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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02 영적 출애굽
우리가 창세기 1장 이장을 읽어보면 그 원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몇 가지 진술이 나옵니다.
그래서 오늘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그 다음에 두 번째는 죄란 무엇인가 그다음에 세 번째는 그 죄를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약간 조금 이렇게 뭐랄까 로마서까지 연결시켜서 잠깐 한번 설명을 하고요.
내일 그 권복음 창세기 3장 15절의 이야기를 통해서 두 무리가 어떻게 갈라지고 노하우 술 때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인간에 대한 첫 번째 진술은 어디 나오죠? 창세기 1장 이십육 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들었다고 하는 아주 중요한 진술이 나옵니다.
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졌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네 그러니까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동물도 인간도 다 흙 흙으로 만들어졌죠 그렇죠 하지만 인간이 특별히 다른 점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라고 하는 거예요.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할 때 이 형상이라고 하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첼렘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 말은
인간의 마음과 감정과 외모가 전부 하나님을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진술입니다.
근데 이 말은 쉽게 말하면 이런 말이에요.
인간은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는 말이에요.
근데 이 말이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생각을 해야겠죠 왜 이런 진술이 있을까? 자꾸 생각을 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돼요.
왜 하나님은 하나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했을까요? 이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메시지를 우리 오늘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 때 우리를 어떤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이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감정을 느끼며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제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들었다고 하는거예요.
그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존재에요.
예 이게 바로 인간이에요. 인간.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는 진술 속에 담겨 있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동작중앙교에서 한 청년과 침대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 청년이 공부 도중에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나요라는 질문이었어요.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왜 만드셨는지 어떤 목적으로 만들었는지를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일까요? 대단히 중요한 일이에요.
예 왜냐하면 우리가 어떤 목적으로 창조되어졌는가 하는 이것은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규정하는 일이자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관계를 결정짓는 것이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동물이 왜 만들어졌는지 다 목적이 있죠 그죠?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인간을 창조하셨나요?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하나님을 위해 봉사하라고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런 도구적 목적으로 창조하셨다면 하나님은 굳이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 필요가 없어요.
그냥 뭐로 만들면 되죠? 로보트로 만들면 돼요.
로보트로. 그리고 또 하나
만약 우리가 그러한 목적으로 창조되었다면 인간이 죄로 망가졌을 때 하나님은 절대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그런 도구적 존재였다면 하나님은 망가진 것을 그냥 버리면 돼요.
똑같은 것은 새 것으로 만들면 되는 겁니다.
근데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가 잃어버린 바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할 수가 없어서 하나님의 아들이 돌아가시는 엄청난 일을 통해서 우리를 다시 구원하려고 하셨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처음 창조될 때 우리라는 존재가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는 형상대로 창조됐다고 하는 이 이야기는 인간이 어마어마하게 귀한 존재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창세기 1장과 이장의 진술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그 모든 것들이 다 누구를 위해 만들어지고 있어요? 인간을 위해서
그래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하면서 계속 그런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세 분의 하나님이 서로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인간이 탄생되어 졌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에게 인간은 마치 부모에게 태어난 자식들과 똑같이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듯 그렇게 세 분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성경은 이야기해요.
그게 창세기 일장 이장의 기별이에요.
근데 이 이야기가 성경 전편을 타고 흘러가는 이야기이자 성경의 제일 주제입니다.
그래서 자식이 죽어갈 때 그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 마치 부모가 생명을 바치듯이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꼭 확신하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이야기죠. 그래서 하나님은 오늘 우리가 제일 먼저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리고 당신과 사랑으로 교제하며 사랑으로 교제하며 이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해야겠죠 그렇죠? 그리고 영원하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런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하고 계신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을 살아가는 것을 가지고 우리는 하나님과 뭐 한다? 동행한다고 하는 거예요.
동행 예 그리고 이 동행이 동행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이 동행이 영원토록 영원을 통해 이어지는 걸 가지고 뭐라고 하죠? 영생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되는 이유는 뭔가 하면 바로 잃런 이유 때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과 잃어버린 교재를 다시금 회복하여 그 하늘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된다고 하는 거예요.
성령께서 지금도 여러분의 마음속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고 이해하며 하나님과 교제가 가능한 그런 상태로 회복되기 위해서 끝없이 끝없이 여러분 안에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꼭 깨닫게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첫 번째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졌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한 존재로 만들어졌다.
이것이 바로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물음에 대한 첫 번째 답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창세기 이장을 읽어보면 인간이란 원래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두 번째 중요한 진술이 나와요.
두 번째는 선악가와 생명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이 선악가와 생명과의 이야기를 통해서 인간이 어떤 존재에 대한 아주 중요한 진술이 던져지고 있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생명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되어져 있다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무엇 때문에 이 생명나무를 동상 중앙에 두었는가
생각해봐야겠죠? 예 부조화 선지자 육십 페이지에 보면 영원히 생존하려면 사람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계속 먹어야 했다.
이것을 박탈당하면 그의 활력은 점차로 사라져서 마침내 생명이 소멸될 것이었다 라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여러분 인간은
매달 하나님이 계신 그 분의 보좌 앞으로 나가서 그 생명과를 받아 먹음으로 말미암아 영생하도록 존재하게 창조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나무를 통해서 우리가 또 하나 기억해야 될 것은 뭔가 하면 인간은 자동으로 영생하도록 창조되어진 존재가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인간은 이 생명과를 계속 먹어야지만 영원히 생존할 수 있도록 창조되어진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영생하시는 분이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과를 매달 먹어야 영생할 수 있는 존재였어요.
그러니까 인간의 영생은 무조건 적이 아니라 어떻다? 조건적이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 생명과를 매달 먹을 수 있는 조건은 뭔가요? 단 하나였어요.
