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 세계관을 향한 정형의 가락
박현덕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학은 대중성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원형이 희박해지고 복제가 보편화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생활 속에서 의복도 그렇다. 기성복이 대중화되어 개성이 사라지고 모든 것이 보편화 되듯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복제기술시대에 접어들었다. 새로움으로 무장한 전통의 전복이냐, 기존의 시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전통을 유지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현대에 접어들면서 더 심화되었다. 전통의 전복이라는 노선을 택하면서 새로움의 시학을 펼쳐보이고자 하는 시인들은 기존의 시적인 요소들을 제거하면서 새로운 시적 질서와 자신만의 문법을 쓰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 속에서 불필요하게 긴 시행과 지나치게 난해한 시를 씀으로써, 난해시를 쓰는 시인들이 현대시를 더욱 독자들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려 때의 경기체가나 조선 초의 악장가사처럼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고 대중들에게 읽혀지지 않는 문학은, 그 생명력이 짧다. 우리 문학사가 가르쳐준 교훈을 우리는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문학의 본질적인 것을 깨뜨리고 ‘미래성’을 강조하는 시의 기류는 이 ‘아우라’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우라를 제거해 버린 속칭 ‘미래파’의 시도는 전시가치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의 정형미학인 시조는 정보화 사회에서 작품의 단순성이 아니라, 새로운 자각을 통한 ‘짧은 시’로 변모해야 대중과 함께 할 수 있다. 자유시의 무분별한 난해성과 전통적 가치의 파괴를 지양하고 점점 편리함이 강조되는 현대사회에서 짧은 시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를 충족해야 한다. 짧은 시 속에 함축된 언어로 독자들의 의식변화를 가져와 대중들이 시조를 통해 시적 아우라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계간 <시조시학> 겨울호 ‘이 시인을 주목한다’로 재조명하게 된 김덕남 시인은 2010년 부산시조 신인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2013년 시조집 젖꽃판(동학사)을 상재하여 ‘조국을 향한 사랑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자연을 사랑한 순수성’을 진솔하게 보여주었다.
좌우가 바뀐 채로
거울 속서 누가 본다
똑바로 보려거든 그대를 뒤집어라
한 번쯤 뒤집고 보면 가는 길이 보이리
영문글자 자리 바꿔
달려오는 앰뷸런스
앞차의 백미러엔 생명길 뚫고 있다
꽉 막힌 내 안을 본다
거울 하나 찾는다
-「거울」전문
「거울」은 여러 시인들이 노래한 소재다. 이상은 작품 「거울」에서 자아분열 양상과 현대인의 불안 심리를 드러냈으며, 거울을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단절된 벽으로 상징했다. 정병근 시인은 작품 「거울·1」에서 화장실 거울을 통해 중년 사내의 처절한 삶, 그 고통을 내비췄다. 또한 홍일표 시인은 작품 「거울의 식성」에서 거울이 현대인의 욕망, 그 근원지라고 말했다.
김덕남 시인은 작품 「거울」에서 내면적 자아를 만나게 하는 거울을 ‘투명한 벽’으로 상징해 타자적 현실을 토로하고 있다. “좌우가 바뀐 채로/ 거울 속서 누가 본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속성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거울은 현실과 닮았지만 반대되는 모습으로 자신을 비춘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온갖 가식과 거짓과 허위가 난무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들을 뒤집고 보는 세계가 진실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한 번 쯤 뒤집고 보면 가는 길이 보이리”는 현실과 상반되는 거울 속의 세계, 즉 자신의 진실된 모습인 내면적 자아를 찾아가려는 화자의 소망이라고 볼 수 있다. 김덕남 시인은 욕망의 분출구인 거울을 현대인의 삶 속에 투영해 “꽉 막힌 내 안을 본다”를 통해 거울의 이중성을 구체화하여 진실한 삶을 찾고자 하는 화자의 소망을 보여준다.
고니는 굵은 갈필, 물떼새는 세모필로
사초를 쓰고 가는 모래톱 가장자리
예서체 발자국마다 생의 어록 담는다
콩게 달랑게가 지하 성전 짓고 있다
달빛을 걸어놓고 꺾으며 내지르며
판소리 파도의 완창 유장하게 듣는다
누군가의 꿈을 위해 날마다 솟는 빌딩
그 속에 뼈를 묻어 십자가 지고 섰다
불길도 꾹 참아내는
된바람도 막아서는
- 「모래 이야기」전문
「모래 이야기」는 강가나 해안에 모래가 깔려있는 풍경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모래’는 단순히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객관적 상관물’로 자신의 정서를 환기시킨다. 속도로 대변되는 현대사회에서 잠시 동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여유를 느끼게 한다. 마치 수묵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 첫째 수의 초장 “고니는 굵은 갈필, 물새떼는 세모필로”에서 모래톱에 찍힌 새들의 발자국을 시인은 사초를 기록하는 사관으로 형상화해 ‘모래밭’이 삶의 진면목을 기록한 책 같다고 노래한다.
