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색깔과 다양한 품종의 튜립이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꽃모습이 회교도들이 머리에 두르는 터반(Turban)과 유사하다 하여 이름지어진 꽃이 바로 튤립(Tulip)이다. 현재 튜울립하면 네덜란드를 연상할 정도로 그 나라는 생산 및 수출의 중심지이다. 그러나 원래 튤립은 중앙아시아의 파미르 고원에서 야생상태로 자라던 꽃이 터키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거쳐서 네덜란드에는 1593년 한 식물학자에 의해 도입되었되고 합니다. 그 이후 다양한 품종과 색깔로 점점 더 아름다운 꽃으로 변해가며 현재는 네덜란드 국가의 주요 수출작물로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답니다.
아시아의 야생화가 유럽을 사로잡았다.
16세기 후반에 터키(나라꽃-야생튤립)에서 서유럽으로 이입된 후 네덜란드에서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한 가지 색깔의 꽃만을 피게 하던 튤립의 둥근 뿌리(구근)가 몇 가지 색이 엇갈린 무늬의 꽃 또는 줄무늬나 깃털 모양의 꽃을 피우는 과정(브레이킹)을 거치면서 여러 가지 다른 품종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튤립 재배는 네덜란드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재배도 급속도로 퍼졌다.
1620년대 각종 공업이 발달하였던 네덜란드에서 튤립은 비싼 값으로 거래되었다. 브레이킹은 재배 방법과 상관없이 우연의 산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구근 수집가가 되었다. 이러한 취미는 전국적인 유행으로 번져 좋은 구근을 갖기 위해 갖가지 방법들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튤립 열풍은 네덜란드 곳곳에서 불었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구근의 매매가 이루어졌다.
또한 16세기 말 네덜란드는 스페인의 점령에서 벗어나 독립된 세력으로 서게 된다. 이 과정 에서‘레헨트’라는 시민 집단이 네덜란드의 지배계급으로 등장한다. 귀족들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레헨트 계급의 주류는 돈이 많은 사업가들의 2, 3세들이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들은 해외무역이나 채권투자 등을 통해 축적한 부를 기반으로 정치에 참여했다.
이런 레헨트 계급에게 17세기 초 본격적으로 네덜란드로 전해진 튤립의 구근은 교양과 부유함을 드러내는 과시의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이는 당시 역사상 가장 부유한‘황금시대’로 여겨지던 네덜란드의 특수한 상황 탓이었다.
구근 소유 경쟁으로 구근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으나, 거품이 빠지면서 한꺼번에 폭락하여 한때 네덜란드와 유럽경제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하였으니 튤립이 네덜란드 역사에 끼친 영향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여튼 현재 '사랑의 고백, 매혹, 명성, 자애' 등의 꽃말을 지닌 튤립은 백합과에 속하는 다년생 구근초로 '프로테아 튤립'은 네덜란드 나라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