바로 동산 중앙에 두신 또 하나의 나무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따먹지 않는 것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뭔가 하면 영생의 조건이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동산 중앙에 있는 이 선악가와 생명가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언약이자 하나의 율법이었습니다.
너가 순종하면 너에게 영생을 주겠다는 하나의 언약이자 아담과 하와가 그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지켜야 되는 하나의 율법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녀이고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받아
존재하도록 창조되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결코 하나님과 분리되어져서는 살 수 없고 독립해서는 살 수 없는 거예요.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피조물이라고 하는 게 창세기 1장 이장을 통해서 인간을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진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인간의 모습은 하나님이 만드시고 의도하신 그런 모습이 아니라 대단히 잘못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 망쳐져 있죠.
근데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죠? 네 창세기 삼장을 통해서 그 이유가 설명되어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간의 범죄와 타락의 이야기 죄가 지구에 들어온 이야기가 나옵니다.
근데 그런 고상하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진 인간이 왜 죄를 짓고 탈락하게 되었는가 창세기 삼장을 보면 뱀의 형상으로 등장한 사단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사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근데 사단이란 어떤 존재인가 조금 나가야 될 분량이 있기 때문에 그냥 제가 설명을 할게요.
이사야 십사장 십이절부터 십사절에 보면 사단이라고 하는 존재는
이런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고 합니다.
이사야 십사장 십이절부터 십사절에 보면 사단은 원래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광명한 천사인데 그 존재의 마음 속에 이런 마음이 풍기면서 사단이 되었다고 해요.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인가 하면 그게 어떤 마음이죠? 자신을 하나님의 보좌에까지 끌어올리고 하나님에게 비기려고 하는 생각을 품고 있는 존재였어요.
근데 이 마음을 돌이키지 못했을 때 그 광명한 천사가 사단으로 변해버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근데 이 진술은 한마디로 하면 사단이라고 하는 존재는요 자신의 삶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대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한 존재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이런 모습은 오늘날 거듭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모습이에요.
예
그렇죠. 하나님의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계셔야 되는 성전이에요 원래 근데 그 하나님이 계셔야 될 그 마음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대신 그 자리를 자신이 차지한 존재 이게 바로 뭔가 하면 사단이에요.
에 그 사단은 피조물이면서면도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살겠다고 하는 독립 선언을 한 존재에요.
쉽게 말하면
그니까 피조물인데 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고 독립선언을 한 존재가 바로 누군가 하면 사단이에요.
근데 이 주장을 하늘에서 펼칠 때 요한계시록 십이장에 보면 이에 동조해서 하늘 천사의 삼분의 일이 동조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전쟁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 전쟁이 바로 무슨 전쟁이에요? 선과 악의 대쟁투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하늘에서 시작되어진 이 전쟁이 땅으로 옮겨지면서 벌어진 이야기가 바로 창세기 삼장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3장의 이야기를 보면 사단은 에덴 동산에 침투해 들어가서 그 어떤 방법으로 침투했는가 하면 그냥 사단의 모습이 아니라 뱀이라고 하는 매개를 통해서 에덴 동산에 침투해 들어가서 인류의 그 첫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게 자신의 주장을 따르도록 요하고 있는데 근데 그 이야기는 한마디로 말하면 뭐예요?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하는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하는 것인데 이것은 바로 뭘 말하는가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독립 선언을 하라고 하는 거하고 똑같아요.
예 그렇게 하면 너희도 뭐처럼 될 수 있다?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하는 그래서 이 말은 아담과 하와에게 똑같은 거예요.
그들의 삶의 보좌에서 하나님을 어떻게 하고
끌어내리고 원래 인간이란 존재는 그렇게 하면 살 수 없는 존재잖아요.
끌어내리고 대신 너가 어떻게 알아 너의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이 아닌 너희들의 뜻대로 살기로 선택하라고 하는 게 바로 사단의 시험이었어요.
그래서 이것은 사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하라 독립선언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독립선언의 행동이 바로 뭔가 하면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한 그 선악과를 따먹는 불순종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여기서 또 하나 우리가 중요하게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될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뭔가 하면 죄란 무엇인가 하는 거예요.
죄란 무엇인가 죄는 하나님의 통치에 반대하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인데 하나님의 통치의 법이 뭐예요? 이 통치의 법이 하나님의 율법이잖아요.
그 당시에는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는 이 법을 어기는 것인데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서
분리되어 살기로 결심하고 독립선언을 하는 거예요.
예 근데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로 창조되어진 것이죠.
원래 그렇게 만들어진 거예요. 그래서 죄의 삭은 무엇이다? 사망이라고 이렇게 보는 거야.
죄 작성의 사망이 되는 거예요. 원래 그렇게 살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 사단에게 속은 거예요.
그래서 죄 작시 사망이라고 하는 율법이 창세기에 이런 스토리를 통해서 다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독립선언의 결과 인간은 하나님의 원가지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아담과 하와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자신의 자신들을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분리시키면서 첫 번째 경험하게 되는 게 뭔가 하면 죽음이죠.
죄의 삭은 사망이니까. 두 번째는 지구에서의 왕권과 통치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게 다
부분적으로 사단에게 넘어가는 것처럼 보여요.
세 번째는 그 분리의 결과로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이 사라지면서 그들은 불행해지는 거예요.
예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가운데서 오는 기쁨을 느끼며 살아야 돼요.
이걸 다 잃어버리니까 인간이 어떻게 됩니까? 이제 세속적인 기쁨을 찾아가는 거예요.
마약에 빠지고 다른 어떤 세상적인 재미있는 게 뭔가를 찾아다니는 거예요.
허무하게.
원래 인간은 신앙의 기쁨,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존재에요.
거기서 행복을 찾아야 돼요. 다 잃어버린 거예요.
