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음악의 용광로 고란 브레고비치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준우승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나라. 크로아티아Republic of Croatia다. 크로아티아는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독립한 나라다. 유고 연방이라.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티토라는 강력한 지도자의 카리스마 아래 축구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성기를 누린 동유럽의 대표 강국이었다. 연방 해체 전까지 말이다.
이곳의 민족적·문화적 다양성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오스만 튀르크·신성 로마·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은 역사가 그렇고, 가톨릭·동방정교·이슬람이 공존하는 종교와, 집시·슬라브인·터키인·헝가리인 등이 몰려 있는 인종이 그렇다. 사회주의권 몰락 이후 난폭하고 잔인한 ‘인종청소’가 일어난 것은 어쩌면 예견된 것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 끝에 지금은 7개의 나라로 나뉜 상태다. 1991년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 곳곳에는 아직도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다.
유럽의 뜨거운 화약고 발칸반도가 동시에 문화의 거대한 용광로였음을 가장 극적으로 증명하는 음악가가 고란 브레고비치Goran Bregovic다. 아버지는 크로아티아 출신, 어머니는 세르비아 사람인데 자신은 보스니아에서 태어났다. 그의 음악에는 발칸반도의 모든 이질적인 것들이 다 들어 있다. 1970~80년대 이미 ‘동유럽의 비틀스’로 통한 록밴드 비옐로 두그메Bijelo Dugme(하얀 단추)를 이끌었던 그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유명한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Emir Kusturica와 의기투합하면서 발칸 음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거듭났다. 영화음악에서 보여 준 솜씨는 너무나 독특해서 한 번이라도 들으면 절대 잊히지 않는 마력이 있다. 예컨대 영화 <집시의 시간Time of the Gypsies>(1989)에서 애잔한 선율이 온통 마음을 휘감았던 ‘Ederlezi’, 펑크 음악의 대부 이기 팝Iggy Pop과 함께 불러 <애리조나 드림Arizona Dream>(1993)에 소개한 ‘In The Death Car’, 집시 음악에 힙합을 끌어들인 <언더그라운드Underground>(1995)의 흥겨운 삽입곡 ‘Ya Ya Ringe Ringe’처럼.
브레고비치는 말한다. “음악은 사람의 제1의 언어다. 인간은 언어를 다듬기 전에 음악을 먼저 했다. 음악으로 통하는 것은 아주 쉽다.” 그는 소통과 공감으로서의 음악을 믿는 것인데, 그 가능성을 역설적이게도 다양성으로 증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비틀거리는 광기와 사무치는 슬픔이 그의 음악 속에 공존하는 것이다. 술 취한 리듬이 장엄한 곡조와 어우러지고, 세련된 모던함이 질박한 토속성을 얼싸안는다. 그의 음악 용광로에는 집시 음악 말고도 록과 재즈, 탱고, 대서양 섬나라 카보 베르데Cape Verde의 모르나Morna 같이 저 멀리 있는 음악까지 숨어 있다. 지금도 그는 음악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브라스 밴드와 현악기 앙상블, 코러스로 구성된 ‘웨딩 앤 퓨너럴 오케스트라’를 대동해 전 세계에 공연하러 다닌다. 우리나라에도 마니아가 꽤나 많아 지금까지 세 번의 내한공연을 갖기도 했다.