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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난과 재림에 대한 결정적 징조(2)
3. 교회의 무서운 배도(살후2:1-4)
성경은 마지막 시대의 중요한 징조로 교회의 배도를 이야기 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교회의 배도가 일어날 것이라는 무서운 경고는 오늘날 우리 시대에 해당되는 중요한 문제다. 데살로니가 후서 2:1-4절의 말씀이다.
2: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앞에 모임에 관하여
2: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2: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배도는 기독교의 근본 진리를 벗어나, 다른 교리나 사상을 가르치는 형태를 말하며, 더 나아가서는 주님을 대적하는 교리적 가르침을 말한다. 불신자의 배도는 성경에 위배되는 모든 행위를 말하는 바, 이들의 배도는 당연한 것이 되나, 문제는 기독교의 모습을 갖고 있으면서, 성경의 바른 가르침과 교리로부터 이탈해 가는 잘못된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도 그의 종말강화(마24)에서 배도에 대해 상당한 주의를 환기 시키고 있는데, 마지막 시대에는 거짓선지자와, 거짓 그리스도들이 주의 이름으로 곳곳에서 나타나니, 저들을 조심하라는 당부가 있다. 이들의 특징은 신비주의적 거짓 이적과 표적 등이 된다고 하며,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고,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려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
사도바울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해 주는 서신 중, 종말에 대한 말씀을 하며 배도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전 배도가 일어날 것을 말하며, 종말에 대한 준비를 잘 갖추기를 성도들에게 부탁한 것이다. 예수님이나 바울의 말씀 속에 나타나는 배도현상은 특정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적 배도를 말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 배도가 만연해 지면, 주의 오심이 가까웠음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가 세워진 진 이후 현재처럼 배도가 무섭게 일어난 경우는 없었다. 너무 성경과 흡사하여, 배도인지 아닌지 조차 구분하기 어려운 그런 배도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성장에 목말라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과는 상관없이, 배도적 프로그램들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교회 내 각종 이방풍습이 만연해 지고, 로마카톨릭과의 일치를 진행하며, 종교통합 운동이나 비 성경적 신비주의 들이 교회에 만연해도 알지 못하고 그냥 따라해 버린다.
현대교회의 배도를 이끄는 선두주자는 종교통합을 주도하는 W.C.C.와 신사도(복음)주의 자들이다. 성도들은 W.C.C가 무엇이며 신사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신 복음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그리고 알 수도 없다. 그냥 목회자가 하는 대로 따라 할 뿐이고, 가르치는 대로 순종해 따라 갈 뿐이다.
다른 종교나 이단에 대해선 성도들이 쉽게 미혹 되진 않지만, 성경과 너무 흡사한 배도적 가르침에 대해선 아주 무지한 경우가 많다. 똑 같은 교회의 형태와, 같은 직제를 가졌고, 같은 성경과 찬송을 가졌으며,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을 같이 찾고, 같은 기도들을 하기 때문이다. 그냥 자신에게 은혜가 있으면 모두 옳게 인정해 버린다.
☞ 신사도(복음)주의
신사도주의나 신 복음주의는 근본주의 기독교의 진부함을 타파해 보자는 좋은 취지에서 비롯되었으나, 이들이 사용하는 모든 방법들이 비 복음적이고, 성경을 벗어난 인본주의적 방법을 사용해 성도들을 미혹해 가고 있다. 손에 성경을 들고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으며, 찬양이라는 미명하에 세속리듬에 가사만 바꾼 C.C.M 노래를 즐겨 부르며 열광하고, 기도라는 미명하에 은사적 신비로 이끌어간다. 원래 인본주의는 재미있다. 그래서 신사도 주의도 교회에 도입하면 재미있다. 찬양도 재미있고, 예배도 재미있다. 열정이 있으며 감정의 감동도 남다르다. 뭔가 신비한 일이 일어 날 것만 같은 기대가 충만하고,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고, 교회가 살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재미는 대부분이 마귀적이며, 교회를 파괴키 위한 사탄으로부터 온 무서운 음모임을 알게 된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기겁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사탄으로부터 온 것인 줄 모르거나, 관심이 없고 오직 성장만 되면 된다는 인본주의적 사고가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과 상관없이 내가 감동되고, 은혜만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무서운 생각 때문이다.
