학은 위기에 처해 있고,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은 아이러니의 시대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 영상과 게임으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순수예술에서 대중문화로 손쉽게 이동할 수 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사람들은 다양한 매체와 프로그램에 끊임없이 노출된다. 사람들에게 선택 가능한 옵션이 많아질수록 문학의 위기는 가속화될 것이고, 시조의 존재 또한 잊히게 될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시조 문단에서도 시인에 대한 브랜드화가 필요하다. 문학도 독자와 작가 브랜드 간의 '신뢰'가 '선택(혹은 구독)'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여러 문학 장르 중 시조는 여전히 약자의 위치에 있다. 시조가 대중의 관심을 받으며 크게 일어나기 위해서는 시조라는 전통성보다 ‘현대, 혹은 동시대’라는 인식을 가진 시인 브랜드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홍성란 시인은 최고의 브랜드로 커나갈 필요충분조건이 갖춰져 있다. 문화예술계는 물론 일반 대중에게까지 두루 인지도를 확보하고 있어 성공 브랜드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확실한 카드로서 손색이 없다.
홍성란 시인이 보여주는 시적 절제와 긴장을 극대화시킨 정제된 형식미, 능청스러운 화법으로 펼쳐내는 사설시조의 파격미는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 문화에 최적화된 단시조와 서사적 재미를 가미한 사설시조를 넘나들며 응축과 확장의 시학을 표방해온 홍성란이라는 브랜드가 보여주는 현대적 감성은 우리 시조가 나아갈 길을 환하게 밝혀 주는 등댓불과 같다. ‘시는 말 밖의 말(言之外言), 뜻 밖의 뜻(意之外意), 풍경 밖의 풍경(景之外景)을 담아야 한다’고 했던 청나라 시인 원교(袁校)의 시론에도 가장 잘 부합하는 시인, ‘홍성란’이라는 브랜드를 대내외에 포지셔닝 시키는 일은 결국 시조의 현대화와 대중화에도 기여하는 큰 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채성>
200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 당선, 2006년 《불교문예》 신인상(동시) 및 《불교문예》 신인문학상(동화) 당선. 시조집 『세렝게티를 꿈꾸며』 『왼바라기』 『야생의 족보』 『메께라』 및 시조선집 『지 에이 피』가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