네 번째는 그 분리의 결과로 사단의 본성을 닮아가면서 그들의 본성이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해지는 다시 말해서 육신적, 영적, 정신적으로 큰 변화가 일러오게 됩니다.
다섯 번째 이 독립선언의 결과 그들은 자유를 얻는 대신에 이 세상 임금이라고 선언한 사단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그래서 이 죄악에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인간은 이제 영원한 멸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이 죄의 결과 다시 말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한 결과 인류의 모든 불행이 닥치게 되었다고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를 통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 중에 하나는 중요한 교훈인데요.
이 땅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뭐다? 이 땅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다? 이 땅의 모든 문제의 권한은 오직 하나예요.
나의 하나의 문제예요. 인간의 모든 불행의 문제는 오직 하나의 문제 죄 문제에요.
이걸 잊어버리면 안 돼요. 죄 문제에요.
죄 문제.
이게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또 하나의 핵심 비별이에요.
예 근데 죄는 무엇이다? 죄는 무엇이다? 사망입니까? 죄는 무엇이다? 하나님을 나의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하나님을 떠나 살기로 독립 선언을 하는 거예요.
이제 내 뜻대로 살겠다고 하는 거 이제 더 이상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다 라고 하는 거예요.
이 하나의 문제로 영원히 살 수 있는 인간에게 죽음의 문제 질병의 문제가 찾아왔고 이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진 인간이 원래는 그렇게 선한 만나기만 하면 행복해야 되는데 그렇지 않고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변해버리게 되었고 모든 다툼과 불화와 전쟁과 온갖 해결할 수 없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문제가 찾아왔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의 모든 총체적인 문제는 단 하나의 문제이다.
무슨 문제인가 하면 죄 문제이고 이 죄 문제가 해결돼야 져야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진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잃어버렸던 낙원 그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품성의 회복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다시금 얻을 수 있는 길은 우리가 죄로부터 용서받고 우리가 죄로부터 분리되어져 갖고 다시 하나님과 연결되어지는 그 길을 다시금 회복하고 되찾을 수 있을 때 모든 걸 다 다시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계시록 20장에 보면 죄 문제가 다 해결되어지잖아요.
그다음에 어떻게 됩니까? 그다음에 낙원이 회복되어지는 거예요.
죄가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낙원이 회복되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 낙원이 더 이상 안 되는 거예요.
우리 행복하게 살 수가 없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복음은 정말 중요한 거죠.
복음은 뭐다 복음은 뭐다?
근데 뭐가 기쁨 소식이죠?
복음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에요. 여러분 정말 정확하게 알아야 돼요.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 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있다고 하는 거죠.
그게 복음이에요 이게 복음이에요 뿐만 아니라 이 죄 문제를 피해서 이해하게 되어지는 모든 이야기는 실제로 인간의 문제의 핵심을 다루는 것도 아니고 복음의 핵심을 다루고 있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 거예요.
이 죄 문제를 피해서 이야기하는 모든 것들은 다 피상적인 문제 해결 방법이에요.
이 성경이 가르치는 정말 중요한 기별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뭐죠? 우리로 하여금 단지 이 땅에서 우리가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다시 말해서 이 땅에서의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게 아니에요.
그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은 뭐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분이라고 마태복음 일장 이십일절에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어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해결할 자 그 구원자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누구다? 예수님이에요.
이게 해결되어져야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다시금 하늘로 올라가서 주님과 영원히 살 수 있는 거예요.
이걸 위해서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거예요.
단지 이 땅에서 여러분 행복하게 잠시 일시적인 어떤 행복을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게 아니라 영원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거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집중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 하면 복음이 무엇이고 그 복음이 우리에게 해결하기 위해서 계속 파고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죄에 감염된 인간을 구원하고 치료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행하시는 모습과 일하시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복음이라고 우리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이야기가
로마서와 갈라디아에서에서는 신학으로 이야기하고요 창세기에서는 스토리로 쭉 서술되어져 있는 거 이게 바로 뭔가 하면 가죽옷 이야기 전부 다 그런 이야기죠.
이 복음을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가 하는 스토리로 쭉 설명하는 거예요.
창세기 삼장에 보면 인류가 죄를 짓고 이제 자신들의 운명을 깨닫고
이제 죽는 거 알아요 이제 아담과 하와가 막 두려움 속에서 어떻게 하는가 하면 하나님과의 교제의 기쁨을 잃어버렸으니까 어떻게 해야 될까요? 숨어 피해버리죠.
그리고 너무너무 괴로워서 무화가 나뭇으로 이렇게 너무 자기가 지저분하고 수치스러워서 가리고 미봉책으로 이게 다 가리고 그리고 난 다음에 숨어 있는 거예요.
그때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는 순간 하늘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읽어드릴게요. 부조화 현장에 나온 글인데요.
사람의 타락은 온 하늘을 슬픔으로 가득 채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는 죄의 저주로 시들었고 비참하게 죽을 운명에 처한 존재들이 살게 되었다.
율법을 범한 자들의 피할 길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천사들은 찬양의 노래를 그쳤다. 하늘 궁정 전체가
죄가 가져온 황패 때문에 통곡하고 있었다.
다 울고 있는 거야. 이제 인류랑 영원히 이별해야 되기 때문에.
근데 이 모습이 창세기 삼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 하늘에서 벌어진 일과 그 분위깁니다.
근데 이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이제 이게 바로 뭔가 하면 복음 이야기예요.
하나님이 행동하시는 거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이제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울고 있을 때 이제 피할 길이 없다고 생각해.
숨어 있을 때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어떻게 하셨죠? 이게 전부 다 다 교리적으로 만들어져서 구원론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어떻게 하셨다? 하늘에서 가만히 계시지 않고 어떻게 하셨다? 잃어버린 인간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아시죠? 그들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게 창세기 3장 9절에 보면 아담아 아담아 내가 어디 있느냐 찾는 거예요.
