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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전장의 추억
“뭐 하는 거요,,지금 우리 위치를 …헉…”
위진천은 무정을 말리려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뇌도 벌떡 일어선 것이었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낭인대 전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위진천은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미친 자들이다. 미친 자들,,,,위진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 그의 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그리고 몸을 울리는 땅울림, 마상부대였다. 사방에서 뿌연 먼지와 함께 무엇인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무정은 말발굽의 소리를 들으며 착찹한 심정이 되었다. 이미 사방에서 멀리서 부터 포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이정도면 약 이 삼천 가량,,,
그렇다면 마대인 쪽은 병력에서 별로 힘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그들이 가까워 올 때 그는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중장갑이 없고,,,소뇌궁(小雷弓)에… 머리의 붉은 깃털,,,,,오,,,오이랏트!!..”
반뇌가 울부짖듯이 소리쳤다 과거 대원제국(大元帝國)의 후예들,,,,위대한 칸의 후예들로서 피의 정복을 행한 무사들,,,,, 오이랏트는 그들의 직계후손이자 대명제국 북쪽의 가장 무서운 적이었다.
소뇌궁은 그들의 무기이자 상징이었다. 활의 안쪽에 짐승의 힘줄을 몇 겹으로 덧대어 육, 칠십장 이상의 거리에서 살상할 수 있었으며, 화살촉엔 정련한 쇠촉을 달아. 두꺼운 갑주도 한 번에 뚫는 무기였다. 전군을 기마병으로 편성해 삽시간에 치고 빠지는 몽고족 특유의 전술을 실현시킨 마상무기였다.
무정은 눈을 치켜떴다, 거기에는 야달목차가 웃고 있었다. 오이랏트의 화살이 오기전에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질릴 정도로 푸른 하늘이 눈 속에 가득 들어왔다. 긴 휘파람 소리와 함께 무정은 지면을 박차고 달렸다. 그리고 뒤를 이어 낭인대 역시 군막을 향해 땅을 박찼다. 위진천만이 바들바들 떨며 주저앉아 움직일 줄을 몰랐다.
야달목차는 굳게 다문 입술로 전방을 주시했다. 설마하니 이런 어이없는 작전이 실행 될 줄은 몰랐다. 눈앞에 예닐곱 명의 신형이 질풍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비록 경호병력 정도밖에는 없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뒤에는 소뢰음사에서 무공을 배운 달리한(疸狸限), 찰극나(刹克那)가 있었고, 그들의 사부인 마라불(魔羅佛)이란, 재수 없지만 무공이 대단한 중이 있었고, 결정적으로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는 오이랏트의 병력 삼천은 든든하다 못해 두렵기 까지 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마라불을 바라보았다.
“마라불님,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 음…”
고개만 살짝 까딱이는 마라불의 행동에 병사들은 무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저 중에게 놀잇감이 된 부족 여성만 부지기수였다. 얼굴은 다 늙은 육십대의 노인주제에 무슨 여색을 그리도 밝히는지,,,,당연히 병사들의 눈이 고울리가 없었다.
마라불은 뭇시선들을 무시하며 야달목차의 앞에 섰다.
“타마륵”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타마륵은 마라불의 옆에 섰다.
“저놈이냐?”
마라불은 턱짓으로 눈앞에 달려오는 사내를 가르켰다. 타마륵은 고개를 돌렸다. 긴 검은 머리를 날리며 오른손에 참마도를 든 자. 꿈에서도 보기 싫은 혈귀 무정이었다.
문득 그의 눈에 잔경련이 일어났다.
“멍청한 놈!…물러가라!”
마불은 타마륵의 눈속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대 소뢰음사의 제자가 두려움이라….게다가 저기 오는 저 긴 머리의 곰 한 마리는 경공조차도 다른 사람보다 떨어진다. 다른 일행은 벌써 도착해서 손을 쓰건만 저 곰 같은 놈은 이제야 겨우 당도하고 있었다.
마라불은 생각햇다 .필경 마기난타가 당한 것은 암수때문일 것이라고,,,그는 두 손을 들어 가슴까지 올리며 마라혈해공(魔羅血海功)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는 것은 오이랏트족의 로얀도 마찬가지였다. 며칠 전 야달목차가 자신들의 부족장에게 고개를 숙이며 도와달라고 부탁할 때만 해도 약 삼천의 병력이 습격하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까지 병력을 인솔해 오면서 세작을 통해 들은 내용은 어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아무리 무공이 높은(일반병사 비교) 낭인들이라지만 단 몇 명이 쳐들어오다니….그것도 일시와 시간을 알려진대로 정확히 맞추어서,,, 만일 이들 외에 타 병력이 없다면 야달목차는 자신들을 속인 것이었다.
급하게 데려오느라 삼천의 병력밖에는 데려오지 못했다. 지금 이곳으로 후속병력 일만 오천이 더 오고 있었다.
“ 로얀장군님, 공격 명령을…”
“ 기다려라 기옌”
“……..”
부대장 기옌은 갸웃했다. 몇 명 되지도 않은데 없애면 그만인 것을,,,괜한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았다.