필자가 무너진 교회와 무너진 교회(개정)을 통해, 현 교회를 무너뜨리는 무서운 사탄의 음모(배도)를 역설하기는 했으나, 별 관심도 없는 것 같았으며, 오히려 본인을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고, 영적으로 아주 무지한 사람처럼 취급하는 느낌도 받았다. 주위의 대부분 목회자들은 아예 관심도 없고, 세계정부니, 프리메이슨, 혹은 일루미나티 등의 이야기만 꺼내도 기겁을 하거나, 이단시 하는 느낌을 지울 길이 없었다. 신사도, 신 복음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목회자들이 대부분이고, 신사도 운동의 일선에 선 유명세를 타는 국내외,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듯이, 잘 알지 못하니 그냥 타부시하고, 이단시하며, 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현시대의 흐름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하며, 시대적 흐름을 무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되면 올바른 성경적 지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 주의 종들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사도들처럼 시대의 무서움에 대해 경성해야 하며 무엇보다도 잘 알아야 한다. 선지자들의 대부분이 시대에 대한 각성을 촉구, 경성토록 안내했으며, 주의 사도들 또한 당시 시대에 대한 문제를 잘 알았기 때문에 그 시대에 나타난 많은 이단들에 대한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자신들이 개척하고 인도했던 교회들을 향해 주의를 당부했다.
현 시대의 무서운 배도적 흐름에 대해 안내하는 여러 이야기 들을 무조건 음모론으로 치부하지 말고, 나름 공부나 연구들을 통해 음모로 돌릴 것은 음모로 돌리되 그렇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는, 성경과 시대의 관계 속에서 좀 더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신사도주의의 영향력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교회의 중요 요소로 자리 잡아 버렸다. 예배의 형태, 찬양의 형태, 교회성장의 다양한 프로그램 대부분이 신사도 주의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로 우리의 정통예배와 찬양을 대신해 버렸다. 시골의 작은 교회나 도시의 큰 교회들 할 것 없이 신사도운동의 한 분파인양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재미있는 프로그램형태에 매료되어, 성경과 상관없이 전통으로 지키던 대부분의 찬양과 예배형태를 버리고 신사도적 예배형태로 바꾸어 버렸다. 이들은 이것이 시대의 대세요, 성경의 가르침이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라 말한다. 이렇게 지도하고 가르치는 많은 분들이 신사도가 무엇이며, 신 복음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저 교회가 부흥할 것 같고 뭔가 영적인 감동이 있으며, 재미가 있으니 마냥 흉내 내며 따라 할 뿐이다.
현대에 있어 자칭 선지자라 하여 거짓 예언 사역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대부분이 신사도 계열의 영향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의 거짓 예언으로 인해 우리 기독교가 얼마나 세인들로부터 지탄 대상이 되고 있는지 이들은 알고나 있는지. 아마 관심도 없을 것이다.