하나님 아담아 아담아 내가 어디 성경이 가르쳐주는 구원의 원리의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뭔가 하면 구원은 뭐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하는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하고 힘 있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있는데 가끔씩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전에 우리가 뭔가 하나님을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뭔가 기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을 만큼 어떤 선행을 하거나 즉각 정성을 보여야지만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동을 받고 그리고 나를 받아주시고 나를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이런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시작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변화나 개선이 아니라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나서는 이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무엇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부르심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실이에요.
여러분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은 그 아담과 하와가 죄를 회개하고 당신 앞으로 나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으셨다고 하는 사실을 우리 기억해야 돼요.
이게 바로 뭔가 하면 누가복음 십오장에 등장하는 잃은 양의 비 전부 이런 얘기죠 그죠? 잃어버린 동전의 비유 그리고 창자의 비유 전부 다 창세기 삼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다 비유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옛날에 제가 조지 나이트 박사가 쓴 그 로마서의 이제 이야기를 보니까 거기 이런 말이 나오더라고요.
어떤 한 남자가 그 자기 와이프한테 이렇게 이제 잘못을 했어요.
그래서 좀 바람을 피웠어요.
그래서 남편이 와이프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멀리 떠나가 버렸어요.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와이프가 마음이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하는가 하면 그 미국에서 뭐 하여튼 백몇 키로 되는 그 먼 길을 이 뉴스 토픽으로 나왔대요.
길어서
기어서 그 와이프가 있는 데까지 찾아가서 이제 내가 당신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희생하고 헌신하니 나를 받아주세요 라고 표현을 했대요.
그랬더니 이 와이프가 어떻게 하는가 그걸 감동을 받고 그 사람을 다시금 용서해줬다고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하는 근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우리 인간을 용서하시는 모습을 이렇게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성경엔 전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지 않아요.
로마서에 보면 아직 우리 인간이 죄인 되었을 때 어떻게 하셨죠?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액션을 취하셨는데 그게 바로 뭔가 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돌아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인간의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첫 번째 단계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바울은 뭐라고 표현하는가 하면 은혜라고 표현을 해요.
은혜 이 은혜에서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거예요.
이 은혜에서 이 은혜라는 것은 뭔가 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회개하기 전에 스스로 도르키기 전에 먼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모든 계획을 마련하시고 하나님이 인간을 부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을 부르고 있는 쫓아가는 거예요.
예 그게 사도 바울이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죠 같이 한번 볼까요? 이 말씀은요 에베소 2장 8절 말씀입니다.
에베소 이장 팔절 말씀입니다.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그 구원의 그 풍성한 선물 이거를 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을 어떻게 한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므로 말미암아 그 다음에 이제 구원을 받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이제 중요한 것 이제 몇 가지를 좀 더 살펴볼게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놓으신 이 구원의 선물을 우리가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이것은 바로
이 나를 부르시는 그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될 때 아담과 하와가 들었죠 그죠? 그 부르심에 어떻게 하는 거 우리가 의지적으로 중요한게 의지적으로 우리의 의지가 있어야 돼.
의지적으로 반응하는 것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면서 손을 내밀었을 때 그 부르심에 우리가 의지적으로 반응해서 그걸 붙잡는 것
이것을 가지고 성경에서는 뭐라고 말하는가 하면 믿음이라고 말해요.
믿음. 그리고 이 믿음의 반응의 결과가 무엇이다? 구원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가죽 옷이 입혀지는 거예요. 이제 이 이야기는 내일 좀 제가 좀 설명을 좀 해드리도록 할게요.
그래서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그 첫 단계에서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세 가지 일이 성경에 있다고 얘기해요.
우리가 믿음을 정말 나타내는가? 하나님께 진짜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그걸 하나님이 베푸신 그 구원의 선물을 받아들이는가? 이건 죄 문제와 같이 우리가 연결해서 깊이 생각해야 될 세 가지 것이 있어요.
이걸 잘 생각하지 않는 경우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구원을 받았는지 못 받았는지
나는 진짜 믿음으로 살아가는지 아닌지 헷갈릴 때가 참 많아요.
믿음의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그 구원의 선물을 붙잡을 때 믿음으로 반응할 때 우리에게 나타나는 첫 번째 모습은 바로 뭔가 하면 자복과 굴복이에요.
자복과 굴복
이제 정로의 계단에 보면 자세하게 나오거든요.
자복과 굴복한다는 건 뭐예요? 내가 하나님 앞에 내 의지로 항복하는 거예요.
예 이것은 내가 스스로의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력하고 절망적인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깊이 자각하는 거예요.
예 이게 안되면 쉽지 않아요. 왜냐 그러면 내가 이제 내 자아를 내려야 되거든요.
그 주님이 다시금 내 보좌에 들어오셔야 돼요.
그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항복해야죠.
철저하게 자아를 이렇게 내려놔야 돼요.
그게 그 과정 속에 첫 번째 등장하는 게 뭐냐 자복과 굴곡이 굴복이에요.
예 이 죄가 얼마나 우리 속에 깊이 뿌려내려 있고 그리고 도저히 스스로는 해결해 나올 수 없는 이 죄에 중독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가운데 예수님 앞에 자복하고 굴복하는 것인데 이 자복과 굴복을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예수님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아주 깊이 깊이 인식하는 거예요.
이걸 심령의 가난함이라고 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하는 그런 표현으로 그 성경에 표현되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더하여서 주님 앞에 이제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것 이걸 뭐라고 하죠? 자하를 어떻게 하는 거죠? 포기하는 것 혹은 자아를 내려놓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한 필수적 과정으로 반드시 우리 안에서 나타나야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걸 피해가면 안 돼. 이 피해가면 우리는 구원의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럼 나는 계속 여전히 내 뜻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예 이것을 자아 포기 혹은 자아의 죽음이라고 하는데 바울은 이 바울이라는 사람이 구원론에 대해서 굉장히 상세하게 이제 그 서술하고 있죠 갈라디아서 이 장 이십 절에 이걸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어요.
