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와 강원도 일부 산간지역 사람들에게 중앙선 열차는 대개 아련한 추억과 신산한 삶의 한 징표였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환상의 현실적 동의어는 청량리 역이었고 나 역시 첫발을 내 딛던 그 겨울 새벽의 감흥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광장 넓었던 기존의 역사는 헐린지 오래고 새로이 민자 역사가 들어서는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었는데 한쪽에 임시로 마련한 건물은 언뜻 숨어있는 것처럼 나약해 보인다.
겉보기와 달리 대합실은 꽤 넓었는데 방학을 맞아 캠프를 떠나는 어린이들과 MT를 떠나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아마 저들 중의 상당수는 경춘선 열차를 탈 것이다. 중앙선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노선이다.
통근차, 비둘기, 통일호, 무궁화, 새마을... 다양한 이름을 붙인채 달리던 여객차량들도 이제는 다 없어지고
무궁화 하나만 남았다.
KTX로 달려가는 속도의 시대에 중앙선 열차는 거꾸로 새마을호 마저도 사라지고 없었다.
7월 21일 11시 청량리발 안동행 무궁화 열차. 풍기행 표를 끊고 개찰구를 빠져 나간다.
플랫폼으로 내려서니 투박한 무궁화 호의 꽁무니가 승객들을 맞는다. 기관차가 달리지 않은 마지막 객차의 저 자리는 사람이 설 수 있도록 개방되기도 했는데 한때 서울로 향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멀어지는 고향땅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던 곳이기도 하다.
내 힘으로 자동차를 산 이후 기차를 타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간혹 출장 길에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 때에도 시간상 KTX나 새마을호를 선호하기 때문에 무궁화호 열차는 정말 오랜만에 타볼 수 있었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예상과 달리 차내는 한산한 편이었다. 한 때는 입석으로 붐볐을 테지만 중앙선은
이제 승객 운송수단으로서의 위력을 많이 잃은 듯했다. 덕분에 넉넉해진 공간과 사람들의 표정에서 느긋한 여유가 묻어난다. 이 역시 중앙선 열차의 매력이기도 하다.
마음 먹고 촬영을 하기 위해 미리 창측 좌석을 예약해두었지만 막상 객실에 오르니 할머니 한 분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계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웃으며 바라보았더니 단팥빵 한 봉으로 요기를 하시던 할머니는 수줍은 미소를 보이시며 "내가 여 앉아 가면 안되까요?" 라며 양해를 구해오신다. 이럴 경우 거부는 불가능해진다.
예전의 비둘기호 열차간에서 만났던 수많은 할머니들 처럼 좌석 밑에 짐을 내려 넣고 신발을 벗은채 저 쪽 공간으로 발을 뻗어 최대한 편한 자세를 취하고는 긴 여정에 대한 대비를 하고 계셨다. 서울 아들네 집에 왔다가 안동으로 내려가는 길이라고 하신다.
서울을 벗어난 열차는 양평까지 오른쪽으로 한강을 거느리며
유장한 흐름처럼 내려간다.
마을을 끼고, 들판을 지나고, 강을 거느리다 양수리에서 드디어 한강을 건너는데 그 때부터는 좌우의 풍경이 산과 계곡으로 대치된다. 태백 준령을 거느리고 소백을 관통하는 노선이다 보니 이 구간에서 중앙선은 그 어느 곳보다 드라마틱한 절경을 보여준다. 산악의 속살을 파고들며 맑은 계곡을 넘나드는 길은 상쾌하고 즐겁다.
한 두 방울 내리던 비가 치악산을 넘으니 좀 더 굵어지기 시작했다. 비오는 날의 기차 여행은 시골 간이역을 지나면서 더욱 눅눅한 마음으로 젖어든다.
험준한 산악지대를 관통하다보니 중앙선 구간에는 특별한 장치가 몇 곳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또아리 굴이라고도 부르는 루프(loop)식 터널이다.
말 그대로 터널이 원형으로 생긴건데 산악지역의 급경사에서 고도를 서서히 조절하기 위해 터널 속에서 360도 한바퀴 원을 그리며 내려 오거나 올라가게 만든 구조이다. 기차가 한바퀴 돌아나가는 형식인데 사방 분간이 안되는 굴 속이다 보니 승객들은 그저 자신들이 계속 일직선으로 진행하고 있으리라고 믿을 뿐이다.
구조상 터널의 입구와 출구가 높이만 다를뿐 비슷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굴 속으로 들어가기전 풍경과 나왔을 때의 풍경이 똑 같이 펼쳐지는데 다만 높이가 달라 시각이 바뀌니까 다른 풍경으로 착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역시 관심 있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니 말 그대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이 루프식 터널은 중앙선 구간에 두 곳이 있는데 하나는 죽령역-단양역 사이에 있고, 또 하나는 신림역-원주역 사이에 있으니 소백산과 치악산의 지형적 특징 때문에 생긴 구조임을 알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신림역-원주역 사이의 금대터널 들어가기 전에 보이는 건물인데 터널에서 한바퀴 돌아 나오면 저 보다 높은 위치에서 저 건물을 다시 한번 보게 된다. 저 모텔을 지표 삼아서 한번 확인해 보는 것도 중앙선 여행의
색다른 재미가 될 것이다.
또 한 곳인 죽령역-단양역 사이 구간의 지표물은 중앙고속도로 단양IC이다. 이 곳은 고도차가 좀 더 커서 훨씬 드라마틱한 장면을 연출하지만 높이 차이가 크게 달라지다 보니 그냥 보면 전혀 다른곳을 지나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두 곳 다 하행선 보다는 상행선에서 볼때 훨씬 잘 보인다. 상행선 기준 왼쪽 창으로 확인 가능)
죽령의 또아리 굴을 지나면 한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었던 4,500미터 죽령 터널을 만난다. 이 터널 위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도로 터널인 4,600미터 중앙고속도로 죽령 터널이 지나고 있으니 도로건 철로건 소백산맥을 관통하는 일은 십리를 넘는 대공사가 되었다. 일제시대때 개통된 죽령터널을 빠져나오면 경상북도 최북단인 내 고향 풍기 땅이 펼쳐진다. 오른쪽으로 저 멀리 내가 다닌 초등학교 교가에 나오던 도솔봉이 운무 속에 솟아있다. 1,314미터 고봉이지만 학교 바로 뒷산이기도 했다.
산맥을 넘어 풍기역에 도착한 기차는 가쁜 숨을 몰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돌고래 같은 요즘의 유선형 기차들에 비해 무궁화 열차의 기관차는 둔중하고 격정적이다. 그런 모습이 더 믿음직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내리는 손님은 얼마 없지만 승무원이 가랑비를 맞으며 일일이 승객을 맞이하고 있다.
풍기역 역시 한 때는 낡고 허름한 건물에 나무의자 삐걱거리던 시절이 있었으나 이제는 화강암으로 치장한 현대식 건물로 변했다. 이런 외관의 번영과는 달리 이용하는 사람들은 현저히 줄었으니 풍기역의 분위기도 빗속에 차분히 가라앉아 있다.
풍기는 인삼과 사과와 인견의 고장. 무엇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삼 재배지 답게 역 바로 앞에는 인삼시장이 개설되어 있어서 인삼 고장의 정취를 곧바로 느끼게 해준다. 풍기 인삼의 약효는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 최고 품질이다.
어느날이든
중앙선 열차 좌석번호 1, 5, 9, 13, 17, 21....
4의 터울로 올라가는 홀수 번호 자리에 앉아 긴 여행을 떠나 보라.
우라나라에서 가장 길고 멋진 드라이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