신사도주의에 영향을 받게 되면, 함부로 예언하려하고, 치유하려하고, 귀신을 쫓으려하고, 환상을 보려하고, 계시 받고, 천국을 제집 드나들 듯이 드나들고, 예수님과 때도 시도 없이 대화하고, 예수님 혹은 하나님의 계시라 하여 두려움 없이 함부로 간증이나 설교를 하면서 성도들을 미혹한다. 이러한 배도의 모습이 지금 전 세계의 교회를 휩쓸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서운 배도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그리고 알 생각도 안한다. 그저 그렇게 하니 사람이 모이고, 감동이 있고, 은혜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며, 이들의 추종자들로 부터 극진한 대우를 받기 때문이다. 말끝마다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으면서도 전혀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신사도적 여러 프로그램들은 대부분이 이방종교에서 하는 형태와 흡사하다. 고도로 인간의 감정을 도취케 해 정상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고, 감정적 최면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무섭게 조정한다. 성경을 인용하지만 올바른 성경해석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
신사도적 운동에 미혹되면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던 성경이 보이지 않고 성경이 들리지 않는다. 외적 표적들만 머리에 가득 차고, 세속적 부와 긍정이니 적극적 삶 등의 비성경적 요소들이 삶에 자리 잡고 그런 비성경적 소리들만 귀에 들린다. 서서히 성경과 멀어지고, 예언과 같은 뭔가 신비적 능력에 집착케 된다. 점차적으로 다원주의적 사고가 자리 잡게 되며, 상황주의적 거짓 복음이 자신을 합리화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들은 나타나는 모든 거짓 능력들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한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해 나타나는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거짓 이방종교에서 행하는 일들을 스스럼없이 행하면서, 이방사제들이 받는 신탁 비슷한 열광 속으로 빠져들어, 사탄의 달콤한 속삭임을 성령의 음성이라 하여,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으로 착각한다.
만약 신사도적 운동을 통한 교회 각성과 올바른 교회성장이 나타났다면, 우리 한국 교회는 이처럼 부패하거나 세인들의 지탄 대상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 교회에 대한 세인들의 불신과 냉소는 거짓 복음을 받아들인 한국 교회의 실정을 그대로 대변하는 것이다.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다 보니 참된 복음을 통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얼마 전 통계에서 기독교에 대한 세인들의 지지도는 채 10%도 되지 않는다. 불교는 약 40%대, 로마카톨릭은 약 30%대의 지지를 받았으나, 기독교는 9%대의 지지만 있었다. 10명중 1명도 기독교에 대한 신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 성도들의 관심은 이미 세속적 부로 옮겨 갔다. 하늘나라에 대한 사모함이 아니라 현재의 나, 현재의 우리가족, 현재의 우리교회가 잘 되어야 한다는 현재 중심의 신앙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이러한 자기중심적 가치관은 우리 교회를 이기화 시켜 버렸으며, 교회와 교회, 성도와 성도들 간의 관계마저 파괴해 가고 있다. 부의 축척은 곧 신앙의 승리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라는 등식을 만들어 버렸고, 많은 목회자들도 교회 내 성공한 인물, 혹은 세상적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그들처럼 성도도 성공해야 한다는 무서운 기복주의 신앙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이 모두가 신사도의 영향이다.
교회 내 올바른 예배와 찬양을 파괴해 버리고, 경건해야 할 예배와 찬양이 나이트클럽의 축제 분위기처럼 축제의 장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세상과 타협하고, 세속적 문화를 허용하며, 교회가 세상에 뒤지랴 세상 따라 가기에 여념이 없다. 신사도의 영향을 받게 되면 교회가 이렇게 된다.
주님을 사랑하는 분별력 있는 성도는 다음과 같은 프로그램이나 행위를 하는 교회에 다닌다면 성경적으로 잘 검토해 올바른 선택을 하길 당부한다. 신사도운동을 하는 대부분의 교회가 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사역들은 다음과 같다.
☞ 예언기도나 예언 사역을 가르치거나 즐겨 행하는 교회와 목회자
☞ 관상기도를 가르치거나 행하는 교회와 목회자
☞ 알파코스를 하거나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
☞ G12 프로그램을 하거나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
☞ 호흡 기도를 가르치거나 하는 교회와 목회자
☞ 금가루 사역을 하거나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
☞ 땅 밟기 기도를 하거나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
☞ 두 날개 운동을 하거나 가르치는 교회와 목회자
☞ 방언을 가르치거나 즐겨하는 교회와 목회자
☞ 임파테이션(은사전이) 사역을 시행하는 교회나 목회자
☞ 넘어뜨리는 사역을 즐겨 하는 교회나 목회자.
☞ 열린예배 사역을 하는 교회나 목회자.
☞ 찬송가보다 CCM 찬양을 중심으로 하는 교회나 목회자.
☞ 치유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나 목회자.
☞ 목회자에 대한 지나친 복종을 강요하는 교회나 목회자.