이걸 자아를 뭐에 못 박음? 십자가에 못 박음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 이게 뭐예요? 내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자복하고 굴복한다고 하는 내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즉 그런 즉 이제 내 안에는 누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죄는 뭐예요? 독립선언을 한 거잖아요.
하나님을 끌어내리고 내가 내 자신의 주인이 된 거예요.
그게 아니라 돌아간다는 거예요. 다시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사는 게 아니에요.
내 안에 누가 사신다? 예수님께서 원래 그 자리로 돌아오신 거예요.
더 이상 사단의 뜻대로 살지 않는 거예요.
예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그래. 그래서 내가 이제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더 이상 내 욕심 내 욕망 내 뜻대로 사는 것은 내 뜻이 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뜻이 산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그리스도의 뜻과 바람을 따라 사는 것이 바로 무슨 삶이다?
구원받은 삶에 자복과 자복과 굴복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살아가는 삶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구원하는 과정에 믿음으로 주님을 붙잡는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내가 믿음으로 받아들인다고 하는 과정 속에 첫 번째로 나타나야 될 것이 바로 뭔가 하면 창세기를 쭉 연구해보면 죄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 거예요.
이게 먼저 내려가야 돼요. 그래야지만 주님께서 운전하시는 삶이 구원의 삶이 나타나는 거예요.
첫 번째로 이게 안 되면 대부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앙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어요.
어쩌면 이 신앙의 첫 번째 단계 속에서 일어나는 이 자아를 굴복하고 포기하고 내려놓는 이 일은 예수님이 들어오시는 길이 예비되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침내한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먼저 뭐 하는 거예요? 이 자원을 굴복하고 철저하게 회복하고 회개하고 자복하라고 하는 설교가 먼저 나가는 거예요.
그런 다음에 천국이 들어오는 거예요.
천국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길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이 일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탄생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야 할 부수적인 일이 아니라 무슨 일이다? 필수 불가결한 과정이에요.
근데 이 과정이 생략되어졌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면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이 향상되어지는 이상한 그리스도인이 자꾸 만들어지는 거 이게 다 뭔가 하면 모든 위선 실제로는 내 욕망이 가득해요.
근데 그렇지 않은 척 살고 있는 거죠.
바리새의 주인
율법주의 형식주의 세속주의 모든 신앙생활 속에서 벌어지는 벌어지고 일어나는 모든 잘못되고 비정상적인 신앙의 모습이 대부분 여기서 만들어지는 거예요.
우리 지금 저녁부터 우리 정로에게 나는 공부 아주 생애의 빚 그죠? 이 과정이 자세하게 단계적으로 설명되어져 있어요.
근데 하나하나가 건너뛰는 일이 아니라 참 좋은 글이다 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받아들이고 이 과정에 충실하게 따라가야 될 정말 중요한 어떤 과정들이 담겨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예수님이 아닌 여전히 나의 자아가 이 자아가 나의 마음의 보좌에 앉아서 내 인생을 그리스도의 뜻이 아닌 내 뜻과 내 욕망대로 운전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지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의 주인이 아닌 거예요.
구주라고 말하는 건 아니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인
비록 우리가 쓰러지고 넘어지고 한다 할지라도 회개하면서 우리가 잠복하고 계속 하나님 앞에 나가는 사람들이 바로 어떤 사람인가 하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에요.
투쟁을 해야 되는 거예요. 여러분 다시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다시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어떤 사람이다? 내 뜻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이걸 창세기 삼장 십오 절에 자세하게 공부할 거예요.
예 두 종류의 신앙인이 만들어집니다.
예
여러분 그래서 오늘 여러분의 마음속에 이게 행복이거든요.
원래 인간은 그렇게 살아야지만 정상적으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속에 살아갈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왜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내리지 않지? 왜 내가 신앙생활하는데 은혜가 없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이 하나하나의 과정이 정말 내가 믿음대로 제대로 하나님께 그 구원의 반응 구원의 요청에 초청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된다고 하는 것이
그래서 오늘 우리가 이 자아를 주님 앞에 굴복하고 내려놓으며 주님을 향해서 우리의 손을 내밀 때 또 하나 주님 제가 주님이 전적으로 필요합니다.
이젠 주님 뜻대로 제가 살겠습니다. 주님 저를 고쳐주세요.
주님의 모든 수술을 제가 받아들이겠습니다.
저를 고쳐주세요. 주님 도와주세요 라고 이렇게 구원의 손을 내밀 때 또 하나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당신의 아주 찬란한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에게 밝히 보여주시면서 그동안 내 뜻대로 살아온 나의 죄를 어떻게 하는 회개하는
회개하는 참여의 과정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정로의 계단에 보면 이게 그다음에 나와요.
자복과 굴복 회계 이렇게 나와요. 예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하나님의 사랑의 부르심에 반응하여 그 앞에 나오게 될 때 첫 번째 자아를 굴복하게 되고 두 번째로는 이 동시에 동시에 일어나는 거예요.
바로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며 회개하는 거예요.
이 회개하는 거
참되고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정말 중요한 과정이 이 자아를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것과 또 하나는 뭔가 하면 진실하게 회개하는 거예요.
예 이 회개가 정말 진실하게 깊이 깊이 이루어져야지만 우리가 정말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데 이 기초가 부실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부분들이 굉장히 피상적이 될 수 있어요.
왜냐 그러면 이게 바로 뭔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거예요.
