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시리즈 2 하나님의 나라의 예배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접속 거부 (access denied)
인간이 살아가는 일은 세상 모든 것에 ‘엑세스’ 하는 것이다.
“엑세스” 라는 말이 삶 그 자체이다.
종교를 religion 이라 하는데
어원은 끊어진 것을 “다시 잇다.” 라는 의미이다.
종교는 신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를 다시 잇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사들의 설교는 사실 성도들과 하나님을 접속 시키는 것이다.
목사들이 성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면서 이들을 스스로
이끌어 하나님과 접속 하도록 하여야 한다.
목사님이 키보드, 마우스가 되어 예배 시간에 하나님 나라에
접속 시키는 것이다.
access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간다.
은총으로 들어간다.
하나님께로 나아간다.
들어간다는 것은 부피가 있는 어떤 공간으로 가는 것
나아간다는 말은 쭉 뻗어진 곳을 향해가는 것을 의미한다.
접속 - “이제 알았어.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는 바로 인터넷 같은 사이버 세계야”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는 일의 접속을 방해하는 사탄과 같은
버그도 있다.
우리가 그 기능을 사용할 수 없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에
바이러스 공격을 가하기도 하지요.
사이버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와 비슷하지 않은가?
접속
에베소서 2;18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through him we both have accessto the Father by
one Spirit.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눈에 보이는가?
내가 나아가는 것만 보인다.
오늘 본문에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와 형제 요한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에 올랐다.
라고 이야기 한다.
나아가는 것이다.
인도자를 따라서 말이다.
목사님은 마우스나 키보드 같은 존재인 것처럼 예수님도 그들이
볼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이끌고 가는 것이다.
이끄심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것이다.
물론 그들이 올라갈 때에는 아무런 것도 보이지 않는다.
산을 오른다고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일지 모른다.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애써 감당하여야 할 일인 것이다.
그런데 이끄심을 따라
마우스나 키보드 같은 보이는 존재를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이끄심에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나 홀로가 아니라 함께 나아가는 것이다.
로마서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through whom we have gained access by faith into this
grace in which we now stand. And we rejoice in the hope
of the glory of God.
믿음으로 서 있는 그 자리에 나아갔을 때 오늘 본문은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믿음으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아갔더니
변화의 실제적 모습을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경험할 수 있을까?
그것을 위해서 예배하기 위하여 교회를 가는 것입니다.
교회에 왜 가는가?
하나님을 만나러 가지 않는가?
하나님께 접근하고 하늘나라에 접속하려고 간다.
접근 하는 것은 아직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사이버 세계는 들어갈 수 있을까? 못 들어갑니다.
가상 세계는 접속은 할 수 있지만 들어가서 살 수는 없습니다.
사이버 세계라는 것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접속 가능한
공간입니다.
있지만 인터넷을 폭격할 수 있을까?
컴퓨터를 폭격한다고 해도 사이버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하늘나라와 여러 가지 속성이 비슷하다.
예) 비번과 아이디가 필요하다.
아이디는 하나님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비번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특별한 표시가 필요하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형식적인 것들도 무시할 수가 없습니다.
믿음이 뭐가 중요해.
교회 가는 것이 뭐가 중요해.
성경이 뭐가 중요해.
기도 좀 안하면 어때?
접속 신호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나아고 있습니다.
내가 접속 하려고 합니다. 이런 표시거든요.
성경의 말씀은 전부 하나님 세계로 접속하는 패스워드
즉 비밀번호다.
그것을 돕는 분들이 목사님입니다.
목사님 자신이 아니라 키보드나 마우스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없으면 접속을 입력할 수 없다.
존재 자체만으로 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작동이 불편하냐 아니냐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키보드나 마우스의 불량이지 하나님의 나라와는 상관
없는 일입니다.
또 필요한 것은 용기입니다.
접속을 하면 가상 세계와 연결(커넥트)이 된다.
커낵트라는 말은 공격의 의미를 담고 있다. (프랑스 어)
attack 이라는 의미를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세계에 접속할 때 낯설다고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한 번 해 보겠다. 다가가 보겠다.
공격하는 것 또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 컴을 켜는 일 조차 어려운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
할렐루야, 아멘, 십자가 등은 하늘나라에 접속에 필요한
아이디나 패스워드 같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여기에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고백과 자기 결심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선 나를 보게 됩니다.
“주여 여기가 좋사오니.....”
어리석은 표현 같으나 자신의 생각을 고백하는 것이다.
내 감정을 감추는 것은 우리의 영적 경험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왜 간증을 하는가?
그것은 내가 경험한 것에 대한 자신의 확증이다.
예) 부흥회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
다시 5절을 본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말할 때에라고 이야기 한다.
내가 고백하고 간증할 때에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서 일하는
것을 알게 되고 가상의 세계가 우리의 현실이 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니라.”
성찬을 한다.
예수를 보는 것이다.
두려워함이 아니다.
그냥 그 분을 만나는 것이다.
그냥 그 분을 대하는 것입니다.
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 라고 하는 화가의 이야기다. 그는 중세 스페인을 대표하는 3대 화가 중 한 명.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로, 그리스에서 태어나서 스페인에서 활동했던 작가다. 본명은 도메니코스 테오토코폴로스(Doménikos Theotokópoulos)이지만 '엘 그레코'라고 불리운 까닭은 르네상스 이후 미술의 중심지가 여전히 이탈리아였던 시대 상황에 맞게, 그리스인인 그에게 '그리스인'이라는 말을 이탈리아식으로 부른 데서 기인한다.
그의 많은 작품이 있지만 똘레도(Toledo) 있는 산토 도메(Santo Tome)성당에 있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 라는 작품이 있다. (그림 1)
이 그림은 1558년에 그려진 것이다. 이 장례의 주인공인 오르가스 백작은 약 2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며, 이 마을에서 살았을 때 좋은 신앙심을 가졌으며, 죽을 때에도 전 재산을 교회에 기부했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사람을 기리기 위한 장례식의 그림을 그리면서 엘 그레코는 매우 의미 있는 몇 가지를 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