하얀 모래밭에 “콩게 달랑게가 지하 성전 짓고” 때로는 그 성전에 달빛을 걸어두고 남도의 판소리 같은 파도를 듣는 보금자리로 형상화하고 있는 1,2수는 김덕남 시인의 시조가 상당히 세련된 표현의 경지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3연이다. “누군가의 꿈을 위해 날마다 솟는 빌딩”은 바로 현대인들이 갈망하는 물질적 욕망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날마다 솟는 빌딩은 거센 파도 앞에 허물어지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져야 하지만, “불길도 꾹 참아내는/ 된바람도 막아서는” 강인한 현대문명의 실체다. 빌딩 속에 뼈를 묻고 살아가는 현대인들, 거기서 태어나 거기서 죽는 현대인들의 욕망은 1,2수와 극명하게 대조되면서 독자에게 성찰의 시간을 부여한다. 평화스런 모래밭에도 문명이 들어서면서 생태계가 파괴되고, 자연은 다시 먼 곳으로 유배되고 말 것이다.
말하자면, 「모래 이야기」는 그저 자연대상물과 생명체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계문명과 속도로 대표되는 현대사회의 부정적 속성을 적나라하게 들려주고픈 의도에서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보여준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메마르게 하는 현대 물질문명, 욕망의 과잉분출로 인해 자연을 훼손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시인은 인간과 자연이 하나의 몸임을 드러내고자 한다.
얼굴은 잘렸어도 웃음은 남아 있다
넘어질 듯 비스듬한 빌딩의 저 안간힘
비켜난 무게의 중심 위태로운 생의 찰나
날아가는 파랑새에 초점을 맞추다가
기억으로 셔터 눌러 담아보는 세상 빛깔
디카 속 화면 가득히 살고 있는 피카소
-「감각을 찍다」전문
옥타비오 파스는 『활과 리라』에서 “시적 언어는 리듬이면서 또한 대립되는 것들을, 삶과 죽음을 한마디로 껴안는 이미지다. 실존 그 자체처럼. 결국 시적 언어의 이원적 조건은 시간적이며 상대적이지만 언제나 영원을 향하여 던져진 존재라는 인간의 이원적 본성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러한 갈등이 역사를 창조한다고 역설했고 더구나 시적 경험은 인간의 조건을 드러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라 말하였다. 시인은 언어를 다룰 때 그 시어가 있어야 할 위치에 맞게 배치하여야 하며, 시 속의 이야기 구도에 맞게 감각적인 언어로 형상화할 때, 시는 시 자체를 변화시키고 독자의 감각경험을 변화시킨다.
작품 「감각을 찍다」는 부제가 ‘시각장애인 사진전시회’다. 눈앞의 세상을 바라 볼 수 없고 빛도 인지하지 못해, ‘마음의 눈을 열어’ 사진을 찍었을 전시회에서 시인은 감각적 경험의 사유를 발견한다. “넘어질 듯 비스듬한 빌딩”과 잘려져 나간 얼굴들, 온통 부자연스럽게 사진에 담았지만, 그것은 인위적 세계가 아니라 감각을 통한 새로운 재발견이라고 외친다. 그리하여 이 사진들은 “디카 속 화면 가득히 살고 있는 피카소”로 다가온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특이하고 이상한 추상화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라 한다. 시인은 시각장애인과 피카소를 동일시하여 독자들에게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선보이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시조집『젖꽃판』속의 작품 「점자로 읽는 세상」에서도 “손 끝에 불을 달고 비춰 보는 행간”에 마음의 문을 열고 새로운 풍경을 그려 볼 것이라 했다. 김덕남 시인의 시조집 『젖꽃판』을 정독하면, 작품 「산으로 간 감나무」가 ‘소쩍새 울음’으로 다가온다.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으로 상처받은 시적 화자의 아픔이 눅눅하다. “먹다 버린 감씨 하나” 때문에 아버지를 떠올리고, 무릇 아버지가 고이 잠든 땅에 그 나무를 옮겨 심어 놓는다. 이처럼 아버지를 향한 불꽃이 은밀하고 조용하게 타올라 화자는 문득 깊은 속울음을 운다.