온전하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철저하게 자복하고 회개해야겠죠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우리가 해야 될 정말 중요한 게 바로 뭔가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는 거예요.
재림교회 기별 중에 재림교회 교회에 보내는 마지막 시대의 기별 중에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기별과 또 하나 또 하나가 그 기 뭐냐 그러면 우리 대속제일이라고 우리가 지금 지송소 시대라고 하죠 세천사의 기별를 얘기하는데 대속제일이라고 하는 게
회개하라고 하는 시기 그죠? 라오디게아의 교회에 보내는 기별의 핵심은 바로 뭔가 회개하라고 하는 거예요.
주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회복하고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주님이 되어지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을 진실로 참회하면서 하나님 앞에 돌이키는 이 관계의 회복이 이루어져야지만 우리가 재림 준비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복과 굴복 회계라고 하는 것은 전부 다 우리 힘으로 알 수 있는 것입니까 못하는 겁니까?
다 뭐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뭐냐? 그러면 이게 정말 중요하게 이해를 해야 돼.
그 모든 과정에 다 뭐가 필요하다? 우리의 의지적인 반응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 거예요.
예 그래서 믿음으로 한다고 하는 건 뭐예요? 하나님의 손을 내미는 거예요.
우리의 신성과 인성이 같이 연합해서 그 과정을 이루어내는 거예요.
우리가 모한이 있으면서 어떤 것도 우리의 의지를 표현하지 않으면 그거는 안 돼요.
그래서 이 하나님의 초청과 인도하심에 우리가 의지적으로 반응하며 따라가는 그것을 성경에서 뭐라고 한다? 믿음이라고 한다.
이게 자꾸 기억해야 돼요.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구속의 계획이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완전하다 할지라도 만약 이 초청에 대한 인간의 합당한 의지적 반응이 없다면 그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다 무용지물이 되네요. 하나님이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모든 것들을 다 마련해 놓으셨는데
우리가 거기에 의지적으로 반응하지 않으면 이 모든 계획이 어떻게 된다? 아무 소용이 없어진다고 하는 거예요.
예 여러분 그래서 우리의 본성이 여전히 추하고 우리의 감각은 여전히 죄대지만 그러나 우리가 나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시는 그리스도를 믿고 내 모든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회개할 때 주님은 당신의 십자가의 공로를 통해서 그들의 죄된 모습을 보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듭난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있는 이 가죽옷을 입고 있는 무제한 우리를 보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주신다고 해서 하나의 용어가 만들어지고 있죠 그게 뭐죠? 칭의라고 하는 거예요.
칭의는 의롭다고 칭해지는 것 이것은 다른 말로 말하면 너희 용서받았다 너희 무죄하다고 하는 것을 선언하는 거예요.
법적 용어라고 해요. 예
근데 문제는 우리가 정말 이 칭의를 경험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는 거예요.
이거 알 수 없나요? 우리가 친이를 경험했는지 안 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죠? 예 알 수 없나요? 이거 구원의 확신과도 관계되는 거죠.
여러분 이거 이거 믿습니까? 믿습니다.
여러분 구원 받았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구원을 반은 건가요? 예 여러분 다시 말합니다.
칭의를 경험하기 전에 반드시 선행되어져야 될 것이 무엇이다? 믿음으로 반응하는 거라 했죠 예 자복과 굴복과 회계라고 하는 것인데 이 회계에 대한 한 가지만 더 우리 공부하고 그리고 우리 저녁 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제가 이 회계가 무엇인가 정로의 계단에 내용들이 자세하게 나와 있기 때문에
자세하게 한번 돌아가셔서 한번 묵상하는 마음으로 한번 읽어보세요.
이 회계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신약 성경의 회계라고 하는 단어가 메타 노이아라고 하는 단어를 써요.
네타 노이아.
메타라고 하는 말은 뭔가 하면 이후라고 하는 거 이후 애프터 이유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노이야라고 하는 것은 뭔가 하면 마음을 나타내는 누스라고 하는 단어에요.
노이아라 마음 이 두 단어가 합성되어진 거예요.
다시 말하면 이거를 이제 문자 그대로 풀면
이후의 마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후의 마음 그러니까 그전에 마음이 아니라 이후의 마음 이건 뭐예요? 마음의 변화를 의미하는 거예요.
회계라고 하는 거는 이전에 죄된 욕망이 사라지고 그리스도의 마음 성령께서 주시는 새로운 마음을 받는 거죠.
이게 성경에 보면 자세하게 나와 있어요.
이 회계라고 하는 이 단어의 성경적 의미는 뭔가 하면 새로운 길에 들어선 새로운 마음이라고 하는 의미예요.
예 이전과 다른 욕망과 이전과 다른 마음이 회계를 통해서 내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될까요? 이전에 막 진짜 너무너무 미워하는 사람이 있는데 주님 제가 이 마음을 회개하고 싶어요 버리고 싶어요 하고 기도할 때 진실하게 회개할 때 자복하고 굴복하고 회개할 때 어떤 마음이 들어온다?
새로운 마음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 내가 진짜 이 죄로부터 회개했구나.
이전에 보면 막 진짜 불타는 정욕적인 마음이 있는데 이 마음이 회개하고 주님 앞에 내놓을 때 새로운 마음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게 바로 뭐예요? 회개하는 회계가 이루어 새로운 마음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회개하라 그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진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들어오신다고 하는 거야.
이게 예수님이 직접 들어오는 게 아니라 주님의 마음이 들어오는 거죠.
그리고 유쾌하게 되는 때가 주로 주 앞으로부터 이르게 된다고 하는 게 뭐예요?
정말 내가 하나님으로 하나님께 간압되었구나 내가 새로운 마음을 받았구나 내가 진짜 주님의 이 회계를 통해 주님께 간압되었구나 하는 이런 마음이 바로 뭐예요? 성결케 되어지는 이 거룩한 마음이죠.