☞ 교회 내의 장식을 지나치게 치장하는 교회나 목회자
☞ 교회 강단을 무대식으로 만드는 교회나 목회자
☞ 사도와 선지자라는 말을 즐겨 하는 교회나 목회자.
☞ 기복적, 긍정적, 적극적 사고 중심의 설교가 많은 교회나 목회자.
☞ 신사도적 예배, 신사도적 교회, 신사도적 세대, 신사도적 질서 등, ‘(신)사도’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교회나 목회자.
☞ 오중 직임(에베소서 4장 11절)을 자주 언급하고 교회에 사도와 선지자들의 직분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나 목회자.
☞ 대추수와 ‘킹덤’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교회나 목회자.
☞ 백 투 예루살렘, 다윗의 장막의 회복, 이스라엘의 회복, 예루살렘의 탈환 등의 말을 하며, 이스라엘이 다시 아브라함의 언약의 약속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구약의 절기가 다 회복되어 다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나 목회자.
☞ 한 새 사람(One New Man), 혹은 한가지 일(One Thing)이라는 말과 구호를 자주 쓰며, 기존의 교회는 종교의 영에 사로잡혀 있어서 이제 새로운 교회가 세워져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나 목회자.
☞ 네트워크라는 말을 자주 쓰며, 교회와 세상이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나 목회자.
☞ 7개 권역의 회복(또는 점령)이라는 말을 자주 쓰며, 특히 재정의 산이 점령되어 세상의 부가 교회로 들어와야 한다고 말한다. ‘일터 사역’ 혹은 ‘비지니스 사역’이라는 말을 자주 하며 헌금을 강조하는 교회나 목회자.
☞ 크라운 재정 세미나 등의 재정 프로그램들을 교회로 끌어들이는 교회나 목회자.
☞ 신사도 단체나 사역자가 주관하는 집회에 자주 참석하고, 교회에서도 광고하며 참여를 종용하는 교회나 목회자.
☞ 예언자들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들여 집회하고, 자신들도 적극적으로 예언하라고 말하는 교회나 목회자.
☞ 재정의 돌파, 상황의 돌파 등 ‘돌파’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는 교회나 목회자.
☞ 하프 앤 보울 예배를 신령한 예배, 기름부음 예배라고 소개하며 도입하는 교회나 목회자.
☞ 교회가 양적으로 성장하고 재정이 늘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이며 뜻이라고 하는 교회나 목회자.
☞ 직통 계시를 강조하고, “지금 나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신다”는 말을 자주 하는 교회나 목회자.
☞ 예수를 예슈아라고 부르고, 유다의 사자라는 표현으로 호칭하는 교회나 목회자.
☞ 새 부대(New Skin), 새 술(New Wine)이라는 표현을 자주 하며, 자신들이 새 부대와 새 술이라고 말하는 교회나 목회자.
☞ 사도행전적 교회라 하여 알파코스, G12, 두 날개 등의 신사도적 프로그램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목회자.
☞ 로마 가톨릭이나 WCC 등 종교 통합 운동에 대해 좋게 말하는 목회자
☞ 자신이 초대교회의 사도와 같은 직임을 받았다고 말하는 목회자.
☞ 각종은사(방언,예언,치유, 등)를 가르쳐,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교회나 목회자
아주 많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이 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모두가 하나인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신사도 운동이나 신 복음에 물들게 되면 위와 같은 일들을 자연스럽게 행하고 가르친다. 성경적 검토에 대해선 아예 관심이 없다. 그냥 은혜롭고, 성장만 되면 모든 것이 용서되고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너무 많은 은혜를 베풀고 계신다. 스스로가 조그마한 노력만 기울인다면 쉽게 이들의 정체를 알 수 있도록 책이나 인터넷, 그리고 주변의 여러 환경 등을 통해 알려주고 계신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핑계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택한 백성들을 잘못된 배도의 미혹으로부터 반드시 돌아 올 수 있도록 그 길을 알려 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이러한 배도의 길로부터 돌아오지 못한다면 그러한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