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글 김동환 / 기획 오연호]
얼마 전 온라인 '우리동네 난곡'에서는 기사 <우리도 몰래 뉴타운 지정? 구청장님 맘이다>를 통해 뉴타운 지구의 지정이 해당 구역의 주민들 의사와는 관계없이 진행된다는 것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주민들 동의 없이도 재개발을 할 수 있게끔 보장하는 법률이 있습니다. 바로 2006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도시재정비촉진을 위한 특별법(아래 도촉법)'입니다. 오늘은 이 도촉법의 내용과 그 배경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상계동 희망촌 주민들의 의사와 뉴타운 지정은 아무 관계가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존 도시의 쇠퇴를 막기 위한 정책적 수단으로 도시 재개발사업을 추진해왔습니다. 1971년 도시계획법에 도시재개발사업이 포함되었고 1976년 “도시재개발법”이 제정되어 재개발 사업을 진행해 오다가, 보다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2003년 7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아래 도정법)을 시행하게 되었죠.
이와 비슷한 시기인 2002년 10월. 서울시에서는 사업 추진을 할 만한 근거가 되는 법이 없는 상태에서 '뉴타운사업'이라는 것을 시작합니다. 일단 은평, 길음, 왕십리 3곳이 뉴타운 시범지구로 전격 발표되었고, 일이 저질러진(?) 후에야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지역균형발전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사업의 정당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러한 서울시의 방침이 당시 국회의 이해와 맞아 떨어지면서 2006년 7월, 광역 재개발과 관련한 특별법이 하나 제정됩니다. 그것이 바로 이 도촉법입니다. 도촉법에는 '도시정비사업을 광역적으로 계획하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여 도시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이 도촉법은 말 그대로 도시 재정비 사업을 장려하고 더 빠르게, '촉진' 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입니다. 도시 재개발하면서 가장 오래 걸리는 절차가 무엇일까요?
정답은 '주민동의서 받기' 입니다. 재개발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의 우스갯소리로 '주민동의서 받는데만 10년 걸린다'는 말도 있지요. 물론 실제로 10년 이상이 걸린 재개발 지역도 간혹 있었답니다.
기존 도정법에서는 어느 지역을 재개발 할 경우, 해당 지역 주민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만 개발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도정법 위에 있는 특별법인 도촉법에서는 해당 지역의 구청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기만 하면 그 이상의 절차 없이 개발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이 빠른 속도를 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가 이것 때문이지요.
도정법과 도촉법 비교표
주민 참여 배제시키는 도촉법
현행 도촉법의 문제는 사업 자체가 해당 지구내 주민들의 재산으로 이뤄지지만 정작 그 사업 안에는 주민들의 참여가 배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중화뉴타운의 경우,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뉴타운 사업에 동참하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2003년 11월 18일 뉴타운 지구로 지정하여 2005년 8월에 중화뉴타운 일부 주민들은 어느 뉴타운지구에서도 볼 수 없는, 중화뉴타운 지구는 적법하지 않으니 지구지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서울시를 상대로 했다.
결국 2006년 12월 18일 재정비촉진지구로 인정되어 21일 촉진지구로 인정고시가 되었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일부 주민들의 반대움직임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이제선 교수의 '도시정비사업 및 재정비촉진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중)
이러한 주민 참여부재는 해당 지역내 주민들의 갈등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주민참여부재 및 갈등으로 인해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하는 조합과 주민간의 분쟁이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가락동 '가락시영재건축 단지'는 조합원간 분쟁으로 사업계획무효확인 소송이 현재 법원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올 11월 말까지 예정된 이주 일정을 중단했습니다. 또한 강남권에서 추진 중인 재건축 사업은 52개단지 중 20개 단지의 사업이 제자리걸음으로 현재 11곳이 소송에 휘말려 있고 9곳은 조합원간 분쟁이 이루어지고 있답니다.
절차 무시하는 개발의 이유
왜 이렇게 절차를 생략한 '빠른 개발'을 하려고 할까요?