“어찌되었던 우량하족도 초원의 민족,,,,난전 상황에서 동족에게 활을 쏠 수는 없다.”
기옌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에게는 동족 의식따윈 없었다. 오이랏트 이외에는 모든 것이 적일 뿐, 그저 대장의 명령에만 복종하는 것뿐이었다.
로얀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생각은 달랐다. 전쟁에서 소요되는 군비는 엄청나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함부로 군대를 일으켰다가 망한 국가의 예는 수도 없었다. 승패는 다음문제였다. 요는 경제력이었다.
나를 부강하게 해야할 장정들이 군으로 징집되어 경제활동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오이랏트족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출정에 상당한 금액이 들어갔던 것이었다.
‘야달목차….네놈이 그 모든 것을 배상할 수 있을만한 능력이 되길 바란다….’
로얀의 눈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정은 눈앞의 상황을 확인했다. 적병의 수는 약 삼십여 명 정도, 주의할 것은 몇 사람 뿐이었다. 우선 눈앞에 만도가 아닌 검을 쥔 두 몽고인들, 그리고 그 뒤의 늙은 승려, 얼마 전에 보았던 타마륵이 옆에 있는 것으로 봐서 그 스승이란 작자가 맞는 것 같았다.
다시 그 뒤엔 몇 명의 군졸과 조금씩 물러나는 야달목차가 보였다. 자신의 낭인대원들은 잘해주고 있었다. 비연과 번뇌는 좌측을, 고죽노인과 상귀, 하귀는 우측을 맡아 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정의 뒤에는 광검과 패도가 바짝 붙어 있었다.
“대장!, 저 노인네를 치쇼!…”
광검이 다가와 속삭였다. 그리곤 신형을 배가하면서 무정 앞으로 나섰다. 무정은 초우를 왼손으로 옮겼다. 그리곤 오른손을 허리 뒤춤으로 가져가 투환침 두개를 꺼내 손바닥에 감추었다.
공격의 시작은 패도가 시작했다 어느새 광검 앞으로 나온 그는 칠척의 거도를 지면과 수평으로 그었다.
“슈아아앙~”
공기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워낙 긴 사정거리에다 무거운 중병기라,…달리한과 찰극나는 뒤로 분분히 물러섰다.
“핫!..”
낭랑한 울림과 함께 광검의 신형이 솟구쳤다. 이대로 두면 자신들의 스승이 위험했다. 찰극나는 달리한에게 눈짓을 보냈다. 달리한은 작게 눈을 끄떡이며 소뢰음사에서 배운 혈사검(血沙劍)중 축지격일(縮地擊日)이란 쾌검의 초식으로 패도에게 달려갔다. 찰극나는 그대로 신형을 띄워 운참견혈(雲斬見血)이란 초식으로 검을 아래에서 위로 길게 쳐 올렸다.
“차창....”
찰극나와 광검의 검이 공중에서 부딪혔다. 순간 광검의 입 꼬리가 살짝 올려졌다. 찰극나는 불안한 마음에 검을 재차 휘두르려 했지만 검이 떨어질 수가 없었다. 광검이 천근추를 전개하면서 그대로 검을 눌러 버린 것이었다. 둘의 신형이 밑으로 꺼지듯 내려갔다.
무정은 광검이 자신의 앞을 막는 순간 작전을 알 수 있었다. 전에도 해본 것이었다. 광검이 몸을 솟구치지 무정도 솟구쳤다. 그리고 광검과 무정이 서로 부딪칠 즈음에 광검의 신형이 쑥 꺼지면서 무정은 그대로 전면으로 날아갔다. 무정은 왼팔을 오른쪽 어깨 부근으로 옮겼다. 칠척의 초우가 오른쪽 어깨위로 높이 올라갔다. 그리고는 전방의 라마를 향해 날아갔다.
마라불의 눈이 커졌다 전장이라는 곳에선 언제나 변수가 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우연한 변수가 아니었다. 생과 사를 넘나드는 전장에서 수십 번 이상 연출된 변수였다. 마불은 경시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단숨에 삼장거릴 날아드는 저놈,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슈웅…”
공기를 가르며 중병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른 공속이었다. 마라불의 눈앞에서 좌상에서 우하쪽으로 발목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마라불은 살짝 신형을 솟구쳤다.
“파앗”
도풍만으로도 땅바닥에 길게 선이 그어지고 있었다. 마라불은 이채를 띄며 오른손을 뒤로 뺐다. 그의 성명절기(姓名節技) 사십수의 혈뇌음장(血雷音掌)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제 아무리 대단한 자라도 육성의 혈뇌음장이면 해결될 일이었다. 놈의 참마도에서 이는 도풍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장을 담아 놈의 인중을 노렸다. 단 한 번에 승부를 내려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공기를 가르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검은 그림자가 마라불의 눈에 빠르게 들어왔다. 무정의 오른손이었다. 공간이 어슴푸레 일그리지는 것을 봤을 때 자신이 눈치 채지 못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빠르고 강한 힘이 담겨있었다. 마라불은 이를 악다물며 오른손을 눈앞으로, 왼손을 단전으로 돌려 방어한 채 마수무벽(魔手武碧)을 펼치고자 했다.