이게 들어올 때 우린 진짜 성결한 기쁨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 회계라고 하는 이 단어의 성경적 의미는 바로 뭔가 하면 새로운 길에 들어선 새로운 마음이라고 하는 거예요.
이전과 다른 욕망 이전과 다른 마음이 회계를 통해 내 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근데 이거는 내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된 거예요?
외부에서 들어온 거죠. 그죠? 외부에서 들어온 거예요.
예 여러분 이게 돌아가서 한번 찾아보세요.
로마서 육장 사절에서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장사되는 자가 없게 되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는 마음이라고 해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는 거예요.
새로운 생명이 들어온 거예요. 새로운 생명.
로마서 팔장 이 절에서는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라고 해요.
다시 말하면 죄의 법칙이 깨어지고 새로운 생명의 법칙이 내 안에 놓여지는 거예요.
이게 바로 뭔가 하면 거듭난 사람 회개한 사람에게 주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새로운 법칙이에요.
그 법칙을 따라 우리가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예레미야 삼십육 장에서는 윤례를 행하게 하는 마음이라고 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께서 주시는 이 법칙이 내 마음속에 새겨지는 거예요.
성령을 통해서 새겨지는 거예요.
뭐 하면 참되게 회개하게 될 때 새로운 마음이 들어와서 새로운 율법, 하나님의 율법이 내 마음속에 새겨지는 거 이게 바로 뭔가 하면 윤례를 행하게 하는 마음이라고 새로운 언약, 새 언약 다시 말하면 거듭난 사람들, 진실로 회개한 사람들의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이에요.
이게 이제 내일 공부하게 될 창세기 3장 15절에서 뱀과 원수가 되게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사단과 원수가 되게 하는 마음이에 사단과 적극적으로 투쟁하게 만드는 그런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넣어준다고 하는 거 이전까지는 죄가 너무나 좋아요.
죄가 유혹으로 들어오면 그냥 굴복해 끌려가는 거예요.
죄 권능 속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이 이제는 죄와 더불어 투쟁하게 만드는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넣어주겠다고 하는 게 바로 뭐다 이게 바로 뭔가 하면 원복음이에요.
그리고 이 마음을 우리에게 우리가 받아야지만 우리가 어떤 사람이다 이제는 여자의 후손, 다시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우리가 확신하며 살 수 있다고 하는 이런 마음이 없는데, 이런 투쟁하는 마음이 없는데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에요.
마지막 때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나게 될 때가 온다고 하는 주님께서 다 알곡과 가라지를 이렇게 심판하실 때 전혀 회개하지도 않고 믿음으로 주님 앞에 반응하지도 않고 여전히 내 욕망대로 내 뜻대로 살아가는 내가 주인인 사람인데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얘기를 하면서 주님 왜 내가 구원받지 못합니까? 말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는 것을 보여주실 것이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그래서 여전히 우리의 본성은 추하고 여전히 죄악에 반응하고 여전히 연약하여 쓰러지는 죄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지만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포기하고 우리 삶의 운전대를 주님께 넘겨드리고 그리고 회개하며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 마음속에 전적으로 새로운 길에 들어설 수 있는 마음, 들어선 마음, 그런 마음을 넣어주시겠다고 하는데 이 마음은
제가 그냥 해석해 보면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에요.
창세기 3장 15절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야 돼요.
또 이거를 다른 표현으로 하면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에요.
그리고 주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에 이런 마음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야지만 넣어주신다고 했잖아요.
이게 바로 뭔가 하면 윤례를 행하게 하는 마음이고
뱀과 원수가 되게 하는 마음이고 이게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이고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거예요.
곳곳에 나와 있는 그거예요. 이걸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적용하며 이것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왔다는 걸 확신해야지만 우리가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거예요.
예 여러분 이 마음을 정말 오늘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면 다시금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주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가운데 이 마음을 달라고 주님 앞에 몸부림치며 투쟁하며 기도할 수 있는 여러분과 저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주님께서 정말 나를 가압하셨다는 증거를 우리가 얻을 때까지 그 성결한 기쁨이 내 마음에 올 때까지 주님 앞에 기도하면서 주님 그 마음을 달라고 진실로 원합니다.
제 모든 자아를 주님 앞에 굴복합니다라고 기도할 수 있는 그런 심령을 가진 분들이 오늘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이게 뭔가 하면 거듭남이라고 하죠
거듭난다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뭐예요? 다시 태어난다 새로 태어난다고 하는 거잖아요.
이것은 뭘 의미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다시 태어날 수 있죠? 한 생명이 죽어야 되는 거예요.
예 그래야지만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이 과정 속에 제일 중요한 게 뭘까요? 뭐가 죽어야 되죠?
이 구원의 과정에서 가장 우리에게 걸림돌이 되는 게 뭔가 하면 자아에요.
자
우리의 구원의 선물을 내 내미실 때 언제나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면 이제는 너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이제는 내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다시 말하면 이제는 내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는 삶을 요구하시는 그래야지만 주님께서 우리를 운전할 수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살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는 거예요.
근데 이게 안 되니까
계속 이상한 역사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교회 안에서도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태어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교회가 계속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회심한 교인들이 자꾸 자꾸 사라지는 거예요.
거듭난 사람 참된 그리스도를 경험하는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자꾸 희귀해져 가는 세상이 만들어지니까 이제는 정상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들이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처럼 나타나는 그런 교회가 만들어지는 그게 오늘날 모든 교회의 문제인 거예.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이 이곳에서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받는 그 축복들 은혜들을 반드시 이곳에서 누리고 돌아갈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걸 경험하시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론이 아니라 실제 삶을 통해서 설명하고 간증할 수 있는 그런 분들이 이곳에 계신 모든 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선물이 무엇인가 하면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내주하시며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선물이에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의의 반대가 뭘까요?