바로 이러한 빠른 속도의 개발이 요구되는 이유는 재개발 속도가 뉴타운을 둘러싼 주체들의 이익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뉴타운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는 시민단체인 '나눔과 미래'의 이주원 국장은 "공사를 맡은 시공사나, 개발 당사자인 주민들의 입장에서 빨리 개발할 수록 이익인 것은 틀림없다"며 "보다 이익을 내기 쉽기 때문에 재개발 추진 자체가 탄력을 받게된다'라고 말합니다.
재개발 및 뉴타운 사업을 하면서 기존 도정법을 조금만 고치면 이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최대로 지을 수 있는 용적률을 높여주면 보다 많은 건축면적이 생기니 재개발 이익이 늘어납니다.
또한 평수가 작은 아파트의 수를 줄이고 대신 평수가 큰 중대형 아파트의 비율을 높이면 재개발 이익이 늘어납니다. 그런데 이 두가지는 도시의 전체적인 풍경을 아우르는 '도시및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포함되기 때문에 이익이 생긴다고 시공사나 주민들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건 도촉법이 생기기 이전 얘기이긴 하지만요. 도촉법은 기본적으로 재개발 이익을 높여주는 방식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중대형 아파트의 경우 기존 도정법에서 전체 비율의 20%로 못박아 둔 것을 도촉법에서는 40%까지 지을 수 있도록 상향 조절 했답니다.
도시계획은 어디로?
뉴타운 사업은 주거지는 50만 평방미터 이상의 주거지와 20만 평방미터 이상의 역세권 및 상업지를 개발하는 대규모 사업입니다. 이럴 경우 도시기본계획과 도시및주거환경정비기존계획을 획기적으로 변경하는 사항을 포함하게 되지요. 그러나 도촉법 제6조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있습니다.
제6조 (재정비촉진지구 지정의 요건) ①시·도지사는 제5조의 규정에 따라 재정비촉진지구를 지정하거나 변경하고자 하는 때에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18조에 의하여 수립된 도시기본계획과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3조에 의하여 수립된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을 고려하여야 한다.
여기서 '고려하여야 한다'라는 것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는 뜻입니다. 도촉법 6조에 따르면 도촉법에 의한 사업은 도시기본계획과 도시및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에 구속을 받지 않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뉴타운 사업 내용이 도시의 마스터플랜인 도시기본계획을 따르지 않아도 '고려'만 한다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이제선 교수는 '도시정비사업 및 재정비촉진사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도촉법에 의한 사업 중 그 내용이 도시기본계획 등 각종 기본계획의 내용과 모순되는 사항이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경우 도시기본계획은 기본계획으로써의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
(도촉법에 의한 사업은)도시기본계획작성의 목적인 도시의 장기적이고 종합적이고 도시의 기본 공간구조와 장기발전방향을 제시하는 종합계획으로의 성격을 잃게 하고 있는 등 도시계획체계를 부정한 체 운영되고 있다."
일부 입주가 시작된 은평뉴타운의 경우 교통 및 생활기반시설의 부족이 이미 여러 번 지적되었습니다.
누구 위한 도촉법인가?
제1조 (목적) 이 법은 도시의 낙후된 지역에 대한 주거환경개선과 기반시설의 확충 및 도시기능의 회복을 위한 사업을 광역적으로 계획하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도시의 균형발전을 도모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시행일 2006.7.1]]
도촉법 1조입니다. 도촉법 1조는 '도시의 낙후된 지역에 대한 주거환경개선과 기반시설의 확충 및 도시기능 회복'을 사업의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도촉법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뉴타운 사업을 보면 도촉법이 과연 그 목적에 맞게 쓰이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대부분의 세입자가 쫓겨나고, 원주민은 채 25%도 원래 살던곳에 재입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삶의 질이 향상'되는 국민들이란 도대체 누구일까요.
신문기사를 읽으려면 전문서적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우리, 생물공부만 하지말고 이제 법 공부도 틈틈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광우병'이 우리에게 갑자기 다가왔듯이, '도촉법'이 어느순간 갑자기 나의, 당신의 동네를 찾아갈지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