무정의 눈이 번뜩였다. 왼손의 참마도는 허초였다. 놈이 뒤로 물러서면 힘들겠지만 다행히 공중으로 신형을 띄웠다. 그의 오른손이 휘둘러지는 왼팔의 탄력을 그대로 이어 받아 원호를 그리며 돌아갔다. 놈이 인중을 겨냥하다 놀란 눈을 하더니 손을 머리와 단전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지금이었다. 그는 오른손에 쥐고 있던 투환침 두개를 손에서 놓았다. 그것도 손목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힘껏 돌리면서…
“크헉….”
마라불의 입안에서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흘렀다. 암기라니,,,채 방어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아니 전혀 예상을 못했었다.
투환침 하나가 마라불의 오른손에 박혀 있었고, 또 하나는 그의 옆구리 쪽 기문혈 부근에 반치정도 박혀 있었다. 반응이 늦었던 것이었다. 허나 그렇다 해도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있다니….마불은 그제서야 방심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않는 정체불명의 묵빛 투기를 담은 초우가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그는 사력을 다해 물러났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도와 손발, 왼 어깨를 이용한 무차별 공격이 시작된 것이었다.
마라불은 정신없이 뒤로 물러났다. 반격할 기회는 고사하고 오른손의 투환침을 뺄 시간조차 없었다.
권(卷), 퇴(腿), 박(膊:팔.어깨), 슬(膝), 노(臑), 도(刀)의 연속적인 공격에 속절없이 신형은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 기이한 울림이 전해졌다. 공격에 담긴 힘이 이상했다. 어느새 마라불은 밀리다 못해 우량하쪽의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파파파파팡”
두 손으로 잡은 초우를 땅에 찍으면서 얻은 탄력으로 무정의 두발이 힘찬 연환각(連環脚)을 토해냈다. 각철갑을 찬 무정의 파괴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순간 마라불은 한 병사의 목덜미를 잡아채 무정에게 던졌다.
창졸간에 무정은 발을 휘둘렀다. 광대뼈 부근의 관료혈을 차인 병사는 그대로 공중으로 날아갔다. 땅에 떨어진 그의 목은 이미 부러져 있었다.
“!”
무정은 잠시 멈칫했다. 어떤 전투에서도 아군을 자신대신에 희생시키는 법은 없었다. 전우는 소중한 존재다.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저 라마는 그런 생각도 없는 것 같았다.
무정의 머리칼이 점차 하늘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분노했다. 이런 자는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숨겨왔던 힘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이자를 용서할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묵빛 기류가 넘실대기 시작했다. 동시에 칙칙한 살기가 무정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아군이든 적군이든 그의 살기에 다들 몸을 떨었다.
마라불은 겨우 한숨을 돌렸다. 그는 재빨리 투환침 두개를 제거하고는 혈을 짚어 지혈했다. 분노가 치미는 얼굴로 덩치 큰 곰 같은 놈을 노려봤다. 심상치 않은 묵빛 기류가 넘실대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가 알 수 없는 놈이었다.
“켈켈켈,,,어린놈,,,한심한 놈이었구만 이만한 일로 발끈하,,,”
마라불은 말을 끝맺지도 못하고 양손을 휘둘렀다. 곰 같은 놈이 이장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다가선 것이었다. 속도는 배 이상 빨라져 있었고 공격력 또한 느낄 수도 없을 만큼 강해져 있었다. 그의 참마도에서 나온 묵기는 지면에 세치 이상의 홈을 파내고 있었다.
“쩡,,쩌정,,,”
공수가 교차되면서 검풍과 소음이 난무했다. 마라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의 무공수위는 중원의 장문인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의 혈마장에 당한 사람들은 셀 수도 없었다.
본신공력은 이미 일갑자를 넘어 거의 이갑자에 육박하고 있었다. 헌데 동수라니,,,,
이 도깨비 같은 놈은 대체 어디서 튀어 나온 것인가…..
검은 묵기로 감싸진 무정의 권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마라불은 왼손을 들어 정면으로 마주쳤다.
“쩌~~엉”
마치 금속이 부딪힌 것 같은 소리가 나왔다. 무정의 권은 마라불의 쫙 펴진 왼손의 반치 앞에서 멈추어있었다. 은은한 마라불의 공력은 무정의 권을 밀어낸 것이었다.
“음……”
마라불은 신음성을 냈다. 자신의 왼팔을 타고 알 수 없는 힘이 팔을 휘감으며 가슴까지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놈이 이상한 공력이었다. 아까부터 이 모양이었다. 제대로 막고 있는 데도 그놈의 이상한 기류가 몸을 타고 들어왔던 것이었다. 점차 쌓여가는 몸 안의 타격에 마라불은 눈빛은 굳혔다. 근접전은 무리였다. 그는 전력을 다해 연속 삼장을 날리며 뒤로 날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