꼬리곰탕 한 그릇을 바닥까지 비우다가
할배는 와 안 먹능교? 배고프다 해놓고는
와 이레 속이 답답하노 먹은 기 얹힜는강
소나 사람이나 한가지 아닌가베
잔등을 긁어주면 꼬리로 날 휘감았제
지금도 동동 뜨고 있는 국물 위의 그 목소리
쟁기질 할라카머 쇠꼬리 보질 말어
밭둑의 바우에다 두 눈을 탁 박어야제
팽팽히 당긴 고삐에 이랴! 소리 들린다
-「꼬리곰탕」전문
작품「꼬리곰탕」도 「산으로 간 감나무」처럼 시인의 시선이 잃어 버린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하고 있다. 사실 김덕남의 시조를 관통하고 있는 흐름은 ‘사랑’이다. 그 사랑이 가녀리고 안쓰럽고 소외된 것들을 감싸 안으면서 오래된 기억에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재생의지를 보인다. 몸이 허약하거나 추위가 오기 전 보양식으로 우리의 부모님은 뼈에서 진액이 빠지도록 끓는 물에 푹 삶은 ‘꼬리곰탕’을 내주셨다. 시인은 작품 「꼬리곰탕」에서 할아버지가 베풀어 주신 깊은 사랑을 되살린다. 행복했던 추억이 되어 버린 삶을 거슬러올라가 시인 자신은 어린 시절의 아이로 돌아간다. 그 아이는 할아버지 앞에서 곰탕 한 그릇을 비우다가 “할배는 와 안 먹능교? 배고프다 해놓고”라며 소 꼬리곰탕에서 우러나는 국물의 의미를 몰랐다.
시인이 몸담고 살아가는 이 물질 위주의 현실세계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건 자신의 삶을 짓누르는 현실의 무게 속에서 그 고통을 견디게 해준 ‘사랑’일 것이다. 그 사랑은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도 마치 “소나 사람이나 한가지 아닌가베”로 끊임없이 되뇌게 하며, 할아버지의 다정다감한 목소리가 “쟁기질 할라카머 쇠꼬리 보질 말어”로 그 진액처럼 흘러나온다. “잔등을 긁어주면 꼬리로 날 휘감”던 것은 소뿐 아니라 소처럼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우리네 할아버지, 아버지였다. 시인의 의식세계에 머무른 할아버지의 사랑은 어쩌면 ‘소’와 중첩되고, 때로는 “국물 위의” 둥둥 뜬 소의 울음 같은 할아버지 목소리로 들려온다. “밭둑의 바우에다 두 눈을 탁 박”고 일하던 할아버지는, 쟁기 끌고 달구지 끌며 일하다가 죽어서는 인간에게 가죽과 살을 내주면서 꼬리까지 내주던 소의 아픔을 절절하게 느끼기에 꼬리곰탕 국물 한 술을 쉽게 목구멍에 넘기지 못한다.
여름엔 감자 등을
겨울엔 호박 속을
쓱쓱 긁다 제 살 깎아
껍데기만 남은 당신
한평생
닳은 손끝엔
반달꽃이 피었다
-「모지랑 숟가락」전문
작품 「꼬리곰탕」과 「감각을 찍다」는 폭넓은 의미에서의 ‘사랑’을 얘기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의 내면에는 ‘깊은 사랑’과 함께 그 사랑에 버무려진 눈물겹고도 아름다운 서정의 힘이 지뢰의 뇌관처럼 숨겨져 있다. 「모지랑 숟가락」에서도 “쓱쓱 긁다 제 살 깎아 / 껍데기만 남은 당신”을 통해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희생해온 헌신적 사랑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형상화함으로써 독자에게 공감대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김덕남 시인의 시는 개인적 체험이 자연스러운 서정성과 맞물려 ‘맑은 사랑’으로 재현됨으로써 어떤 울림의 영역을 획득하고 있다. <시조시학> 겨울호 ‘ 이 시인을 주목한다’를 통해 만난 김덕남의 신작들은 대숲 바람소리처럼 청정한 숨소리로, 자신만의 서정적 세계관으로 아름다운 정형미학을 올곧게 세워가고 있다.
■1967년 전남 완도 출생. 1987년 <시조문학> 천료. 1988년 월간문학 신인상 시조 당선
한국시조 작품상, 시조시학상, 중앙시조대상, 김만중문학상, 목포문학상 등 수상
시조집 <1번 국도> 외 다수. ‘역류’ 동인 현재, 광주대 강사
- 《시조시학》 2013. 겨울호. '이 시인을 주목한다. 작품평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