하나님에 의해 반대가 뭐죠? 인간의 의 나에 의해
성경에 보면 두 가지의 옷이 있어요.
두 가지의 옷 하나는 뭔가 하면 아담과 하와가 죄로 말미암은 문제가 생겼죠 너무 수치스러워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는 거 이 죄의 문제를 가려야 돼.
그래서 만든 게 뭐죠? 내 힘으로 만든 무화가나무로 만든 옷이에요.
그리고 반대로 창세기 담장에 보면 또 다른 옷이 나오죠 그 옷은 뭐에요?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그리스도의 생명이를 상징하는 어린 양의 죽음을 통해 만들어진 가죽 옷이 하나님이 만들어 주신 옷이에요.
이 두 가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 나중에 보면 창세기 4장에 보면 아벨과 가인이라고 하는 사람으로 등장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뭐냐 그러면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의 이 두 가지의 옷이 옷을 입은 사람들이 오늘날 교회 안에 존재하게 된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때 하늘나라 갈 때 이제 조사 심판을 하잖아요.
조사 심판을 할 때 그 표상적으로 보여주는 게 뭔가 하면 의복 심사라고 하는 마태복음 이십장인가요? 나오죠 임금이 이제 혼인 잔치로 들어갈 사람들을 다 불러 모으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의복 심사를 하는데 그 사람이 어떤 옷을 입고 있는지를 보신다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 의복 심사의 핵심이 뭔가요?
임금이 준 그 옷을 입고 있는가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임금이 만들고 임금이 제공한 그 옷을 입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 가려지게 돼요.
그게 바로 조사 심판이에요. 오늘 여러분 이 이게 뭘 의미하는가 하면 우리가 정상적인 그리스도인 다시 말하면 이게 핵심이 바로 뭔가 하면 죄는 무엇이다? 죄는 뭐다? 인간은 뭐다 인간은 원래 어떤 존재다? 인간이라고 하는 존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야지만 살 수 있는 거예요.
https://youtu.be/0eYNZklUw7Y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야지만 행복할 수 있고 하나님과 독립해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게 창세기를 통해 우리에게 던져주는 굉장히 중요한 메시지예요.
죄는 뭐다? 사단은 하늘로부터 뭐를 선언한 거예요? 독립 선언을 한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의 율법에 따라 살지 않겠다 이제는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겠다 내 인생을 내 뜻대로 하겠다고 하는 여기에 감염되어져서 이 사상에 감염되어진 존재가 바로 누구다? 아담과 하와에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된다
어떻게 해야 된다? 철저하게 자복하고 굴복해야 돼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가지고 오신 그 선물을 받기 위해서 오늘 나의 생각과 나의 뜻과 내 방법대로 살려고 하는 것들을 철저히 포기하고 그렇게 했더니 너무 불행해서 못 견디겠어요.
주님 제 인생을 제 임대로 못 살겠어요.
당신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주님의 은혜 아래 살겠다고 고백하면서 주님 앞에 철저하게 내 방법과 내 계획을 다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주님께서 다시금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지는 그 사람에게 주님께서 어떻게 하시는가 하면 하나님의 의의 옷을 제공한다고 하는 거 이것은 바로 뭔가 하면 칭의와 더불어서 성화까지를 포함하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마음 속에 죄된 욕망을 몰아내주시고, 주님께서 이 땅에 사실 때 가지셨던 그 선한 마음과 그 성령의 마음을 우리 마음속에 생명의 성령의 몸으로 기록해서 내 백성이라고 하는 것을 누가 보아도 확신할 수 있는, 확진할 수 있는 그것을 주시겠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만들어주신다고 하는 거예요.
이 마음을 매일 아침마다 우리 받아야 돼요.
하나님, 저를 간압해주세요. 주님, 정말 당신께서 나를 간압하셨다는 증거를 주세요.
그게 바로 뭔가 하면 우리가 죄와의 투쟁에서 승리하는 거예요.
회개하고 새로운 마음을 받아내는 거예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우리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 주시는 마음을 통해 받아내서 용서가 되어지게 만드는 거예요.
그런 과정들이 날마다 반복되어서 일어날 때 우리는 하늘 백성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는 거요.
여러분, 그렇게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정말 주님께서 이 마지막 때 나의 백성은 바로 이런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을 온 세상 앞에 드러내고, 진리가 우리를 어떻게 거룩하게 하고, 어떻게 자유롭게 하고, 어떻게 평화롭게 할 수 있는지를, 그걸 우리가 실제 실제 삶을 통해 증명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오늘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오늘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늘 아버지 창세기의 말씀을 통하여
오늘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기별들, 너무나 당연하고 너무나 확실하고 분명한데 우리가 참으로 등 안해 했던 이 말씀들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정말 이제는 주님 앞에 참되게 돌아가기로 굳게 결심하는 저희들 모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주님 앞에 자복하고 굴복하게 하여 주시고,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나의 욕망대로 살아갔던 그 모든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게 하여 주셔서 주님 성령을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가 실제적으로 우리의 마음속에 새로운 마음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하고 체험함을 통하여 알게 하여 주시고 느끼게 하여 주시고
주님 우리가 정말 주님과 교제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우리가 회복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다니엘 빌리지에서 머무는 동안 주님 정말 주님과의 교제의 기쁨이 충만한 신앙의 기쁨을 회복한 그러한 사람들로 거듭나게 하여 주시고 신앙하는 것이 행복하다는 것을 주 안에 기뻐하는 삶이 무엇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이 이론이 아니라 실제의 삶을 통해서 경험하는 사람들이 오늘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남은 모든 일정에도 주님 성령으로 충만케 하여 주셔서 내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는 그런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옵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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